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67

967화 신격 – 11

[아아……!]

하드라스가 운명전에서 대악마의 다섯 군단 중 하나를 이끌었던 군단장으로서 예를 갖췄다.
깨끗한 잿빛의 비늘과 4대 고룡의 거룡보다 더 거대한 형상, 저항자의 편에 서서 ‘당신’의 진영을 압도한 그 자태는 잊을 수 없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모든 용의 시초시여.]

패잔병의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할 잿빛의 용의 등장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운명전을 경험한 적 없는 틈새의 악마들은 입을 벌리며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드래곤을 올려다보았다.

베르덴은 압력에 으깨지다시피 한 목을 감싸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영혼의 겉 부분을 수복했다. 그리고 잿빛의 용을 통찰했다.

‘본체가 아니다.’

존재감이 비교적 약하다. ‘당신’의 표층의지를 넘는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감옥에서처럼 상처투성이가 아니었다.
두 다리로, 또 날개로 베르덴을 넓게 감싸면서 최초의 왕을 내려다보는 드래곤은 특정한 존재라고 하기보다는 힘의 집합체 같았다.

───[올다르크가 드래곤의 소재로 제작한 그 로브에 부족한 부분이 꽤 보이더군. 아마 실패작이겠지. 내가 선물을 넣었으니, 훗날 네가 최소한의 자격을 갖추면 자연스럽게 손에 넣게 될 거다. 그러니 해야 할 일에 집중해라.]

초대 마도왕이 드래곤의 힘을 재현하기 위해서 직접 제작했으나 실패작으로 남은 진화형 아티팩트 [아인베르].
그 안에 잿빛의 용이 뭔가 수를 썼다.

유력한 단서는 그것뿐이다.

‘이게 그 선물이라는 건가?’

‘[반쯤 정답이다.]’

가속하는 사고의 흐름 속에서 태초의 드래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난 본체에서 비롯된 사념체. 본체가 네 로브에 부여한 일시적인 힘의 부산물이지. 이르자면 일종의 안내자인 셈이다.]’

‘힘?’

‘[네 경지가 최소 조건을 충족하면서 내가 부여한 힘을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 실패작의 부족한 부분은 채워졌다.]’

잿빛의 용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로브는 완성됐다.]’

베르덴의 몸 주변으로 잿빛의 안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아서가 곧 반응했으나, 그는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태초의 드래곤…….”

세상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는 존재,
인류의 황금기를 몰락시킨 재앙.

아서의 통합 국가를 멸했던 잿빛 숨결이 눈앞을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운명 파괴자와 무슨 관계인가. 어떻게 패잔병의 감옥에서 무엇도 하지 못해야 했을 자네가……! 어떻게 외부로 힘을 반출할 수 있었단 말인가!”

잿빛의 용이 콧잔등을 씰룩였다. 과거의 흔적이 그에게 전해졌다.

[배신의 대가를 치른 것이 견디기 어려워 기억을 봉인한 자답게 현실을 깨닫는 게 느리군.]

베르덴의 체구보다 수십 배나 거대한 드래곤의 발톱이, 베르덴의 선명한 회색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쓸었다.

[잿빛. 홀로 운명을 무너뜨려 나의 개념을 쟁취한 자가 여기에 있다. 본질을 공유하는 ‘자식’과도 같은 존재에게 힘을 부여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지.]

“자식, 이라고?”

[비유적인 표현이다. 그렇다고 의미가 달라지진 않지만 말이다.]

무거운 비웃음 소리가 그늘 속에서 메아리쳤다.

[베르덴을 죽이려면 애초에 세계의 틈새로 오면 안 됐다, 광신자여.]

세계는 탄생하면서 잔재를 남겼으며, 그 ‘회색’의 잔재에 남은 불씨에서 부활과 동시에 진화를 영원히 반복하는 불멸의 존재가 태어났다.
역천의 마법진을 실행한 베르덴은 의도치 않게 그 개념을 일부 품게 되었다. 말인즉슨 멸하지 않는 특성 또한 일부 이어진 것이다.

‘그 뜻은.’

베르덴의 뇌리가 번뜩였다.

패잔병의 감옥에서 잿빛의 용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잿빛의 개념을 일부 품은 채 초월을 선택한 순간 네 의식은 완성됐다. 정말로 극소수의 방법이 아니면 그 의식은 해할 수 없지. 그런데 의식을 격리해서 소환체에 뭘 어째? 그런 거짓된 소환 마법은 꿈도 꾸지 마라.]

테오도르의 의식 분리를 이용한 소환 마법을 시도했을 때, 베르덴은 남다른 집중력에도 불구하고 끝내 의식이 격리되지 않았다.
어째서였나.
잿빛의 용은 의식이 완성되었기에 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해 주었다.

의식이란 곧 정신.
정신이란 곧 영혼.

베르덴의 영혼은 영멸하지 않는다.

“자네가 보호한 것이 아니라…… 영혼이 멸하지 않는 것 자체가 운명 파괴자의 힘이었다?”

직전 간파한 사실보다 더 잔혹한 진실에 아서의 검끝이 흔들렸다.
이내 그가 부정했다.

“그럴 리가 없도다! 자네가 아니고서야 ‘당신’의 힘이 깃든 이 검을, 나 사도를! 고작 저 미숙한 존재가 버텨 내는 건 불가능할 터!”

[네놈이니까, 그 검이 있으니까 베르덴의 영혼에 상처라도 입힐 수 있던 것이다. 만나자마자 베르덴을 봉인했다면 몰랐지만, 이미 늦었지.]

잿빛의 용이 단언했다.

[지금의 베르덴은 봉인할 수 없다. ‘당신’이 직접 오지 않는 한.]

아서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회색의 용안이 담은 눈매가 호선을 그렸다.

[시련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보다 뛰어난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것, 이게 방주의 이념이었나. 방주의 창설자로서 아주 기쁘겠군. 방주에 소속된 베르덴이 너라는 시련을 통해 한층 더 위대한 존재로 거듭나게 되었으니.]

“…….”

[후대의 번영이다. 선대로서 조금은 자부심을 품고 웃는 게 어떤가.]

베르덴을 시련으로 규정한 아서의 입장이 반대가 되었다.
역으로 아서가 시련이 되었다.

‘이용당했다. 내가.’

운명 파괴자는 현실에서 죽여야 했다. 정확히는 현실의 몸을 없애야 했다. 그것만이 운명 파괴자를 멸할 방법이었다.

아서의 짙은 살의가 외부로 향했다.

히안테.

과거, 현재, 미래를 관측하는 개념적인 존재…… 사실상 운명전을 초래한 원인이나 다름없는 그것이 지금의 가능성을 엿보았을 것이다.

‘하나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운명 파괴자는 여전히 눈앞에 있다. 잿빛의 용은 힘의 잔재에 불과하다. 하드라스를 제외한 악마들은 있으나 마나 한 것들이다.

돌이킬 수 있다.

콱.

아서가 운검을 불러들여서 평소보다 느슨하게 잡았다. 넝마가 펄럭인다. 옆으로 당겨진 운명의 검에 빛이 얽혔다.

“나의 믿음을 증명하리라.”

[광신(狂信)의 악취가 진동하는군.]

틈새의 그늘을 절단하는 거대한 하늘빛의 검기가 수평선을 그렸다.

파앗───!

운명의 빛은 베르덴뿐만이 아니라 악마들까지 노렸다. 광범위한 일격에 베르덴이 피해를 무릅쓰고 앞장선 그때였다.

‘[오른쪽 다리는 뒤로 보내고, 허리를 틀며 왼쪽 어깨는 정면을 향해 내밀어라.]’

‘……!’

잿빛의 용의 속삭임에 베르덴은 반사적으로 그가 말한 대로 행동을 취했다. 그의 몸 주변에 아른거리던 회색의 빛이 은은히 명멸했다.

[인테리스]가 그러했듯이 초대 마도왕의 로브가 세계의 틈새에 현현했다.

‘이건…….’

백색의 로브에서 각성해 칠흑의 로브로, 그리고 8위계에 오름과 동시에 신격을 얻으며 로브의 형태가 변화했다.
심지어 다히트 웨스로엘이 망화의 마도만을 위해 제작한 칠흑의 장갑, 인공 아티팩트 [명시의 환란]이 로브에 융합되었다.

전반적으로 로브의 내부는 칠흑에 가까운 어두운 회색의 것으로, 이를 에워싸는 로브의 외부는 선명한 회색의 것으로 변형되었고.
회색 각반과 건틀릿, 그리고 왼쪽 어깨를 감싸는 부분적인 회색 견갑, 마지막으로 [아인베르]의 외부를 장식하는 회색의 금속물이 새롭게 생겨났다.

에온의 로브───신기(神器), [아인베르].

초대 마도왕의 실패작은 베르덴의 경지와 함께 진화하고, 잿빛의 용이 부여한 힘이 깨어나면서 신의 무구로 완성되었다.
이제 그것은 초대 마도왕의 로브가 아닌, 온전한 베르덴의 로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하늘빛의 검기와 충돌한 순간 무지막지한 압력이 느껴졌지만, 그 충격파는 베르덴의 진영을 침범하지 못했다.
정면을 가리킨 [아인베르]의 견갑을 중심으로 한 잿빛의 장막이 일대를 보호했다.

장막의 표면은 거칠었다.
마치 비늘처럼.

[드래곤의 비늘은 순수한 생체 조직 중에서 가장 저항력이 뛰어나지.]

베르덴이 드래곤의 능력을 재현했다.

* * *

예상할 수 없는 변화 속에서 베르덴은 현 상황을 이해했다.
자신에 대해서도.

‘나의 영혼이 부서질 듯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견뎌 낸 것은 역천의 영향이었군. 육체를 재구성하며 잿빛의 개념을 품었기에…….’

잿빛의 용은 개념의 주인이니 베르덴의 영혼이 어떤지는 처음부터 간파했을 터. 그렇다면 또 누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잿빛의 용과 베르덴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말을 주고받았는지는 볼 수 없었어요. 그가 갇힌 감옥은 제 인식 밖에 있거든요. 그런데도 잿빛의 용과 베르덴의 만남을 짐작한 건 [아인베르] 덕분이죠.

히안테는 로브에 부여된 잿빛의 용의 존재감을 인지했다. 그녀는 시간으로서 베르덴의 내면세계에도 존재할 수 있다.
베르덴의 영혼이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내면세계에서 명상을 시작하자 세계의 틈새에서 눈을 떴다. 신앙으로 악마에게 이끌린 것도 있겠지만, 결국 히안테의 의도였나.’

‘[악의는 없다.]’

잿빛의 용이 머릿속에서 속삭였다.

‘[그것이 히안테의 문제지. 애초에 시간은 그런 것이니.]’

히안테는 베르덴의 편이라고 했지만 아직 그녀는 미지의 존재다. 그래서 여태까지처럼 가까운 곳에 둘 생각이었다.
언젠간 히안테의 진심이 무엇인지 알게 될 날이 올 테니까…… 무엇보다도 히안테가 깃든 아이샤는 베르덴이 보살피는 아이다.

어쨌든.

‘지금은 두 번째 사도가 급선무다.’

아서가 난폭하게 이동하며 어둠을 앞발로 크게 내리찍었다. 놈이 인지 불가능한 속도로 움직이기 전에 베르덴이 대응했다.
머리가 잠깐 아찔했지만 중심이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신기가 된 이상 드래곤의 능력을 발현하는 데는 막대한 신성력이 소모된다. 이제 갓 신이 된 너에게는 상당한 부담이지. 남용하면 후회할 거다.]

‘신격이라도 잃게 되나?’

‘[정신을 잃고 사도에게 붙잡히겠지. 본체하고 나란히 갇히고 싶으면 그리하도록.]

베르덴은 전신이 사슬에 꿰뚫려 영겁의 시간을 보내는 상상을 했다. 그 결말은 단언컨대 보헤미른 마탑의 비공식 실험체로 평생을 살아가는 것보다 끔찍하리라.

베르덴이 미끄러지듯 회전을 거듭하며 어두운 잿빛의 마력을 휘감았다.

쩌어어어엉───!

[카엘타리온]과 [인테리스]의 울림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잿빛 성운에서 수십 개의 빛의 기둥이 계속 추락해 상대의 검로를 사전에 막아 냈다.
주변 일대를 지배하다시피 하는 베르덴이 최대 전력으로 전투에 임했다.

───! ─! ──! ───!

틈새의 그늘이 격동할 때마다 베르덴이 익숙해질 수 없는 고통을 느꼈지만, 새로운 [아인베르]가 그의 정신을 받쳐 주었다.

게다가.

‘두 번째 사도의 힘이 약해졌다.’

사실상 베르덴을 몇 번이나 죽인 전력이 서서히 떨어진다. 하드라스가 언급했던 대로 두 번째 사도의 힘이 마침내 한계에 달한 것이다.

운검이 벽안에 드리웠다.

[흠……!]

하드라스가 [라티르]를 찌르고, 휘둘러 베르덴을 보조했다. 신기의 공능을 받고 나서야 그는 가까스로 운검에 닿을 수 있었다.
각자의 신기가 몇 번이나 교차했다. 아서의 힘은 분명 약해지고 있었지만, 그 기술의 완성도는 조금도 빛바래지 않았다.

꽈드드드득!

하드라스와 베르덴을 검압으로 짓누른 아서가 안광을 번뜩였다.

“여기서 죽일 수 없다면, 그 외의 모든 것을 지워 없애 주겠노라.”

<운명 회귀>

“이단자들을 몰살하라.”

아서가 거두어들인 인류의 군세가 악마들을 향해 진군했다. 악마들은 오히려 전의를 내비치며 함성을 내질렀다.

정신적인 형체에 불과하기에 현실에 직접적으로 거의 간섭할 수 없는 잿빛의 용이 큰 날개를 펼치며 악마를 응원했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권능을 발현한 대가로 아서의 한정된 힘이 제법 큰 폭으로 감소했다.

<신성 아케인>으로 운검을 힘껏 밀쳐 낸 베르덴이 의념을 전달했다. 사도가 알아채지 못하도록 마력이 아닌 고유 신성력을 통해서 말이다.

───여기서 두 번째 사도를 죽일 수는 없다.

하드라스가 [라티르]로 의사를 전달했다.

───[이대로 시간을 끌면…… 놈을 그늘 밖으로 추방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께서…… 유일한 활로를 여신 겁니다.]

───아니, 그걸로는 부족하다.

베르덴은 자신이 생각한 승리가 무엇인지 계획을 공유했다. 겉으로 평정을 유지하며, 하드라스가 내심 경악했다.

───[진심…… 이십니까?]

───그래.

베르덴이 단언했다.

───신기를 해방해 세계를 분리하겠다.

세계의 틈새와 틈새의 그늘 간의 연결을 완전히 단절시킨다.
파괴에 특화된 신의 권능으로.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