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38

838화 세계 회의: 베르덴 (4)

섭리자가 세계 회의 의장으로서 주인 없는 땅이 에온의 고유 권역임을 공식화했다. 이에 반대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 특히 고무적이었다.

세계 회의 역사상 만장일치로 결론 난 건 이종족 전쟁의 종전 대의제 이후 처음이었다.

‘여기까진 순조롭다.’

베르덴은 투표 결과에 만족한다는 듯 아드리안과 와인 잔을 부딪쳤다. 간단한 건배였다.
제대로 축배를 드는 건 마무리까지 잘 끝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베르덴은 마그누스 은행산 레드 와인을 맛보며 마울러를 살펴봤다.

마울러는 여전히 팔짱을 풀지 않은 채 골몰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분노보다는 현 상황에 대해 의문스럽다는 기색을 보이는 듯했다.

정말로 뜻밖의 반격이라 그런 걸까.

하긴 소사이어티를 이용한 반마탑 논란을, 설마 최초의 마탑으로 완전히 묻어 버릴 거라고는 예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놈이 어떻게 소사이어티의 정보를 손에 넣었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세계 회의와 진실의 서약을 되짚어 봤다.

수왕은 마울러를 죽였다고 확신했지만,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진 마울러는 ‘누군가’의 조력을 받아 살아남았다.

과감한 성격인 마울러가 그 정체를 애써 감출 정도면 절대로 외부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

대체 누굴까.

수왕이 직접 무저갱이라고 언급했을 만큼 깊고 깊은 절벽 밑바닥에서, 항상성마저 깨진 초월자를 치료할 수 있는 존재라니?

어딘가에 인과가 있을 터였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면…… 수왕과 마울러의 결전이 벌어질 것을 알고, 마울러가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한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기다리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어쩌면 그자가 소사이어티의 기밀을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다. 당장은 이유도, 방법도 모르겠지만 일단 심증은 그렇다.

‘염두에 둘 필요가 있겠군.’

세상은 알게 모르게 모종의 의도로 촘촘하게 짜여 있다. 운명이란 개념이 실존하는 이상 우연은 극히 드물 수밖에 없다.
여기저기 보이지 않는 투명한 거미줄이 도처에 깔려 있다.

베르덴은 마울러의 배경만이 아니라 마울러의 전력까지도 경계했다.
놈은 단순히 경지만 높은 투하르 신조 서열 1위의 대제사장과 이슈르와는 다르게 사선을 밟으며 역경을 넘어왔기에.

적대 관계를 떠나서, 방심하지 않고 얕보지 않는 것이 에온을 위한 최선의 대책이자, 초월자로서의 존중이었다.

그때, 라인델이 점잖게 말했다.

“이로써 권역을 인정받은 걸 축하하지. 그래서, 이제 자네가 손에 넣은 비밀을 우리가 공유받을 수 있는 건가?”

다크워튼 마탑주조차 보란 듯이 흥미를 내보이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더욱더 자신의 호기심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

직전 베르덴을 정치적으로 공격했던 마울러도 예외는 아니었다.
마울러와 몰래 붙어먹은 마법주는 다소 심란한 마음을 억누른 채 애써 최초의 마탑과 관련된 사안에 귀를 기울였다.

섭리자가 직접 절차를 주재했다.

“베르덴, 정보를 공개할 것인가.”

부외자에게는 단순히 의사를 묻는 것처럼 들렸을 테지만…… 베르덴에게는 ‘이 이상 앞으로 나가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다’는 강력한 경고이자 충고처럼 해석됐다.

이에 베르덴이 대답했다.

“약속은 지켜야지.”

베르덴은 ‘이미 나아간 지 오래다.’라는 의지를 내비쳤다. 흐름은 넘어갔다. 섭리자는 침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섭리자가 눈치챈 베르덴의 계략을 아직 헤아리는 중이었던 대행자가 우물거리며 입 안쪽을 조심스럽게 깨물었다.

‘불안해.’

뭔가 무지막지한 짓을 저지를 것만 같다. 막아야 하는데 확실한 명분이 없다. 하물며 베르덴이 세계 회의를 통해 이루려는 뜻이 정확히 뭔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다.

기묘한 긴장감이 감돈다.

대행자는 마치 코앞까지 들이닥친 거대한 해일 앞에 멍하니 선 듯한 기분이었다. 한데 정작 섭리자는 방관만 하니 답답할 지경이었다.

<전이>

베르덴은 재차 무대 위로 올랐다.

침을 삼키는 소리와 숨을 고르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설명을 재촉하는 눈빛이 여름날의 햇빛처럼 따가웠다.

이윽고 넌지시 던져진 화두가 적막한 호수를 일깨웠다.

“너희들은 운명을 믿나?”

세계 회의의 마지막 주제는 ‘운명’이었다.

* * *

회의 초반에 이데라트 연맹장이 초빙한 감정사, 레논 버나드가 말했었다.

───자네들은 예언을 믿는가?

그러면서 레논은 약 4세기 전에 실존했던 선지자, 바아렌 모루의 이름과 함께 그가 썼던 3개의 시이자 예언서를 거론했다.
적룡의 습격, 마그라스, 그리고 거대한 발이라는 알 수 없는 주제까지.

그 결과…… 금환일식이 일어나는 날, 히아레마르 내해에서 용검, 마그라스의 소재가 드러날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고.
세계 회의에서는 해당 주제로 소의제가 발의되어 탐사단의 조직이 예정되었다.

그리고 제라클 황제는 진실의 서약에서, 언젠가 드래곤들이 날아와 이 땅을 불태운다는 에언이 마경 정벌의 계기라고 답했다.

이러한 미래 예언들은 운명적 이론을 기반으로 두고 있다. 운명론. 아무리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해도 그 개념은 실존한다.
아직도 남아 있는 점성술과 카드 점술 등이 증거라면 증거였다.

“운명이라면 또 예언인가.”

리반데일 대공이 팔꿈치를 상원 테이블에 올린 채 관자놀이를 짚었다. 레논 버나드와 제라클 황제에 이어서 세 번째 나오는 동일 주제지만 그 무게감이 확연히 달랐다.

레프라기움 마탑주가 인정한 최초의 마탑주의 이름값이었다. 게다가 선대 최초의 마탑주로부터 얻은 정보라니…….
뭐가 됐든 간에 일단 제대로 듣고 판단하는 것이 선제였다.

서약자가 묻는다.

“이번엔 무슨 예언이지? 세계 회의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운을 띄운 걸 보면 예사로운 주제는 아닌 듯한데. 뭐, 설마 세계 멸망 같은 게 예고된 건 아닐 테고.”
“그거야 예언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갑작스럽게 칼날이 등 뒤를 뚫고 들어온 것처럼 공기가 경직됐다. 멸망할 수 있다? 가벼이 흘려 넘길 수 없는 안건이었다.

베르덴이 즉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창 피울음 역병이 확산할 때, 나는 위계 마법 체계와 최초의 마탑을 창시한 네 명의 키론다르, 그 필두인 1대 최초의 마탑주 ‘텔로르 크렌드로스’의 의지와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먼 과거 시대의 존재들과 조우했지.”

스윽.

베르덴이 높이 팔을 들었다. [명시의 환란]이라는 칠흑의 장갑으로 가려진 주먹에서 세 개의 손가락만 모두에게 펴 보였다.

“드래곤, 죽음의 군주, 그리고 바다.”
“……!”
“이 셋은 언젠가 대륙에 계측 불가한 영향을 끼칠 미래의 위협들이다. 전과는 달리, 지금의 너희들에겐 대부분 그리 생소하지도 않을 테지.”

드래곤은 레논 버나드와 제라클 황제가 연이어 언급했고, 시체 위의 군주───옛 왕은 루아스교의 성녀가 직접 밝혔다.

후자는 진실의 서약을 통해 알려진 내용이라 서약의 미참여자들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기밀이 밝혀진 이상 소문이 퍼지는 것은 한순간이라 세계 회의 이후 곧 접하게 될 것이다.

반젤리스가 눈을 가늘게 떴다.

‘……확실히 묘하다.’

레논 버나드, 제라클 황제, 베르덴이 말한 내용이 서로 겹친다. 저 셋이 미리 공모했다고 보기는 솔직히 말해서 어려웠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예언 자체를 대하는 그들의 행동이 너무 진지했으니까.

용검을 찾기 위한 탐사단 소의제.
마경 정벌 대의제.
최초의 마탑까지 연관된 비밀.

만약 그들이 몰래 작당해 입을 맞춘 거라고 치자. 그래서? 그 거짓말을 통해서 도대체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희미한 이득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혀 합리적이지 않았다.

그렇게 초침이 움직이며, 감정과 이성적 판단을 모두 동원한 청중들의 생각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제한되었다.

만에 하나라도 예언이 진짜라면?
그래서 저렇게 목소리를 높이는 거라면?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주입되니 예언과 운명론을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은 사람도 무시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의심이 마음속에서 싹을 틔웠다.

베르덴과 제라클 황제를 향한 최소한의 신뢰는 질 좋은 거름이 되었다. 의혹이 고개를 쳐들며 하늘의 태양에 머리를 향했다.

특히나 ‘바다’가 명시된 순간에 흑해의 관심도는 극으로 치달았다. 눈꺼풀 하나 움직이지 않은 그녀의 눈빛이 회의장 중심에 꽂혔다.

베르덴이 말을 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밝혀낸 예언에 한해서는 이 셋이 전부다.”

마스터가 묻는다.

“지금까지라면…… 또 있다는 얘긴가요?”
“내가 말한 건 어디까지나 일부다. 그리고 나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 정확히는 세상이 정해진 대로 흘러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지. 당연하게도. 오히려 언젠가의 위협은 예언들보다 더 많을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있다. 언제나 최악을 대비해 두는 편이 현명하니까.”

좌중이 경청했다.

“물론 이렇게 말해도 쉽사리 납득하긴 어렵겠지. 더군다나 이상을 향해 나아가는 초월자들은 더더욱.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봐라.”

베르덴이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다히트 웨스로엘과 유골룡 말고도 초월적 존재를 어떻게, 그리고 왜 셋이나 더 죽였을까.”
“……!! 아……!”

세상 전체를 통틀어도 초월적 존재의 수는 매우 적다. 그럴진대 대체 어디서 그들을 찾아 제 손으로 처단할 수 있었을까.
베르덴의 기이한 행보가 퍼즐처럼 빈자리에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너희들이 모르는 세상을 경험했다. 일부는 이미 알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게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이유지.”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라고.”

수왕이 성녀를 상대했을 때보다 훨씬 더 난폭한 웃음을 지었다.

“거기엔 초월적 존재가 많나? 서로 죽고 죽여도 문제없을 만큼?”
“알 수 없다. 그러나 네 욕구를 충족하기엔 차고 넘치겠지. 어떤 제약도 없이.”
“호오.”

교황도 입술을 떼었다.

“……신성, 정말로 옛 왕이 최초의 마탑의 예언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시체의 산 위에 앉은 군주. 주검의 영광과 옛 왕 외에는 떠오르지 않는군. 그와 비슷한 존재가 하나 더 있진 않겠지.”

흑해가 무표정한 얼굴로 상원 테이블을 콩콩 두들겼다.

“바다, 정말이야?”
“물결치는 바다. 아직 확실히 알아낸 건 없지만, 바다에 뭔가가 있다고는 믿고 있다. 네가 왜 그렇게 바다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만큼은.”

바다를 향한 광기를 처음으로 이해받은 흑해의 동공이 순간 흔들렸다. 그녀가 이렇게 큰 감정을 드러낸 건 모험가 길드 본부장조차 거의 보지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원한다면 내 발언들의 진실을 하나하나 판별해도 좋다. 물론, 그 이상의 대가를 치른다면.”

베르덴은 진실의 서약을 역으로 무기로 삼아서 설득력을 높였다. 전반적인 원인과 결과의 흐름은 틀렸지만, 문장들을 개별적으로 따져 보면 한 치의 거짓도 없기 때문이다.

‘뭐, 전부 눈치채지 못한 건 아니지만.’

베르덴이 스치듯 아르나크 제국 측이 앉아 있는 자리를 쳐다봤다.

제라클 황제와 리반데일 대공이 당황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여타 참석자들과는 다른 의미로.

‘대지를 향해 숨결을 토해 내는 드래곤들, 시체의 산 위에 앉은 군주, 물결치는 바다…… 저건 몰가른의 미래 벽화에 있었던 내용일 텐데?’

아르나크 제국 황성 지하에 보관 중인 군단의 대악마, 몰가른이 온갖 예언가들을 끌어모아 구축한 과거, 현재, 미래의 벽화.

베르덴이 최초의 마탑을 근거로 삼아 몰가른의 벽화를 일부 누설한 건가? 아니면 최초의 마탑에 정말로 그런 게 있었던 건가? 어디서부터 진실이고, 어디서부터 거짓인가?

생각이 꼬이는 것 같다.

두 사람은 몇 번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었다. 이와 비슷한 의미로 경악한 건 대행자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그녀가 식은땀을 흘렸다.

* * *

마침내 대행자, 메이아가 베르덴이 감춘 의도를 이해했다. 이해하고 말았다. 그녀가 아무도 모르게 섭리자의 소매를 붙잡았다.

“당신…… 이거 감당할 수 있어요?! 저희가 얻은 미래 정보 대부분이 폐기될 텐데……!!!”
“그렇겠지. 하나, 이미 늦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4년 전, 베르덴이 동력원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부터 늦어 버렸지.”

섭리자가,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세렌디아와 눈을 마주쳤다.

“이 ‘선택’의 파급력은 막을 수 없다.”

섭리자와 대행자의 속삭임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은 채 흩어졌다. 그리고 운명적 필연이 다수에게 일부분 폭로된 순간 대행자는 소름 끼치는, 강렬한 기류를 느꼈다.

‘베르덴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선택을 내린 초월자……!’

베르덴의 영향력은 차원이 다르다. 그의 곁에 오래 머물수록, 그의 영향을 깊이 받을수록 점차 운명에서 벗어나게 된다.
마족이 된 이자벨라와 초월자가 된 아드리안처럼 말이다.

그런 베르덴이 공식적으로 전 대륙에 군림한 존재들에게───‘당신’의 금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운명의 진실을 일부 논했다.
하나, 그것만으로도 운명의 수레바퀴가 부서진 뒤 남은 운명의 잔재를 건드리고 찢어발기기에는 충분했다.

……투두둑.

뭔가가 끊기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행자의 시야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비추었다.
베르덴을 제외한 모두에게 ‘운명의 실’들이 박혀 있는 게 보였다. 섭리자와 대행자에게도 걸려 있는, 기능이 정지된 실들까지.

‘이건, 저항 수준이 아니야.’

운명의 실들이 강제로 잡아당겨지면서 팽팽하게 흔들렸다. 위태로운 느낌이 그녀의 감각을 깊숙하게 파고들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베르덴의 영향력은 실시간으로 세계를 자극했다.

‘반란……!!’

투둑──!

시작은 곧 또 다른 시작이 되었다.

투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둑!!

‘당신’의 인형극을 이루는 수많은 운명의 실들이 대부분 끊어졌다. 베르덴이라는 존재가 배경을 크게 무너뜨렸다.

이그나시아의 눈꼬리가 휘었다.

“운명과 예언? 재밌는 이야긴데?”

선택받은 인형들이 무대 바깥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베르덴의 계획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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