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58

958화 적란운 (3)

[신님, 신님.]

작은 악마들이 제각기 베르덴의 양손을 잡고 같은 단어를 계속해서 반복한다.
하드라스처럼 지성이 깊은 고위 악마가 아니기에 의사소통이 어렵고, 사고력이 낮은 편이지만 그들이 무슨 마음인지는 충분히 전해졌다.

‘마치 아이들 같다.’

베르덴이 세계의 틈새의 어둠 속을 거닐 때마다 악마들이 따라온다. 입가가 귀 끝까지 찢어진 기괴한 악마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녀석이 입 안쪽에 난 수백 개의 이빨을 내보이며 헤실헤실 웃었다.

더럽지도 않다.
역겹지도 않다.
혐오스럽지도 않다.
불쾌감도 없다.

이전의 베르덴도 그러했겠지만, 자신의 신성력을 자각하고 나서는 이곳의 악마들로부터 깊은 애틋함을 느꼈다.
주변 악마는 베르덴을 보고 더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 대신 웃음을 피웠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잠깐 자리에서 일어난 건데, 곤란하군.’

악마에게 공감했기 때문일까. 좌우에서 베르덴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가련한 악마들을 억지로 떼어 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신님, 구원자님.”

렌디바르의 특별 감옥에서 구출한 절반의 악마가 다리에 붙었다. 심한 고문을 당한 상처는 이미 회복된 모습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는 제대로 걷기도 쉽지 않다.

[물러가라…….]

하드라스의 말 한마디에 악마들이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하드라스에게 불평 섞인 시선들이 날아왔지만, 그 어떤 악마도 감히 군단장의 명령에 토를 달지 않았다.

[처음으로 의지할 곳이 생겨…… 틈만 나면 신께 관심을 갈구하니…… 악마의 엄준한 위계질서에도 불구하고…… 통제가 되지 않습니다……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개의치 않는다. 이해하니까.”

베르덴은 늙은 악마와 나란히 걸었다.

“현 대륙에서 악마종은 인류에게 공존 불가능한 사악(邪惡)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다. 내가 느끼는 것과 정반대로. 옛날에도 그랬나?”

[현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악이라는 것 자체는 억울하진 않습니다…… 악마의 본성은…… 다른 존재를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려 들고…… 특히나 인간에게 해악을 끼치는 건…… 사실이기에…… 그런 악마의 행동은…… 엄연히 악입니다…….]

악마는 부정적인 존재다.
그는 악마의 순수성이 악한 걸 인정했다.

“버려진 존재의 울분, 같은 건가.”

하드라스는 베르덴의 이해심에 다시금 감탄하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모든 악마는 창조주인 ‘당신’도 원치 않았던…… 끔찍한 사생아이기에…… 다른 것에게 사랑받을 줄도 모르지만…… 다른 것을 사랑할 줄도 모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존재에게 경멸과 살의를 한 몸에 받았으니, 악마는 질투와 증오, 그리고 분노로 점철되어 살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지성이 부족한 악마는…… 오직 본능에 따라 행동하고…… 높은 지성을 갖춘 고위 악마는…… 본능에 지배받지 않고…… 상황에 따라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다만…… 증오심의 크기는…… 하위 악마와 다르지 않습니다…….]

“너도 여전히 증오하고 있나.”

[언제나…….]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더는 울분만을 쏟아 내지…… 않아도 되었기에…….]

하드라스는 깊은 골짜기에 내려앉은 안개처럼 낮고, 늘어지는 웃음소리를 냈다. 마치 자신을 버린 부모를 향해 찬란한 일생을 자랑하는 듯한 자식의 홀가분한 웃음처럼 들렸다.

베르덴이 물었다.

“그렇다면 내가 구한 악마는 어떤 부류에 속해 있지?”

하드라스가 순간 멈칫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단순히 통상적인 악마와 뭔가가 다르다는 것만 감지했을 뿐이다. 정확히 짚어 낸 건 없다.”

육체의 절반은 인간이고, 절반은 악마의 형태를 한 반인반마. 녀석은 분명 악마였지만, 완전한 악마라고 하기엔 묘했다.
목소리에 아주 자세히 집중해 보면 하드라스나 다른 악마의 음성에도 섞여 있는 그 특유의 이질감이 청각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불완전한 악마입니다…… 악마가 되다 못해 어중간한…… 덜 비틀리고, 덜 왜곡돼 버린 절반의 악마…… 그렇기에 악마보다 더 악마의 본질을 여실히 내보이는…… 기형적 존재입니다…….]

“즉, 애매하기에 본질에 가깝다라…….”

베르덴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주변의 어둠을 응시했다.

운명의 부산물인 악마가 진정 무엇인지 고찰해 볼 수도 있지만, 이미 하드라스는 금기의 영역이기에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다양한 추측만이 가능할 뿐 정답이라는 확신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이미 정했듯 의문은 나중에. 지금은 신의 경지를 우선한다.’

악마들 덕분에 신성력을 자각했음에도 알파와 히안테가 기다리는 내면세계로 돌아갈 기미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아직 부족하다는 것일 터.

뭔가 잡힐 듯 말 듯한 감각…… 베르덴은 반드시 다음의 경지를 거머쥐어야 했다. 신성력을 힘으로 다루지 못하면 무의미할 뿐이니까.

문제는 시간이다.

“렌디바르로 돌아온 배신자가 이곳까지 추적할 가능성은 있나?”

[여긴 틈새의 그늘…… 빛이 닿지 않기에 그들은 감히…… 침범할 수 없습니다…… 만일 그랬다면…… 저는 옛적에 토벌됐을 겁니다…….]

“그렇군.”

운명전이 휴전된 이후로 아주 오랫동안 세계의 틈새에서 살아왔던 하드라스가 그리 말하니 경계심을 늦추고 집중해도 되리라.

[신께서 바라시는 대로…….]

베르덴은 또다시 명상하기 위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이미 악마처럼 틈새의 그늘을 임의로 다루고 있었다.

베르덴의 모습과 기척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자리를 지킨 하드라스가 이내 반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며 입을 달싹였다.

[크란벨…….]

[예, 하드라스 님.]

짐승의 머리뼈를 뒤집어쓰고, 팔이 네 개 달린 고위 악마가 등장했다.

[머지않아 배신자가 군세를 이끌고…… 이곳으로 쳐들어올 거다…….]

[예?]

크란벨이 주춤했다.

[배신자가 온다니…… 설령 그자라고 해도 틈새의 그늘엔 발을 디딜 수 없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계속 그래 왔습니다.]

[그럴 수 없던 게 아니라…… 그럴 필요가 없어서 그러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밟고, 밟아도…… 다시 살아나는 잡초이고…… 하물며…… 배신자는 현실을 지켜보는 걸…… 우선했으니…….]

하드라스가 눈을 감았다.

[서둘러 배신자의 영역을 떠난 덕분에…… 시간은 벌었지만…… 결국 올 것이다…… 우리를 이해해 주신 단 하나뿐인 신을…… 멸살하기 위해서…… 운명의 수레바퀴의 파괴는…… 저들의 역린을 깨부순 것과 같으니…… 배신자는…… 포기하지 않을 테지…….]

크란벨이 경직된 채 바닥을 내려다봤다.

[우리의 신께서는…… 아직 배신자를 상대할 때가 아니다…… 아직 더 높이 올라가셔야 한다……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다…… 그러니…… 크란벨…… 그때가 오면 네가…… 우리의 신을 모셔라…….]

[…….]

[우리의 신께선…… 본체와…… 연결돼 있어…… 우리와는 다르게…… 손쉽게 세상의 틈새를 벗어날 수 있으실 테니…… 내가 이르는 대로…… 길을 안내해 드려라…… 신께서 염려하지 않으시도록…… 상황을 은폐한 채…….]

크란벨의 짐승 두개골 안쪽에서 작은 메아리가 울려 퍼졌다.

[하드라스 님은 어찌하실 겁니까.]

[배신자가 이 그늘을 침범하는 순간…… 거침없이 전진하려 들 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께서 무사히 틈새를 벗어나실…… 약간의 시간…….]

하드라스가 확 눈꺼풀을 열며 잔악무도한 안광을 번뜩였다. 저항을 내다 버린 인간계 최초의 왕을 향한 대악마 군단장의 살기가 뿜어졌다.

[배신자는, 내가 막겠다.]

* * *

27보

* * *

자신의 내면세계에서 깊이 명상에 빠진 베르덴 옆을 알파가 철저하게 지켰다. 적막한 세상과 하나가 되다시피 하니 마치 석상과 같았다.

사박, 사박.

히안테는 숲에서 나와 마력의 바다가 물결치는 백사장을 홀로 걸었다.

“뒤늦게 신성력을 자각함으로써 진정한 신이 되었으나, 신의 경지를 높이는 것엔 본인의 수양만이 아니라 신앙자의 역할도 지대합니다. 하물며 이제 막 탄생한 신앙이기에 더욱.”

신이란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
선택의 기로에 섰다.

“첫 번째 신앙자는 ‘시련’을 통해 자신이 이러한 신앙을 품게 된 이유를 상실하지 않았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실패하면 다음 신앙자에게 시련의 기회가 주어지지만, 그만큼 신격의 상승이 늦춰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죠. 과연 당신의 신앙자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요.”

그녀의 발등이 하얀 모래에 파묻혔다.

“별개로, 마침내 신으로 등극했기에, 신의 일부가 깃들어 있는 존재는 지금을 웃도는 새로운 가능성에 닿게 됩니다. 새로운 신의 ‘사도’로서.”

나지막한 목소리.

“비로소 혼자가 아닌 함께라는, 그 의미.”

히안테가 광활한 바다를 바라봤다.

“베르덴, 당신은 어떤 ‘가능성’으로 나아갈까요.”

* * *

23보.

* * *

휘몰아치는 눈보라.

푸른 산맥의 생지(生地)와 사지(生地)의 경계선에 자리한 오두막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호오, 호.”
“호오오.”

레나르와 페이가 난로로 데운 뜨거운 코코아에 입김을 불었다. 본래 호세 혼자 지내 왔던 오두막이라 답답할 수도 있었지만, 어린 남매는 되레 폭신폭신한 듯한 안정감을 느꼈다.
의자에 앉아 신난 듯 양다리를 교차하고 있는 게 증거였다.

테르네티아 연방 소속 바나흐 백작의 여식, 하에넬은 온기가 가득한 찻잔을 들고 호세가 제작한 조각상들을 구경했다.
오두막의 자그마한 선반 위를 장식한 그 작품을 말이다.

‘아름다워.’

잿빛 머리의 신을 본뜬 조각상.
신을 에워싼 작은 조각상들.
선반의 벽을 기반으로 조각된 천지가 개벽하는 배경.

마치 신화의 한 장면 같다.

‘에온의 베르덴.’

페이와 하에넬을 피울음 역병으로부터 구원해 준 초월자이자 호세가 모시는 새로운 신…… 뭔가 마음이 벅차오른다.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기분이다.

‘……아.’

하에넬은 저도 모르게 팔을 뻗다가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
불경하다고 느낀 것이다.

“하에넬 언니.”
“어? 왜 그러니, 페이?”
“밖이 추운데, 아저씨는 괜찮을까요?”

덜컹덜컹.

창문이 흔들린다.

푸른 산맥의 악명 높은 추위가 오두막 바깥에 만연하다. 가시거리가 무척 짧다.
이런 날씨인데도 호세는, 도시 브라델에서 구한 새로운 작업 도구를 들고 거침없이 혼자 푸른 산맥을 올랐다.

마음을 따라간다면서…….

물론 밖에서 계속 머무르는 게 아니라 오두막을 주기적으로 오간다고 하니, 아마 몇 시간 뒤면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호세 님은 괜찮을 거야. 호세 님이니까.”
“그렇죠? 아저씨니까!”
“아저씨니까 당연하지!”

레나르와 페이는 호세의 안전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하에넬 또한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창밖으로 낯선 풍경을 응시했다.
그칠 줄 모르고 쏟아지는 눈보라. 창문에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

‘그나저나 보온에 과하게 신경 썼나.’

하에넬은 문득 목 안쪽을 어루만졌다. 평소보다 몸에 열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조금 덥네.’

* * *

에온의 비행정이 이데라트 연맹국의 선착장에 착륙한다. 아래에는 연맹국의 고위직이 양손을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할뿐더러 몇몇은 안절부절못한 모습까지 보였다.

‘다급해 보이네.’

분노한 루아스 교국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으니, 이데라트 연맹국으로서는 자국을 어떻게든 변호해야 한다.
실패하면 인류의 빛에 외면받을 테니까.

난관을 극복하려면 강대한 세력들의 조력은 필요 불가결하다.
저들에게 있어서 이자벨라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연맹국을 두둔할 아군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중요한 인물이었다.

멜라드가 말했다.

“상황이 생각보다 좋지 않은 듯합니다. 연맹국과 교국 사이에 껴서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너무 겁주지 마세요…….”
“호호, 저도 긴장이 많이 됩니다.”

그녀는 하레스를 옆에 두고 갑판에 섰다.

“그래도 혼자 부담에 짓눌리지 마십시오.”

후웅.

비행정이 정박했다.

“이번 외교의 책임은 저희가 다 함께 짊어지는 것이니까요.”

멜라드는 어른스럽게 이자벨라를 격려하고는 계단을 내려갔다. 이어 에온의 마법사들이 절도 있게 비행정에서 하선했다.

“후우.”

잠시 심호흡한 이자벨라가 마지막으로 갑판에서 발을 뗐다.
외교의 무대에 올라갈 시간이었다.

그때였다.

피잉───

이자벨라의 왼쪽 눈동자에서 미약한 파문이 일며 시야가 흔들렸다. 갑작스럽고, 그야말로 갑작스러워서 반응조차 못 했다.
다만 고통은 일절 없었다.

찰나의 시간.
조용히 집중되는 마력.

이윽고 변형된 역천의 마법진이 새겨진 금색의 눈, 형안(炯眼)이 개안됐다. 동시에 분산되어 보이던 사물들이 또렷이 초점을 되찾았다.

‘뭐야, 갑자기 왜…….’

이자벨라는 애써 당혹감을 감추려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연맹국의 선착장에 있는 모든 이가 눈에 들어왔다.

형안이 본질을 시각화한다.

생명체의 몸 안쪽에서 아른거리던 새하얀 뭔가가 구체적인 형체를 갖추고 있다. 육신 너머에 존재하는 비물질적인 실체.

아케나드 마도국 왕성에서 데이로스 가문 선조의 수기를 읽고──그녀를 마족으로 만든 끝없는 부정의 부산물의 능력에 집중해 지각했었던 영혼이 명확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사슬에 구속당한 영혼.
자유로운 영혼.

영혼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