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27

927화 주검의 영광 (14)

마울러는 초월에 닿지 못한 약자들을 멸시하는 초월지상주의 사상을 갖고 있지만, 그렇다고 힘에만 의존해 폭력을 무기로 삼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아둔한 강자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생긴 것과 다르게 이성적이다.

주목해야 할 인물들에 대한 사전 조사는 옛날에 끝마쳤다. 이 대륙에 군림한 초월자들이 대체로 어떤 성격인지 훤히 꿰뚫고 있다.

인드렌 피어시아 레이트는 현재 방관자에 가까운 태도를 견지하고 있지만, 지금처럼 필요할 때는 직접 나서기도 한다.
객관적으로 온건한 초월자다.
원수가 아닌 이상 싸우는 도중에 상대가 갑자기 등을 보여도, 손을 쓰는 대신 무슨 상황인지 확인부터 할 만큼 호전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벤디에 카에나르는 단 하나의 신념을 내세우며 상식적인 정의를 표방한다.
이기적으로 무고한 약자들을 가해하고, 대륙을 어지럽히는 악인들은 산디르 파엔처럼 초월자라고 해도 베어 버리지만, 그 기준을 건들지 않으면 적대할 일이 없다.

그렇기에 마울러는 두 초월자를 일절 신경 쓰지 않고 아드리안을 노렸다.
인드렌도 제법 괜찮은 상대였지만 시건방진 어린 초월자 천검 새끼에 비하면 패 죽이는 맛이 확실히 덜할 테니까.

쿠웅!

광검과 건틀릿이 부딪치며 내는 불씨가 어둠에 삼켜졌다. 무식하게 벽에 주먹을 꽂아 놓은 마울러가 그대로 나아가며 팔을 끌어 올렸다.
미궁의 파편이 파공음을 터뜨리며 아드리안에게 쇄도했다.

카가가가가가강!

아드리안이 특유의 검속으로 투사체를 모조리 쳐 내고 공중에서 회전했다. 계단 끝부분에 착지한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처음 딛는 공간이라 주의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둘은 일대를 종횡무진하며 오직 서로를 향한 살의에 몰두했다.

수십 번의 검격과 권격이 교차했다.

마울러는 제 건틀릿을 타고 목을 향해 솟구치는 광검을 어깨로 흘려 냈고, 아드리안은 극단적으로 몸을 낮춰 일권을 회피했다.
그 직후 아주 정확한 순간에 마울러의 발길질이 들이닥쳤다.

콰아아앙!

아드리안은 방어 자세를 취한 채 솟구쳐 천장에 처박혔다.

“다 보인다, 쥐새끼야.”

마울러가 반사적으로 얼굴을 틀자 볼에 수직의 검흔이 생겼다.
얕지만, 핏방울이 맺혔다.

어느새 천장을 박차고 내려온 아드리안이 피가 섞인 침을 뱉었다.

“이것도 보였나? 돼지 새끼야.”
“입 닥쳐.”

강성 – 타경打驚

마울러가 손등에 한껏 핏대를 세우며 기예를 펼쳤다. 아드리안이 순간 광검을 끌어당겨 거대한 검기를 쏘아 보냈다.

신월新月

자색의 초승달과 연한 푸른색의 권기가 충돌하며 접전을 이루었다. 기가 폭발했다. 아드리안이 거리를 좁혔다.

안면, 관자놀이, 턱.

칼날이 들어갈 틈새가 없었기에 무릎과 팔꿈치 그리고 칼자루로 마울러의 면상을 정면에서 연속으로 강타했다.
마울러가 아예 광검의 날을 붙잡고 힘으로 멀리 내던졌다.

낙법을 취한 아드리안이 미끄러지듯이 착지해 다시 달려들려고 했다. 그때 벤디에가 팔을 옆으로 펼쳐 제지했다.

“막지 마라.”
“나중에 하시죠.”
“그러는 게 좋겠네.”

그들은 이미 커다란 공동에 들어왔다.

벤디에와 인드렌이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적잖은 미라들이 보였다. 거대한 미라 기사. 지금까지 만났던 것보다 덩치가 컸다.

[운명은 재건되리라.]

마울러는 신경질적으로 뒤를 돌아보며 손가락을 굽혔다.

“이 새끼들은 또 뭐야.”

* * *

각자의 생명은 저마다의 죽음이 겪고.
각자의 죽음은 다시 저마다의 생명이 된다.

세계는 불변하는 시작과 끝을 영원토록 반복하여 모든 걸 가두어 버릴지니, 누구도 감히 순수한 자유를 만끽할 수 없으리라.

하지만 그 세계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존재가 반복을 인지하지 못하고, 동일한 일생을 매번 새롭게 살아간다면…….

세상은 감옥인가? 아니면 자유의 낙원인가?

* * *

베르덴이 주변을 의식했다.

‘여기가 섬의 지하.’

미지의 섬의 내부 탐사를 진행하기 전에 보고로 들었었는데…… 과연 연식도, 뿌리도 파악할 수 없는 고대 유적이었다.
침묵의 사막에서 접했던 유적들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지만, 고대 신들이 실존했던 신화시대의 산물은 아닌 듯했다.

‘고대 신이 멸종한 대분기와 ‘당신’의 운명전, 그사이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겠어.’

세계급 전쟁이 일어나고 곧바로 세계급 전쟁이 또 발발하지는 않았을 테니.
어쩌면 이 섬 자체가 전쟁과 전쟁의 간극 속 평화 시대를 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보니 흥미가 샘솟는다. 여유만 있었다면 느긋하게 섬을 탐사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나저나.’

베르덴은 다음 느닷없이 자신을 공격한 괴물들을 통찰했다.

백골도 아니고, 부패한 시체도 아니다.
말라붙은 미라.
기존 언데드와 다른 종류의 언데드들이 기사처럼 검을 지니고 있다. 외형 자체에서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엿보인다.

‘섬의 토종 이형종인가? 한데 뭔가 불쾌한…….’

베르덴은 미라의 검을 으깨듯 부수고 마력회로를 활성화했다. 잠깐의 대화도 없이 주변 미라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내질렀다.

[순환만이 해답이다.]

파지지지지지지지직!

마도 <파멸>

검붉은 전격이 연쇄적으로 번쩍인 순간 미라들의 육신이 분쇄됐다. 시체 조각도 남지 않고 먼지조차도 휘날리지 않았다.
탐사대의 갖은 공략에도 죽이지 못했던 미라들의 존재가 사멸했다.

[순환이…… 끊겼다? 끝. 죽음. 아아…….]

검이 파괴된 마지막 미라 기사가 주춤거리더니 괴성을 질렀다.

[아아아아아아아!!!!! 우리의 운명을!!!!!!]

일순간 짐승처럼 달려든 미라의 갑옷과 몸통이 관통됐다. 내부에서 터져 나온 파멸에 건조한 시체가 붕괴했다.

[운명을…… 빼앗지…… 마…….]

소리가 흩어진다.

베르덴은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였으나…… 왠지 모르게 분노보다 애원에 가까운 말투로 들렸다. 신경 쓰였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일언반구도 없이 강렬한 적의를 보인 이상 적은 분명했다. 그리고 중요한 건 기괴한 미라 따위가 아닌 첫 번째 하인이다.

베르덴은 미지의 섬으로 자신의 존재를 불러들인 [지평의 관측선]과의 연결 고리가 빠르게 희미해지는 걸 느꼈다.
현상을 일으켰으니 예전에 그러했듯 스스로 다시 봉인되는 것이다. 제한 시간이 지나지 않는 한 그것은 이제 골동품이나 다름없다.

그전에 아드리안이 언제쯤 그 팔찌를 기동했는지 베르덴이 가늠했다.

‘[지평의 관측선]이 권역을 지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드리안이 관측자로서 직접 날 인식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군. 서두르면 만날 수 있겠어.’

달리 느껴지는 것은 없으나 아드리안은 계단 밑 지하로 향했을 터.

불길함이 거슬린다.

화악───

베르덴은 [인테리스]를 쥔 채 뭐가 있을지 모르는 어둠으로 뛰어들었다. 보헤미른 마탑에 복수를 끝낸 뒤에도 그는 멈출 수 없었다.

또 다른 경이와 미지 속으로.

베르덴의 마도는 안식을 허락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은.

“……!”

그 순간 섬의 밑바닥으로 이어진 계단의 모습이 급박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대처할 새도 없이 꺼림칙한 어둠은 투명해지고 아주 환한 빛이 사방을 휘감았다.
자연스럽게 계단의 디딤판을 밟자 지하 미궁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대신 ‘초원’이 펼쳐졌다.

세계수의 본체가 있는 태초의 땅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언덕이 거의 없는 평지. 그 한가운데에 작은 호수가 있었다.

바람이 불지 않는다.
파문이 전혀 일지 않는 호수는 거울처럼 하늘을 비춘다.

<마력 감지>

이제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베르덴이었기에 즉각 탐색에 나섰다. 갑자기 공간이 바뀌는 현상은 열에 열 다른 존재로 인한 것이었으니까.
초원의 호수로 시선을 던진 베르덴이 낯선 자를 인식했다.

“누구냐.”
“일말의 당황조차 하지 않다니, 차분하시군요.”

일렁이는 호수.

“운명 파괴자.”

눈부신 ‘빛’으로 이루어진 인간의 형체가 호수 중앙에 현현했다.

* * *

빛으로 이루어진 존재…….

초면부터 운명을 거론하는 걸 보면 필시 ‘당신’의 관계자다.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짐작 가는 정체가 딱 하나 있었다.

‘빛을 중심으로 집결한 인류.’

몰가른의 미래 벽화에 새겨져 있던 형상들 중 하나가 뇌리를 스쳤다.

사막의 신.
옛 왕.
거신.
호스트.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판단하면 베르덴을 이공간(異空間)으로 불러들인 저 빛은 운명의 사도일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섬과 지하 미궁 또한 운명과 연관된 장소라는 뜻이다.

그런 베르덴의 생각을 간파했는지 빛은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

“그렇게 경계할 것 없습니다. 마침 기회가 되어, ‘당신’께 가장 가까운 사도로서 잠시 대화를 나누러 온 것뿐입니다.”

즉…… ‘당신’의 최측근이라는 셈인가.

‘진실을 떠나서 존재감을 읽을 수 없다.’

베르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빛을 주시한 채 입술을 달싹였다. 섣불리 움직이기에는 상대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다 못해 전무했다.

“옛 왕의 부활 때문에 행차했나.”

빛은 옅은 웃음소리를 내며 대답 대신 다른 말을 늘어놓았다.

“운명의 수레바퀴는 무너졌고, 그 잔재인 운명의 실은 끊어지고 있습니다. 결국 태고의 시대로 회귀한 세상.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은 불분명한 미래가 만인 앞에 펼쳐졌습니다.”

빛이 묻는다.

“이에 만족하십니까?”
“무슨 의미지?”
“자유가 무조건적인 선(善)이 아니듯이 운명 또한 반드시 악(惡)이 아닙니다. 훗날 운명의 이유를 알게 된다면 깊이 깨닫게 될 테죠. 아무리 초월자의 이상에 반한다고 한들.”

호수가 짧게 출렁거렸다.

“사도라고 해도 지금은 금기를 위반할 수 없기에 함부로 언급할 수 없지만, 경계를 넘지 않는 선에서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운명은 모두에게 강제적인 개념이 아닙니다.”

베르덴이 멈칫했다.

“운명의 구속력을 인지했는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모든 자유를 버리고 운명을 택한 자들. 운명의 개념은 선택권을 앗아 갔지만, 역설적으로 운명은 선택에서 탄생했습니다.”

양팔을 펼친 빛.

“운명은 다수의 필요에 의해서 창조됐습니다.”

베르덴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의 삶을 멋대로 결정하는 운명을 혐오했다. 비공식 실험체의 결말을 납득할 수 없었다.
역천의 마법진은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자 하는 의지의 총체였다.

그런데 일생을 꾸밀 수 있는 자유를 내다 버리고 운명을 택한 자들이 다수라니…… 베르덴은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기에 사도를 자칭한 빛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각자의 선택에는 저마다의 마땅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다면 이리로 가까이.”

베르덴이 무심코 발을 내디디려 하자 반사적으로 감각이 진동했다. 삐이이이이이이. 알 수 없는 이명이 고막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베르덴의 육체가 이곳의 미세한 비틀림을 인지했다.

‘이건…….’

가르간트에서 광신자 노인과 마주쳤던 허구의 공간, 또 잿빛의 용───태초의 드래곤이 봉인됐던 패잔병의 감옥.
돌이켜 보니 그곳에서 빠져나오고 나서의 기분과 매우 흡사했다.

시간의 괴리.

이곳에서 떠나보낸 시간은 현실과는 다른 흐름을 가진다.

화아아아악!

즉각 베르덴이 마력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마도의 색채를 밝혔다. 공간의 구성 자체를 부술 수 있도록 파멸을 집중시켰다.

“정보를 미끼로 시간을 끄는 게 목적이었군, 내가 옛 왕의 부활을 막을 수 없게.”
“까다롭군요. 그 정도 경지로 이 어긋난 시공간을 꿰뚫어 보다니…… 아.”

빛이 뭔가를 깨달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렇습니까.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바로 운명 파괴자 곁에 있었습니까.”
“뭐?”
“당신이 ‘시간’의 관심을 받을 줄이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이 기분…… 오랜만입니다. 모든 시간을 통틀어 저를 몇 번이나 당황하게 한 사람은 올다르크 이후 당신이 처음입니다. 어쩔 수 없이 대화는 여기서 마쳐야겠군요. 다만 마지막으로 전하겠습니다.”

빛의 형체가 점차 희미해졌다.

“운명 파괴자, 조금이나마 눈을 뜨신 ‘당신’의 전언입니다.”
“……!!”
“운명이 재건되면 모두에게 다시 선택의 기회가 열릴 것이고, 운명을 이해한 순간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질 것이니.”

빛이 단언했다.

“베르덴, 우리는 함께할 수 있습니다.”

마치 동맹을 맺자는 듯한 제안에 베르덴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당혹스럽다. 그 말 이외에는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었다.

“부디 숙고하십시오. 그럼 훗날 제 봉인이 풀린 뒤에 다시 뵙겠습니다.”

형태를 갖춘 현뢰가 번뜩인 찰나 사도는 완전히 사라졌다. 고요한 초원과 호수 사이에서 검붉은 빛을 뿜어 대는 베르덴만이 남았다.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군.’

베르덴은 받아들이려고 해도 직전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리를 흔들었다. 그 생각은 나중에 해도 충분할 것이다.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옛 왕의 부활을 막지 못한 결말은 용납할 수 없었으므로.

<멸뢰>

베르덴이 직접 검붉은 번개를 초원에 박아 넣어 작렬시켰다. 강렬한 뇌성이 세상을 찢으며 파멸의 개념이 침투했다.

쿠구구구구구……!!

갈라지는 초원.
파멸로 물든 호수와 하늘.

이윽고 공간 전체가 산산이 붕괴하자 베르덴은 곧 사방으로 확산하는 막대한 존재감과 함께 현실로 복귀했다.

공간을 감지해 보니 계단 아래 어딘가로 추측되는 공동으로 추측된다.

한데 기척이 많다.

주변에 시선을 기울이니 낯익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베르덴을 보며 벙찐 표정을 지어 보였다.

수많은 거대 미라 기사들을 상대하던 아드리안이 말했다.

“주군……?”
“조금 늦었다.”

아드리안, 인드렌, 마울러, 마스터.

베르덴은 네 명의 초월자를 차례대로 바라보곤 미라 기사들 너머를 바라봤다. 사기가 느껴진다. 모든 초월자의 신경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대륙을 넘나들며 이제는 여기까지…….”

첫 번째 하인, 드라벤 르마르크가 끝없는 살의를 내비쳤다.

“지긋지긋하구나, 베르덴.”
“걱정하지 마라. 이제 그럴 일 없을 거다.”

베르덴이 확언했다.

“곧 죽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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