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72

972화 77일 (3)

베르덴이 히안테와 대화를 마치고 세계의 틈새로 진입했을 때였다.

* * *

……왼쪽 어깨와 목 사이에 깊게 박힌 흉터.

천검이 발현한 초월기의 흔적이다.

사경을 헤매며 단절된 근육과 폐 그리고 쇄골은 재생되거나 다시 붙었지만 초월자의 항상성에도 불구하고 검흔만은 선명하게 남았다.

나룻배 위에서 그대로 죽어 버려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는데, 참으로 끈질긴 목숨이다.

초월자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저 운이 좋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존재가 추구하는 의무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만이 중요했으므로.

운명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선택받은 자, 단텔.]

눈부신 조명이 사방에서 단텔을 비추었다. 높은 자리에서 단텔을 둘러싼 존재들의 얼굴은 그림자에 덮여 보이지 않았다.

운명을 숭배하는 ‘상부(上部)’.

그들의 인상착의가 어떠한지, 어떤 신분을 가졌는지 단텔은 알지 못한다. 운명의 추종자들 대부분, 어쩌면 전부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부의 구성원이 대체 몇 명으로 이루어졌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심지어 이렇다 할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으니 유령과도 다를 바 없었다.

[아티슨 마탑의 인드렌 피어시아 레이트 암살 실패, 델하룬의 가레스 시릴리아드 암살 실패, 여섯 번째 사도의 봉인, 운명자의 섬 소멸. 너는 무엇 하나 이루지 못하고 빈사 상태에 이르러 후퇴했다. 변명의 여지는 없겠지.]

“…….”

[운명 파괴자뿐만이 아니라 레프라기움 마탑주가 개입했으니 여섯 번째 사도의 강림이 지연되는 것은 필연…… 운명자의 섬의 궤멸은 예상할 수 없었으니 또한 막을 수 없었다. 가레스 시릴리아드는 추후에 처리할 방법이 있다.]

“…….”

[그러나.]

무거운 시선이 날아든다.

[저항자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인드렌 피어시아 레이트는 처리해야 했다. 인드렌 피어시아 레이트를 죽여서 저항자가 흩뿌린 씨앗들의 반응을 끌어내야 했다.]

“옛 왕의 부활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항자 측에선 사도의 재림을 애써 막으려 하지 않았다.]

무언가가 다가와 단텔을 굽어본다.

[사도를 죽여야 하니까. 운명전이 재개되기에 앞서 사도들을 줄이고 싶을 테니까. 그렇기에 레프라기움 마탑주는 임시 봉인을 택했다.]

‘당신’의 추종자는 무너진 운명을 재건하기 위해 여섯 번째 사도가 필요하고.
저항자는 그런 사도를 죽이기 위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조성한다.

두 세력은 서로 반대되는 목적을 위해서 여섯 번째 사도를 바랐다.

[그럴진대 레프라기움 마탑주가 없는 무지한, 저 대륙의 초월자들로 인해서 여섯 번째 사도의 부활을 저지당했다면 너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 의문을 품게 되었겠지.]

상부는 과연 인간일까.
상부는 언제부터 존재했을까.

[너에게서 비롯된 결과는 운명. 운명은 순리다.]

단텔은 운명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이루는 하나의 톱니바퀴다. 맞물리며 다른 톱니바퀴를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당연한 이치에 자부심이나 성취감은 불필요하다.
여섯 번째 사도의 부활을 우선했다고 해서 다른 사명을 소홀히 한 구실이 될 수는 없다.

“……?!”

갑작스럽게 단텔이 애써 억누르고 있던 격통이 끓어올랐다. 파지지직. 검붉은 번개가 단텔의 육체 주변에서 미약하게 번쩍거린다.
서 있는 것조차 어려워진 단텔이 비틀거리다가 무릎을 꿇었다.

“하아, 하아…….”

[…….]

상부는 간헐적으로 단텔을 죽이려고 하는 마도의 잔재를 주시했다. 운명을 파괴한 위업에서 탄생한 그 개념을 말이다.

단텔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이번 일로 드러난…… 운명의 추종자가 하나둘씩 제거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필연적인 대가다.]

부품이 부서지면 그것과 같은 부품으로 교체하면 그만이다. 그리고 부서진 부품은 먼 훗날에 운명으로 보답받는다.
얼마나 죽든, 그 죽음 자체를 안타까워할 이유는 추호도 없다.

상부에서 신경 쓰는 것은 오직 둘뿐이다.

대체 불가능한 부품이 망가지는 것.
망가진 부품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운명에 차질이 생기는 것.

‘지금은, 후자겠지.’

여섯 번째 사도의 재림을 위해 무리하게 움직인 결과다. 상부의 결정이었으나, 상부는 절대로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며 후회조차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무조건 옳다는 믿음.
틀리지 않는다는 확신.
다른 건 몰라도 상부는 ‘오만’을 숨기려 한 적이 없었다.

[여섯 번째 사도의 군세가 현현할 사문(死門)들의 위치는 레프라기움 마탑도 알지 못하니, 이에 관해선 여섯 번째 사도의 추종자들이 알아서 할 터.]

상부가 통보했다.

[다음은 국제사회의 붕괴다.]

단텔은 고통이 조금 식자 식은땀을 내버려둔 채 기립했다.

“현 상황에서 부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였다가는, 저희가 더 드러나고 말 겁니다.”

[그래서?]

“…….”

[추종자들은 소모품이다. ‘당신’을 위해 소모되는 대가로 좋은 운명을 갖게 되는 어린양. 그 외의 존재 의의는 없지.]

단텔이 시선을 내렸다.

[운명 파괴자가 세계 회의를 주도한 탓에 연합의 기반이 생겼다. 적당한 연합은 오히려 바라는 바지만, 운명 파괴자가 중심이면 얘기가 다르다.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는 무너뜨려야 한다. 여섯 번째 사도가 원활하게 사명을 이룰 수 있도록.]

“그렇게 성가시다면…… 운명 파괴자를 제거하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주제넘군.]

상부가 노려본다.

[운명의 수레바퀴를 파괴한 존재다. 적대 관계를 떠나 위대한 최후를 맞이할 자격이 있다. 그의 처우는 ‘당신’께서 결정할 것이다.]

내려앉는 정적.

[돌아가 심신을 회복하라. 살신(殺身)의 계단을 넘어 정신을 가다듬어라. ‘당신’의 권능을 하사받아 여덟 번째 사도가 될 준비를 갖춰라.]

징계와 함께 차기 사도가 결정됐다.

[너는 특별하다.]

단텔은 감정 없이 고개를 숙이며 상부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일반적인 운명의 추종자들과 달리 그는 소모품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으니까.

단텔이 물러갔다.

단텔이 사라진 그곳에서 상부의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최후의 저항자가 창조한 초월자 개념을 이용해 만든 사도의 그릇. 과연 온전한 사도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해서 견디기 어렵군.]

[초월자 사도.]

[실패하진 않겠지.]

[수많은 실험 끝에 완성한 유일한 성공작이다. 더 이상 실험할 여력도, 여유도 없다. 이론적으로 성공은 확실하다.]

[마침내 인공 사도 연구가 끝나는가.]

인위적으로 구성된 정신과 육체로 태어난 존재를 사도로 만드는 계획. 상부는 실패의 가능성을 입에만 담았을 뿐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여섯 번째 사도의 운명 재건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군.]

[아홉 개의 사문 중 몇 개나 열릴 것인가. 미래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하군.]

[전부 개방될 것이다.]

확신이 이어졌다.

[이미 하나는 열렸으니.]

[순조롭군.]

상부가 기도를 올렸다.

[모든 것은 ‘당신’을 위해.]

그리고.

[모든 것은 네 번째 사도‘들’을 위해.]

상부────네 번째 사도의 추종자들이 이형의 웃음소리를 내었다.
조각상을 향해 굴종의 태도를 보였다.

드래곤.

그들은 오만하고 강대한 용을 숭배한다.

* * *

터벅, 터벅.

아드리안이 중앙 대륙과 마경의 경계선에 자리한 금서의 협곡에 도착했다.

키퍼, 아세트로 올딘의 권역.

과거 초대를 받아 주군과 이자벨라와 방문한 적 있는 장소였다.
방주와 관련된 일이라면 방주를 통해서 연락해도 되지만, 아드리안의 목적은 초월자 연합이란 사적인 영역에 속해 있다.

방주에 관한 것이냐.
세속에 관한 것이냐.

이 두 가지를 구분하는 것이 방주가 오랫동안 지켜 온 원칙이었다.

“……후우.”

기기괴괴한 식물과 곤충이 살아가는 단층 지대를 넘었다. 방주의 선장이자 마법계 초월자의 주거지가 목적지인 터라 에네트는 진즉 돌려보냈다.

폭포 근처에서 멈춰 선 아드리안이 상처 부위를 짚었다.
고통보다는 뻐근한 느낌이 강했다.

‘아직 전력으로 움직이긴 어렵겠군.’

그래도 회복력에 탄력이 붙었다.

새삼 초월자의 편리한 신체에 감탄한 아드리안이 다시 움직였다. 봉우리가 눈에 덮인 산들 사이에 있는 골짜기의 입구를 눈앞에 두었다.

“흐음.”

아세트로의 성채로 향하는 길목이 모종의 마법에 의해 완전히 봉쇄된 상태였다.
지난번에는 아세트로가 직접 마법들을 해제해 주었는데…… 어떻게 이 안으로 신호를 보낼지 고민한 그가 곧 장막을 두드렸다.

파동이 물결친다.

다행히 침범으로 간주하지는 않은 것인지 잔잔한 흐름이었다.

───누구인 거예요? 오늘 손님이 온다고 올딘 님한테 듣지 못한 거예요.

───불청객인 거예요?

아세트로와 함께 지내는 쌍둥이 꼬마, 얀과 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드리안 첸버스다. 에온에서 아세트로 올딘을 찾아왔다.”

───아드리안 첸버스? 아! 기억난 거예요!

───경이의 답파자의 최측근인 거예요! 반가운 거예요!

기억력은 좋은 모양이다.

“아세트로는 안에 없나?”

───올딘 님은 자리를 비우신 거예요. 그래서 아는 사람이라고 해도 올딘 님의 처소에 들여보낼 수 없는 거예요.

───얀과 욘은 봉인을 풀 수 없는 거예요.

자리를 비웠다?

“늦게 돌아오나? 어디로 갔지?”

───확인만 하고 오신다고 한 거예요. 아마도 금방 돌아오실 거예요, 라고 얀은 생각하는 거예요.

───그리고 마경에 간다고 하신 거예요.

“평소의 관측인가?”

───이번에는 다른 거예요.

얀과 욘이 동시에 답했다.

───마경에 이상 현상이 관측된 거예요.

* * *

아세트로 올딘이 기형적인 환경으로 둘러싸인 마경을 거닐었다. 눈이 수십 개가 난 작은 벌레들이 다가오다가 파바박 도망친다.
동물을 잡아먹은 식물들의 촉수도 덜덜 떨다가 쏙 땅 밑으로 숨어들었다.

마경에서는 강자와 약자 간의 먹이사슬이 어떤 곳보다 강하게 확립되어 있다.

약자가 이곳에 발을 디디면 운에 따라서 마경의 경계를 넘자마자 먹이가 될 수 있다.
반대로 압도적인 강자에게 마경의 미물들은 감히 접근조차 하지 않는다.

존재감을 적당히 드러낸 아세트로가 멈춰 서서 정면을 응시했다.

‘마경은 사실상 생명의 늪이다.’

바깥의 것들하고는 완전히 다른 형태와 습성을 가졌어도 엄연히 생물이다. 생명을 품고 활동하는 동식물이다.

대륙 어떤 지역보다도 생태계의 순환이 분주하게 일어나는 곳이기에 사체는 잘 남지 않는다. 독 때문에 방치되어 부패한 사체에서도 마경 특유의 구더기가 들끓어 뼈와 살을 뜯어 먹는다.
어지간한 생물의 저항력으로는 죽은 뒤 골격조차 남기기 어려운 셈이다.

생명이 흘러넘치기에 개척할 수 없는 마경.
마경의 숲 자체도 살아 있다.

아세트로 올딘은 그야말로 미지와 괴물로 가득한 이곳을 오랫동안 연구했다. 하지만…… 이런 광경은 그도 처음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군.”

아세트로가 단안경을 벗었다.

“어떻게 언데드가 발생한 거지?”

[크어어어…….]

온몸이 썩어 뼈와 신경이 대부분 드러난 마경의 트롤이 꿈틀거리며 다가온다.
한둘이 아니다.
<마력 감지>에 잡히는 놈들만 해도 최소 수천이 넘는다. 그것들이 일제히 마경의 경계로…… 저 중앙 대륙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언데드 중에서는 마경에 없는 인간에서 비롯된 놈들도 적지 않았다. 물리적으로도, 마법적으로도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시신이 없는 이상 자연적으로 인간형 언데드는 출몰할 수 없으므로.

마경에 이변이 생겼다.
마경 안쪽에서 뭔가가 발생했다.

‘대륙에 알려야 한다.’

안 그래도 강력한 마경의 생물이 언데드가 되어 나간다면 큰일이다. 수가 얼마나 많은지, 원인이 뭔지 모르는 이상 대비해야 한다.

‘다만 그 전에.’

그림자가 진다.

[우으…… 그어어어어!]

퍼엉!

생명을 증오하는 트롤 좀비가 부패한 양팔을 휘두르다 폭발했다.
거대한 마력이 죽은 자의 행렬을 압도했다.

‘일단 정리부터.’

아세트로 올딘이 마경에 창궐한 언데드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 * *

이데라트 연맹국의 수도 의회───콘셀바르를 하나의 질문이 관통했다.

“너희들은 어느 쪽인가.”

데엘로 추기경의 의심이 서린 시선에 주변 사람이 곧 발끈했다. 연맹국의 하이 콘소르 의원들의 성난 목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추기경! 도를 지나친 발언입니다!”
“교국의 심정은 이해하나, 우릴 배신자로 낙인을 찍는 것은 불합리한 처사입니다……!”
“모두에게 결백을 증명하라는 요구는 과하다고 생각해요. 적어도 지금은.”

이자벨라가 발언했다.

“주어진 혐의조차 없는 이들에게 스스로 무죄를 증명하라니, 이치에 맞습니까?”
“정 의심스럽다면 의문을 제기한 측에서 증거를 제시하는 것이 당연한 논리요. 수인과 드워프가 많은 사상자를 냈다, 그게 루아스 교국이 내놓은 근거의 전부는 아니겠지요.”
“폐하께서 교국을 침범한 유골룡 세 기와 언데드 군세를 토벌하는 걸 직접 도우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쪽이냐니. 심히 불쾌합니다.”

제국의 루센트 공작과 마도국의 제렌이 그녀의 생각에 동조했다.
그들 세력은 교국을 직접적으로 도왔을 뿐만이 아니라 이번 사태에 가담한 두 번째 하인과 드워프를 데리고 있다.
루아스교라고 해도 강경하게 대할 수는 없다.

안티아스가 물었다.

“그렇다고 하는데, 어쩔 작정이지?”
“하여 우리 교국에서는──”
“아, 물론. 이 중에 배신자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엔 동의한다.”

예고도 없이 안티아스가 교국의 공격적인 태도에 수긍했다. 다름 아닌 수왕이다. 그의 발언은 이곳에서 가장 무겁다.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데엘로 추기경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또 무슨 지랄을…….’

세계 회의에서 안티아스가 벌인 기행을 떠올린 이자벨라가 숨을 죽였다.

“그래서 나도 나름대로 놈들을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다.”

데엘로 추기경이 뒤늦게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그냥 물어보는 거지.”

안티아스의 눈길이 한쪽을 향했다.

“대답하지 않으면 죽이겠다.”
“……?”
“너는 배신자인가?”

이데라트 연맹국의 다종족 차석 외교관, 라셀트 바르하가 눈을 부릅떴다.
그는 선착장에서 이자벨라와 안티아스를 안내한 인물이었다.

“셋.”
“자, 잠시. 그게 무슨……?”
“둘.”
“수왕님?!”

하나.

콰지지지직!

수왕의 꼬리가 뻗어 나가 순식간에 라셀트의 상체를 분쇄했다.

“기회를 줘도 대답을 못 하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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