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6화 주검의 영광 (13)
레그리트는 용인의 후각에 감도는 사특한 냄새에 눈살을 찌푸렸다.
솔직히 이런 걸 냄새라고 정의할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기분을 아주 언짢게 만드는 기운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콧잔등을 다시 한번 씰룩여 보니 그야말로 손에 꼽을 정도로 불쾌했다.
‘미라한테 나는 뭔지 모를 악취하고 본질적으로 비슷한…… 그보다 좀 더 짙은데.’
기분이 왜 이럴까.
빠르게 흐르기 시작한 혈류에 몸이 뜨거워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쾌감이 서서히 분노 비스무레한 감정으로 변한다.
당장이라도 원인을 찢어발기고 싶다.
그녀의 존재가 파괴를 원했다.
……턱.
레그리트가 모퉁이를 잡고 왼쪽으로 이어진 길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공허하고 고요한 어둠이 용인의 동공에 반사됐다.
눈꺼풀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긴 통로를 가만히 노려봤다.
“갑자기 뛰쳐나가더니. 무슨 일이냐, 레그리트.”
검성 프리발트가 제국 탐사대를 이끌고 그녀의 뒤를 쫒아왔다.
제국 마법성의 로드인 메리사 페스필드는 만에 하나의 일을 대비해 지상에서 비행정을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기분 나쁜 게 있는 것 같아서.”
“그래서 찾았나?”
“아니, 아무것도 없군.”
“그럼 탐사를 속행하지, 여기서 낭비할 시간 같은 건 없어 보이니.”
프리발트가 주변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파동이 변했다.”
리반데일 대공의 정식 제자인 프리발트는 파동의 기운을 다룬다.
스승보다는 한참 모자랄지언정 그는 기를 깨우친 자가 일반적으로 감지할 수 없는 세상의 물결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이곳 지하 미궁의 파동은 마치 회오리처럼 꼬여 있는 듯했는데…… 방금 순간적으로 크게 뒤틀리며 파장이 변했다.
미궁 특유의 환경 탓에 그 이상은 알 수 없었으나 불길한 징조임은 틀림없으리라.
실제로 처음에 조우했던 미라 기사와 그 이후에 토벌한 미라 기사의 강함은 달랐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한 개체들이 출몰하고 있다.
‘대체 여긴 뭐지?’
제국의 마법사들이 미궁의 미라를 조사해 봤지만 대체 어떻게 움직이는지, 왜 몸이 어느 정도 손상되면 더 이상 훼손되지 않는지 개체의 특성을 규명하지도 못했다.
단순히 이형종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곳은 모든 게 기이했다. 고대에 잠든 뭔가를 깨운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할까.
레그리트가 말했다.
“미궁 지도는 최대한 단순하게 제작하고 속도를 좀 더 높이지. 공들인 시간에 비해 성과가 너무 없어. 이대로 하루가 더 지나면 재정비를 위해 지상으로 복귀하도록 한다.”
“그렇게 전달하지.”
프리발트가 세 명의 지휘관을 불러 레그리트의 지시를 전파했다. 같은 로드지만 탐사단장은 그녀의 역할이다.
프리발트는 제국의 황명에 기반한 위계질서를 존중했다.
레그리트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다가 모퉁이에서 떨어졌다. 멀어지는 발소리. 이내 적막이 돌아오려던 순간 마력이 급격하게 집중되며 지면을 크게 울리는 굉음이 들려왔다.
“레그리트?”
레그리트가 아티팩트 [황금의 광채]를 조작하여 투구를 없애고, 우측 이마에 솟아난, 부러진 드래곤의 뿔을 훤히 드러냈다.
상체가 들숨으로 부풀었다.
함성을 내지르기라도 하는 듯 방금까지 주시했던 어둠을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명룡의 숨결>
황금빛 번개의 브레스가 뇌성을 터뜨리며 통로를 집어삼켰다. 어마어마한 마력의 파장에 프리발트가 파동의 검막을 펼쳐 부하들을 보호했다.
“갑자기 무슨 짓이냐!”
“워, 워 로드께서 엄청난 마력을……!!”
사방을 휩쓸며 뒤흔든 후폭풍이 곧이어 바람처럼 흩어졌다.
치지직…… 치지지직…….
잔류 번개가 불규칙적으로 번쩍이며 통로의 벽을 밝혔다. 그 순간 낯선 기척이 느껴지며 인간의 형체가 나타나 통로 저편으로 이동했다.
프리발트가 흠칫했다.
“인간? 아니, 설마 저건…….”
“하, 역시 있었군.”
레그리트가 송곳니를 드러냈다.
“내가 직접 뒤쫓겠다. 넌 부대장으로서 탐사대를 임시 지휘해라. 주기적으로 흔적을 남길 테니 잘 보고 쫓아오라고.”
우드드드득!
레그리트는 용인의 힘에 집중해 드래곤의 날개를 만들고는 앞꿈치에 힘껏 무게를 실었다. 미궁 바닥에 금이 갔다.
지체없이 가속한 레그리트의 뒷모습이 순식간에 멀어졌다.
“레그리트! 쯧…… 뿔을 달고 오더니 옛날보다 더 과격해졌군. 지도 제작은 최소화한다. 탐사대는 가속 진형을 갖춰라.”
프리발트는 서대륙의 검은 화산에서 베르덴의 경지를 간파하지 못했던 실책을 이번엔 되풀이하지 않았다.
“초월자의 존재가 확인됐다.”
방금 그 움직임.
그로부터 느껴진 파동.
명백히 인간의 틀을 벗어났다.
* * *
잠영潛影
단텔이 자신만의 기예를 펼쳐 존재감을 감춘 채 이동했지만 뒤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시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내 기척을 인식하고 있다. 어떻게?’
용인의 특성인가.
아닐 것이다.
마족의 시초 종족이 그런 힘을 가졌다는 정보는 들은 적 없다. 아마도 제국의 워 로드 개인의 능력인 듯하다.
‘귀찮게 됐군.’
옛 왕──여섯 번째 사도의 재림을 조력하는 게 명령의 골자지만, 그렇다고 세계와 정면으로 맞붙을 생각은 없었다.
그건 단텔의 특기가 아니었다.
‘운명의 개념이 희박해진 지금…… 예상과 예단은 금물. 그러므로 예측을 통한 대응은 곧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허벅지에 찬 첫 번째 단검이 이빨을 드러낸다.
‘혼란을 이용한다.’
단텔이 급제동을 걸면서 옆으로 뛰어올라 벽과 벽을 박찼다.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곡예와 함께 허공을 가르는 칼날.
동시에 직선으로 날아온 레그리트가 황금빛의 검을 휘둘렀다.
쩌엉!
강렬한 불씨가 튀었다.
낙법을 취한 단텔이 단검을 뒤로 당기며 자세를 잡았다. 마스크와 후드로 가려진 그의 얼굴에선 오직 눈빛만이 보였다.
“도망치는 건 포기했나.”
까드드드득───
레그리트는 양다리로 지상을 긁어 속도를 한껏 죽였다.
그녀가 뒤를 돌아봤다.
“처음 보는 인상착의인데. 비공식 초월자인가?”
“…….”
“침묵이라, 그것도 좋지.”
마도 <혼융>
“이야기는 제압하고 나서 듣겠다.”
레그리트는 단텔의 존재에서 본능적인 혐오감을 느꼈기에 두 번 이상 대화를 시도하지 않고 교전을 선택했다.
그녀의 감정을 마주한 단텔은 의아했지만 관심을 거두었다. 어째서 처음 본 자신을 이렇게 적대하는지 따윈 알아 봤자 무의미했으니까.
정해진 길만 걸으면 그뿐이다.
잔가지는 필요 없다.
쿠구구구구구구…….
지면이 점차 흔들린다.
레그리트가 인상을 쓰며 진원지를 향해 시선을 던졌다. 이윽고 어둠에서 나온 수많은 미라 기사가 발광하며 돌진해 왔다.
[경배하라.]
[시체의 왕. 경배하라.]
[영혼을 거두어들이는 자. 경배하라.]
[여섯 번째 사도의 재림에 경배하라.]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가 시끄럽게 귀를 스쳤다. 미라 기사의 발밑을 기어다니는 무수한 검은 벌레들의 소음이 통로를 채웠다.
“때마침 습격이 오다니. 저 언데드 아닌 언데드와 벌레…… 네 짓이었나?”
“순환은 필연이자 구원.”
단텔이 불분명한 목소리를 내며 무정한 살기를 내비쳤다.
“결국은 순리대로.”
“말투도 마음에 안 드는군.”
말이 끝나자마자 서로를 향해 쇄도한 레그리트와 단텔이 격돌했다.
용인의 신체 능력이 깃든 검격이 대기를 찢었고, 비공식 초월자의 단검은 재빠르게 공세를 흘려 내며 빈틈을 물색했다.
무투계 초월자와 사막의 신앙계 초월자를 살해한 새로운 마족은 자신의 간격을 빼앗겼다가 되찾는 걸 반복하며 접전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들의 전장은 파도가 몰려오듯 곧이어 미라들과 벌레들로 뒤덮였다.
* * *
히아레마르 내해의 섬의 지하 미궁은 특유의 고요함이 소름 끼쳤으나…… 그 정적이 사라져 버린 광경보다는 못했다.
‘설마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는 적막이 그리워질 줄이야……!’
마법 자주 연대의 탐사대장인 론트넬 부관장이 입술을 짓씹었다.
사방이 소란스럽다.
미라 기사 수십 기가 원소의 장막을 부수려 하고 있다. 마법사들이 버티고 있지만 아마도 오래 버티진 못할 것이다.
한 번 더 토벌해야 할까.
미라 기사는 죽일 수는 없어도 무력화할 수는 있다. 문제는 토벌하면 다음 개체들이 나타나고, 그 개체들은 이전보다 저항력과 힘이 더 강해진 상태로 출몰한다는 점이다.
‘대충 어림잡아도 백 마리는 넘었다. 만약 저것이 새 발의 피라면, 젠장, 도대체 이만한 숫자가 어디에 숨어 있었단 말인가! 여긴 이상하다. 천제학을 무시한 금환일식을 봤을 때부터 불길하다고 생각했건만.’
이대로 끝도 없이 갔다가는…… 자칫 여기서 뼈를 묻을지 모른다.
질좋은 마력 포션으로도 보충할 수 있는 마력엔 한계가 있다. 또한 마력 포션을 과용하면 중독 증상이 일어나 전력이 급감한다.
마력이 충분해도 체력과 집중력이 고갈되면 마법 시전에 애로 사항이 생긴다.
휴식 없는 장기전은 불리하다.
“부관장님!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공격 허가를!”
“…….”
론트넬은 잠시간 머리를 굴리다가 곧 지팡이를 쳐들었다.
“장막을 거두고, 마법을 개시하게!”
원소의 벽이 걷히는 순간 4위계와 5위계 마법이 빗발쳤다. 그에 적중당한 미라 기사는 손상을 입거나 주춤거릴 뿐 이전의 개체처럼 일거에 토벌당하지는 않았다.
<해풍의 독니>
론트넬은 마도를 개방해 6위계급 고유 마법으로 미라들을 토막 냈다. 통로 멀리까지 바람을 날려 보낸 그가 황급히 명령했다.
“지금부터 지상으로 후퇴하겠네.”
“하, 하지만 탐사가 아직…….”
“연대를 위해 공을 세울 때가 아니네!”
론트넬은 한시라도 빠르게 지하 미궁을 벗어나고 싶었다.
불안감이 얼굴에 드러날 정도로.
“어서 가세……! 미궁이 우리를 집어삼키기 전에……!!”
마법 자주 연대는 후퇴했다.
갑작스럽게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난 미라들로 인해서 결국에 그와 같은 결정을 내린 세력이 한둘이 아니었다.
몇몇 마탑에서도 위험을 감수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다고 판단해 일단 물러난 다음에 재정비를 하기로 했다.
“우리는 최대한 퇴로를 마련하지.”
“그게 좋겠네요, 대사형.”
템플의 제자들은 정해진 통로에 서서 바깥으로 이어지는 탈출로를 확보했다. 마스터가 직접 후퇴를 지시하지 않는 한 그들은 어떤 외압에도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러나 이외의 세력은…… 오히려 정면 돌파를 택했다.
“진격하라.”
레오나가 언령을 발동해 벌레들로 이루어진 벽을 꿰뚫고 지나갔다. 거대한 방패와 헤비 랜스로 무장한 격진의 레오나는 공성 병기와 다름없다.
강화된 미라 기사들이 검을 휘둘렀으나 갑옷에는 흠집도 나지 않았다.
쩌어어억──!
방패 돌격으로 미라 기사를 벽에 처박은 그녀가 턱짓했다.
“끝까지 뚫는다. 이상.”
“예, 부단장.”
서약자와 약속을 맺음으로써 힘을 부여받은 언령의 기사단이 미궁의 아래로, 더욱 깊은 곳으로 향했다.
“반응이 격한 걸 보니 탐사대 중 누군가가 성과를 얻은 건가. 그나저나 불태워도 사라지지 않는 미라의 파편이 쌓이니 거슬리는군. 이제 마주치는 미라들은 죄다 봉인해라.”
아케나드 마도국도 탐사를 이어 나갔으며.
“루아스시여, 부디 꺼지지 않는 광명으로 우릴 비춰 주소서!”
루아스 교국의 그레고르반 추기경이 신성력인 담긴 주먹으로 벌레들을 폭사시키며 전진하고, 또 전진했다.
“냐하하핫, 지루함이 좀 가시는데?”
수인 대부족의 묘왕은 겁을 먹기는커녕 희열을 드러냈다. 이렇듯 강대한 세력을 배경에 둔 탐사대는 미궁을 더 파고들었다.
그중 모험가 길드에서는 오직 한 명만이 통로를 질주했다.
‘드디어 혼자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완벽한 모험가로 불리는 카스티안 리니게아 타인 크세리온은 모험가들에게 퇴로를 확보하라고 말한 뒤 혼잡한 틈을 타 안쪽을 들어왔다.
카스티안이 실종되었다고 해서 모험가들은 찾지 않을 것이다.
구출 임무는 절대로 성급히 진행해선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데다가 카스티안의 강함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 있어 카스티안은 빨리 구해야 할 만큼 미숙한 모험가가 아니었다.
‘정확히 이 부근…….’
몇 시간 전에 모험가들과 함께 지나친 장소로 돌아온 카스티안이 감각에 집중했다. 가슴 정중앙에 박힌 고대 아티팩트가 반응했다.
망국의 죄인.
미궁 너머에서 희미하게 느껴지는 사기가 조금씩 신경을 어루만지던 순간이었다.
황자님저깄……다저깄……어요황제가저깄……다저깄……어찾아!
내면의 통곡이 크세리온 황제의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 속삭였다.
‘방향을 잡았다.’
카스티안은 확 눈을 뜨고는 주저없이 북쪽으로 내달렸다.
주인 없는 땅에서 베르덴에게 받은 통신 장치를 작동했지만 가장 가까운 통신 장치가 먼 탓인지 마력 신호가 잘 잡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도중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나 혼자라도 가야 돼.’
이변은 곧 징조일 테니…….
며칠 만에 큰 변화가 일어났으니 어떤 식으로든 주검의 영광이 크게 움직일 것이다. 옛 왕을, 형님의 부활을 막아야 한다.
진즉 끝났어야 했을 목숨을 바쳐서라도.
자신에게 깃든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세상을 위해서라도.
그러기 위해서 지켜 온 일생이다.
“……!”
그때였다.
쿠웅───!
지금까지와는 다른 거대한 미라 기사가 양손으로 잡은 거검으로 바닥을 강타하며, 크세리온의 앞길을 차단했다.
[자유는 파멸이 내미는 손길이며, 오직 순환만이 구원일지니.]
* * *
아드리안과 벤디에가 나란히 서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계단을 내려다봤다.
깊다.
그들도 헤아릴 수 없는 꺼림칙한 기운이 피부를 적셨다. 모르긴 몰라도, 이 아래에 뭔가가 있는 것은 자명하리라.
“내려가죠.”
“잠깐…… 됐다.”
아드리안은 [지평의 관측선]을 기동하여 권역을 결정했다.
여기가 핵심으로 이어지는 길인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지만…… 과거 서약자가 언급한 비공식 초월자가 침입했다는 정보를 접한 이상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몰랐다.
초월자 한 명은 전황에 큰 영향을 준다.
‘주군께서 언제든 오실 수 있도록 길을 만드는 게 최우선이다.’
아드리안이 작업을 마칠 때까지 벤디에는 묵묵히 기다렸다. 궁금한 듯한 기색이었으나 묻지 않았기에 아드리안도 설명하지 않았다.
“끝났나요?”
“끝났다. 내려가지.”
두 초월자가 한 발짝 내디디려고 하다가 거의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뭔가 온다.
귀를 기울이니 격전을 치르는 듯한 굉음이 점차 크게 들려왔다. 머지않아 어둠 속에서 낯익은 자들이 튀어나왔다.
“인드렌하고…… 마울러?”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마울러가 입가를 끌어 올린 채 쉴 새 없이 연격을 퍼부었고, 인드렌은 권격에 담긴 충격파를 제어해 반대로 되돌렸다.
파공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어째서 싸우고 있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저 그런 다툼이 아니었다. 살의가 느껴진다. 인드렌의 입술은 터져 있었고, 마울러의 몸에도 여러 잔상처가 난 것이 눈에 띄었다.
인드렌이 후방으로 <비행>하다가 흠칫하고는 뒤를 돌아봤다.
“자네들……? 역시 섬으로 들어왔군. 마스터까지 올 줄은 몰랐지만. 가레스, 잠시 멈추─”
“찾았다, 이 씹새끼.”
마울러가 전부 다 뒈지라는 식으로 크게 권격을 내질렀다. 인드렌을 가까스로 지나친 그것이 뒤쪽을 노렸다.
정확히 아드리안에게 말이다.
“이 개새끼가.”
광검으로 권기(拳氣)를 가르고 마울러에게 당장 돌진했다. 순식간에 서로에게 공세를 퍼붓기 시작한 둘이 벽과 지면을 박차며 몇 번이고 이동하다가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전투 대상이 바뀌었다.
졸지에 마울러에게 무시당한 인드렌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이게 뭔…… 좀 당황스럽구먼.”
“내려가죠.”
“아, 그렇게 하세.”
벤디에를 뒤따라간 인드렌 또한 더 깊은 지하로 모습을 감췄다.
* * *
네 명의 초월자를 집어삼킨 계단 위에서 거대한 미라 기사가 다수 모였다. 그들은 검을 붙잡아 올리고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여섯 개로 나뉜 파편이 모여 여섯 번째 사도를 이루니.]
[운명은 재건되리라.]
[자유는 파멸이 내미는 손길.]
[오직 순환만이 구원이다.]
미라 기사는 피부가 일절 없었으나 왠지 모르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웃고 있었다. 죽여도 죽지 않은 그들은 순환의 산물이다.
이제 곧 사도가 강림해 운명의 수레바퀴를 다시 만들 것이니…… 죽음 이후에 약속받은 영원을 얻게 될 일이 그리 멀지 않았으리라.
[영원한 반복은 숙명……?]
미라 기사들이 먼 시대의 언어로 기도를 잇다가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무언가가 생겼다.
희끄무레한 형체.
선명하지 않지만.
인식한 순간 빠른 속도로 존재가 명확해지기 시작했다.
곧 형체가 실체화했다.
미라 기사가 반사적으로 거대한 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칠흑의 장갑을 착용한 손이 검날을 그대로 붙잡았다.
잿빛의 머리카락.
심해를 연상시키는 벽안.
“뭐냐, 네놈들은.”
쩍.
베르덴의 손끝에 걸린 검이 갈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