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840

840화 세계 회의: 폐회 (2)

베르덴은 기본 대의제 중 하나인 주인 없는 땅에 대한 권역 정당성을 얻었고, 아드리안이 기습적으로 재발의한 마경 정벌 대의제는 공식적으로 통과되었다.

이후로 추가 의제는 제기되지 않았다.

세계의 실권을 움켜쥔 권력자들도 당장 소화하기 어려운 정보량이었다. 하원의 참석자들은 아주 골이 아플 지경이었다.
이건 정회 시간이 있어도, 루아스교와 서약자의 도움을 받아 심신이 안정된 상태라고 해도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충분하다, 혹은 차고 넘친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련을 털어 냈다.

어차피 지금까지 나온 의제들보다 더 대단한 게 나오진 않을 터였다. 그에 준하는 안건을 떠올릴 만한 자신도 없었다.
이대로 복귀해 세계 회의의 결정에 대처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교황이 눈을 감았다.

‘주검의 영광 때문에 가급적 조용히 넘어가길 바랐건만. 오늘날의 세계 회의가 시대를 뒤흔드는 분수령 자체가 되어 버렸군요.’

이래서는 루아스 교국의 신경도 분산될 수밖에 없다. 주검의 영광은 분명한 위협이지만, 이곳에 모인 일부 참석자들도 잠재적인 위험이다.

특히 베르덴.

수왕의 행동 원리는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긴 하나, 베르덴은 그렇지 않다. 베르덴의 모든 행보가 예측 불가하다.

최초의 마탑이라니?

옛 왕의 탄생 이전 유물을 손에 넣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자칫하면 세계의 균형이 크게 무너질지도 모른다.

그나마 성자가 탄생한 덕분에 전력 면에선 문제없지만…… ‘언젠가 인간이 딛고 있는 대륙에 위기가 찾아올 때 새로운 성자가 태어날 것’이라는, 전대 성자의 유언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불안과 걱정.

하나, 그것도 빛의 인도이리라.

‘루아스시여, 우리를 굽어살펴 주소서.’

이 난세에 자신이 신인으로서 선택받은 이유가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작은 기도에 안정을 찾았다.
교황은 가장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서 기꺼이 한 몸 바칠 것이라는 오랜 맹세를 다시 마음과 머리에 되새겼다.

그리고.

수왕은 턱을 괸 채로 생각에 잠겼다.

‘구경하는 재미는 확실하군. 세계 회의에 참석한 보람은 있었다.’

보통은 지루하기만 한 머리싸움이지만 이번에는 제법 즐길 수 있었다.
물론 수왕의 본능을 제대로 자극한 것은 일순간 드러난 검붉은 마력이었다. 그의 압도적인 저항력을 뚫고 들어온 그 불길한 힘.

‘저게 완성된다면…….’

상상만 해도 수왕은 피가 끓었다. 태어난 이후로 전력을 발휘해 본 적이 없는 그에겐 압도적인 강자가 절실했다.
마울러처럼 어중간한 경지가 아니라 성녀처럼 최강자의 반열에 들 법한 존재 말이다.

오직 단 하나의 맞수를 상대로 진정한 혈투를 느껴 보고 싶다.

바로 그 한순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인내할 수 있다. 게다가 즐길 거리도 생기지 않았나? 수왕은 베르덴이 말한, ‘세상이 알지 못하는 세상’에 뛰어들 계획이었다.

야성(野性)을 유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산마루에 오른 늑대는 사냥을 잊게 되는 법이니까. 수왕은 언제나 사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더는 제의자가 없는 걸 확인했으므로 두 번째 대의회를 마치겠다. 이것으로 모든 참석자에게서 안건을 발의할 권리를 회수하겠다. 본 세계 회의는 종료되었다.”

섭리자가 세 번 상원 테이블을 두드렸다. 여기서 지겹도록 접한 울림이지만 매번 느껴지는 게 조금씩 달랐다.
지금은 마치 목을 옥죈 올가미가 풀어진 것처럼 상쾌한 기분이었다.

“그럼, 정리하지.”

섭리자가 일어섰다.

“공식적으로 통과된 의제는 이형종 공존 대의제 개정, 대륙 간 무역 협정, 히아레마르 내해 탐사, 해양 마석 광산의 추가 개발안 및 마석 조약, 초월자의 아카데미 위계 교육, 주인 없는 땅 대의제 폐지, 마경 정벌. 세계 회의에서 결정된 모든 사안은 정식 문서로 명시된다.”

세계 회의록을 작성하고 있던 대행자가 아름다운 글씨체로 쓰인 문서들을 보였다. 이것들은 머지않아 대륙 전역에 퍼질 예정이었다.

“현시점 회의 진행 시간은 41시간 34분 14초, 정회 시간은 2시간 10분으로, 총 회의 시간은 43시간 44분 14초. 원활한 진행을 위해 참석자들의 심신을 안정시켜 준 루아스 교국과 서약자에게, 의장으로서 진심 어린 감사를 표한다. 그리고 세계 회의장을 구현한 계외에게도.”

섭리자는 세계 회의를 도와준 인물들에 대한 인사를 잊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세계 의장으로서.

마침내 끝이 임박했다.

“개회, 첫 번째 소의회, 첫 번째 대의회, 두 번째 소의회, 두 번째 대회의. 우리는 이제 예정된 세계 회의의 마지막 절차만을 남겨 두었다. 하원과 상원, 전원 기립하라.”

모든 참석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 속도는 각자 달랐지만, 끝까지 의장의 권위를 무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번 세계 회의는, 지난 세계 회의와는 성격이 달랐다. 과거에는 세계적인 발전과 안정을 중점으로 논의했다면, 오늘날에는 세계적인 위협을 중심으로 삼아 상의했지. 우리는 적룡의 비늘과 주인 없는 땅에 대해 대화했고, 또 결론 내렸다.”
“…….”
“회의에는 선악도, 옳고 그름도 없다. 우리의 결정이 최선이었는지는 오직 절대적인 시간만이 평가할 것이다. 현재가 어떤 미래로 이어지든 간에 선택의 책임은 우리에게 있으니, 이곳에서 행사했던 투표권의 무게와 의미를 기억하라.”

섭리자가 참석자들의 면면을 하나씩 바라보다가 베르덴에게 잠시 시선을 멈추었다.

“부디 명심하도록.”

섭리자의 짧은 연설은 느슨해진 공기를 다시금 긴장시켰다. 만약에 다음 세계 회의가 개최된다면 이 중 얼마나 남아 있을 것인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세계 회의 자체가 영영 열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태평성대이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국제사회의 붕괴 때문일 수도 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앞으로 세상은 어떻게 될까.

모든 참석자와 호위는 기대감과 불안감을 한껏 마음속에 품었다. 뭐가 됐든 간에 중요한 건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것이다.

“대륙에 공표된 의제들은 이후 조율되어 진행될 것이다. 그럼 이걸로 세계 회의를───”

그때였다.

찰나의 순간에 대행자가 참석자들의 이목을 속인 채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운명 이래 특별한 것으로 손꼽히는 마력이 그녀의 감각을 이끌었다.

마도 <선견지행(先見之行)>

대행자가 즉시 시전한 마법이 아직 다가오지 않은 시간 속에서 발동됐다. 고유 마법에 담긴 것은 일종의 ‘무력화’였다.
그렇게 초침이 어느 시점을 정확히 가리킨 바로 그 순간이었다.

“……!”
“?!”
“음?”
“잉? 뭐야?”
“무슨…….”

갑작스럽게 바람이 불어닥친 듯 초월적 존재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같은 곳을 향했다.
뒤늦게 극점 수준의 호위들도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이질감을 잡아챘다.

“어, 어엇, 엇……?!”

압도적인 중압감에 사로잡힌 로니아 국왕이 벌벌 떨었다. 숨통이 단단히 틀어막힌 탓에 입에서 나오는 것뿐이라고는 불쾌한 신음뿐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노려보는 건 로니아 국왕 따위가 아니었다. 뒤에서 로니아 국왕을 보좌하고 있는 어떤 여인이었다.

“…….”

여인은 자연스럽게 깜짝 놀란 듯 주춤거렸다가, 곧 자신의 신체를 물끄러미 훑어보더니 능청스럽게 손톱을 깨물었다.
직전까지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죽음의 기운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어라, 걸렸네?”

여인──주검의 영광의 두 번째 하인, 루네시카 안테르노아가 도주했다.

* * *

찰나의 정적이 스쳐 지나가면서 강렬한 빛이 사방을 밝혔다.

성창이 허공을 갈랐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히, 히익!!”

로니아 국왕과 다른 호위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정도의 투창이었다. 몸을 던져 피한 루네시카가 미끄러지듯 이동했다.

“그 피울음 역병을 일으킨……!!”

성자, 레온하르트가 짙은 살의를 내비치며 상원 테이블을 박찼다. 수직으로 떨어진 성검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조금 잘라 냈다.
직후 성녀에게서 배운 대로 성자가 그대로 팔을 쳐올렸다.

쩌어엉───!

신성한 검기와 불길한 사기가 넘실거리는 손날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빠르게 뒤로 물러난 루네시카의 팔이 통째로 뭉개졌다.

‘역시 적응한 지 얼마 안 된 몸이라 상대가 안 되네. 그나저나 발각되는 건 계획에 없었는데. 퇴로가 전혀 안 보여.’

루네시카가 마력을 모조리 긁어모아 보호막을 구현하자, 초월자들의 일격이 벼락처럼 사방에서 쏟아졌다.
당연하게도 급조한 보호막은 잠시 버티는가 싶더니 곧 붕괴되었다.

육체 곳곳이 박살 났다.

신속의 검기가 손목과 발목의 인대를 사정없이 절단했다. 상체가 축 늘어진 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주먹이 드리웠다.

콰지지지직!!!

마울러의 권격에 정통으로 맞은 루네시카가 벽에 처박혔다. 정확히 즉사하지 않을 정도의 충격력이 체내의 기능을 파괴했다.
울컥 피가 쏟아지는 와중에 최고위 기적들이 일대를 봉인했다.

어느새 다가온 교황과 성녀가 루네시카를 내려다봤다. 두 사람이 가진 신앙심만큼이나 적개심으로 가득한 눈빛이었다.

루네시카가 피로 물든 얼굴로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이런, 상태라도. 극점을, 쳐 죽일 정도는 되는데. 역시 숫자가, 대단하긴 해.”

교황이 입술을 달싹였다.

“……‘영혼을 노획하는 자’. 아무래도 당신이 그 루네시카 안테르노아인가 보군요.”
“알아보긴, 하네?”
“헤에.”

이그나시아가 불쑥 머리를 들이밀고는 그녀를 가리켰다.

“얘가 그 주검의 영광이란 녀석들이야?”
“옛 왕의 두 번째 하인입니다. 첫 번째 하인과 마찬가지로 약 8세기 전에 인물이죠. 초월자이기도 합니다.”
“주검의 영광의 이인자란 얘기? 게다가 고대의 초월자? 놀라운데. 지금까지 우리의 감각을 속이고 숨어 있었던 점이 특히. 어떤 쥐새끼도 이 정도는 못 할 텐데.”

성녀가 간단히 설명했다.

“빙의(憑依). 그녀가 인간의 영혼을 집어삼키고 육체를 강탈하면 완벽하게 존재감을 감출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빙의 대상은 죽음과 동시에 루아스 여신의 곁으로 갈 수 없다고 전해지고요.”
“아하.”

이그나시아가 쪼그려 앉았다.

“근데 왜 마지막에 와서 들킨 거니?”
“글, 쎄?”

루네시카가 어깨만 살짝 으쓱거렸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 본인도 왜 정체가 발각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여기 참석자 중 누군가가 손을 썼다는 건 알겠는데…… 내 존재를 진즉 알아챘으면서도, 왜 방치하고 있던 거지?’

나름대로 혼란을 느끼고 있는 건 루네시카도 마찬가지였다.
뭐, 아무래도 좋다.
그래도 진실의 서약을 제외하고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는지 전반적으로 이해했으니 당초의 목적은 달성했다.

수왕이 상원 테이블에 다리를 올린 채로 코를 씰룩였다.

“냄새가 극히 희미하군. 죽여도 본체에는 타격이 없을 테지.”

성녀의 인상이 험악하게 일그러졌지만 이대로 봉인한다고 해도 루네시카의 의식이 멀쩡히 돌아가는 건 막을 수 없다.
그렇게나 간단한 상대였다면 루네시카는 예전에 처단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단자를 이대로 보낼 수는……!’

성녀가 필사적으로 루네시카를 죽여 버릴 방법을 모색했다. 그녀의 뜨거운 눈길을 받은 루네시카 또한 살기를 내비치며 비아냥거렸다.

루아스 교국과 주검의 영광은 언제나 그러했듯 평생의 숙적이자, 같은 하늘 아래에서 살아 숨 쉴 수 없는 운명이었다.

“거짓된 신의 주구들아, 남은 옛 왕의 신체들도 곧 되찾으러 갈──”

<파멸>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이동한 베르덴의 손이 루네시카의 몸체를 관통했다. 일순간 검붉은 마력이 번개처럼 번쩍거렸다.

……툭.

루네시카가 빙의한 여인의 눈동자에서 빛이 사라졌다. 몸에서 힘이 빠졌다. 바깥으로 나온 피가 조용히 흘러내렸다.

성자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 지금. 뭐 하신 거죠?”
“어차피 사로잡을 수도 없다.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해 줄 것도 아니고. 잠시라도 대화를 나눌 하등의 가치조차 없지.”

베르덴이 자세를 바로 했다.

“쓸데없이 휘둘리지 마라. 여인의 장례나 잘 치러 주도록.”
“아하하, 역시 냉철하네. 섬세하기도 하고?”

이그나시아가 부드럽게 여인의 반쯤 뜬 눈을 감겨 주었다. 이제야 끝나나 싶던 분위기는 한없이 무거워진 상태였다.

서약자가 고개를 쳐들더니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섭리자, 혹시 너는 초대받지 않은 참석자가 있는 줄 알고 있었나?”
“사기를 색출할 적임자는 내가 아닐 텐데.”

다름 아닌 루아스 교국이 죽음의 기운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섭리자에게 해당 질문을 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았다.
서약자도 물론 그걸 인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직감을 따랐을 뿐이다.

“…….”

라인델은 묵묵히 자리를 지킨 채 모든 상황을 주시했고, 섭리자는 마지막까지 의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했다.

“소란은 끝났다. 그러니 의장으로서 다시 한번 말한다. 대륙에 공표된 의제들은 이후에 조율되어 진행될 것이다.”

섭리자가 선언했다.

“이것으로 가르간트의 세계 회의를 폐회하겠다.”

손끝의 진동이 상원 테이블을 타고 전해져 세계 회의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유일한 문이 활짝 열렸으나 당장 움직이는 사람은 없었다.

……꿀꺽.

초월적 존재를 제외한 모두가 긴장했다.

갑자기 돌변해 초월자들에게 죽임을 당한 여인의 시신이 눈에 들어왔다. 다른 사람에게 육신을 빼앗긴 거라고 했나?
아무튼 속이 울렁거렸다. 그 무고한 죽음은 왠지 모르게 앞으로 일어날 상황은 암시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저 두루뭉술하게만 여겨졌던, 세계 회의에서 언급된 훗날의 위협이란 것들이 조금이지만 피부로 와닿기 시작했다.

사망자 1명.

그 피비린내 나는 단호한 현실이, 세계 회의의 끝을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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