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mit Breaking Genius Mage Chapter Raws 995

995화 크세리온 제국 (2)

쿠르르르릉…….

안 그래도 우중충하던 하늘이 어느샌가 한층 더 깊어진다. 회색빛 구름은 더 어두워져 잔잔한 하루에 흠집을 냈다.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진다.

“갑자기 비가, 감기 걸리겠다. 얘들아, 어서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
“네, 원장님!”
“월릭 할아버지? 할아버지도 어서 들어오세요!”

베르덴과 로벨린을 키운 라스카벨의 고아원장 마일라가 아이들의 머리를 가려 주며 따뜻한 집으로 들여보냈다.

델하룬 북부의 종군 마법사이자 베르덴에게 처음 마법을 보여 주었던 월릭은 거리에 멈춰 서서 하늘을 올려다봤다.
마도를 개방했다.
상위 격의 마도사의 경지조차 어렴풋이 이해하는, 그가 개척한 길이 하늘 너머 다른 풍경을 조금이나마 인지했다.

“번개…… 가.”

불안정한 대기를 본 적이 있는가.

델하룬의 북부에서 마경과 가까운 남서쪽에는 쉼 없이 벼락이 치는 장소가 있다.

투르 로그아.

하늘을 향한 듯한 푸른 번개와 찰나에 나타나는 붉은 번개를 목격할 수 있는 해역.

그곳에선 모든 비행 활동이 전면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일반적인 낙뢰보다 파괴력이 강한 터라 강력한 원소 저항력을 갖춰도 직격하면 반파, 혹은 즉사를 면하기 어려운 탓이다.

젊었을 적의 월릭은 동료들과 해안 절벽에서 그 광경에 압도된 적이 있었다.
그런 과거조차도 선명한 현실에 덮여 쓰이고 말았다.

정신이 아득해졌다.

주인 없는 땅을 집어삼키고도 남을 듯한 거대한 벼락이, 하늘 너머의 하늘에 숨어서 월릭을 아우르는 도시 어레인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반토레온 로든 타라니스일세.”

푸른빛이 특징인 짙은 수염과 눈썹, 머리카락을 자랑하는 노인, 반토레온이 황야의 거친 사내들처럼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치직, 치지직.

어레인의 주점 내부의 모든 술병 안에서 미세한 전류가 명멸했다. 방전음이 귓가를 간질인다. 금속은 열을 품기 시작했다.
일정 이상 전도성을 가진 모든 물체에서 무수한 전하가 움직였다.

“냑?!”

전신을 타고 흐르는 정전기에 케이렐의 고양이 털이 바짝 섰다. 케버렛 부족의 수인은 촉각에 특히나 예민했다.

이자벨라와 유니아도 순간적으로 근육이 경직된 느낌에 흠칫했다.

‘마치 번개, 그 자체.’

베르덴이 동대륙 남부로 향한 사이에 주인 없는 땅에서는 새로운 통신 장치를 설치해 통신망을 일부 복구했다.
다른 대륙과 아직 이어지진 않았지만 중앙 대륙 내에서는, 현재 남쪽에 자리한 벨마이르 왕국과 딘엘 왕국의 북쪽까지는 통신이 가능했다.

이미 라우드 백작을 보내 지원 요청한 벨마이르 왕국에 비행정 세 척을 보냈다. 다음으로 이자벨라와 유니아가 나머지 비행정 함대를 이끌고 쭉 남쪽으로 향할 계획이었다.
남쪽의 상황을 면밀히 파악할 겸.
베르덴이 언급한, 푸른 산맥이나 어딘가에 있을 조각가를 찾기 위해서 말이다.

그런데 출발하기 직전에 이자벨라가 어레인에서 영혼이 떨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처음에는 순수한 직감이었다.
이후에는 형안을 개안해 누가 원인인지 존재를 특정하려 했다.

변두리 주점에서 한가롭게 술을 주문하는 노인.

───특별한 눈을 가졌군. 소란을 피울 생각은 없네. 그저 베르덴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자 할 뿐이지.

철저하게 감춘 존재감 속에서 초월자의 본질을 목격했다. 반토레온의 영혼은 수없이 많은 벼락으로 이루어진 듯 무척 시끄러웠다.

그렇게 반토레온을 제외한 이들만 긴장할 뿐인 대치 상황에서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빨리 베르덴이 복귀했다.

이것이 전말이었다.

“…….”

주점에 들어온 베르덴이 반토레온이 앉은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 발길을 따라서 푸른 전류가 감도는 공간에 변화가 생겼다.

──! ─! ───!

검붉은 전류가 곳곳에서 현현하여 푸른 전류와 충돌했다. 어떠한 물질적 피해도 없이 불씨가 튀는 소리만이 고막을 자극했다.
번개가 서로를 잡아먹기 위해 물들고 잠식되기를 반복했다.

“경지에 오른 제어력. 역시 개념에 통달했군.”

반토레온이 한 차례 손을 저었다. 가장 입맛에 맞았던 술이 담긴 병이 전하(電荷)의 인력으로 진열장에서 끌려 나왔다.

꼴꼴꼴.

거침없이 깨끗한 유리잔에 손수 술을 따라 낸 뒤 가볍게 밀었다. 베르덴이 발걸음을 멈춘 것과 동시에 술잔이 베르덴 바로 옆에 정지했다.

“내가 한잔 사겠네.”
“여유로워 보이는군.”
“고대어를 구사할 줄 아는가? 하하하하, 뭐, 재회 아닌 재회가 진심으로 기쁠 뿐이네. 그보다 거리에서 인공 골렘이란 것이 경비들과 함께 순찰하고 있는 걸 보았네. 정말 미래에 온 느낌이 팍 들던데.”

반토레온이 등 뒤에 눈길을 주었다.

“캐버렛 부족의 수인을 제외하고, 저 둘. 상당한 마도사야. 벽안의 여인은 잘 가르친다면 마법계에서 훗날 정점을 논할 수 있게 되겠지. 그리고 기묘한 눈을 가진 미인은…… 나로서도 잘 모르겠군. 이런 전기 신호는 처음이야.”

그는 타고난 통찰력이 위계에 비해서 대단하지 않지만, 생체 전기로 상대를 꿰뚫어 봄으로써 단점을 극복했다.

“어쨌든.”

반토레온이 가득 채운 술잔을 빙빙 돌렸다.
독한 향취가 후각을 보듬었다.

“동시대는 아니더라도 여제는 내가 본 초월자 중 손꼽히는 힘을 가졌네. 아무리 장비가 부족해도 결코 무력하게 당할 존재가 아니지.”
“…….”
“그런데 자네는 부상을 입은 듯하지만 치명상과 거리가 멀어 보이는군. 우리와 똑같은 눈높이를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말이야. 즉, 자네의 경지가 그 이상으로 여타 초월자들과 궤가 다르단 의미겠지.”

반토레온이 건넨 술잔이 다시 테이블을 가로질러 되돌아 간다. 베르덴이 자리에 앉지도 않은 채로 그의 술을 거절한 것이다.

베르덴이 눈짓했다.

베르덴이 복귀하기 전에 주점의 주인과 손님들을 내보냈던 케이렐, 이자벨라, 유니아는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냥 구경하라고 하는 것이 어떤가? 고위 존재 간의 대화는 별게 아닐지라도 하위 존재에게 뜻깊은 경험이 되곤 하니. 드물게 깨달음에 가까운 영감을 줄 때도 있고. 언어가 달라서 알아듣지 못해도 이 만남 자체가 경험이 될 걸세. 무엇보다…… 안이나 밖이나 다를 바 없지 않나?”

반토레온의 눈빛에 뇌광이 서렸다.

“어차피 우리가 충돌하게 되면 이 도시는 흔적도 찾을 수 없을 텐데.”

파지지직!

서로의 격이 맞부딪치자 사이에서 격렬한 전격의 벽이 생겨났다. 공간이 갈라진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허공에 붉고, 푸른 전류가 나무뿌리처럼 얽혔다.

유니아의 동공이 흔들렸다.

베르덴이 저렇게나 분노한 건 보헤미른 마탑주의 두 번째 제자인 레이셴 테일로드를 처리할 때 이후로 처음 봤다.

“그걸 협박이라고 하나?”
“협박이라고 들리는 것은 자네가 만전의 상태가 아니기 때문이지.”
“내가 어떤 상태든 다를 바 없다.”

불식간에 닥쳐 온 최악의 상황에서 언제나 최적의 상태이기를 바라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이 잔혹한 세상에 그런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아주 좋은 마음가짐이네. 전장에서 만약을 찾는 것만큼 미련하고 우매한 짓은 없지.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떤가?”

벼락을 장막처럼 두른 술잔이 격의 충돌 지점을 넘어갔다. 그것이 또다시 테이블 위로 쭉 미끄러져 베르덴에게 갔다.

“자네가 내게 진 빚을 없애 줄 테니 대화의 시간을 갖는 걸로.”

반토레온이 술잔을 까딱거렸다.

“대광역. 제법 괜찮은 마법이지 않았나?”

베르덴은 보헤미른 마탑에서 습득한 반토레온의 수기에서 본 <케라우스 대광역>을 분석 및 재해석해 <인테리스 대광역>을 구축했다.
당시에 반토레온은 고인이었지만 그의 마법에서 배움을 얻은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일리가 있다.’

베르덴이 착석해 술잔을 집었다. 둘이 대립하던 격을 거두었다. 술잔을 깃들었던 반토레온의 벼락도 허공에 흩어져 소멸했다.

“날 찾았다고 들었다.”

베르덴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넌 무엇을 추구하지?”
“내 전부를 부딪칠 수 있는 존재.”

초대 네크로맨서의 기억에서 엿보았던 것처럼 반토레온은 그야말로 전투광에게 걸맞은 강한 열의를 내비쳤다.

“나는 최고의 전투를 치르고 싶네.”
“그럴 거라면 당장 옛 왕을 기다리는 편이 간단할 텐데. 초월자 전쟁에서 너를 포함해 다수가 협력해서 겨우 패퇴시킨 적이니.”
“아칸드…….”

반토레온이 과거를 보며 술을 머금었다.

“아칸드는 강하지. 처음 만났을 때 충격적이었네. 그보다 강한 초월자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을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아칸드는 절대로 내가 원하는 존재가 아닐세.”
“어째서지?”
“아칸드에게는 주체성이 없으니까. 뭐랄까. 마치 꼭두각시와 같다고나 할까? 그때 이런 소리를 했으면 미친놈 소리만 들었겠지만.”

그가 손을 꽉 쥐었다.
짧게 남을 때리는 시늉을 하며.

“이 타인을 파괴하는 모든 행위는 극도의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내면에서는 쉴 새 없이 감정의 변화를 일으키지. 그러나 아칸드의 감정은 절제되었고 또한 고요했다. 사무적이었어. 위대한 투쟁심을 가졌으나 그건 아칸드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었네.

베르덴은 내심 눈을 가늘게 떴다.

“긴 시간이 지났다고 하지만 아칸드의 투쟁심이 바뀌었을까? 그럴 리가. 아칸드는 여전히 내가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 하겠지. 하여 내 이상적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걸세.”

반토레온은 운명을 모르는데도 아칸드의 운명의 사도로서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었다. 마법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투지(鬪志)를 거론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다르다는 건가?”
“초위 마법의 힘으로 드라벤의 영혼에 깃들었을 때 자네의 마도를 보았네. 그 압도적인 개념을 내뿜던 검붉은 번개를……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아나? 아, 참혹하고도 아름답구나.”

쿵!

반토레온이 연구를 성공한 마법사처럼 기쁨을 감추지 않고 테이블을 두드렸다.

“베르덴, 자네는 처절함이 무엇인지 알아. 그렇지 않고서는 개척할 수 없는 마도이니. 난 그 파괴로부터 자유를 느꼈네. 아칸드와 감히 비교할 수 없는 주체성 말이네.”
“나에 대해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평생 그것만을 쫓았으니까.”

반토레온은 세 차례 연거푸 술잔으로 테이블을 짧게 두드리다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초월자 전쟁 당시의 나는 7위계였네. 나름대로 활약은 했지만 아칸드에게 미치지 못했지. 일대일론 상대조차 되지 않았을 테니. 연합의 승리로 종전한 뒤 나는, 나의 경지를 되돌아보며 아무도 없는 장소에서 홀로 마도에 몰두했네. <케라우스 대광역>을 창조한 일기도 그때 만든 것이지. 결국 시간이 흘러 8위계에 도달하긴 했지만…….”

아쉬움에 삼키는 술.

“이미 나의 수명은 다하고 있었고, 세상엔 내 이상을 충족시켜 줄 이도 없었네.”
“그래서 주검의 영광과 거래를 맺었나.”
“하하, 이 시대에서 자네를 만나기 위해서였지.”

반토레온이 술잔을 높이 들었다. 천장을 장식한 마석등의 빛이 유리잔과 술에 구절되어 여러 빛으로 반토레온의 얼굴을 비추었다.

“알다시피 이 시대의 평화는 이미 끝났네. 사방에 죽음이 만연해.”
“너희가 이행한 약속 탓이지.”
“달리 말하자면 약속을 지켰으니 주검의 영광과 상종할 이유가 없다고 볼 수도 있지 않겠나. 베르덴, 하여 난 자네와 거래를 하러 왔네.”

마침내 본론이 이어졌다.

“자네가 나와 전력으로 싸워 주겠다고 약속하면, 자네 편에 서겠네. 일종의 증거금으로 아칸드의 새로운 군세에 대한 정보도 알려 주지.”

정보?

“여제와 대제와 달리 나는 마법사네. 단 한 번도 탐구를 멈춘 적이 없어. 영혼이 돼 아니무스에 갇혔을 때조차도. 이 세상을 한정적으로밖에 볼 수 없었지만, 그렇기에 이 세상이 보지 못한 것을 나는 기어코 보고 말았지.”

반토레온은 자연스럽게 베르덴 옆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정보와 전력. 자네에게 필요할 것이지. 초월자 전쟁의 진정한 기록을 접했다면 이미 알고 있을 텐데. 크세리온 제국에서 가장 위험한 존재는 아칸드뿐만이 아니라는 걸.”

그가 술잔을 내밀며 건배를 권했다.

“그 드래곤도 부활할 걸세. 다만 그때보다 더 강해진 상태로.”

* * *

아칸드가 여섯 조각으로 분해되어 봉인되었을 때 그 영향으로 크세리온 제국의 언데드 군세가 모조리 소멸했다.

그리고.

초월자들의 악착같이 협공해서 큰 피해를 당한 유골룡도 힘을 잃어버리며 풍랑이 이는 바닷속으로 추락했다.
용골을 얻어 낼 여유도 없이 그것은 폭풍과 함께 심해로 사라졌다.

쿠구구구구구구구구구.

광활한 해구(海溝)에서 시작된 대지진에 대해가 격동했다. 떨림이 서서히 커지더니 바다에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윽고 화산처럼 분출한 바닷물이 폭포가 되어 상공에서 떨어졌다.

4대 고룡의 사체로 제작된 그 유골룡이 커다란 성채에 비견되는 골격을 내보이더니, 천천히 세상을 굽어보았다.
직후 강력한 사기를 감지하고는 두개골을 틀어, 두개골 안쪽에서 빛나는 두 개의 푸른 안광을 차갑게 내뿜었다.

[아칸드.]

크세리온 제국의 위대한 사룡(死龍)이 대륙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언어를 구사하며.

* * *

한편, 히아레마르 내해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이변이 발생했다.

“어서 본국에 전하게!”
“심상치 않다……! 후퇴! 후퇴!!”

내해의 중심부를 감시하던 비행정과 해양 선박이 빠르게 물러나고 있다. 그곳은 베르덴에게 파괴당한 섬이 있던 장소였다.

쿵.

간헐적으로 발생한 강력한 충격파가 수면을 다시 흔들었다.

쿵.

히아레마르 내해 전역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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