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62

962화 신격 – 6

들켰다.

한 걸음을 내딛는 동안 많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엇갈렸다. 배신자는 오지 않았다고 부정해야 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신께서는 이미 확신하셨다.’

어떻게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크란벨이 뭐라고 하든 간에 감히 신을 속일 수는 없으리라.
등 뒤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그의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다.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단코 우리의 신을 사지(死地)로 보낼 수는 없다.

[이 앞으로 조금 더 가면 세계의 틈새를 벗어나실 수 있습니다.]

크란벨이 제자리에 섰다.

[부디 뒤돌아보지 마십시오.]

“…….”

[우리의 신께서 무사하셔야만 틈새의 악마 또한 안전해집니다.]

베르덴이 말했다.

“너희를 방패로 삼아서 도망가라는 거냐.”

[훗날을 기약할 뿐입니다.]

크란벨이 천천히 등을 돌렸다.

[틈새의 모든 악마가 나서도 어찌할 수 없을 만큼 배신자는 막강합니다. 우리의 신께서는 나아가야 할 길이 아직도 많습니다. 그렇기에 배신자가 다급하게 신을 멸하려는 것입니다. 신께서 완성되면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상체와 머리를 숙이고 네 개의 팔을 한데 모으며 간절히 부탁했다.

[우리의 신을 위한 저항은 누구도 강요하지 않은 저희의 선택입니다.]

“크란벨.”

[신이시여, 부디 현재를 위해 미래를 거는 위험을 감수하지 마시옵소서. 신께서 포기하지 않으시는 한 시간은 우리 편입니다. 그것이야말로 악마들을 위한 온정입니다.]

크란벨은 조심스럽게 베르덴의 손을 감쌌다.

[지금은 물러날 때입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 생각해 주십시오.]

* * *

까앙───! 까앙───!

푸른 산맥의 정상에 가까운 절벽 부근에서 강한 쇳소리가 들려왔다.
성난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지만, 바위를 깎는 소리와 진동은 전혀 묻히지 않고 눈 덮인 일대에 울려 퍼졌다.

“하아아…….”

동굴 안쪽에서 입김이 피어올랐다.

베르덴이 하사한 마법 로브를 두른 호세는 작게 어깨를 들썩이며 숨을 골랐다. 새로 구한 작업 도구도 어느새 상당히 닳았다.
호세의 육신이 고된 작업을 잘 견뎌 주고 있는 건 푸른 신성력 덕분이었다.

‘거의, 완성했다.’

호세는 천지가 개벽하며 눈사태가 쏟아진 그날, 베르덴이 초월의 경지에 도달한 설산 동굴을 신전의 기반으로 삼았다.

깊은 공동으로 들어가 단단하게 얼어붙은 벽을 깎고, 또 깎았다.

망치와 정이 부딪치는 소리에 빠져들면서 끼니를 제때 챙기지도 못했다. 아예 굶어서 쓰러질 뻔하기도 했다. 열흘이 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에넬이 준비한 최고급 육포를 품속에 넣어 두지 않았다면, 페이와 레나르가 물을 챙겨 주지 않았다면 솔직히 위험했다.

그 정도로 조각(彫刻)에 몰두했다.

호세의 손은 거칠어지다 못해 피부가 벗겨졌다. 굳은살마저 떨어진 손아귀로 조각끌을 붙잡고 연신 망치로 내리쳤다.
두 손과 조각 도구, 그리고 신앙심으로 자그마한 신전을 조형했다.

고통스럽지 않다.
고행이라고 표현하지도 않겠다.

참상과 비극이 가득한 세상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고열에 시달리다 제 곁을 떠난 자식의 아픔보다 더하랴, 악마 숭배자로 지탄받으며 처형당한 아내의 아픔보다 더하랴.

알량한 자부심을 느끼지 마라.
신의 위세를 빌렸다고 해서 자기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여기지 마라.
왜 신앙을 가졌는지 명심해라.

누군가를 위한다는 건 그런 게 아니다.
누군가를 위한다는 건…….

“아…….”

문득 흐릿하던 기억이 선명히 되살아났다.

아들의 열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악마와 거래했던 아내는, 루아스 교국의 이단 심문관에게 잡혀 도시의 광장에서 무릎 꿇었다.

보란 듯이 양손이 잘렸고.
목에 신성한 칼날이 드리웠다.

죽음을 앞에 둔 아내의 얼굴을 덮고 있던 안개가 걷혔다……. 격통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표정은 조금도 일그러지지 않았다.
아내는 군중 속 호세를 찾아 똑바로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우리 아들, 잘 부탁해요.

후회하지 않는다는 듯.
시간을 되감아도 몇 번이고 같은 선택을 내릴 거라는 듯.

마지막 미소를 지은 아내의 머리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호세가 본 건 병을 이겨 내지 못한 자식의 시신이었다.

결국 가족을 지켜 내지 못한, 아내의 부탁조차도 들어주지 못한 한심하기 짝이 없는 가장. 호세는 그런 사내였다.

너무도 고통스러워 외면했던 기억 속에서 아내는 사랑을 남겼다. 누군가를 위하는 게 무엇인지 지금의 호세에게 알려 주었다.

“……나의 신이시여, 떠나간 제 아내와 아들을 죽음 너머에서도 굽어살펴 주시길.”

설산 동굴의 거대한 돌기둥으로 건축한 신전을 향해 언제나의 기도를 올렸다.

‘느껴진다. 이 과업이 끝나는 순간 신께 크나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너무 늦지만 않으면 모든 것이 순조롭게 흘러갈 테지.’

위와 아래를 오가며 석주(石柱)를 조각해 계단을 만들고, 기둥을 구성하고, 벽화를 새겨 넣고…… 이제 마지막으로 신의 조각상의 얼굴만 깎아 내면 신께서 강림하실 신전이 완성된다.

오두막으로 가서 레나르, 페이, 하에넬을 데리고 올 생각이다. 함께 마무리를 장식할 것이다.
험하디험한 푸른 산맥까지 따라온 이들을 위한, 신전을 조각할 때까지 기다려 준 예비 성직자들을 위한 보답으로.

‘다시 동굴에 들어온 지도 벌써 나흘이나 지났구나. 어서 내려가자.’

휘이이이이잉───

설산 동굴을 벗어난 호세가 성큼성큼 눈보라를 뚫었다.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쌌다.

어둠 속에서 불빛을 내는 오두막.

로브에 쌓인 새햐안 눈을 확 털어 낸 호세가 문을 열었다. 언제나처럼 웃으며. 바닥에 쓰러진 하에넬을 발견하기 전까지.

“……?! 하에넬 아가씨.”

호세가 급히 그녀를 받쳐 안고 상태를 살폈다.

‘숨은 쉬고 있다. 그런데 이 체온은 대체…… 며칠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이어 침대에서 앓고 있는 레나르와 페이가 눈에 들어왔다. 하에넬과 같은 증상이다. 피울음 역병과 비슷한 전염병일지도 모른다.

순간 호세의 숨이 턱 막혔다.

어깨가 크게 떨렸다.

“흡, 허억, 헉.”

열병으로 숨을 거둔 아들의 모습이 이들과 겹쳐 보였다. 주춤거리다가 넘어진 호세가 황급히 푸른빛 신성력을 일으켰다.
증세가 더 심해지지는 않는 듯했으나, 피울음 역병과 다르게 호전되는 기색이 없었다.

“시, 신이시여…… 왜, 왜 낫지가 않는…….”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죽은 아들이 계속해서 눈앞에 아른거린다. 이미 신전을 짓는 데 힘을 쏟은 탓에 신성력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

이대로 가다가는…….

제 손으로 아들을 묻었던 순간이 호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안 돼.’

그렇다면 선택해야 한다.

이들을 데리고 최대한 빨리 푸른 산맥을 내려가서 도움받는 것을…… 남아 있는 신성력을 쥐어짜 내면 아슬아슬하게 가능할 터였다.
게다가 푸른 산맥의 찬기를 막아 줄 보온 장비도 있고 말이다.

그런데.

이대로 푸른 산맥을 떠나면 신전을 짓지 못하게 된다. 때를 놓쳐 버린다. 지금 신전을 지어야 한다고 신앙심이 재촉하고 있는데.

현실을 우선하느냐.
신앙에 의존하느냐.

호세는 이내 확신에 찬 얼굴로 웃었다.

‘그래, 신전부터 먼저 다 지으면 신성력이 더욱더 강해져서 병을 치료할 수 있겠지. 나의 신께서는 분명 보답해 주실 테니까.’

타오르는 난롯불.

‘애초에 산맥을 내려가 봤자 치료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신뿐이다. 오직 신만이…….’

광신적인 믿음이 번들거렸다.

“…….”

호세는 잠시 뚫어져라 레나르, 페이, 하에넬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천장을 응시했다.

“제가 신앙을 갖게 된 이유는 지키고 싶은 이들을 지키는 것. 신앙과 신념. 이 둘 중 무엇이 우선인지는 잊지 않았나이다.”

목적이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또한.

한때 호세는 루아스 여신에게 기도하며 가족의 안녕을 기도했다.
아들의 호전을 바랐다.
스스로 무력하다는 이유로 신께 매달리기만 했던 그는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반면에 지금은 어떤가.

그에겐 신성력이 있다. 뭐라도 할 수 있다. 가령 세 명을 데리고, 전 대륙에서 두 번째로 높은 산맥을 내려갈 수 있다든가 말이다.
이미 신께서 힘을 주셨는데, 어찌 또다시 신께 의지하기만 하겠는가.

자아마저 신께 의탁하지 마라.
직접 선택해라.
과거를 되풀이하지 마라.

화악.

즉시 하에넬, 레나르, 페이를 보안 장비와 두꺼운 이불로 감쌌다.
오래전에 제작해 두었던, 장작을 쌓기 위한 나무 상자를 가져와 세 명을 실은 다음에 튼튼한 밧줄로 고정했다.

“신전은 다음에 와서 마저 짓겠습니다. 모두와 함께. 부디 용서하소서.”

호세는 모두를 태운 상자를 썰매처럼 끌며 당장 산맥을 내려갔다. 신성력으로 자기 육체를 강화함과 동시에 이들의 병세가 아주 조금도 악화하지 않도록 보호했다.
그가 최대한 빠른 속도로 푸른 산맥의 경사면을 이동했다.

광신자가 아닌 순수한 신앙자.

호세의 마음은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 * *

“물러나야 할 때는 물러나야겠지.”

신을 설득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크란벨이 턱을 들었다. 하나 그 앞엔 망설임 따위 없는 올곧은 벽안만이 자리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니다.”

[부디 재고를…….]

“신으로서 너희를 보살피겠다고 했다. 그런데 저 배신자가 두려워, 훗날을 기약하겠다는 말만 남기고 도망치다니. 그런 신을 믿고 싶나? 내가 신앙자라면 창피해서 고개도 못 들 것 같은데.”

베르덴은 가볍게 웃으며 크란벨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그가 단언했다.

“너희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겠다.”

크란벨은 차마 더 말릴 수가 없었다.

“안내해라, 배신자에게.”

신의 뜻대로.

* * *

우주의 암흑으로 이루어진 하드라스의 전신이 아서와 격돌했다. 공간이 진동했다. 틈새의 그늘의 일부가 유리처럼 깨졌다.
이어 고위 악마조차 눈으로 좇을 수 없는 속도의 공방전이 벌어졌다.

하드라스는 과거 어둠의 대악마로부터 부여받은 암흑을 다루지만, 본디 그는 오직 강인한 육체만을 자랑하는 최고위 악마.
뒤를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무자비한 육탄전은 하드라스의 특기다.

‘틈을 내주면 끝이다.’

하드라스가 즉각 내지른 손아귀가 아서의 망토를 스쳤다. 지근거리에서 날아온 검격을 회피하고 놈의 손목을 붙잡았다.
텅 비어 버린 갑옷의 옆면을 어둠을 집중시켜서 그 안쪽을 헤집었다.

“무의미한 저항이도다.”

불식간에 쇄도한 아서의 건틀릿이 하드라스의 명치를 강타했다. 나가떨어지면서도 양다리만으로 제동을 건 순간 그보다도 빠른 속도로 아서가 들이닥쳤다.

제광齊匡

거대한 붉은 검기가 수직, 수평, 사선을 단절.

고위 악마는 겨우 팔이 절단되는 선에서 여파를 견뎌 냈지만, 주변 수백 마리의 악마는 감히 살아남지 못하고 사체가 되었다.
직격당한 것도 아닌데도 버틸 수 있는 악마가 거의 없었다.

새까만 피가 솟구쳤다.

쩍!

목이 통째로 뜯겨 나갈 것 같은 충격에 머리가 젖혀졌다. 하드라스의 반격을, 아서가 즉각적으로 다시 반격한다.
검은 연기로 변하려고 해도 소용없다. 그때마다 아서의 기가 대악마의 힘을 방해했다.

기(氣)는 인류의 힘.
인간계 최초의 왕은 처음으로 기를 깨우친, 무투계의 시초다.

콰드드드드드득.

바닥에 짓눌린 하드라스의 목에 거대한 칼날이 드리웠다.
그를 붙잡은 양손이 점차 갈라졌다.

“마지막 기회이니라. 운명 파괴자는 어디에 있느냐.”

[크크크큭…….]

하드라스가 조소를 흘렸다.

[과거의 네놈이라면……이미 날 죽이고도 남았을 텐데.]

“…….”

[약해졌구나…… 아서.]

운명 파괴자를 처음으로 조우했을 때 세계수가 제정한 금기를 어긴 적이 있다.
엘프 종족을 해하지 않는다.
이는 운명전에서 패배하고 만 세계수가 관조하는 존재가 되는 대가, 말인즉슨 ‘당신’과 맺은 약속에서 비롯된 금기였다.

운명 파괴자는 엘프가 아닌데도 엄연히 엘프로 취급받았다.
금기가 그렇게 판단했다.

아서는 전혀 알지 못했으나, 무지하다고 해서 금기를 피할 수는 없으니. 운명 파괴자를 공격한 그는 처벌받아야만 했다.

───관조하는 존재로서 금기 위반자에 대한 처벌을 집행하겠습니다. 그대가 가진 ‘당신’의 권능 중 절반을 회수하고. 추가로 금언을 강제합니다.

아서의 기운이 가라앉았다.
검에 무게가 실렸다.

“그늘을 정리하는 데는 문제없도다.”

[그러나…… 시간이 걸리겠지.]

암흑의 왕관이 번쩍였다.

콰아아아아아아!

하드라스의 양손에서 터져 나온 어둠의 광선이 시야를 물들였다. 강한 척력에 밀려난 아서가 다리에 힘을 주며 거검을 올려 쳤다.

어둠이 갈라졌다.

머리 위로 든 거대한 검을 양손으로 쥔 아서의 기가 폭증했다. 붉은빛에 휩싸인 그의 존재감이 모든 악마를 압도했다.

기예의 극, 절기.

어둠이 운명 파괴자의 기척을 가린다. 이 공간이 방해된다면 무너뜨리면 그만. 세계의 틈새에 갈 영향은 개의치 않는다.
이에 맞서 하드라스가 대악마의 권능을 최대로 끌어올렸다.

왕의 검이 움직인다.

“……!”

쩌어어어엉!

검면을 후려친 불의의 충격에 절기가 도중에 끊겼다. 마법이었다. 그것도 영창 마법. 아서가 휙 고개를 돌렸다.
아서를 따르는 귀족들도 똑같은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전쟁터 가장자리에서 하위 악마들을 참살하던 12귀족의 하위 귀족 한 명이, 마법에 복부가 관통당하고 목까지 붙들린 채 질질 끌려왔다.

[시, 신이시여.]

하드라스가 주먹을 말아 쥐며 낮게 말했다.

[크란벨…… 뭐 하는 건가……!!]

“내가 오겠다고 했으니, 뭐라고 하지 마라.”

[하지만…….]

“대화는 나중이다.”

베르덴이 주변에 가득한 악마들의 파편을 보고는 눈가를 씰룩였다. 감정이 술렁였다. 신앙자의 죽음은 이제 막 신이 된 베르덴에게 예상보다 많은 충격을 안겨 주었다.

‘이런 기분은…… 오랜만이군.’

복수심.
베르덴의 근원.

아서가 말했다.

“운명 파괴자.”
“그 입.”

베르덴은 손에 쥐고 있던 하위 귀족의 목을 단번에 꺾어 버렸다.

“닥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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