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6화 재능과 불꽃 (3)
마일라는 퉁퉁 부운 눈가를 손으로 가린 채 코를 훌쩍거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손수건이 아예 축축할 지경이었다.
“미안…… 내가, 어른답지 않게…….”
감정이 아직 진정되지 않았는지 코맹맹이 소리는 여전했다. 문틈으로 얼굴을 내민 아이들이 “원장님, 또 운다!”면서 호들갑을 떨어 댔다.
“그거 줘 봐요.”
로벨린이 마도로 구현한 불꽃으로 손수건을 말려 주었다. 순식간에 뽀송뽀송해진 손수건의 따스함이 마일라에게 전해졌다.
“마법을 이렇게…… 로벨린이 언제 이렇게……!”
마일라가 가슴이 벅찼는지 손수건에 다시 얼굴을 파묻었다. 벌써 세 번째였다. 이대로 가다간 제대로 된 대화 한번 못 나눌 판이었다.
베르덴은 내심 웃었다.
‘한결같군.’
마일라는 감동을 받으면 울기도 하고, 성질이 뻗치면 화를 내기도 한다. 정신적으로 힘겨울 때는 남몰래 밤하늘을 보며 코코아로 심신을 달래기도 하는 사람이다.
표정을 관리해도 끽해야 어린아이만 속일 수 있을 뿐…… 어지간한 사람은 다 알 정도로 감정이 얼굴에 훤히 드러난다.
평범한 여인이다.
그렇기에 베르덴과 로벨린은 일상에서 자라날 수 있었다. 누가 뭐라고 하든 마일라는 임시 보헤미른 마탑주와 초월자의 보호자였다.
마일라가 손수건을 꼭 쥐었다.
“미안해, 또. 나이가 드니까 눈물이 많아져서.”
“예전에도 눈물은 많으셨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내가 그랬니?”
“예쁜 언니 말이 맞아요, 원장님!”
“원장님은 울보예요!”
마일라가 뒤를 휙 돌아보자 아이들이 재빠르게 문 뒤로 숨었다.
설마 아이들에게 울보라는 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던 그녀는 어른으로서 너무 부끄럽다는 듯 작게 헛기침했다.
“그, 그나저나…… 베르덴. 여기저기서 네 이름이 들리던데. 그게, 너 맞지?”
“맞을 겁니다.”
“그럼, 그 폐하라는 것도 진짜……?”
마일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너무 반갑고 그립고, 그래서…… 그만 실례를…….”
“피울음 역병 사태로 인해 라스카벨에서 고충이 많았다고 들었습니다.”
베르덴이 물었다.
“어레인에서의 생활은 어떻습니까.”
“……!”
베르덴은 에온의 지도자로서 마일라를 찾아온 게 아니었다. 라스카벨 고아원 출신으로서 그녀와 마주 앉아 있는 것이다.
로벨린도 마찬가지였다.
안부를 묻는 베르덴의 저의를 이해한 마일라가 간신히 눈물을 참았다.
“덕분에, 너무 잘 지내고 있어. 나도, 아이들도, 월릭 할아버지도. 고마워. 너희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너희에게는 항상 도움만 받네. 지금도…… 옛날에도.”
마일라는 “잠시만.”이라고 말하며 방 한편에 놓인 장롱 아래쪽 서랍을 열었다.
신중하게 서랍 안쪽을 더듬던 그녀는 두 개의 지폐 뭉치와 정성스럽게 보관한 오래된 종이 뭉치를 꺼냈다.
400만 엘크, 그리고 400만 엘크.
과거의 편지들.
베르덴과 로벨린에게는 절로 과거를 떠올리게 만드는 액수와 글이었다.
“벌써 21년이나 지났네.”
마일라가 지폐와 편지를 어루만졌다.
“기억나지? 기근 때문에 우리 라스카벨 고아원이 많이 힘들었었잖아. 아무리 아끼고 아껴도 굶주림은 피할 수 없었고…… 너희들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다른 애들은 울거나 난리를 쳤었는데.”
그녀가 시선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때 보헤미른 마탑에서 두 마법사가 마을을 방문했지. 어린 일꾼을 구한다면서. 사람이 모이지 않자 고아원에도 찾아왔고. 재능 있는 아이를 내주면 돈을 주겠다는 말과 함께.”
“…….”
“솔직히 망설였어. 일꾼이라고 해도 마탑이라면 정말로 좋은 환경일 테니까. 고아원보다…… 훨씬. 그 돈이면 아이들을 먹여 살릴 수도 있었고.”
로벨린이 말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으셨죠.”
“내가 어떻게 그러겠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 세상에 어떤 원장이 지켜야 할 아이로 거래를……!”
마일라가 입술을 짓씹었다.
“그런데 그날 밤…… 너희들은 보헤미른 마탑으로 떠났지. 한마디 작별 대신, 각자 침대에 400만 엘크와 편지를 두고 말야…… 그리고, 나는 그 돈을 고아원을 위해 썼고. 근데 있잖아. 너희가 없어진 방을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린 베르덴과 로벨린이 남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고아원에 꼭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내가…… 너희들을 팔아서 연명하는 거하고 이게 뭐가 다를까?”
베르덴이 즉답했다.
“마탑으로 간 건 저희 선택입니다.”
“너희 둘이 그냥 보헤미른 마탑으로 간 거였다면 납득했을 거야. 하지만 떠나는 그 순간까지 고아원을 위했잖아…… 베르덴, 그건 희생이야. 그때 너희들은 희생을 알아서는 안 됐어. 너무, 어렸잖니.”
“원장님도 어렸죠.”
당시 마일라는 고작 19살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젊음을 구가했을 때 그녀는 자신이 나고 자란 라스카벨 고아원을 운영했다.
“맞아…… 그래서 미숙했어.”
마일라가 천천히 시선을 높였다.
“어쩌면 보헤미른 마탑에서 누구보다 잘 살고 있는 게 아닐까…… 너희들이라면 어디에서든 잘 살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너희들을 희생하게 만든 나 자신을 합리화했어. 너희들이 어떻게 사는지 모르면서…… 내 마음 하나 편하려고.”
그녀가 웃었다.
“몇 년이 지나서 너희들한테 편지가 왔을 때는 정말로 기뻤어. 그때부터 돈을 조금씩 모았어. 나중에 너희들하고 만나면 너무 고마웠다고, 그 말과 함께 돌려주고 싶어서. 그런데…….”
마일라가 한 줄기 눈물을 흘렸다.
“베르덴이, 죽었다고.”
로벨린이 보낸 편지에는 마치 감정이 절제당한 것 같은 글귀가 가득했다. 그것은 절제이자, 극도의 분노이며 슬픔이었다.
마일라는 그런 로벨린의 심정을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헤아릴 자격도 없었다.
비극이다.
보헤미른 마탑의 마법사가 다른 생각할 틈도 없이 단호히 거절했다면? 마법을 좋아하는 베르덴을 계속 지켜봤다면? 아이들이 굶지 않도록 고아원을 잘 운영했다면? 아무리 괴로워도 아이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믿음을 보였다면?
되돌릴 수 없는 무수한 후회 끝에 남은 건 지독한 죄책감뿐이었다.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던 건 아니잖아…… 그렇지?
“원장님.”
“내가…… 잘했으면, 내가, 너희들을 잘 돌봤으면 됐는데.”
마일라가 눈을 질끈 감았다.
“마탑 같은 거 없어도, 잘 클 수 있게 내가 희망을 줘야 했는데…… 너희한테 힘든 모습만 보여서…… 미안해…… 미안해, 베르덴…… 미안해, 로벨린…….”
구슬 같은 뜨거운 눈물이 마일라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무리 닦아 내려고 해도 죄책감은 멈추지 않았다.
베르덴이 그녀의 손등 위에 손을 얹었다.
“원장님이 아니었다면 저와 로벨린은 누구에게도 보호받지 못했을 겁니다. 그 생각은 예전에도 지금도 변함없습니다.”
“하지만…….”
“아니면, 죄책감이 들 정도로 저희가 그렇게 못나 보여요?”
“아니!”
마일라가, 베르덴의 손을 붙잡았다.
“잘 컸어……! 너무 잘 컸어……! 베르덴, 로벨린. 둘 다 너무…… 잘 커 줘서, 이렇게 잘 커 줘서 정말로 고마어……!!”
마일라가 제대로 발음할 수 없을 정도로 다시 펑펑 울기 시작했다. 베르덴과 로벨린이 오히려 그녀를 달래 주었다.
어렸을 때는 항상 그녀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았는데…….
‘이젠 누가 더 어른인지 모르겠군.’
* * *
마일라는 조금 더 대화를 나누다가 울다 지쳐 잠에 들었다. 참고로 아이들을 위한 저녁은 외부 음식으로 해결했다.
마일라를 잠자리에 옮긴 베르덴과 로벨린이 밖을 나섰다.
해는 이미 저물었다.
겨울의 밤하늘을 채운 달빛과 별빛이 두 사람을 비추었다.
“거봐. 펑펑 우실 거라고 했지?”
“그렇군.”
“그동안 여력이 없기는 했지만…… 그래도 시간을 내서 좀 더 일찍 올 걸 그랬네.”
성인이 된 고아들은 자신이 고아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대부분 숨기고 싶어 한다. 사회적으로 곱지 않은 시선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고아원을 떠난 뒤 다시 고아원을 찾는 일은 드물었다.
하지만 베르덴과 로벨린은 고아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절을 은혜라고 여기고 있으니…… 마탑 이야기와 별개로 마일라는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로벨린이 임시 고아원을 올려다봤다.
“……앞으로 라스카벨 고아원이 아니라 어레인 고아원이라고 불러야 하나. 굳이 고아원이라고 부를 필요는 없을 것 같기도 하고.”
“뭐라 부르든 본질은 같다. 명칭을 바꾸고 싶다면 원장님이 알아서 하겠지.”
“뭐, 그렇겠지. 그런데 원장님한테는 꼬박꼬박 존대하네?”
“그럴 만한 사람이니까.”
베르덴은 담담하게 대답하고는 슬쩍 뒤로 눈길을 보냈다. 벌컥. 문이 조심스럽게 열리면서 여자아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저기…… 언니하고 오빠도 우리 라스카벨 고아원 출신이에여?”
“그런데.”
“그럼 앞으로 언니, 오빠라고 불러도 돼여?”
아이는 이미 그렇게 부르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걸 굳이 지적하지 않았다.
“그래.”
“와! 언니하고 오빠 생겼다!”
여자아이는 곧 집 안으로 달려가 다른 아이들에게 새로운 소식을 전달했다. 2층에서 떠들석한 소리가 들려왔다.
베르덴과 로벨린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돌아갈까?”
“먼저 가 있어라. 금방 뒤따라가지.”
베르덴은 고아원 근처에 있는 누군가의 존재감을 의식하고 있었다. 그 사람의 기척은 로벨린도 이미 감지한 상태였다.
<비행>
로벨린이 어레인 성채를 향해 날아올랐다.
베르덴은 곧바로 임시 고아원 근처의 골목으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벌레가 고요히 우는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날씨가 그리 따뜻하진 않은데. 계속 기다리기만 할 생각인가?”
터벅, 터벅, 터벅.
월릭이 비틀거리며 천천히 그늘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늙고 병든 마도사와 젊은 초월자의 시선이 교차했다.
“재능은…… 하늘이 준다. 아무리 한탄해도 그건 변함이 없는 사실이지. 모두가 그런 정해진 세상에서 살아간다. 그게 진리니까.”
“…….”
“그런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월릭이 다가와 주름진 손으로 베르덴의 멱살을 붙잡았다.
지팡이가 바닥을 굴렀다.
“분명 너의 마법적 재능은 1위계가 한계였는데, 어떻게 지금은…… 왜, 어떻게 절대 바꿀 수 없는 것을 바꾼 것이냐, 베르덴……!”
월릭의 표정은, 과거 마을의 아이들에게 마법을 보여 주었던 인자한 이웃 할아버지답지 않게 일그러져 있었다.
납득할 수 없다는 듯이.
월릭은 그때의 이웃으로서 베르덴을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 명의 마법사로서 미지를 해명하기 위해서 왔다.
“한계 위계. 역시. 그래서 내게 마법을 알려 주지 않았나. 어차피 가르쳐 봤자 마법사로서 대성하긴커녕 평범한 마법사도 될 수 없으니까.”
베르덴이 물었다.
“배려라고 하기엔 구차하군.”
“뭐……?”
“선택을 하는 건 나다. 하늘이 아니라.”
베르덴의 벽안을 들여다본 월릭이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을 풀었다. 한낱 어린애에 불과했던 존재에게 월릭은 압도당했다.
“델하룬 북부의 종군 마법사, 월릭. 나는 네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별로 궁금하지도 않고. 그런데 하늘이 정해 준 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그 사상은 스스로 부끄럽지 않나?”
월릭이 눈을 부릅떴다.
“아무리, 아무리 발버둥 쳐도 저 하늘이 바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전쟁터에서 누구 하나 구할 수 없고, 누구 하나 설득할 수 없어……! 그리고 재능도!”
“그럼 내 존재를 설명해 봐라.”
월릭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할 말이 없다.
그도 그럴 게 자기 자신도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베르덴을 찾아온 거니까. 월릭이 처음으로 베르덴을 본 그때를 떠올렸다.
마법을 보며 눈을 빛내는 순수한 아이.
“베르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몰라도 그러면 안 된다. 안 돼. 하늘의 뜻을 거스르면, 결국 천벌이 내릴 것이야…….”
“그런 게 두려웠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다.”
베르덴이 가슴 앞까지 오른손을 올렸다.
“하지만 운명론적 견해를 혐오하는 것과 별개로, 너에게는 감사하고 있다.”
팟.
손끝에서 자그마한 화염이 피어올랐다.
“그날 네가 보여 준 이 불꽃이 아니었다면, 나는 마법을 꿈꾸지 못했을 테니까.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이 말이 하고 싶었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만 묻지.”
베르덴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아직도 같은 생각인가?”
우러러봐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재능이 월릭의 마도를 파고들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베르덴이 <전이>를 시전해 자취를 감췄다. 공간 마법은 월릭이 이해하지 못한 고도의 학문.
……털썩.
뒷걸음질 친 월릭이 벽에 부딪히곤 미끄러지듯이 주저앉았다.
그가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하늘의 뜻을, 거부하다니. 그게 가능하다니.”
월릭은 여태껏 하늘을 핑계로 도망쳐 왔던 과거를 돌이켜봤다. 그리고 마도로 상대의 마법적인 재능을 판별하여 앞날을 예단한 기억도.
“내가…… 틀렸다고.”
월릭은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지팡이를 들고 집으로 돌아갔다. 아, 자기 자신에 대한 의심이 피어난 탓일까.
전보다 마도가 잘 개방되지 않았다.
* * *
아케나드 마도국.
후웅──! 후우웅──!
반젤리스 루인 아케나드는 단신으로 아무도 없는 연무장에서 스태프를 휘두르며 선조의 <아케인>을 운용했다.
절도 있게 허공을 가르는 일격.
동시에 사방으로 마력 파장이 확산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육체와 마법의 단련은 그가 기본적인 하루 일과였다.
반젤리스가 이내 마력을 갈무리하며 밤하늘을 응시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오는가.”
7대 마도왕은 에온의 정점──베르덴의 방문을 기다리고 있다.
사멸해 가는 혈통을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