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76

976화 환국 (3)

힘이 풀려 주저앉은 라우드 백작은 기사단장과 거의 부둥켜안은 채로 근방에서 벌어지는 전투를 멍하니 지켜봤다.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

멀리 있던 절벽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수많은 흑염의 구체가 추락해 산과 산이 이어진 산맥을 멸했다. 그 중심부에서 방출된 검붉은 광채를 보고 숨이 멎을 뻔했다.

‘이것이,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얼마 전에 수천 마리의 언데드와 벌였던 사투는 감히 비교할 것도 못 됐다.
초월자, 초월자…… 그저 소문과 국제 신문으로만 접했을 뿐이었는데. 단신으로 나라에 준하는 세계급 전력이라는 표현이 부족할 지경이었다.

뭔가가 날아온다.

콰아앙!

병사들을 학살했던 초월자 인형의 상반신 일부가 라우드 백작 앞에서 착탄했다. 그리고 언제 돌아왔는지 알 수 없는 베르덴이 그 잔해를 짓밟았다.
밑에서 무자비하게 작렬한 현뢰의 줄기가 하늘로 솟구쳤다.

쿠우우우우우우…….

라우드 백작의 군대를 거의 전멸시켰던 존재가 완전히 사멸했다.

“하아──”

베르덴이 말없이 숨을 내쉬었다. 후련할 만큼은 아니었지만 파괴 욕구가 줄어들었다.
이마와 관자놀이에 핏줄이 돋았던 그의 얼굴이 평정을 되찾았다.

상황이 끝났음을 알아챈 알파가 꿈틀꿈틀 로브의 목덜미에서 모습을 보였다.

[진정?]

“어느 정도는.”

절진, 레브란 하웰 브라카스.

옛 왕에게 세 번째로 죽은 초월자로 안데스의 기억에서 보았다.
지리상 전쟁의 최전선으로 정해진 브라카스 왕국 수도에서 연합에 합류하지 않고 홀로 옛 왕의 군세를 막아섰다고.

‘후퇴한 적 없는 초월자라.’

목숨마저 개의치 않는 고집.
초월자의 온상이다.

마지막 모습을 보니 그저 옛 왕의 명을 수행하는 하수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죽은 육신으로 살아나 행동과 사고를 강제당했을 뿐 그 의식 자체는 초월자 본인의 것인가.
물론 초월을 상실한 이상 레브란처럼 살아생전의 태도를 잃어버린 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존재가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으나 신속하게 찾아서 배제해야 한다,’

경지에 적응한 초월자라면 문제없이 처리할 수 있어도, 그 아래의 강자들에게는 버겁거나 감당할 수 없는 위협이다.
최소 국가급 전력이 다수 맞서야 할 터.
일개 도시나 국력이 미약한 소국에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베르덴이 말했다.

“라우드 백작이라고 했나.”
“……! 벨마이르 왕국의 루돌 라우드입니다!”

라우드 백작이 황급히 예를 갖췄다.

“구명의 은혜에 삼가 머리 숙여 감사 올립니다. 폐하께서 베푸신 자비는 평생, 아니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는 됐다. 어디로 가는 중이었지?”
“예, 에온에 지원을 요청하기 위해서 주인 없는 땅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에온의 정점이 바로 앞에 있다.

라우드 백작은 재빠르게 왕가의 서신을 꺼내어 공손히 건넸다. 베르덴과 알파가 벨미이르 국왕이 직접 쓴 글귀를 읽어 내려갔다.

‘북진하는 언데드 군세를 저지하기 위한 대규모 마법 폭격 요청이군.’

마석이든 뭐든 지불하겠다는 뜻을 보니 여유가 거의 없는 듯했다. 계속해서 출몰하는 언데드와의 소모전에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다.

‘그런데 북진이라.’

주인 없는 땅 아래에는 벨마이르 왕국이 있고, 벨마이르 왕국 아래에는 딘엘 왕국이 있으며, 딘엘 왕국 밑에는 푸른 산맥과 테르네티아 연방이 있다.
언데드 대군이 남쪽에서 올라온다면 중앙 대륙 남부 국가들은 어떻게 된 갈까.

“일단 어레인으로 가겠다. 마법 폭격은 도착하고 나서 논의하도록 하지.”
“허억……!”
“흡!”

베르덴이 서신을 아공간에 보관하고는 공간을 장악했다. 라우드 백작과 그 기사들의 발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보다시피 방금 대륙에 돌아온 참이다. 가면서 국제 사회가 전반적으로 어떻게 되었는지 말해 줬으면 좋겠는데.”

[정보 필요.]

혹시라도 정보가 불충분하면 지원을 거절당하는 걸까, 그런 상상을 한 라우드 백작은 자신의 언변에 벨마이르 왕국의 운명을 맡겼다.

“제가 아는 걸 전부 말씀드리겠습니다.”

* * *

주인 없는 땅, 어레인.

“이대로는 좋지 않습니다.”

에온의 정보관, 페일이 정보원을 모조리 투입해 각지에서 최대한 수집한 정보들이 담긴 종이 뭉치를 곁에 두고 말했다.

“마경과 중앙 대륙 남부 어딘가. 현 중앙 대륙의 언데드 출몰지는 이 둘로 확인됐습니다. 마경은 수인 대부족과 모험가 길드를 주축으로, 남부는 타국이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지요. 무리를 벗어나 주인 없는 땅에 도달한 언데드는, 엘프 동맹이 숲을 경계로 삼아서 요격하고 있고요.”
“…….”
“에온의 권역은 비교적 무사한 편이나 소모전을 반복하기만 할 순 없습니다. 언데드가 앞으로 얼마나 더 출몰할지 모르는 이상은 말입니다. 여기서 대규모 언데드 출몰 지역이 더 늘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상황이니까요.”

특정 자원으로 이만한 규모의 언데드 군세를 계속해서 만들었다고 보기 어렵다. 필시 머지않아 자원이 고갈되고 말 테니까.

상대는 주검의 영광이 숭배하는 옛 왕이란 고대 초월자다. 현대의 초월자들이 합공했음에도 죽이지 못한…… 그러니 최악의 최악의 가설을 염두에 두고 대처하는 편이 백번은 옳으리라.

‘언데드는 대륙을 구분하지 않고 끝없이 나온다. 아마 자원의 소모 없이.’

페일은 그런 관점으로 작금의 상황을 관측하고 있었다.

“옛 왕의 봉인이 다시 언제 풀릴지는 모르겠으나 그 시간이 지금도 줄어들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지요. 저희에게는 정보가 더 필요합니다.”
“그거야 알고 있지만…….”

케이렐이 혀를 찼다.

“통신 장치와 공간 이동진이 없는 게 이렇게나 불편할 줄이야.”

에스티라아 왕국은 그렇다 치더라도, 주 비행정 함대와 에온의 마법사 전력이 집중된 블랙 아워의 대전당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양측을 오갈 수 없는 게 아주 뼈아팠다.

공간 이동이 가능할 때 주인 없는 땅으로 옮겨 놓은 전략 병기와 인원만으로는 대대적인 움직임이 곤란했다.

“…….”

유니아는 구석에서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동대륙 로니아 왕국으로 파견된 쌍둥이 카인과의 연락이 두절된 탓이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두 사람이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진 적은 처음이었다.

공기가 무겁다.

분위기를 제법 잘 환기할 줄 아는 외로운 늑대, 로메르도 눈치껏 입을 닥쳤다. 불안한 적막 속에서 리엄이 말했다.

“그 부분에서는 전적으로 이자벨라 님과 베타 님을 믿을 수밖에요.”

리엄이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로니아 왕국은 아드리안 님이 해결하실 겁니다. 너무 심려치 마세요.”
“……응.”

유니아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러모로 답답한 형국이다.

설마 공간 이동과 통신이 막힐 거라고는 상정한 적이 없기에 현대 마법 기술에 기반한 전략이 엉망이 되어 버렸다.
이래선 황금 비고의 무구를 갖춘 초월자 연합도 일사불란하게 행동하기 쉽지 않다. 일단은 현재의 국면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달까.

‘제한적으로 공간 이동이 가능하기는 하지만…… 해당 지점까지 거리가 멀고, 활용이 어려우니 운신의 폭이 좁아진 건 매한가지.’

페일은 자리에서 일어나 어레인의 거리를 잠시 응시했다.

이곳은 평화롭다.

다만 세간의 소문이 흘러들어 간 터라 물밑에서는 동요가 일고 있으리라. 저 거품들이 모여 터지기 전에 거둬 낼 필요가 있다.

공간 이동의 재활성화.
통신 장치의 재기동.

이 둘이 핵심이다.

에온의 권역은 주인 없는 땅이 전부가 아니다. 서대륙에는 대전당이 있고, 동대륙에는 에스티리아 왕국이 있다.
대륙 간 연락망이 구축되지 않으면 이 사태에서 권역을 모두 지키기 어렵다.

드그둑! 드그둑! 드그둑!

“문을 열어라!! 어서!! 시급한 사안이다!!”

칼리아의 소개로 주인 없는 땅에 정착한 이후로 용병단장에서 북부 치안대장이 된 레스터 로드하트가 직접 말을 타고 달려왔다.
어레인 성채에 입성한 그가 창밖으로 머리를 내민 페일과 눈이 마주쳤다.

“무슨 일이죠?”
“긴급 속보요! 벨마이르 왕국의 라우드 백작이 지원을 요청하고자 어레인을 찾아왔소! 그리고!!”

레스터가 목청을 높였다.

“베르덴 폐하께서 환국하셨소!!”
“뭐라고요……?”

페일이 눈을 부릅떴다가 뒤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몸을 돌렸다. 모두가 페일과 같은 눈동자로 한 사람과 한 골렘을 바라보았다.

[안녕.]

“본의 아니게 늦어서 미안하군. 그보다 내가 없는 사이에 대륙이 많이 번잡스러워졌던데.”

잿빛의 베르덴이 자연스럽게 회의장의 상석에 착석했다.

“보고하도록.”
“와!!!!! 선배!!!”

퍽!

유니아가 달려들었다.

* * *

페일은 냉큼 회의실에 있는 자료를 싹 다 가져와 베르덴 앞에 놓았다. 베르덴이 문서를 훑어보는 사이 페일이 설명을 더했다.
국제 정세에 관한 내용은 라우드 백작이 말했던 것의 심화에 가까웠다.

베르덴이 물었다.

“베타는 어디에 있지?”

당연하게도 베르덴의 주 관심사는 에온의 내부 사정이었다. 에온의 상황이 어떤지 파악해야 전력을 효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안전이야말로 베르덴의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었다.

유니아가 등 뒤에서 베르덴의 목을 끌어안은 채 대답했다. 영락없이 친한 선배에게 의존하는 철없는 후배의 모습이었다.

“베타는 중추 신호기를 회수한 뒤에 대전당으로 넘어갔어. 마력 파장 자체에 모종의 간섭이 가해져서 통신이 교란된 것 같다고, 그 부분을 개조해 보겠다나 봐. 그런데 이후에 공간 이동이 차츰 불가능해지면서 만나지 못했어.”

중추 신호기의 개조라.

베타는 대전당에서 다시 골렘 연구 시설로 갔을 확률이 아주 높다. 중추 신호기를 손보려면 그 외의 장소는 없다.

“이자벨라는 주인 없는 땅에 남았을 텐데.”

이번에는 리엄이 답변했다.

“예, 이자벨라 님은 지금 주인 없는 땅에서 공간 이동을 저해하는 원인을 찾으시겠다며 숲에 정착한 엘프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자벨라의 형안은 특별하다. 남들과는 다른 시야를 가졌으니 정체 모를 이형종, 아마도 공간 교란의 언데드를 찾을지도 모른다.
엘프들이 곁에 있으니 만에 하나라도 불상사가 벌어질 일은 없을 터.

알파가 묻는다.

[아드리안은?]

“…….”

아드리안은 초월자로서 권역을 수호할 의무가 있다. 그런데 주인 없는 땅 어디에서도 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대전당으로 갔을까.
에스티리아 왕국으로 갔을까.

베르덴이 곧 확신했다.

“동대륙의 로니아 왕국으로 갔군. 소식이 끊긴 위상들을 구하러.”
“본래는 권역을 수호하려고 하셨으나…… 통신과 공간 이동이 점차 끊기던 도중에 동대륙으로 넘어간 페르네가 극비 정보를 손에 넣었습니다.”

페일이 나지막이 말했다

“마울러가 남하했습니다.”
“……!”

델하룬의 대왕이 도시 연합 카일리언스를 지나 남쪽으로 이동했다. 카일리언스나 로니아 왕국이나 마울러의 권역이니 어디로 가든 간에 이상할 것은 없지만 무시할 수 없었다.

로니아 왕국에 파견된 이들로는 마울러를 어찌할 수 없다.
마주치면 살해당한다.

만약 베르덴이 아드리안이었다면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당연하게도 아드리안처럼 이자벨라에게 권역을 맡기고 로니아 왕국으로 향했으리라.

“…….”

베르덴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에 공간 이동에 관한 문서를 짚었다.

“미리 설치된 공간 이동진은 기동이 가능하다고 적혀 있는데. 사실인가?”

케이렐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이에요. 아드리안도 대륙 간 공간 이동진을 경유에 동대륙으로 넘어갔어요.”
“기초만 완성된 대륙 간 공간 이동진의 경우는 어떻지?”
“어? 그건 잘…….”
“그럼 시도해 보면 되겠군.”

주인 없는 땅과 에스티리아 왕국에는 미완성된 대륙 간 공간 이동진이 있다. 아티슨 마탑의 기술을 일부 받은 결과물이다
기초는 전부 구축했으니 베르덴이 마법진을 직접 작성하면 마침내 완성된다.

‘이 같은 상황에 공간 이동진이 제대로 구축될지 의문이긴 하지만, 일단 해 볼 수밖에.’

에스티라아 왕국과의 왕래가 가능해지면 권역에 관한 여러 문제가 해결된다.
가능성이 있다면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근데 선배.”
“왜.”
“그 모습은…… 뭐야?”

유니아가 베르덴의 머리 색깔처럼 잿빛으로 물든 [아인베르]를 가리켰다.
이전에 보았던 광경이 비슷했다.
베르덴이 각성한 이후에 백색에서 칠흑으로 변한 [아인베르]처럼.

“위계가 상승한 결과다.”
“아하.”

유니아가 이해했다는 듯 손뼉을 쳤다가 얼어붙었다.

“어? 8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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