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25

925화 주검의 영광 (12)

루아스 교국 습격, 그 이전.

히아레마르 내해에 떠오른 섬의 지하에서 아티슨 마탑의 마법계 초월자와 델하룬의 무투계 초월자가 적막 속에서 조우했다.

관제(觀制), 인드렌 피어시아 레이트.

마울러(Mauler), 가레스 시릴리아드.

“돌아다닌 보람은 있군. 설마 너 같은 보수적인 초월자가, 내해 탐사 조약을 무시할 줄이야.”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 규칙을 지키지 않는 게 더 안정적이니…… 자네들이 조약을 어길 게 뻔히 보이는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겠나.”
“그래서 직접 행차했다. 그럼 이제 어쩔 거지? 나를 제압해서 데려갈 생각인가? 변화를 싫어한다는 이유로?”
“몇 번이고 말했네. 나는 변화를 반대하는 게 아니라 점진적인 변화를 바라는 거라고.”

흘러나오는 한숨.

“그런데 자네 같은 자들은 멋대로 무작정 변화만 일으키려고 하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되든, 세상이 어떻게 되든. 아무리 말려도 듣지를 않으니 이제 나설 수밖에 않겠나.”
“대단한 결단이…….”
“마울러, 가레스 시릴리아드. 지금부터 언변에 주의하게.”

그들의 만남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수왕이 미처 끊어 내지 못한 목숨. 내가 거두기 전에.”

건조하고, 또 단호한 살해 협박이었다.
허세는 아니었다.
인드렌은 이런 식으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그는 소년의 껍데기를 뒤집어쓴 인자한 노인이 아니던가.

마울러가 낮게 웃었다.

“성격 좋은 초월자인 양 관망하는 건 그만두기로 했나, 인드렌. 번외 장로랍시고 일선에서 물러나 마탑 간의 전쟁도 무시하더니. 그래, 확실히 지금의 태도가 더 잘 어울리는군.”

모든 초월자는 하나같이 자신만의 특별한 역사를 쌓는다. 급진적인 분쟁을 지양하고, 순차적인 안정을 지향하는 인드렌도 그러했다.

마탑주의 자리는 쉽게 얻을 수 없다.
하물며 변화의 시대에서는.

“그것이 네 본성이지. 젊었을 때의 그 모습이.”

어머니로부터 피어시아를.
아버지로부터 레이트를.
부모로부터 인드렌을.

그리하여 인드렌 피어시아 레이트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얻은 사내는, 아티슨 마탑의 상위 마도사들의 아들로서 마법의 길을 걷게 되었다.

순진한 마법사는 아니었다.
그렇게 될 수 없었다.

마탑 고위직의 자식이기에 마법만이 아니라 정치 또한 삶에서 떼어 놓을 수 없었으니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인드렌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마탑들의 정치를 보고, 듣고, 느꼈다.

사상과 이해관계, 질투와 원망을 비롯한 사적인 감정들, 겉으로는 웃으며 등 뒤에 칼을 숨기는 기만과 권모술수, 상해와 살인에 어떤 거리낌도 없는 인간의 당연한 듯한 악의…….

지금으로부터 185년 전 10대 마탑들이 동력원을 얻고, 덕분에 154년 전 마법이 상용화되면서 마탑의 영향력이 끝도 없이 비대해졌다.

힘은, 힘을 다루는 주체의 생각과 결정을 따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전보다 많은 걸 누리고 싶은 욕망은 지성인의 본능.

레프라기움 마탑과 다크워튼 마탑을 제외한 8개 마탑은 한동안 파벌 간의 마찰과 승패에 따른 정치적 축출이 일상이었다.

정치적 축출은 대부분 지위와 권력을 상실하는 형태로 끝났지만, 정쟁(政爭)이 극한으로 치달으면 죽음으로 종결되기도 했다.

승리한 파벌에서 패배한 파벌의 수장으로 하여금 가장 성가셨던 정적을 배신하고 죽이게 해 굴욕적인 마침표를 찍게 하는 경우도 그 예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차.
대화에 섞인 홀짝거리는 소리.
옅은 기침.
급박하게 터져 나오는 숨.
테이블에서 떨어져 부서지는 찻잔.
쏟아지는 피.
멎어 가는 호흡.
쓰러진 채 굳어 버린 부모와 이제 한숨 돌렸다는 듯 안도하는 노인.
문 틈새로 보이는 숙청의 현장.

……언젠가부터 천천히 타고난 재능을 드러내기 시작한 인드렌은 갑작스럽게 아티슨 마탑의 정계에 뛰어들었고.
이윽고 사방에 가득한 정적들을 모조리 침묵시켜 마탑의 권좌를 차지했다. 초월자로 각성한 이후에는 그가 곧 아티슨 마탑이 되었다.

당시 어느 아티슨 마탑의 장로는 노환으로 죽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

───마탑주께…… 충언을 해도 좋고…… 아첨을 해도 좋다…… 하지만…… 절대로 원한이 생기는 일은 삼가거라…… 절대로……! 절대로…….

유언의 정확한 문장은 시간 속에 잊혔을지언정 그 뜻은 길이길이 전해졌다.
인드렌이 마탑의 주인으로 군림했을 때나 스스로 물러났을 때나, 무려 1세기가 넘도록 아티슨 마탑의 소속원은 감히 인드렌이 그은 선을 넘으려 한 적이 없었다.

마울러가 말했다.

“네가 마탑주에 오르기 전에 실종되었다고 하던 장로들은 아직도 행방불명이라지? 그런 것도 모르고 잡것들은 너를 자비롭고, 너그러운 초월자님이라고 인식하고 있더군.”
“나는 나름대로 관대함을 갖추려 노력했네. 선을 넘으면 끄집어내서 과도한 대가를 치르게 하려 들지 않고, 오직 선을 넘은 부분만 처리했지. 다리가 선을 넘으면 다리만을, 팔이 선을 넘으면 팔만을, 머리가 넘으면 머리만을…… 다만 선에 반쯤 걸친 자에게는 조금 판단이 필요하네. 지금처럼.”

인드렌은 반쯤 눈을 떴다.
소년의 외형이라곤 생각되지 않는 싸늘한 안광이 넘실거렸다.

“마울러, 자네. 섬의 지하에 들어오고 나서 대체 몇 명을 죽였는가.”

마울러는 몰래 지하를 탐색하던 도중 마주친 타 세력의 탐사대를 몰살했다. 그중에는 젠티르 마탑의 장로도 있었다.
제한된 공간에서 적대적인 초월자를 마주치고도 살아남기는 어렵다. 마울러의 손에는 지워지지 않은 피 냄새가 감돌았다.

“지나가다가 밟혀 죽은 벌레들을 세는 멍청이가 어디에 있을까.”
“탐사대원 고의 살해. 탐사 조약을 무시해도 너무 무시하는군. 아티슨 마탑의 탐사대를 만나도 자네는 똑같이 행동했겠지.”
“당연히.”

마울러가 튼튼한 치아를 드러내며 가볍게 목을 주물렀다.

“이 내가 아티슨 마탑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래서 자네를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는 걸세.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정말로 죄다 죽여 버리고 말겠지. 세계의 적이 명확한 시국에서 자네의 행동은 그 어떤 시점에서도 옳지 않아. 이러면 자네를 주검의 영광의 하수인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네.”

마울러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이 새끼가 누구보고 하수인이라는 거냐.”
“세계 회의에 잠입한 주검의 영광도 용검에 대해 들었으니 이곳 어딘가에 있을 가능성이 높네. 탐사에 지장을 줄수록 주검의 영광에 이득이 되는 일을 하는 셈이니 하수인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아무튼.”

인드렌은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자네는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네. 거기 가만히 있게. 조금 더 선을 넘게 되면 나도 더 이상 인내하기 어렵네.”

쿵!

마울러가 대놓고 한 발짝 내디뎠다.

“이제 어쩔 거냐.”
“……후.”

결단에 유예는 없었다.

“역시 초월자는 다루기 어렵군.”

마도 <제유(制有)>

인드렌이 개척한 길은 안정력(安定力)에 중점을 두고 있다. 본디 안정이란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거나 반응 속도가 느릴 때 사용하는 개념일지니.

물질계의 통제.

인드렌은 힘이 닿는 범주까지 만물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다.

……!

마울러의 몸이 경직되는 순간 투명한 무언가가 굽이쳤다. 기운을 끌어올린 마울러가 기합을 지르며 구속력을 깨뜨렸다.

쩌엉!

방금까지 그의 왼다리가 있던 공간에 아주 작은 폭발이 발생했다. 규모는 손바닥처럼 작을지언정 그 위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이 세상은 멈춰 보일 때도 있지만 실제로는 항상 움직이고 있네. 눈에 보이지 않는 힘 자체도 그렇고, 생명도 그러하네. 그중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호흡해 무의식적으로 장기를 활동시키지. 인간이란 종족의 틀을 벗어난 우리 또한 결국에는 여전히 그런 식으로 연명하고 있네. 그런 뜻에서…… 조금 궁금해지는군.”

인드렌을 중심으로 기류가 정지했다.

“육신이 완전히 멈춰 버려도 초월자는 무사할 수 있을지.”
“천검부터 죽이게 될 줄 알았는데.”

강성의 태세.

“죽여 주마, 늙은이.”

마울러가 바닥을 강하게 밟으며 전진해 허리를 비틀었다. 살벌한 건틀릿을 착용한 거대한 권격이 시야에 가득 찼다.
피부에 채 닿기도 전에 공기를 매질로 삼은 충격파가 들이닥쳤다.

<단경(端鏡)>

마울러의 태세를 비롯한 현상이 정지했다. 마치 거울의 끝부분을 넘어가 사라진 사물처럼 마울러의 일격은 인드렌에게 닿지 않았다.

쩌적───

마울러가 앞다리에 더욱 힘을 싣자 미궁의 면이 갈라졌다.

사방이 진동한다.

통제해야 하는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에 따라서 인드렌의 마력과 마도의 출력을 점진적으로 높였다.
짧은 지팡이를 붙잡은 그의 손등 위로 힘줄이 불거졌다.

“내가 한창 아티슨 마탑을 다스렸을 당시 자네는 태어나지도 않았었는데…… 들은 건 소문뿐이면서 왜 나에 대해 아는 척을 하는 겐가.”

인드렌이 지팡이를 튕겼다.

“버르장머리를 고쳐 주겠네, 애송이.”

폭풍이 몰아쳤다.

콰아아아앙!

마울러가 벽에 처박히고는 그대로 휩쓸려 일대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둘의 승패는 거리에 달려 있다.
접근을 허용하면 인드렌은 위험한 상황을 맞이할 것이고, 끝내 접근하지 못하면 마울러는 인드렌에게 손끝조차 닿을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무투계와 마법계의 양상이었다.

콰득!

마울러가 벽면에 팔을 박아 넣어 강렬한 대기의 힘에 대항했다. 피가 제대로 끓어오르는 걸 느낀 그가 고개를 쳐들었다.

강성 – 타경打驚

한 번의 일격이 폭풍의 통제를 산산이 찢어발겨 흩어 버린다.

연환(連環)의 태세.

속도를 높여 시야에서 사라진 마울러.
고유 영역을 전개하는 인드렌.

쿠우우우웅───!

섬의 지하 미궁에서 초월자들의 분쟁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아드리안은 로브 형태의 아티팩트 [그늘거미]를 두르고 미궁을 종횡무진했다.

유골룡 토벌 보수로, 벨디른 공화국의 금고에서 얻은 이 로브는 착용자의 의지에 따라 기척을 은폐할 수 있으며.
밤에 시동어를 읆으면 어둠에 녹아들어 시야로는 식별이 불가능해지는 기능을 갖고 있다.

지금 시각은 밤.

아드리안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도 다른 탐사대 근처를 지나쳤다.
물론 발각되는 일은 없었다.

‘주검의 영광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군. 대체 얼마나 넓은 거지.’

제법 이동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다 할 만한 성과가 없었다. 지금까지 눈에 띈 것은 지하 미궁을 돌아다니며 침입자를 습격하는 검은 벌레들과 미라 기사뿐이었다.
미궁의 환경 탓에 지각 가능한 거리가 제한되는 터라 탐색이 난항을 거듭했다.

‘하인 새끼들. 그냥 초월기를 써서 반응이 오나 안 오나 시험을──’

아드리안이 극단적인 결정을 고려하고 있던 도중 뭔가를 감지했다. 즉각 자리에 멈추고는 구석에 몸을 숨겨 슬쩍 시선만 보냈다.

‘누군가 있다.’

눈으로 보이지 않고.
불분명하다.

그래도 느껴진다.

상대도 감지한 것인지 자리에 멈춰 서서 이쪽을 주시하는 듯했다. 광검 [실렌다르]를 잡은 아드리안이 발도 자세를 갖췄다.

짧은 시간이 흘렀다.

아드리안은 상대를 식별하기 위해 [그늘거미]의 은폐를 먼저 해제했다. 적을 놓칠 일 없다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었다.
한데 동시에 상대도 위장을 풀며 감춰진 정체를 드러냈다.

둘 다 서로 안면이 있었다.

“역시 당신도 왔군요, 아드리안.”
“마스터.”

마스터(Master), 벤디에 카에나르.
천검(天劍), 아드리안 첸버스.

탐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며칠이 지나서야 두 초월자가 맞닥뜨렸다. 서로를 인식하자마자 각자 무기에서 손을 뗐다.
그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어디까지나 주검의 영광이었으므로 싸우기는커녕 오히려 협조해야 하는 관계였다.

“흔적은 찾았나요?”
“아직. 너는 어떻지?”
“있기 하지만 큰 의미는 없어요. 지도를 만들면서 최대한 경로의 수를 줄이고 있는데 이곳 지하 미궁의 규모가 상상 이상이더군요.”
“잠깐 보겠다.”

벤디에 옆쪽에 다가선 아드리안이 팔짱을 끼고 지도를 내려다봤다. 그녀가 어느 쪽에서 왔는지 대충 이해됐다.

“지도상으로 보면 나는 이쪽에서 왔다. 나름대로 근방을 샅샅이 뒤졌으니 혹시 모른다고 여기를 다시 살펴봤자 확률상 놈들을 발견하기 어렵겠지.”
“그렇다면 우리가 가 보지 않은 방향을 탐색하는 겔 좋을 것 같군요.”
“지금은 과감한 결정이 필요할 때니까. 늦으면 주군을 뵐 낯이 없다.”

방향은 북쪽이다.

아드리안은 어둠 저편을 응시했다. 벤디에 또한 같은 방향을 바라보다가 슬쩍 아드리안에게 눈길을 주었다.

신중하고 대담한 면모.

아드리안의 성격이 워낙 개차반으로 알려져 있어 의외였다. 그는 옛날에 템플의 제자들과도 시비가 붙은 인물이었다.

아드리안이 앞장 섰다.

“바로 움직이지.”
“그 전에 정보를 하나 공유하죠.”

벤디에가 단언했다.

“저희를 포함해 다수의 초월자가 미궁에 들어온 걸 확인했어요. 확실하게 이곳에 있는 건 가레스와 루네시카입니다.”

마울러, 그리고 두 번째 하인.

벤디에는 통찰력으로 그들의 발자취에 남아 있는 희미한 기운을 감지했다. 다만 존재를 확인하는 것 외에는 추적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는 능력이라 쫓을 수는 없었다.

“그리고 다른 초월자가 한 명 더.”
“누구지?”
“제가 알지 못하는 기척입니다. 다만 그 정체는 짐작하고 있어요. 당신도 들었을 겁니다.”

벤디에가 말했다.

“하이랜디아에 나타나 단검으로 서약자의 팔에 상처를 남기고 사라진 비공식 초월자를.”

* * *

상부의 명령을 따라 옛 왕의 머리를 회수하고, 바르카젤과 그림멜의 시체 일부를 주검의 영광에 넘겼던 단텔이 미궁에 잠입했다.

운명을 위해서.

미라 기사와 검은 벌레들은 그를 공격하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은밀 기동과 암살에 특화된 단텔은 초월자의 감각도 속일 수 있다.
본인을 드러낼 때는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때뿐이었다.

하지만.

모통이 너머에 있는 생물은 초월자로 분류된 존재가 아니었다.

“이상한 냄새…… 분명 이 근처인 것 같은데.”

느닷없이 이쪽으로 내달려 온 아르나크 제국의 워 로드──레그리트 나르실리아가 콧잔등을 씰룩이며 발소리를 내었다.

‘용인…… 마족의 시초.’

단텔이 몸을 숨긴 채 미간을 구겼다.

‘이것이 운명 밖의 결과인가.’

운명의 비틀림으로 인해 새로운 종족으로 거듭난 레그리트에게, 운명의 수레바퀴를 추종하는 단텔이 처음으로 기척을 감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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