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9화 징조 – 4 (최악의 드워프)
세계의 심해.
아르카디옴의 중심 서고에서 창백한 문어 머리의 인간형 존재가 책장을 넘겼다.
호스트였다.
지식의 만찬회 준비로 시간이 없다고 해도 그는 책 읽기를 빠뜨린 적이 없었다. 규칙적인 독서는 그의 가장 중요한 취미였다.
……스윽.
호스트가 우아하게 앉은 채 시선을 높였다. 그의 눈은 저택 천장을 넘어 바다의 암흑 너머에 있는 수면 위를 향했다.
현재의 대륙.
대악마의 리버레아스.
하늘섬 아크.
저항자의 레프라기움 마탑.
그리고───
현세를 제외하면 네 번째 세계.
현세를 포함하면 다섯 번째 세계.
[망령들이 슬슬 날뛰는가.]
운명은 어긋났으니 누가 승리하고 패배할지는 알 수 없다.
호스트는 그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 * *
모험가 파티, 만하.
개개인은 백금 등급에 머물러 있지만, 그 총력은 미스릴 등급에 준한다.
파티 창설 이래 크고 작은 사건 사고에도 동료 한 명 사망한 적 없으며, 토벌 능력뿐만 아니라 인성도 우수하다고 평가된다.
피울음 역병 사태 당시에도 모험가 길드의 긴급 토벌 명령을 무사히 완수.
군말 없이 실페라 자치령, 마렌 왕국, 포르메네 자유국 순으로 중앙 대륙을 전전하며 무려 26회의 의뢰 성공 기록을 세웠다.
당연하게도 모험가 길드에서 토벌 보수 이외에도 이동비, 식비 등 경비를 전부 처리해 주었기에 재산이 제법 불어났다.
보람도 느끼고, 여행도 하고, 돈도 벌고.
적성만 맞다면, 죽지만 않는다면 모험가는 평생 직업으로 삼을 만했다.
다만 모험가라는 특성상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에, 공식적으로 날짜가 정해진 정규 행사에 참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단점은 감수해야 했다.
“후, 그래도 늦게나마 가르간트에 입성할 수 있을 것 같네.”
버민이 이마를 쓸어내리며 국제 마차 이카루스 건물에서 나왔다.
만하에서 전위를 맡은 그는 말주변이 좋아 여러 수속 절차를 담당했다. 시장에서 물건값을 깎는 데도 유용한 사내였다.
궁수 루비나가 눈을 빛냈다.
“예약했어?! 자리가 있다고?!”
“새벽 중간에 딱 두 자리 남아 있더라고. 미스릴 등급 혜택으로도 엄청나게 비싼 최고급 마차로 두 개. 웬만한 귀족들도 안 타는 걸 우리가 타게 될 줄은…… 모아 둔 공금 꽤나 썼으니 당분간 사치는 금지야.”
일반적으로 도시는 야밤에 성문을 걸어 잠가 통행을 금지하는데, 잔트라의 시장은 마도 축제를 빌미로 이를 사업적으로 이용했다.
이카루스와 계약해, 추가 비용을 지불한 손님은 통행금지 시간에도 잔트라 바깥으로 나갈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이다.
마법사 겔톤 로드니가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괜히 저 때문에…….”
성직자 케디언이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십시오. 가르간트의 마도 축제를 보고 싶은 것은 겔톤만이 아닙니다. 세계 회의를 구경하지 못한 게 얼마나 아쉬웠는데요.”
세계 회의가 개최되기 이전에 겔톤과 동료들은 따로 행동했다.
토벌 직후 버민과 루비나가 너무 지쳐, <비행>이 가능한 겔톤 혼자서 멀리 있는 모험가 길드에 보고를 하러 갔기 때문이었다.
<비행>을 터득한 마법사들의 단기 기동력은 고급 마차 이상이다.
세계 회의에 늦지 않기 위해 가르간트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지만, 버민 일행은 마차를 구하지 못해 겔톤만 제시간에 도착했다.
만하의 리더───스칼드가 덥수룩한 수염을 어루만졌다.
“나야 마법은 잘 모르지만, 그래도 그 강의는 좀 듣고 싶소. 겔톤이 허구한 날 극찬을 하니 궁금해서 견딜 수 있어야지 원.”
“게다가 유골룡 사태 이후로 베르덴 님을 처음 뵙는 거기도 하니까.”
만하와 베르덴의 인연은 꽤 오래되었다.
에스티리아 왕국의 그레이에서 겔톤을 대신한 용병으로 베르덴을 고용한 그들은 분노한 숲의 정령을 토벌하기도 했고.
벨디른 공화국의 세크리드에서 재회해 유골룡과 세븐 호른이라는 특수 개체와 맞선 끝에 겨우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현 초월자와 과거에 함께한 적이 있다?
평생 안줏거리다.
심지어 초월자에게서 다중 연속성 이론을 직접 배운 빙결계 마법사 겔톤은 화염계 마법을 쓸 때마다 그를 떠올렸다.
버민이 말했다.
“아무튼 새벽에 출발 예정이라니까 늦어도 내일 점심에는 도착할 거야. 으음, 마도 축제 8일 차인데 괜찮겠지?”
“괜찮습니다. 8일 차 정오는 후반부의 절반도 진행이 안 된 시점이니까요.”
겔톤이 미소 지었다.
“잘하면 베르덴 님의 아카데미 강의뿐만 아니라 주 무대까지 참관할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운 나쁘면 둘 다 놓치는 거 아니야? 우리는 세부 일정을 잘 모르니까.”
일정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물론 성대한 축제이기에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모험가로서 언제나 그런 예외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건 그렇죠…….”
겔톤이 시무룩해졌다.
스칼드가 예전에 비해서 다부져진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껄껄 웃었다.
“아직 가르간트에 도착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실망하면 쓰나. 괜한 걱정 하지 말고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논의나 하는 게 어떻소? 저녁으로 뭐 먹을지도 정해야 하고.”
“음, 아무래도 시간이 늦었으니 주점에서 끼니를 때워야겠는데. 좀 애매하네.”
“기왕 이렇게 된 거 그냥 밤새우고 바로 출발하는 건 어때? 잠이야 마차에서 자면 되니까.”
“전 찬성입니다.”
모험가들은 평소처럼 화기애애하게 무엇을 할지 합의해 결론 내렸다.
“근데 어디 주점이 괜찮을지 모르겠네. 중심가냐, 변두리냐.”
“내가 좀 알아 올까?”
“흐음.”
겔톤이 주변을 둘러보며 도시 안쪽으로 들어갈지 외곽으로 향할지 고민했다.
잔트라는 비교적 평범한 도시라 딱히 정보가 없었다.
“이번에는 변두리부터 가 보는 게 어떻습니까?”
“변두리부터요? 이유가 있습니까?”
“어, 그냥…… 감이랄까요. 괜찮은 주점이 있을 것 같은?”
정말로 별 이유는 없었다.
겔톤은 단순히 중심가와 변두리에서 더 끌리는 쪽을 골랐을 뿐이었다. 딱히 어디로 가든 상관없었던 동료들은 겔톤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렇게 마도 축제의 열기로 소란스러운 중심에서 벗어나, 비교적 한적한 밤거리를 느긋하게 거닐고 있던 도중이었다.
몇몇 사람들이 모여 잔트라 외곽 어딘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무슨 상황인지 싶어 귀를 기울였다.
“저기 변두리에 있는 주점에 이상한 드워프가 있다는데?”
스칼드가 동료들과 눈을 마주쳤다.
“……드워프?”
“……드워프?”
당장 사람들을 뒤따라갔다.
주점 안으로 들어섰다.
잔트라의 중심가를 아직 둘러보지는 않았지만, 그 내부는 중심가의 어떤 주점보다 북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으하하하하하하핫!”
“커억, 컥…… 우웨에엑.”
술기운으로 얼굴이 벌게진 사람이 창문 너머로 속을 게워 냈다. 소문의 드워프는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채 배럴째로 술을 비웠다.
색이 빠진 듯 허연 수염과 머리카락.
겔톤의 명치에 닿을 듯한 작은 키.
남다른 신체의 두깨.
양손 도끼를 주무기로 삼은 스칼드를 어린애로 만드는 근육질의 팔.
스칼드 일행은 모험을 하면서 드워프를 본 적은 몇 번 있지만…… 겉모습이나 느낌이나 저 드워프는 뭔가 신비했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미친, 저 독한 술을 단번에 마신 거야?”
“그게 전부게? 며칠째 잠도 안 자고 주량 대결을 하고 있는데 이기는 사람이 없다니까.”
“드워프가 술을 잘 마신다고는 들었는데 저 정도일 줄이야…….”
“저게 드워프라는 종족인가……!”
인간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주량에 절로 경외감이 생길 지경이다.
주점 주인이 낑낑거리며 다른 술통을 들고 나왔다.
“이, 이게 마지막입니다……! 남은 술은 맛이 좀 떨어지는 것들밖에……!”
“벌써 마지막이란 말인가? 요즘 주점은 준비가 부족하구먼. 옛날에는 온종일 마셔 대도 술이 마르지 않았는데, 쩝.”
드워프가 대충 품속에서 반짝이는 돌을 꺼내 툭 던졌다. 황금이었다. 드워프가 뭐라고 불평하든 간에 주인은 굽신거리며 황금을 챙겼다.
인간이든 드워프든 술값을 아주──많이 쳐주는 종족이 왕이었다.
“이걸로는 부족하…….”
삐빅, 삐빅, 삐빅.
“아? 마침 시간이 됐군. 으하하하핫, 그럼 술 한 통이면 충분하지.”
드워프가 아티슨 마탑의 것을 모방한 듯한, 난생처음 보는 손목시계의 알람을 끄고는 술통을 옆에 두고 시선을 옮겼다.
“이보게들, 혹시 이 중에 마법적인 기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나? 혹은 마력에 해박한 사람?”
마법적인 기술?
마력?
대부분 잔트라의 시민이었기에 선뜻 대답하는 사람은 없었다.
한 명을 제외하면.
“……아주 해박하다고 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오, 차림새를 보니 마법사인가! 이리 와서 앉아 보겠나?”
드워프가 빈 의자를 툭툭 쳤다.
갑작스러운 제안이었지만 겔톤은 곧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갔다.
한번 나가 보라는 동료들의 은근한 시선도 있고, 드워프가 마법과 마력을 논하는 것에 매우 호기심이 동했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모험일지니.
겔톤이 드워프와 마주 앉았다.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한잔하겠나?”
“조금 맛만 보는 정도라면 괜찮습니다.”
“마법사치고 빼는 게 없으니 좋군! 몸도 의외로 좀 다부지고.”
베르덴에게 정면에서 마법적 이론을 논파당했을 당시 겔톤은 지독한 우울증에 걸려 술기운으로 밤을 지새우기도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운동에 힘을 쓰기도 했다.
후자는 곧 습관이 되어 겔톤은 주기적으로 신체 단련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드워프가 빈잔을 들어 호쾌하게 술을 퍼 올렸다.
냄새로 보아 상당히 독한 듯했다.
“이름이 무엇인가?”
“겔톤 로드니입니다.”
“겔톤 로드니, 자네는 마법사로서 마력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나?
겔톤이 술을 한 모금 마시며 미간을 좁혔다.
“음, 너무 광범위한 질문이군요.”
“그런가? 그럼 질문을 바꾸겠네. 자네는 ‘마력의 입자’를 알고 있나?”
“마력 입자론 말씀입니까?”
마력 입자론.
마력에도 사물처럼 물질을 구성하는 최소 물체가 존재한다는 이론으로, 과거 아케나드 마도국의 3대 마도왕이 몸소 증명한 이론이었다.
거의 모든 마법사에게는 무용한 이론이었다.
마도왕 혈통의 <아케인>을 터득하지 않으면 마력 입자를 감히 움직일 수도, 심지어 온전히 인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역시 시간은 무섭구먼. 마력 입자가 고작 수백 년 전에 밝혀졌다? 그 위대한 혈통이라는 뭔지 모를 핏줄이 아니면 다룰 수 없다? 이리도 잘못된 정보가 퍼지다니 말이야!”
“그게 무슨 소리─”
“마력 입자는 불가침의 영역이 아니네. 마법사가 아니더라도 그렇지. 물론 나 같은 천재 드워프 정도는 되어야겠지만. 마력 입자를 어떻게 다룰까? 기분이 좋으니 특별히 원리를 간단히 설명해 주겠네.”
드워프가 괴상한 펜을 꺼내더니 식탁에 뭔가를 끄적였다.
“마력은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렇게 동그란 입자로 이루어져 있네. 완벽한 구체지. 하나 완전한 것은 아니네. 더 나눌 수는 없을지언정 인위적으로 불안정하게 만들어 특정한 파장에 노출시키면 즉시 폭발하거든. 연쇄적으로.”
“마력이…… 폭발한다는 겁니까?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만.”
“마력 입자는 내 시대에서 밝혀졌지만, 이 방법은 나밖에 모르니까. 이것이 나의 힘이었네! ‘마력 연쇄 폭발’로 모조리 죽여 위대함을 입증했지! 종국에는 자폭으로 대륙의 땅과 짐승 놈을 동시에 지워 버리기도 했고. 으하하하하하하핫! 추억이지, 추억이야.”
드워프가 신나게 웃었다.
뭔가 이상했다.
기분이.
“방금 뭘 죽였다고……?”
“그렇게 죽었다가 이 시대에서 다시 깨어나 보니, 세상에. 마법이 엄청나게 발달했더군. 덕분에 예전엔 생각지도 못한 실험들을 할 수 있었네. 그렇게 생전에 구상만 해 놨던 나의 새로운 힘을 이 손으로 완성할 수 있었지.”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겔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마력 입자로 다시 완벽한 구체를 만들면 그것은 거대한 마력 입자가 되네. 난 이걸 ‘마력의 핵’이라고 명명했네. 더할 나위 없는 그 힘의 균형. 이걸 강제로 부수면 어떻게 될까? 생각이 계기가 되어 마력 연쇄 폭발 기술을 마력핵에 써 봤네. 으핫, 그랬더니 어떻게 됐는지 아나?”
카가가가가가각.
드워프의 펜이 테이블을 미친 듯이 긁었다.
“마력핵을 이루고 있던 마력 입자들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서, 마력만이 아닌 사물의 모든 구성 물질을 파괴했네. 철저히! 하나도 남김없이! 다만 폭발 범위 중심부에서 멀어질수록 위력이 감소해 확률적으로 파괴가 되지 않는 것이 많아지지. 그리고 그 자리를 후폭풍이 대신하고. 어쨌든 마력 연쇄 폭발보다는 명백히 상위의 기술이네.”
“…….”
“나는 이걸 ‘마력 분열’이라고 칭했네.”
시선이 교차했다.
“이 주점이 마력 분열로 완전히 사라질 가능성은 7.32%. 음, 한마디로 이 중에서 11명 정도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지. 어디까지나 확률이라 실제 숫자와는 좀 다르겠지만.”
드워프의 입가가 끝까지 올라갔다.
“여기서 다시 질문이네. 자네는 살 수 있을까?”
“……!!”
본능이 갑자기 경종을 울렸다.
겔톤이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스칼드가 즉시 양손 도끼를 휘두르고, 버민이 방패를 들어 동료를 보호하려 했다.
그리고.
쿠웅────────────!
주점 창밖으로 어마어마한 폭발이 발생하는 게 눈으로 보였다.
잔트라 중심가였다.
온몸이 마비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든 순간 겔톤이 현 위계를 돌파해 <얼음 장막>을 전개했다.
후폭풍이 들이닥쳤다.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
마법은 잠시도 버티지 못하고 박살 났다.
주점이 산산조각 났다.
마력 분열에 직접적으로 노출된 이들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분열을 피했어도 폭발에 의해 쇄도한 파편에 꿰뚫린 사람들의 육체가 육편이 되어 날아갔다.
비명 지를 새도 없이 마도 축제로 활기찬 거리가 죽음으로 차올랐다.
쿠우우우…….
도시 잔트라의 9할이 소실되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하늘을 향해 솟구친 거대한 버섯구름뿐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들썩.
잔해 더미가 움찔거리더니 그 밑에서 겔톤이 기어 나왔다.
온몸이 먼지투성이였다.
“허억, 헉…… 끄윽!”
정신이 혼미했다. 막대한 통증에 시선을 내리자 한쪽 팔이 사라져 있었다. 상처의 단면이 톱니에 잘린 듯 투박했다.
뒤늦게 상처를 손으로 막았다.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으며 가장 먼저 동료들을 떠올렸다.
“루비나…… 어딨습니까……! 스칼드! 버민! 케디언!!!”
<염동력>
정신을 집중해 잔해를 뒤졌다.
손가락, 발가락, 장기…… 주점 안에 있던 이들의 것인가. 설마 동료들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구역질이 차올랐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하나둘씩 찾아냈다.
왼다리가 날아간 스칼드.
여덟 개의 손가락이 뜯겨 나가고 한쪽 눈이 터진 루비나.
양팔이 없는 케디언.
몸 일부가 나무 파편에 관통된 버민.
“모, 모두…….”
“오오, 다섯 명이나 살았나? 자네들도 운이 꽤 줗구먼. 어쨌든 살아남다니.”
드워프가 잔해 위에서 술을 퍼마시며 느긋하게 손뼉을 쳤다.
겔톤이 눈가가 떨렸다.
“당신은, 도대체…….”
“나 때는 드워프 왕조가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더군. 아무래도 나 때문인 것 같은데 뭐, 없어졌으면 다시 만들면 그만이지.”
드워프가 제 가슴을 두드렸다.
“나는 ‘그림멜 그롬파르’. 그롬파르 왕조 마지막 제왕이자, 이 현대에서는 새로운 드워프 황제가 될 난쟁이지.”
<아이스 스피어>
드워프───그림멜에게 얼음창이 적중했으나 그의 피부 하나 뚫지 못했다. 겔톤의 상처에서 피가 더 쏟아졌다.
“진정하게.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소문을 퍼뜨릴 사람이 필요하거든. 아침이 되면 마력 분열의 여파가 가르간트에 닿을 테니 곧 사람들이 올 걸세. 자네들 5명은 보고 들은 걸 고스란히 전해 주면 되고.”
그림멜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 5명이 아니라 4명이려나?”
“쿨럭, 쿨럭!!”
버먼이 기절한 채로 토혈하더니 갑자기 호흡이 멈췄다. 겔톤이 서둘러 남은 팔로 가슴을 압박했으나 힘이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버민…… 버민!!! 정신 차리십시오!!”
“애절한 동료애로군. 근데 그래서야 아침까지 버틸 수 있겠나?”
“그 입 닥쳐!!”
겔톤이 분노했으나 버민에게서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었다.
“나는 이만 가 보겠네. 할 일이 많거든. 계획대로라면 짐승 놈도 이제 맞붙고 있을 테고.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보세. 즐거운 대화였네.”
그림멜이 유유히 겔톤의 옆을 지나 괜히 버민의 머리를 발로 찼다.
“이런, 실수였네.”
“이 개새끼가……!!!”
“손 떼면 버민이란 친구가 죽을 텐데? 복수할 건지, 동료를 살릴 건지 하나만 하게.”
그림멜이 뒤로 손을 흔들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전부 다 놓치는 법이거든. 으하하핫!”
지상 최악의 난쟁의 웃음소리가 페허에서 점차 멀어졌다.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핫!”
사망자 및 실종자 수천 명.
포르메네 자유국, 도시 잔트라───멸망.
* * *
마도 축제 주 무대가 끝난 그 새벽.
자택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베르덴이 갑자기 고개를 북쪽으로 향했다.
“……뭐지?”
기이한 느낌이 든다.
베르덴은 즉시 채비를 갖추고는 공간 이동을 준비했다.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 것이 그의 성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