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7화 마도 축제 (9)
어서 시작해라! 이그나시아의 야유 섞인 재촉이 홀로 들려왔다. 시민들의 당혹스러운 시선이 일제히 그녀에게 향했다.
계외의 양익(兩翼), 환익 우르반과 상익 게르다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반젤리스가 헛웃음을 지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녀 같은 초월자는 먼 장래에도 다시 찾아보기 힘들겠지.”
“동감이다.”
베르덴은 진심으로 수긍하고는 앞으로 두 발짝 걸어 나갔다.
형식적인 자기소개는 필요 없다.
무대를 장악하려고 구구절절하게 말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현 마법계 공식 초월자 9인 중 1인.
이곳에 베르덴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초월자의 격을 조금만 끌어올리는 것만으로도 만인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에온에서 발표할 항목은 총 세 가지다.”
……!
마법사들의 호흡이 흔들렸다.
마도 축제에서 정식으로 공개할 연구가 하나도 아니고 둘도 아니고, 무려 셋이라니?
심지어 그것을 블랙 아워와 소사이어티, 그리고 최초의 마탑을 규합한 에온의 지도자가 선언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하늘을 찔렀다.
마도 축제 역사에서 아케나드 마도국과 아티슨 마탑을 제외하면 세 개나 되는 마법적 연구와 이론을 한꺼번에 발표한 적은 없었다.
그 예외도 수십 년 전, 수백 년 전이다.
마법계의 선도 세력으로서 단순히 적당한 수준의 기술들로 숫자만 높이는 것은 스스로의 체면을 깎는 일이었으므로.
짧되 인상적인 무대는 미덕이고.
지루하고, 길며, 현학적인 발표는 부덕이다.
마도 축제의 주 무대에 서는 세력들은 언제나 이 두 문장을 잊지 않기에, 대부분 단 하나의 마법에 온 역량을 집중한다.
당연히 에온도 명심하고 있을 터다.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수첩을 집어넣고, 하나도 빠뜨리는 것 없이 기술을 보고, 듣기 위해서 정신을 일깨웠다.
이것마저 기억에 담아 내지 못한다면 마법사로서 자격이 없다.
“첫 번째는 골렘.”
파아앗.
베르덴이 즉석에서 구현한 공간 마법진 속에서 알파와 베타가 등장했다.
베타는 체고 2미터까지 골렘 프레임을 조절한 상태였으며, 알파는 평소처럼 동생의 머리 위에 앉아 있었다.
“에온은 앞선 축제에서 신 골렘 부대를 선보였다. 주인 없는 땅의 치안을 담당하는 방어 특화형 골렘이 아닌, 대규모 전쟁에서도 활용할 수 있는 공격 특화형 골렘이었지. 하지만, 바로 이 자리에서 발표할 기술은 그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형태다.”
베르덴이 아공간에서 머리가 무릎 정도까지 오는 골렘을 소환했다.
마치 인간을 본뜬 듯한 형상이었다.
“알파, 베타.”
[확인.]
알파가 관중을 천천히 둘러보더니 앙증맞은 팔로 한 명을 가리켰다. 아주 운 좋게 무대에서 가까운 다섯 번째 줄에 자리한 여성이었다.
[대상 지정. 동의한다면 앞으로.]
“……?……에??”
“부담스럽다면 거절해도 좋다. 자원자의 제한은 없으니까.”
베르덴은 정말로 상관없다는 듯이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싫다면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됐다.
여성은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다.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인 터라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젓는 대신 다른 행동으로 응했다.
위대한 존재의 제안을 거절하고 싶다는 마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길을 터 주었다.
그렇게 무대 앞까지 한달음에 달려갈 수 있었던 여성이 가쁘게 숨을 내쉬었다. 베타가 그녀를 향해 커다란 손을 내밀었다.
[탑승하십시오.]
“아……!”
조심스럽게 베타에 올라탄 여성이 베르덴 앞까지 당도했다. 신성을 상징하는 잿빛 머리카락과 벽안이 지척에 있다.
동공이 확장됐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경외감이 일반인의 뇌리에 깊게 박혔다.
“지금부터 넌 이 골렘을 조종하게 될 거다. 단순 시범이니 긴장 풀도록.”
“저, 저는 마법사가 아닌데, 할 수 있을까요?”
“상관없다.”
베르덴의 순수한 마력이 일반인 여성과 인간형 골렘을 휘감았다. 자그마한 자극도 없었다. 그저 편안하다는 느낌이 전부였다.
그녀가 푸른색 빛이 스며들고 있는 자기 손을 멍하니 보다가, 꼿꼿이 선 채 머리와 팔을 늘어뜨린 작은 골렘을 눈에 담았다.
그때…… 동력을 얻은 골렘이 외눈을 빛내며 확 머리를 들었다. 골렘과 여성이 서로를 똑같은 자세로 응시했다.
베르덴이 마력을 거두었다.
“이제 움직여 봐라. 아무렇게나.”
“네, 네! 아무렇게나…….”
여성이 머뭇거리며 오른팔을 슬쩍 들자, 인간형 골렘도 슬쩍 오른팔을 들었다.
그녀가 놀랐다.
골렘도 놀란 듯 머리를 움찔거렸다.
“어?”
완전히 같은 자세였다.
무대의 부담감에 위축돼 저도 모르게 살짝 굽은 등허리까지 말이다.
뒤로 몇 발짝 물러나거나.
다시 몇 발짝 다가가거나.
사람들을 향해 팔을 휘두르거나.
과감하게 제자리에서 한 바퀴 회전하거나.
인간을 축소한 듯한 골렘이 여성의 모든 행동을 모방했다. 그 작용에 있어서 베르덴은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
“‘신경 동조’. 골렘의 새로운 지평이다.”
* * *
신경 동조.
마력을 매개체로 인간의 복잡한 신경계와 골렘의 기능계를 일치시키는, 일종의 생체 역학을 담고 있는 골렘 기술.
알파와 베타가 마도 축제를 앞두고 신경 동조가 가능한 시범 골렘을 제작했으나, 그 기술의 원천은 따로 있었다.
방주.
베르덴의 렐릭───입방체 안에 있던, 감마가 심었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보다 상위의 골렘 기술이 그것이었다.
‘의체 프로젝트를 압도하는 골렘 기술력.’
감마의 뜻이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으나, 덕분에 천천히 진보해 가던 알파와 베타의 기술력이 한 차원 높아졌다.
과연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가능성은 무궁무진했다.
그래도 베르덴은 나름대로 그 가능성의 일부 끝을 가늠해 보았다.
“지금은 섬세한 조작이 필요하기에 내 마력을 통로로 삼았지만, 차후엔 마법사도, 마지막으로는 마석을 활용해 일반인도 신경 동조가 가능한 골렘을 완성할 계획이다. 이렇게.”
무대로 올라온 여성은 베르덴의 마력을 빌려서 생체와 골렘의 결합을 보였다. 마력을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을 통해 기술이 증명됐다.
베르덴이 결국 아우르고자 하는 것은 마법계만이 아니라는 걸 다시 세상이 인지했다.
“그리고, 이건 그 도달점 중 하나다.”
[결합. 개시.]
[개시합니다.]
베타가 외눈을 빛내자 인간형 골렘이 수십 개의 부품으로 나뉘고는, 허공을 가로질러서 여성의 팔에 부착되었다.
알파가 여성의 어깨 위로 올라가 신경계와의 결합부를 조정했다.
‘앗, 귀엽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일반인 여성은 코앞에 있는 알파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조정 완료. 행동.]
“행동……? 아, 네!”
여성이 손을 쥐었다가 폈다가, 수평으로 가볍게 팔을 휘둘렀다. 조금 답답하면서도 안정적이다. 마치 갑옷을 두른 듯 든든했다.
“기분이 어떻지?”
“마치 보호받는 느낌이, 들어요.”
“보다시피 이 골렘은 긴급 사태에서 팔의 응급조치가 가능하다. 본 신경계를 참고해 부러진 뼈를 맞추거나, 출혈을 최소화해 주며, 외부 충격으로부터 상처가 악화하지 않도록 보호해 주지.”
베르덴이 신경 동조를 끊었다. 그녀의 팔을 덮고 있던 골렘 부품이 떨어졌다.
알파와 베타가 부연했다.
[에온에서 진행 중인 의체 프로젝트의 일환.]
[위급한 상황에서 팔이나 다리가 결손되었을 때 신경 동조 골렘으로 임시 대체가 가능하게 하는 것을 장기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여태껏 은연중으로만 퍼져 있던 의체의 실체가 공시적으로 드러났다.
군중이 술렁였다.
“신체 결손을, 대체?”
“의체 프로젝트. 에온의 위상 일부가 착용한 팔이 그 의체라는 것이겠군……. 실제 팔과 기능적으로 다를 바가 없어 보이던데, 훗날에는 자연스러운 의수와 의족이 보급된다는 말씀일까.”
“하지만 신체 결손의 보완은…….”
결손된 신체를 완전히 재생하는 기적은 루아스교의 전유물이다. 대주교급 성직자 이상만 발휘할 수 있는 터라 대중에겐 그저 기적이었다.
루아스교는 베풀 수 있는 기적과 베풀 수 없는 기적을 엄격하게 구분했다.
다시 말해.
의체 프로젝트는 루아스 교국의 영역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의도가 아닐지언정 기적을 대체하는 마법임은 분명했다.
루아스교를 신앙하는 대다수의 사람.
초대 마도왕을 마법의 신으로 여기는 마법사들.
그들은 도대체 에온이 궁극적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지 상상할 수 없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상하는 걸 피했다.
“도와줘서 고맙군. 나중에 사례하지.”
“와악……! 저,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베르덴이 직접 공간째로 여성을 띄워 원래 있던 자리로 돌려보냈다. 무사히 땅에 착지한 그녀에게 부럽다는 사람들의 눈빛이 전해졌다.
“골렘 기술로 거기까지 할 수 있다니. 오랜만에 생각이 트이는 기분이로군. 다른 두 개의 기술도 그에 준하는 것인가?”
“하나하나가 자신작이지.”
베르덴이 위상들을 호출했다.
“너희 차례다. 유니아, 카인.”
“베르덴의 후배, 등장!”
쿠웅!
유니아가 기다렸다는 듯 굉음을 내며 무대 위에 착지했다. 카인은 허리춤에 마검을 찬 채 조용히 그녀의 옆으로 내려왔다.
에온의 천재 쌍둥이가 자신감 가득한 얼굴로 가르간트를 마주했다.
알파는 의체로 변신했던 골렘 부품을 수습하고, 베타와 함께 베르덴의 곁을 차지했다.
“두 번째는 고유 마력 운용법이다.”
“……!”
반젤리스가 눈을 부릅떴다.
“시작해라.”
“하아아아아아아압!”
유니아가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해 요란하게 밀도를 높였다. 어금니를 깨문 카인의 벽안이 서서히 진해졌다.
두 사람의 육체에 새겨진 세 번째 형태의 역천의 마법진이 기동했다.
화아아아아아아악!
마력으로 인한 돌풍이 몰아쳐, 그 여파가 광장을 휩쓸고 지나갔다. 반사적으로 눈을 가린 마법사들이 천천히 팔을 내렸다.
눈이 부셨다.
“마력의, 변형?”
마치 비단처럼 화려한 푸른 오오라가 무대 위로 타올랐다.
대마력 3단계.
마력 자체를 조금이나마 직접적으로 다룰 수 있는 레벨이자, 육체가 일부 재구성되어 베르덴과의 교집합이 마침내 생기는 경지.
후웅. 훙. 후웅.
유니아와 카인이 대마력의 권능으로 ‘마력의 입자’들을 만들어 냈다.
일반적으로 초월자를 포함한 마법사들은 자신의 마력일지라도, 마력을 입자라는 최소 단위까지 다룰 수는 없다.
베르덴과 반젤리스와 같이 <아케인>을 터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대마력 3단계를 체득한 유니아아 카인은, 역천의 기적으로 거대한 마력의 입자를 구현함으로써 <아케인>과 다른 방식으로 마력의 개념을 넘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 입자들을 활용하여 베르덴만의 고유 마법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들의 손끝이 허공에 ‘별자리’를 그려 냈다.
블랙 아워 최초의 구성원인 하르칸 다제스트가 평생을 바쳐 이론을 구축하고, 마침내 베르덴을 통해 완성한 별의 힘.
대마력: 아스트라(Astra).
그것이 성신 마법을 바탕으로 베르덴이 새로운 창시한 고유 마법의 명칭이었다.
<아스트라───왜성(矮星)>
유니아와 카인이 서로 반대편으로 뛰어오르고는 서로를 향해 푸른 유성을 쏘아 보냈다.
──────!
상공에서 두 개의 별이 충돌하자 일순간 엄청난 빛이 터지고, 초저녁의 어둠을 걷어 내며 가르간트를 환하게 밝혔다.
성공적으로 대마력의 일부를 보여 준 두 사람이 다시 무대로 내려왔다.
“<대마력>.”
베르덴이 발표했다.
“오직 에온의 일원만이 구사할 수 있는 마력 조작 기술이다.”
순수한 마법의 관점에서…….
독자적인 마력 운용법을 개발하여 자신만이 아닌 타인에게까지 그 마력 운용의 자격을 부여한 존재는 마법계에서 단 한 명밖에 없다.
<아케인>의 창시자, 올다르크 루인 아케나드.
마법사들은 베르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초대 마도왕을 떠올렸다. 하지만 신성과 초대 마도왕은 명백히 다른 점이 있었다.
그 <아케인>은 오직 위대한 혈통만이 터득할 수 있지만…… <대마력>의 고유 자격은 핏줄이 아니라 에온의 구성원에게 한정한다.
수준은 <아케인>이 더 높을지언정.
범용성은 <대마력>이 압도적.
요점은 베르덴의 업적이 초대 마도왕의 위업에 비견된다는 것이다. 반젤리스는 베르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직 발표는 끝나지 않았다.
“세 번째는 ‘영창 마법’이다.”
“영창……?”
베르덴이 상공에 시선을 던졌다.
“노르벤 바론 이펜타르 트리안 아르마스.”
키론다르가 행사했던 시야 교란용 고대 영창 마법이 재현되었다.
고대어로부터 불투명한 빛무리가 현현하더니 곧 수십 개로 나뉘어 보랏빛의 황혼으로 물든 하늘에 쇄도했다.
빛이 번쩍였다.
모두의 시야가 흔들렸다.
직전과는 종류가 다른 새로운 빛이 가르간트를 다시금 비추었다.
마지막으로…….
“압제(壓制).”
초대 마도왕이 고대 신들을 끝장냈던, 그리고 베르덴이 사막의 신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고유 영창 마법.
우주에서 유성체를 불러들이는 주문이 귓가를 파고들었다.
“광열(光熱).”
“큽……!”
반젤리스가 진심으로 경계하며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펠디안느가 깜짝 놀라서 의자에 앉은 채로 뒤로 넘어지고, 이그나시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알 수 없는 힘이 일대를 압도했다.
……여기까지.
당연하게도 베르덴은 모든 영창을 다 외지 않고 도중에 멈췄다.
애초에 우주의 유성체를 또다시 불러내면 지금의 베르덴은 반동을 버티지 못하고 즉사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최초의 마탑주로서 선언한다. 머지않아 영창 마법은 온전히 부활한다.”
그런데도 초대 마도왕의 고유 영창 마법을 일부 입에 담은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보다 큰 충격을 줄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위계 마법과 영창 마법. 종류를 가리지 않고 모든 마법을 추구하는 세상.”
베르덴이 발표를 마무리했다.
“지금이야말로 마법의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