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7화 죽음의 문 (1)
마경의 생물은 괴상망측하고……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생체적 특성을 띠곤 한다.
그중에서 기생 생물은 아주 혐오스럽고 끔찍하기 그지없고, 약 1세기 전엔 적룡 사르칸드라가 몇 개의 도시와 군대를 불태우고 유유히 마경으로 사라졌다고 전해진다.
괴이의 땅, 마경(魔境).
함부로 침범할 수 있을지언정 누구도 지배할 수 없다. 인류의 호기심도 극복하지 못했다. 초월자조차 마경을 연구하다 실종되었다.
마경이 존재한 이래 인류는 단 한 발짝도 마경을 개척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마경에 대한 관심이 잦아들 무렵, 세계 회의에서 다시 마경 개척 안건이 나오며 세상이 미개척 지대를 주목했다.
마경은 어떤 곳일까?
마경엔 어떤 괴물이 살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궁금증을 해결할 기회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제3군. 마력회로 활성화.”
중앙 대륙에 파견된 화산섬의 마탑 원로회, 안드라노브의 일원인 멜코니 블라우드가 숨을 죽이다 지팡을 확 뻗었다.
“소각 개시!!”
“화염 방사!!!! 방사아아!!!!!!!!”
“<에어 레일>, 전개!”
콰아아아아아아아───!
4위계급 이상의 마법사들이 일렬로 서서 화염의 줄기를 방출했다.
포르메네 자유국과 이데라트 연맹국의 마법사의 보조로 시전한 대기 마법의 흐름을 따라 언데드들이 순식간에 타올랐다.
[츠하아.]
촉수들이 뒤얽혀 만들어진 육신에 머리가 썩은 버섯과도 같은 이형종이 화염의 벽을 뚫고 미친 듯이 돌진했다.
스포라쿠스(Sporacus).
놈에게서 퍼진 포자를 들이마시면 폐에 곰팡이가 핀다. 언데드로 변해 버린 지금은 전염성을 띤 부패의 포자를 퍼뜨린다.
“시발, 또 버섯 대가리다! 정화 마스크 착용!”
피울음 역병의 전염력을 억제하기 위해 아티슨 마탑에서 제작했던 정화 마스크가 현장에서 다시금 활용되었다.
“내가 처리하겠네.”
마도 <환신(煥申)>
멜코니의 지팡이가 수직을 긋자 화염의 곡선이 허공에 남았다.
<화곡 - 개열>
수십 개로 분열된 화염의 불곷이 스포라쿠스의 주변에서 폭발했다. 뜨거운 열기가 뻗어 나가 피부의 수분을 빼앗았다.
그 뒤로 고위 언데드가 출몰하자 수인과 루아스 교국의 성기사가 토벌했다.
마경의 경계선을 앞에 두고 펼쳐진 방어선, 그를 전망이 상당히 좋은 언덕 위에서 루센트 공작과 제렌 조사국장이 바라보았다.
“출몰 주기엔 규칙성이 없지만 다행히 언데드의 이동 경로에 변화는 없어 보이요.”
“방어선이 무너지지 않는 한 능히 막아 낼 수 있을 겁니다. 그만큼 충분한 물자와 인력을 상시 준비해 놓아야겠지만요.”
아르나크 제국과 아케나드 마도국의 이름으로 각각 이데라트 연맹국에 방문한 두 사람은, 처형장이 되다시피 한 진상 조사회 이후로 줄곧 중앙 대륙에 머무르고 있었다.
황제와 마도왕으로부터 마경을 주시하란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마경의 위험성을 생각하면 당연한 조치였다.
“옛 왕. 초월자 전쟁. 단순히 과거의 재현이라면 타파하는 것이 아주 어렵지 않겠으나…….”
루센트 공작이 7인 중 3인의 대주교가 지휘하는 루아스교 진영을 흘겼다.
“교국이 설명한 과거와 현 상황은 괴리가 너무 큰 것 같소. 범대륙적인 언데드 사태. 키퍼가 아니었다면 이 일대는 이미 쑥대밭이 되었을 것이오. 피울음 역병 사태도 매한가지지.”
“빛이 환할수록 눈을 뜨기 어려운 법 아니겠습니까.”
제렌이 찻잔을 들었다.
“눈을 가리면 아무리 환한 빛도 제대로 볼 수 없기도 하고요.”
루센트 공작이 눈을 가늘게 떴다.
“수백 년 동안 주검의 영광을 진즉 처리하지 못한 게 교국의 잘못만은 아니다…… 마도국에선 배신자가 먼 옛날부터 암약했다고 보고 있구려. 루아스 교국의 내부에서도.”
“역사는 깁니다, 루센트 공작. 기술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했다고 해도 현재가 언제나 황금기일 순 없습니다. 객관적으로 과거가 훨씬 더 대단했을 때도 있습니다.”
초대 마도왕께서 군림하셨을 때처럼.
“루아스교가 군단의 대악마를 마침내 토벌했을 때도 그렇습니다. 그럼 수천 년 전, 수만 년 전에는 어떻겠습니까. 그보다 더 옛날은? 과연 지금보다 더 대단한 시대가 없었을까요?”
“즉, 배신자가 머나먼 고대에서 비롯된 존재들이다?”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오랫동안 정보를 다루며 살아온 제렌은 한 가지 교훈을 깨달았다.
바로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것.
눈앞에 있는 세상만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더군다나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말이다. 앞면엔 언제나 최소한의 뒷면 하나가 존재한다.
“저희가 앉아서 단정하기에는 세상은 너무 넓지 않습니까.”
“…….”
루센트 공작은 작게 헛웃음을 지으며 반쯤 식은 차로 입술을 축였다.
그러곤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번 사태가 어떻게 끝나든 간에 대륙의 균형은 흔들릴 것이오. 세계 종교로서 세상을 주도한 루아스 교국의 지위가 심히 위태로워질지도 모르오. 당장 옛 왕이라는 명확하고 강대한 적을 앞에 두어서 불만이 억눌려 있을 뿐.”
“등산은 좋아하는 편이지만, 아직 넘지도 않은 산 너머의 산을 쳐다보는 것은 피하는 편입니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마음부터 지치거든요.”
제렌이 마경을 응시했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난관을 생각합시다.”
“후후후, 여유를 가지시오. 가파른 고비라고 해도 결국에 넘지 못한 적은 없으니.”
루센트 공작은 자기가 충성하는 제라클 황제의 의지를 담아 말했다.
“그것이 인류가 아니겠소.”
* * *
순수한 힘의 무게가 깃든 거대한 창격이 허공을 관통했다. 닿지도 않았는데 충격파가 터져 직선상의 언데드가 몰살했다.
후웅───콰아앙!
마의 공포가 전진에 또 전진을 거듭하며 마경을 질주했다. 지나가면서 부딪친 스포라쿠스의 온몸이 그대로 폭발했다.
부패의 포자가 덮쳤으나 마의 공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쿵! 쿵! 쿵! 쿵! 쿵! 쿵! 쿵! 쿵!
비행정이 빠른 속도로 연이어 날아와 들이받으면 이런 풍경일까.
아직 언데드가 되지도 않은 마경의 생물이 잘못 어슬렁거렸다가 그대로 주변 일대와 함께 분쇄되어 흩뿌려졌다.
그야말로 마(魔)의 공포.
무자비한 육탄 돌격에 본능적으로 죽음을 깨달은 마경의 생물들이 도주했다. 언데드들은 주춤거리다가 곧 집단째로 박살 났다.
‘언제 봐도 믿을 수 없는 힘이군.’
아세트로 올딘은 속으로 감탄을 아끼지 않으며 동료의 위용을 구경했다. ‘데미안’의 육체가 어떤지 알고는 있으나, 그렇다고 해도 이론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강함이었다.
수왕이 자연적으로 최강의 신체를 타고났다면, 데미안은 인공적으로 최강의 육신을 손에 넣었다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육신을 유지하려면 장로님의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만…….’
현 방주에서 데미안을 정면으로 상대할 수 있는 존재는 방주의 지도자 외에는 없다, 아세트로는 그리 판단하며 고개를 돌렸다.
“지침은 기록했나?”
언데드의 발원지를 확인하기 위한 이번의 마경 탐사는 방주의 선장으로서, 재액의 토벌자와 균형의 조율자로서 임하는 것이 아니다.
모험가 길드.
키퍼.
마법계.
이는 국제 공조였다.
마해에서 적룡 사르칸드라의 꼬리 비늘을 가져와 마경 탐사 빛 정벌의 근거가 된 무모한 지식인, 퀘론 렉클로스가 특유의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며 손목의 시계를 가리켰다.
“예, 아주 잘되고 있습니다! 이런 루트는 여태껏 가 본 적이 없는데, 올딘 님과 마의 공포 님 덕에 이런 호사를 누리는군요.”
“마경에 오는 걸 호사라고 하는 사람은 너밖에 없을 거다.”
“하하, 과분한 칭찬이십니다.”
퀘론이 눈을 빛냈다.
“이 지침 기록을, 본 마경의 환경 변화 패턴에 추가해서 새롭게 연산하면 같은 루트를 찾을 수 있게 될 겁니다. 아직 정보가 부족해 어느 정도는 확률에 의존해야 되겠지만요. 결과적으로 제가 제작한 마경 지도에 또 하나의 길이 생기겠군요. 본격적으로 마경 탐사가 진행되면 정말로 마경 정벌도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퀘론의 스승의 스승이었던 초월자는 오래전에 마경에서 사라졌다.
그런데도 퀘론은 마경을 두려워하기는커녕 호기심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의 마경을 향한 탐구심은 죽음조차도 막을 수 없으리라.
“그나저나…… 이 사태의 근원이 마해에 있지는 않겠지요?”
“그럴 가능성은 적다. 델하룬에는 언데드가 출현하고 있지 않으니까.”
중앙 대륙과 동대륙 사이에는 마경이 있고, 마경의 중심에는 마해가 있다.
언데드가 좌측 이동을 선호하는 게 아닌 이상 마해가 발원지라면 이미 양쪽에서 난리가 났어야 정상이다.
“무엇보다 마해는 언데드에게 삼켜질 만한 지역이 아니고.”
“그건 그렇죠.”
죽음의 기운이 아무리 짙어도 마해의 공기보다는 신선할 것이다. 마경의 중심부에 가 본 자만이 안다. 그곳은 인외의 마경이다.
그렇게 마의 공포를 필두로, 언데드의 발자취를 따라서 나아갈 뿐인 단조로운 탐사가 이어졌다. 이윽고 마의 공포가 걸음을 멈췄을 때 마경의 풍경은 그들이 알던 것과 사뭇 달라져 있었다.
“…….”
“저게…… 무엇일까요?”
퀘론이 가리킨 방향에는 죽음으로 뒤덮인 마경의 숲이 있었다. 다만 이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것은 썩어 버린 이형종의 숲 따위가 아니었다.
“나도 모르겠군.”
죽어 버린 대지의 중심부에 높이가 수십 미터에 이르는 균열이 자리했다.
새까만 어둠으로 가득 찬…….
마치 다른 세계로 이어진 듯한 입구가 그곳에 있었다.
* * *
에온의 전력은 각 권역에 분산되어 있기에 어지간한 위험에는 대처가 가능하다.
즉각 연락을 취하지 못한 지 꽤 되긴 했지만 큰 문제는 없을 터.
서대륙의 대전당에선 멜라드가 보헤미른 마탑과 디아문 마탑을 아우르고 있고, 동대륙에선 레바나가 에스티리아 왕국을 맡고 있다.
동대륙에는 카란스를 비롯한 엘프 일부와 파멸의 마력을 다루는 정령 블루가 동행했다.
에온은 거대한 세력이다.
수장이 한동안 자리를 비웠다고 해서 근간이 흔들리는 오합지졸이 아니다. 그러니 베르덴 또한 굳건히 할 일을 다할 뿐이다.
쿠웅.
어레인 외곽에 축조된 대륙 간 공간 이동진의 건축물에 베르덴이 올라섰다. 건축 소재로 들어간 미스릴이 그의 마력에 반응했다.
‘기본은 완벽에 가깝다.’
베르덴이 설계한 대로, 또 명령한 대로 에온의 마법사들이 마법진의 기반 작성을 진즉에 끝마쳤다. 주인 없는 땅과 이어질 암흑가 로아프라도 마찬가지.
해당 공사에는 유니아와 카인도 한몫 거들었다.
마도 축제만 정상적으로 끝난 뒤 며칠만 있었어도 대륙 간 공간 이동진은 완성하고도 남았을 텐데.
‘여러모로 걸림돌이군. 운명은.’
베르덴이 전신의 마력회로를 활성화해 초장거리 공간 이동진의 건물을 장악했다.
“조율을 시작하겠다.”
마도 <무한>
시설이 움직이기 시작하며, 줄곧 마석으로 유지되고 있던 기초 마법진이 새로운 선으로 덧씌워진다. 기초 마법진에 연동된 로아프라의 시설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졌다.
공간의 불안정성이 거의 없다.
성공 확률을 계산한 베르덴이 박차를 가했다.
공간 마법진에 일가견이 있는 수십 명의 마법사가 몇 날 며칠에 걸쳐서 완성하는 현대 기술의 결정체가 한 명의 초월자에 의해서 빠르게 구현되었다.
“와아아…….”
[와아.]
알파를 인형처럼 껴안은 유니아가 멍하니 입을 벌렸다. 다른 이들도 같았다. 위대한 존재감이 그들의 마력을 한껏 자극했다.
“와아아……!”
유니아의 심장이 쿵쿵 뛰었다.
‘8위계. 선배가 8위계.’
일반 사람들에게는 실감이 안 날지도 모르지만 태어났을 때부터 마법사였던, 어릴 때부터 현자들에게 전문적으로 마법 교육을 받은 유니아는 그 의미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현 마법계 정점!!!’
대표적으로 레프라기움 마탑주가 8위계로 알려져 있고, 마법계 초월자 중 극히 일부는 8위계 도달한 듯하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와아아아……!!”
날마다 강해지는 선배 앞에서는 어떤 초월자든지 한낱 범부에 불과하다. 어쩌면 선배는 초대 마도왕 다음으로 9위계에 도달할지 모른다.
무슨 일이 있어도 선배가 있으면 괜찮다. 카인도 분명 괜찮을 거다. 그너는 카인에 대한 걱정이 사그라드는 걸 느꼈다.
천재의 완성형이 바로 곁에 있다.
평생 쫓아가야 할 지향점.
베르덴은 유니아의 유일무이한 우상이다.
“와아아아아아악!!!”
[화들짝.]
유니아가 갑자기 내지른 함성이 대륙 간 공간 이동진에 울려 퍼졌다. 알파를 붕붕 휘두르며 그녀가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와악.]
“오랜만에 돌아와서는 8위계?! 근데 왜 그렇게 담담해!! 사실상 현대 마법계 최강인데!! 8위계에 도달한 기분은 어때? 경지의 상승 과정은 어땠어? 선배, 나중에 초대 마도왕처럼 신 취급 받는 거 아니야?! 다른 사림들이 빨리 알아야 할 텐데!!”
움찔.
베르덴과 알파가 잠시 멈칫했지만 흥분에 찬 유니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신에 대한 건은 아직 밝히기 어렵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문제이기도 하고, 금기처럼 정보를 숨길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신의 등장은 반드시 큰 혼란을 불러일으킬 테니 지금처럼 복잡한 상황에서 외부에 드러내는 건 시기상조다.
후우우웅.
베르덴은 공간 이동진의 세부 조율을 절반 이상 완료하며 화제를 돌렸다.
“유니아, 비행정 함대가 갖춰지면 중앙 대륙 남쪽으로 진군해라.”
“응? 벨마이르 왕국 도와주려고?”
“언데드 토벌 겸 정보 수집이 목적이지. 그리고 이자벨라와 함께 푸른 산맥의 오두막에서 한 사람을 데려와라.”
베르덴이 말했다.
“이름은 호세. 이자벨라가 누군지 알고 있으니 찾는 게 그리 어렵진 않을 거다.”
베르덴은 비로소 신격을 얻음과 동시에 누가 먼저 그에 대한 신앙심을 가졌는지 깨달았다. 그가 초월을 선택하기 전에 만났던 호세.
옛날 아내와 자식을 잃은 비운의 조각가가 바로 첫 번째 신앙자였다.
유니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세? 처음 듣는 이름인데…… 뭐 하는 사람인데?”
“솜씨 좋은 조각가다.”
“조각가? 어?”
그녀가 눈을 깜빡이며 공간 가방을 뒤적거렸다.
“혹시 이거 만든 사람인가?”
“뭐?”
[?]
유니아가 베르덴을 똑 닮은 작은 조각상을 꺼냈다.
알파가 물었다.
[어디서 났음?]
“전에 흑법의 자크란인가 하는 혈맹 고위 간부 처리했을 때 있잖아? 그날 어떤 조각가한테 받았어.”
유니아가 조각상을 가볍게 흔들었다.
“테르네티아 연방에서.”
* * *
베르덴이 주인 없는 땅에 환국한 시각.
신전 조각을 미루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열병을 앓기 시작한 하에넬, 레나르, 페이를 급조한 썰매에 태운 호세가 푸른 산맥을 내려와 테르네티아 연방의 국경을 넘었다.
온몸이 땀 범벅이다.
신성력이 거의 고갈되었지만 호세는 잠도 자지 않고 계속해서 길을 나아갔다. 물론 주기적으로 세 사람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열이…… 줄었어.”
푸른 산맥의 한기와 멀어진 덕분일까.
그들의 얼굴이 한결 편해졌다. 미소를 지은 호세가 털썩 주저앉았다. 안도하자 몸에 힘이 풀린 것이다. 그래도 다시 일어났다.
병이 완전히 나았다고 단정 짓기 어려우므로.
그렇게 호세는 썰매에 임시로 나무 바퀴를 달아서 한적한 도로를 이동했는데…… 연방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꺼림칙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아내가 죽은 처형장에서 맡은 것과 비슷했다. 짙은 피 냄새가 호세의 코끝을 스쳤다.
시체가 보였다.
까악, 까악.
백 구가 넘는 병사의 시신이 사방에 널브러진 채 새들에게 쪼아먹히고 있다. 호세는 근방의 풀숲에 수레를 숨기고는 참사의 현장에 다가갔다.
우드드드드득.
우드드득.
방금까지 살아 있었던 듯 눈물 자국이 선명하게 남은 젊은 병사의 몸이 들썩였다. 그 위에 새하얗게 피부가 질린 노인이 앉아 있었다.
“당신…… 지금 뭐 하는 겁니까.”
“식사하고 있네. 이런 식으로 마력을 보충할 수밖에 없거든. 그런 몸뚱이지.”
“아극.”
창백한 노인이 옆에 쓰러진 병사를 붙잡자 옅은 비명이 들렸다.
퍼어어엉!
호세가 달려들어 신성력을 폭발시켰다.
허공에 몸이 붕 뜬 노인이 <비행>으로 아무렇지 않게 균형을 되찾았다.
“마법사였나? 아니, 뭔가 좀 다른데.”
“뭐 하냐고 묻지 않았습니까!!!”
“식사한다고 하지 않았나. 밥 먹을 때는 개도 건드리지 않는 법이라네.”
노인이 선혈이 흐르는 타인의 팔뚝을 흔들었다.
호세가 흠칫했다.
그가 구하려 했던 병사는 치명상에 더해 팔까지 뜯겨서 죽어 있었다.
‘저자는 대체 뭐지?’
외형과 달리 인간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생기가 뒤틀려 있다고나 할까. 인간의 껍질을 흉내 내는 이형종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강함.
노인의 존재가 호세를 가뿐히 압도했다. 신성력을 깨우친 호세라고 해도 적수가 아니었다. 식은땀이 흘러내려서 턱 끝에 맺혔다.
‘하지만…… 물러설 길은 없다.’
창백한 노인은 호세 일행의 접근을 저 멀리서부터 인지한 상태였으리라. 모른 척하는 건 여흥이겠지. 노인은 웃고 있었다.
“보기보다 눈치가 빠르구먼.”
“…….”
“싱싱한 여자에 아이 둘. 식인은 딱히 취미가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이 계속 먹다 보니 버릇이 되더군. 그러니 맛이 좋은 걸 찾는 게 옳겠지.”
호세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남은 신성력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그가 되지도 않는 전의를 내비치자 노인의 입가가 더 올라갔다.
그때였다.
“걱정 말게. 자네도 먹어 줄 테니.”
“소문이 사실이었나.”
노인과 호세가 뒤늦이 제삼자의 접근을 알아차리며 같은 방향으로 시선을 던졌다.
장신의 사내가 병사들의 시체를 넘으며 성큼성큼 거리를 좁혀 왔다. 세간에서는, 아니 방주에서는 사내를 이렇게 칭했다.
“초월자의 시체로 움직이는 인형…… 애써 찾아온 보람이 있군.”
글러트니의 수장─발리온 프레이아.
“마침 초월자 표본이 필요하던 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