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86

986화 죽음의 문 (10)

로니아 왕국은…… 솔직히 빈말이라도 좋은 국가는 아니었다.

특히나 이곳 귀족 사회는 마땅한 도리를 저버린 자들이 숨은 시궁창이었다.
평민은 규모 있는 사업을 하려면 반드시 뇌물을 바쳐야 했고, 아무리 처세에 힘을 써도 귀족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했다가는 모든 걸 다 빼앗기고 길거리에 나앉을 수도 있었다.
심하면 목숨마저 잃거나 죽음보다 더한 처참한 일을 겪기도 했다.

그뿐만 아니라 이종족 전쟁이 이미 옛말이 된 지 오래인데도, 그 이후에 건국된 로니아 왕국은 수인과 계속 적대했다.

수인족과 실질적으로 교전을 벌이는 곳은 대륙을 통틀어 델하룬 북부와 로니아 왕국뿐이다. 전쟁은 곧 돈이 되고, 명분이 되기 때문이다.
평화는 오히려 통치와 탄압을 방해하기에 굳이 화평을 모색하지 않았다. 야성을 풀어 헤칠 사냥터가 필요한 수인도 그러했다.

결과적으로 실제로 희생당하는 것은 대부분 약소 계층 출신이다.

상층부에게 계급에서 나오는 권위란 정당한 폭력 기구였다.
피는 아랫사람이 흘리는 것이다.

피울음 역병 사태에서 로니아 국왕이 심사숙고는커녕 묘안이라고 극찬하면서 실행한, 방역을 빙자한 학살은 예견된 일이었다.

정당하지 못한 명령이라고 해도 어떻게든 따라야 하며, 거슬러서는 안 된다.
국가의 힘은 대적할 수 없다.
강대국이 아닌 여러 왕국 중 하나라고 해도 개인 따위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런 국가일수록 강자에게 친절하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사람은 베풀기보단 자신에게 베푸는 이에게 마음이 쏠리기 마련.

약자도 그렇고.
강자도 다르지 않다.

약자가 아무리 모여 봤자 국가의 편에 선 강자를 어찌하기는 어렵다. 소위 국가급 전력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능력은 일반인의 상상력을 벗어난 초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국가의 뜻을 거스르거나 역으로 국가가 눈치를 보게 하는 존재들은 괴물이다. 평범한 사람은 평생 만날 일 없는 변혁가.

이러한 혁명가가 없는 로니아 왕국은 여러모로 부패한 나라다.

그래도 나라다.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고, 피와 땀을 흘려 일하며, 우정을 쌓고, 꿈과 사랑을 키우고, 또 가정을 이루어 대를 이어 살아가는 장소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고향이다.
아무리 썩어도 집이다.

악취를 풍기는 발이 거실을 더립히는 걸 보고만 있을 사람은 없다! 그것이 세입자든 집주인이든 간에 말이다!

“윽! 빌어먹을 언데드……!”

삐이───

미스릴 등급 모험가 실핀의 귀에 묵직한 이명이 메아리쳤다. 근처에서 들려온 폭음에 예민한 청각을 날카롭게 찔렀다.

적이 얼마나 가까운지 느껴졌다.

그녀 단독으로 미스릴 등급은 아니었지만 개인의 역량은 백금 등급 중에서 상위였다. 로니아 왕국에서 이름을 날릴 정도의 궁술을 자랑했다.

‘군마가 지친 탓에 계속 따라잡히고 있다. 이러면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둘러싸이고 말 거야. 그리고 길어봤자 세 시간이 채 지나기 전에 전멸하고 말겠지. 저놈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으면 더 큰 군세가 몰려올 테니까.’

구출대의 최후미에서 말에 박차를 가하며 실핀이 어깨 뒤로 시선을 던졌다.

지치지 않는 스켈레톤 기병이 끈질기게 흔적을 쫓고 있다. 교전을 치러 가까이 온 놈들을 토벌하며 나아가고 있지만 너무 많다.

전보다 두 배는 더 많은 언데드 기병대가 군마는 피해 가야만 하는 웬만한 지형지물을 무시하며 그녀의 가시거리에 걸쳤다.

추격자, 아니 추격 언데드는 지상군이 전부가 아니었다.

하늘에도 죽음의 기운이 만연했다.

쿠오오오…….

중형급 비행정 세 대의 그림자가 구출대의 머리 위에 드리웠다. 죽음에 투항해 버린 라우니크 후작의 상징을 달고 있다.
언데드가 값비싼 비행정을 운용하는 모습을 보니 현실이 현실 같지 않았다.

로니아 왕국의 지리에 해박한 토착민이 아니면 모를 산 밑 동굴과 기울어진 절벽을 이용하여 최대한 시간을 끌었지만 벌써 한계였다.

마법의 빛이 떨어진다.
저건 닿는다.
카브렐을 비롯한 마법사들이 원소의 장막을 펼쳐 공세를 막아 냈다.

“후우, 후우, 후우.”

정수리 근처에서 화염과 냉기가 폭발하니 호흡이 빨라졌다. 모험가 생활을 하면서 쌓아 온 경험이 몸을 달구었다.

공포가 본능을 핥았다.

아까 예상했던 시간에는 적의 공군이 포함되지 않았다. 단 한 번이라도 폭격을 허용하면 대형은 와해되리라.

앞으로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 실핀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우리도 문제지만 배신자들의 군세가, 사실상 이 근방 모든 언데드가 틴폴드로 향하고 있어. 카인 님이 있으니 간단히 함락당하지 않겠지만…….’

틴폴드는 광산 도시다.

광산을 이용하면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어도 지속력이 떨어진다. 수도처럼 튼튼하지 않다. 생존자 중에서 그나마 전력이 되는 이들을 모아서 버텨 내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게 많은 생존자가 살아서 틴폴드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는 순전히 에온의 위상들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도 시간문제야.’

생존자들을 최대한 모아서 언데드에게 대항하는 것은 단기적인 타개책이다. 이 말도 안 되는 내전을 장기전으로 끌고 갈 여력은 없다.
부상자와 나약한 민간인은 많고, 모아 둔 식량과 의약품은 부족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자 구출을 중지해서는 안 된다. 생존은 곧 희망이다. 희망이 꺾인 순간 틴폴드 내부에서 배신자들이 속출할 터였다.
희망을 보여 주지 않았다면 언데드의 군세는 더욱 규모를 키웠을 것이다. 카인 님이 없었다면 벌어졌을 미래였다.
정확히 말하면 그 미래는 조금 뒤로 미루어졌을 뿐이지만 말이다.

‘우리는 언제 올지 모르는 왕국 바깥의 지원에 기대고 있어…… 말라죽어 가면서 소나기를 기다리는 부랑자처럼.’

가뭄에 단비가 올까.

콰아아아앙!

지면이 흔들리는 충격에 실핀이 우울한 상념에서 벗어났다. 구출대의 선두에서 시끄럽고도 불안감에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브렐 경! 이 앞으로는 평원이네……! 돌아가는 건 물론 추적을 떨쳐 낼 방법이 없어! 남쪽에는 언데드 군세가 득실거릴 텐데, 대체 거기에 어떤 희망이 있단 말인가!”

카브렐이 희망을 언급한 직후에 위에서 낙하한 마법 폭격을 경계 및 방어.
후면과 양 측면에서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치고, 정면에서 어슬거리는 언데드 무리들을 상대하느라 정신이 없어 대화를 삼가했지만 그 인내심도 바닥이 나 버렸다.

카브렐의 로브에 새겨진 에온의 상징을 믿고만 있을 단계를 넘어섰다.

구체적인 희망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구출대에서 배신자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마음은 연약하니까. 인간은 기계처럼 안정적이지 못하다.

“저 능선만 넘으면 된다.”
“능선……?”

능선이 코앞이다.

저 너머에 대체 뭐가 있길래 카브렐이 저렇게 자신하는 걸까. 대군이라도 있나? 언데드가 없으면 다행일 지경이다.
실핀은 궁지에 몰린 카브렐의 정신이 나가 버린 게 아니길 간절히 바랐다.

후욱.

불길한 기류가 위에서 아래로 실핀의 어깨를 눌렀다. 그림자가 커졌다.
고개를 드니 비행정 한 대가 하강하며 돌진하고 있었다.

‘서, 설마 마법이 잘 안 먹히니 그냥 들이받을 생각인 거야……?!’

눈대중으로 보아 이대로 가면 능선에서 비행정과 구출대가 충돌한다. 아마 구출대의 선두는 그 무게에 눌려 곤죽이 될 터.
이래서 두렵다. 로니아 왕국에 발호한 언데드는 그녀가 모험가 생활을 하면서 보아 온 개체들과는 아예 궤가 다랐다.

언데드는 지휘를 받아 ‘통솔’되고 있다.
놈들이 전술과 전략을 가졌다.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언데드 ‘군세’였다.

“카브렐 님! 이게 맞아요? 맞는 겁니까?!”
“이건 미친 짓이야……!!”
“일단 비행정부터 피해!!”

두그둑, 두그둑!

비행정에게 밟힐까 봐 겁을 먹은 구출대원이 반사적으로 고삐를 당겼다. 그와 다르게 카브렐은 군마의 체력을 조금도 상관하지 않고 속도를 더욱 높였다.

순식간에 최후미에서 선두로 나오게 된 실핀이 멍하니 앞을 응시했다.

테두리의 역할을 하는 서로 다른 두 개 원과 그 안에 깃든 정삼각형.
정삼각형 내부에 자리한 작은 원과 그 심층을 차지한 역삼각형, 마지막으로 공백을 채운 고유한 마법적 술식들.

카브렐의 로브에 새겨진 에온(Eon)의 상징이 성난 바람을 따라서 펄럭이는 모습이 그녀의 망막에 새겨졌다.

‘읏!’

능성 반대편에서 내리쬔 햇빛이 실핀의 시야를 앗아 갔다. 겨우 빛에 적응하자, 분명히 아무도 없던 능선 정상에 누군가가 서 있었다.

‘언데드…… 가 아니잖아.’

어둠이 번뜩였다.

<암천>

칠흑의 광선이 구출대를 압사하려던 비행정을 관통했다. 쿠웅! 동력원이 아예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 건지 힘을 잃은 비행정이 좌측에 추락했다.
잔해에서 상위 언데드가 먼저 기어 나왔지만 그 순간 놈들의 발밑이 갈라졌다.

───!

강렬한 폭발이 솟구쳐 올라와 비행정을 통째로 지워 버렸다. 엄청난 열풍에 잠깐 정신을 빼놓고 있던 실핀이 균형을 잃었다.

콰드드드득.

안장에서 낙마한 그녀가 재주 좋게 몸을 비틀어 경사면에 미끄러지듯 착지했다. 재빨리 고개를 들어 능선을 올려다봤다.
먼저 목적지에 도착한 카브렐이 말에서 뛰어내려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카브렐이 하나뿐인 하늘을 뵙습니다.”
“일어나서 대기하도록.”

하늘?

‘하늘이 누구지?’

듣기 좋지만, 낯선 목소리다.

실핀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녀는 타국의 소식에 관심이 없었고, 로니아 왕국 밖을 벗어난 적이 없어 상상력이 협소했다.
무엇보다 상대의 정체를 느긋하게 추측할 여유가 그녀에겐 없었다.

후욱.

능성 반대편에서 중형급보다 거대한 비행정 한 척이 등장했다. 전반적으로 어두웠는데, 대부분의 선체가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것이 언데드가 점령한 비행정 두 척을 향해 가속했다.

‘지, 지원군이라고? 비행정 함대가 왔어? 근데 저러다 부딪칠 텐…….’

무지막지한 충돌음이 확산했다. 라우나크 후작이 보낸 비행정들이 반파되었다. 그에 반해 암흑 성채를 연상시키는 비행정은 멀쩡했다.
잔해와 함께 떨어지는 언데드 중에서 귀족 시체 셋이 보기 좋게 대지에 착지했다.

[못 보던 비행정이군. 이 시점에서 지원을 와 봤자 에스티리아 왕국일 텐데. 왕국이 언제 저런 비행정을 아티슨 마탑에 의뢰한 거지?]

[흠집 하나 나지 않다니. 물리 저항력이 그야말로 격이 다르구먼. 확보해서 라우니크 후작께 진상하면 되겠어.]

[저자…… 중형급 비행정을 알 수 없는 마법으로 단숨에 파괴했다. 보호막을 거두었다고 해도 위험한 파괴력. 최고위 마도사로 추정해 대응한다. 새로 얻은 힘을 시험하기엔 좋은 기회다.]

귀족들의 창백한 몸뚱이가 꿈틀거리더니 기괴한 형체로 변화했다.

피골이 상접한 거대한 갑옷 기사.
죽음의 기운을 퍼뜨리는 보옥을 양손으로 감싼 리치.
고풍스러운 의복을 걸친 채 섬뜩한 창을 어깨로 짊어진 반투명한 망령.

스하아아아아아.

그들이 내뿜는 짙은 냉기와 사기에 실핀이 침을 삼키며 주춤했다.

저것이 무엇인지 그녀도 알고 있다.

죽음에게서 힘을 얻은 배신자…… ‘시체의 산’을 쌓아올려 강력한 언데드가 된 쓰레기들이다. 산 자의 제단을 쌓는 데 크게 기여한 개체일수록 더 강한 힘을 부여받았다.

‘우리 파티도 이기지 못한 ‘타락자’가 셋.’

구출대의 전력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데.

어느샌가 능선에서 나타난 사람이 타락자들 앞에 도달했다.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를 둘러싼 잿빛이 눈에 띄었다.

“아, 도와줘야……!”

콰아아앙!

갑옷을 두른 타락자의 몸이 터져 그 잔해가 뒤로 길게 이어졌다.
강력한 물리력에 직격당한 듯.
지면을 디딘 각반만이 비현실적으로 덩그러니 남아 바닥에 쓰러졌다.

[뭣.]

타락자 리치와 망령이 동요를 보이며 양쪽에서 굽이쳤다. 매서운 창날과 고위계 흑마법이 동시에 하나의 목표를 노렸다.
검붉은 섬광이 번쩍였다고 느낀 순간 저 멀리 있는 산맥의 일부분이 사라지며, 타락자들이 흔적도 없이 소거되었다.

그리고───붉은 재해가 현현했다.

“…….”

실핀이 즉각적으로 당긴 활시위에서 천천히 힘을 풀었다. 옆을 지나친 구출대도 아예 멈춰 서서 그녀와 같은 광경을 보았다.

공기가 뜨겁다.
땀이 흘러내렸다.

구름을 뚫고 떨어진 거대한 화염 운석이 지축을 뒤흔들었다. 산맥 중앙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형용할 수 없는 충격파에 실핀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곳에서 솟구친 화염 기둥이 하늘에 닿아 거센 폭풍이 되어 몰아쳤다.

‘뭐야, 이거.’

지금까지 도시보다 거대한 화염 폭풍을 본 적이 있는가.
실핀은 없었다.
누구도 없을 것이다.

“방금 그건…… 메, <메테오>…… 7, 위계.”

구출대원 중 늙은 마법사가 다리에 힘이 풀려서 쓰러졌다.

“혹시, 서, 설마 카브렐 경이 말한 희망이…….”
“그 설마다.”

카브렐이 단언했다.

“윗분께서 돌아오셨다.”

후욱.

주변의 언데드를 모조리 태워버린 화염이 일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싱그러운 자연이 원래의 아름다운 색채를 되찾았다.

그리고.

실핀의 옆에 베르덴이 있었다.

“카브렐, 너희들이 구출하기로 했던 생존자는?”
“예! 여기서 북서쪽에 있습니다. 그러나 라우니크 후작의 배신 탓에 언데드의 수가 급증해 생사 여부가 불투명합니다.”
“확인해 보면 알게 되겠지. 가는 길이니 생존자를 확보해 틴폴드로 이동한다. 그동안 로니아 왕국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듣겠다. 전원 아르시스에 탑승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로니아 왕국의 비행정을 정면에서 박살 낸 냉혹한 비행정이 착륙했다. 카브렐이 곧바로 정신 못 차리는 구출대를 데리고 승선했다.

실핀은 여전히 주저앉은 모습으로 베르덴을 올려다봤다. 그녀는 아직 베르덴의 정체를 추론하지 못했다.

베르덴이 말했다.

“부축은 필요 없어 보이는데.”
“저, 혹시.”

실핀이 물었다.

“신…… 님이세요?”

베르덴은 내심 정곡을 찔려 움찔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는 난데없이 신을 언급한 실핀을 흥미롭게 내려다봤다.

“그렇게 보이나?”
“아, 아닌가요?”

실핀은 자기도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황급히 일어나 연신 감사를 전하고는 구출대원을 뒤따랐다.

베르덴은 신격을 감췄다.

하지만 믿음은 막을 수 없다. 많은 믿음이 모이면 일반적으로 그저 영웅이라 칭송받을 뿐이겠지만 그는 예외였다.

실질적인 변화가 생긴다.

아무리 철저히 은폐해도 베르덴은 결국 신이기 때문이다.

* * *

언데드가 발호하는 상황에서 틴폴드는 난민의 보루가 되었다. 광산까지 활용해 가며 그들이 주거할 장소를 마련했다.

틴폴드의 주민과 난민 사이에 갈등이 심심찮게 일어나긴 했지만, 그럴 때마다 힘 있는 자들이 열심히 중재했다.

안정이 최우선이다.

불만이 터져 버려 불신으로 이어지면 틴폴드에서 언데드가 생길 것이다. 그들의 잘못된 마음의 선택을 막아야 한다. 인간을 포기하지 않게 만드는 희망이 있어야 했다.

강한 희망이…….

틴폴드에서 카인은 희망의 상징이었다.

카인은 거리가 내려다보이는 건물 안에서 마검 [크레티마]를 껴안은 채 휴식을 취했다. 틈틈이 잠을 자야 했다.
밖에서든 안에서든 무슨 사건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므로.

톡.

창가에 벌레가 앉았다.

반사적으로 움직인 카인의 검이 날벌레를 반으로 갈랐다. 창가가 일부 갈라졌다.
시답잖은 일로 잠에서 깨어난 그의 표정이 신경질적으로 일그러졌다.

그렇다.

카인은 마모되고 있었다.

머리가 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통솔하는 건 전혀 쉽지 않았다. 하물며 그들이 배신하지 않도록 희망을 보여 주는 것도.
에온의 일원만 데리고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안락을 찾지 마라.
욕망을 버려라.

카인은 머릿속으로 각오를 되뇌며 마음을 굳건히 다졌다. 사람들을 버리는 선택지는 선배도, 유니아도, 현자님들도 실망할 것이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건 카인이 선택한 길이었다.

“고생했다, 카인.”
“전…….”

카인이 순간 마검을 움켜잡았지만 끝내 휘두르진 않았다.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선배…… 입니까?”
“그래.”

베르덴이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

“구출대는 생존자를 싣고 아르시르로 이쪽으로 오고 있다. 나는 먼저 도착했고.”
“꿈…… 은 아니겠죠?”
“현실이다.”

베르덴이 손가락을 튕겨 잠시나마 카인의 정신을 일깨웠다.

“카브렐에게 자초지종은 들었다.”

역시 꿈이 아니었다.

“라테온에게 안내해라.”

* * *

틴폴드에게는 중환자를 모아놓은 별도의 구역이 따로 있다. 거기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군림자 라테온이 누워 있었다.

후욱…… 후욱…….

사기가 넘실거리는 칼날이 목에 박힌 라테온이 옅은 숨을 내쉬고 있다.
라테온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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