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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보이지 않는 격류(6)>영양가 없는 사람들의 질문에 질려 보고를 마쳤다.
조사 자리가 끝나자마자 장내의 분위기는 확 풀어졌으며 금방 소란이 일었다.‘애초에 긴장감이 흐르지도 않았지만.’분위기를 보아하니 정식 문서를 만들어 공유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애당초 중요한 문서가 만들어질 질문 따위가 튀어 나오지도 않았지만.
어쩌면 다른 부서에서 또 똑같은 자리를 요구할지도.
각 부서별로 같은 일을 매번 반복하는 게 무림맹의 병…… 아니, 아름다운 전통 아니겠는가.
무림맹의 이런 일 처리가 하루이틀은 아니지만, 새삼 진이 다 빠진다.
“끝났으니 술이나 푸러 가지!”
“오늘 자네가 사나?”
“시벌 내가 왜!”
“아까 벽 부순 거 보고 올릴까?”
“…….”
한편으론 씁쓸하기도 하다.
어떤 적이 나타나든 긴장하지 않는 모습은 일순 여유를 보여주는 듯하지만, 미래의 일을 아는 나로선 그저 방심하고 있는 모습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혐오스러운가 보군.”
아니 뭘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표현하냐는 생각을 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았다.
그곳엔 여태껏 나에게 단 하나의 질문도 하지 않았던 사내가 나를 묘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배포가 크군. 아니면 표정 관리를 잘하는 건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느 쪽이든 별로 좋지 않은 태도야. 상관은 자신이 파악할 수 없는 부하를 좋아하지 않거든.”
“……
그렇군요.”
납득이 되진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그럴 게 이 인간은 진짜 속을 알 수 없는 부하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고?
“남의 감정을 함부로 예단하는 것보단 속을 잘 숨기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바로 본인이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인간이니까, 스스로 얼마나 음흉한지 잘 아는 탓이겠지.
이른바 동족 혐오.
뭐?”
항상 웃는 가면 같았던 사내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진다.
호오, 전생에도 이런 표정 짓는 건 본 적이 없는데.
내 질문이 어지간히 의외였던 걸까.
하지만.
“하하. 재밌는 친구군.”
이내 그의 얼굴이 다시금 웃는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나는 그 모습에서 일말의 호감이나 친밀함도 느낄 수가 없다.
왜냐면 이 사람은 ‘그’ 백호각 대당주 정인보니까.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린 정인보가 말을 이었다.
“천목각에서 이미 묵림의 조사를 시작했네. 지금 천목각에는 매일 실시간으로 전서응이 날아들고 있지. 자네에게 이야기를 듣는 건 적을 더 알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네.”
인자한 목소리로 오늘의 자리를 친절히 설명해 준다.
내 기분을 생각해서 이야기해 준 건가.
이제 와서 굳이?
내 무감한 반응에 아랑곳 않고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 저들을 너무 한심하게 생각하지 말게. 이번 사건의 흉수가 밝혀지면 가장 바쁠 사람이 저들이지. 저들 나름대로 다음 일정에 최대한 대비하는 중이야.”
저 대가를 바라지 않는 듯 꾸며진 호의를, 가벼워 보이는 친절을.
나는 순수하게 받아들이며 고개를 끄덕일 수가 없었다.
지금 문제가 되는 학관 교관들 대다수가 백호각에서 왔고, 그 ‘정인보’의 수족 같은 이들이었으니까.
지금 그들이 집행각 지하에서 혹독히 고문받고 있는 걸 생각하면.‘이 안에서 나를 가장 싫어할 사람은 정인보이겠지.’그런 존재가 보내는 호의와 친절이라니.
꼭 죽기 직전에 마주하는 저승사자의 미소 같지 않은가.
“그러니 이런 조사 자리는 가볍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
“알고 있습니다.”
꺼림직함이 가시지 않는 인간이었기에 나는 한시라도 빨리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그는 슬그머니 자리를 벗어나려는 나의 어깨를 부여잡고 내 귓가에 작게 읊조렸다.
“물론 나는, 더 자세하고 가혹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네.”‘가혹한’이란 단어가 유달리 크게 들리는 건 왜일까?
“물론 자네에 대해서 말이지.”
그는 마치 내 얼굴에서 뭔가를 읽어 내려는 듯 집요하게 내 얼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손을 내 어깨에서 내렸다.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지 모르겠습니다.”
“보고서에서도, 자네의 설명에서도 느낀 게 하나 있지.”
“뭐지요?”
“너무 잘 대응했다는 것.”
결국은 또 제 식구 감싸기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찰나.
“마치 ‘그런’ 적이 나타날 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이야.”
시발 지금 뭐 하자는 거지?
기습적으로 행해지는 그의 행동에 정신이 없다.
“사술? 천라지망? 추격대? 다 예상할 수 있지. 그런데 말이야…….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을 상대로 한 치의 실수도 없이 합(合)
을 맞춰 본 듯 대응하도록 지휘할 수 있었던 건, 뭐라 설명해야 하는 거지? 단순히 능력이 우수해서?”
정인보는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속으로 태을진경의 구결을 외며 최대한 차분하게 대답했다.
“흐음, 운이 좋아서 그랬다고 하죠.”
“운…… 운이라. 참 좋은 단어지.”
제 놈도 같은 자세로 나를 보기 힘든 건지 고개를 살짝 살짝 돌리긴 하는데, 시선은 계속 내 얼굴에 고정되어 있다 보니 그 모습이 기괴하기 그지없었다.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어지는 편리한 단어이기도 하고.”
“아, 그러고 보니 우리 각 출신 교관들 때문에 고생한 것에 대해선 사과하지 않았군. 미안하네. 내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아 자네에게 피해를 주었군.”
그는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소리를 지껄이며 악수를 청했다.
으…… 갑자기 악수는 뭔 악수람머뭇거리다 잡은 그의 손은 뱀의 비늘처럼 차갑고 축축했다.
“백호각에 관심이 있었으면 좋겠군. 돌아와야 할 당주들이 금옥에 갇히는 바람에 빈자리가 많이 생겼거든.”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했네.”
대전에 있는 다른 이들에게서도 받은 똑같은 제안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소름 끼치게 들렸다.#천목각을 나서서 바람을 좀 쐬니 정신이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근래에 계속 이렇게 머리 어지러운 일들이 생겨난다.
제대로 감정을 추스를 잠깐의 여유도 없이 몰아치는 것이, 벌써 전쟁을 경험하는 느낌이다.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계속 쌓이고, 쌓이고, 또 쌓이는 그런 기분.
“아우!!! 으아아…….”
어떻게든 짓눌러 오는 무게를 이겨내려 소리를 지르려다 문득 눈앞에 있는 여아와 눈이 마주쳤다.‘뭐지?’꽤 잘 차려입은 듯한 옷차림과 달리, 여아의 몰골은 몹시 꾀죄죄해 보였다.
그럴듯한 옷차림과 모순적이게, 관리를 받지 못한 느낌이라고나 할까?‘그보다 무림맹에 왜 애가…….’그때, 나를 빤히 바라보던 여아가 대뜸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무사야?”
아닌데.”
“무사도 아닌데 왜 무기를 차고 있어?”
“아저씨 아니라는 말이었는데…….”
“아저씨 그럼 무사야?”
허! 하! 내가 어딜 봐서! 이래 봬도 제법 미남자라 불리…….
“아저씨 무사 맞아?”
보호자가 있는가 싶어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지만, 아이한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너…… 여기 어떻게 들어왔니?”
“걸어서.”
“아니…….”
머리가 지끈 아파온다.
당장에 정인보가 한 말이 무슨 의도였는지 정리도 해야 하고, 무각들이 바빠지리란 건 무슨 얘긴지도 알아봐야 하는데.……
그렇다고 그냥 가자니 아이가 너무 신경 쓰였다.
“여긴 원래 함부로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야.”
“응, 알아.”
“그래…… 응? 안다고?”
무림맹에 면회를 온 건가?
무림맹에 복무하는 동안 가문이나 본산으로 가는 데 제약이 걸린다.
때문에 가족들이 면회를 오는 경우가 자주 있었다.
“응. 매일 입는 옷은 입으면 안 된다고 했어. 그래서 새 옷을 얻었어.”
여아는 치맛자락을 뽐내듯 빙그르르 한 바퀴 돌아 보였다.
그나저나 얘 내 말은 전혀 듣지 않고 있었구나.
내가 전문성을 검증받은 ‘당서희 돌보미 자격’을 가지고 있지만, 그게 또 모든 또래 아이들에게 통하는 건 아닌가 보다.
아…… 당서희 어른이었지.
어찌 됐든.
아무에게나 인계하고 학관으로 돌아가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꽈악
-아이가 내 검을 부여잡았다.
“오라버니랑 놀고 싶어.”
허, 오라버니? 참 나.
이제 와서 아양 떨어도 소용없어.”
벌써 아저씨라고 세 번이나 들었기 때문에 내 기분은 되돌이킬 수가 없다.
일부러 횟수를 세본 건 아니다. 절대 기억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
“오라버니를 볼 수 있다고 해서 왔는데, 오라버니를 못 봤어.”
나한테 한 얘기가 아니었구나.”
애들 눈에 나는 확실히 아저씨로 보일 뿐인가?
잔혹한 현실에 입맛이 쓰다.
“아무튼 이 아저씨 아닌 오라…… 아니, 삼촌은 할 일이 많아서 가볼게. 오라버니 잘 만나고, 뭐…… 구경할 건 없지만 잘 구경하다 가렴.”
말을 남기고 돌아서려는데,꼬옥
-녀석이 내 옷자락을 손으로 움켜쥐곤 맑은 눈으로 올려다본다.
이렇게 쳐다보면 또 마음이 약해지는…….
“아저씨가 오라버니를 찾아주면 안 돼?”
“응, 안 돼. ‘아저씨’는 힘이 없는 사람이야. 애당초 여기 사람도 아니고.”
“삼촌…….”
“흠……
그럼 피곤하지만 좀 찾아볼까? 말까?”
고민하는 척을 하고 있자니 녀석이 눈을 초롱초롱 빛낸다.
내가 턱을 매만지며 계속 고민하자, 녀석이 큰 결심을 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 보니 삼촌이 아니라 오라버니인 거 같아. 무사 오라버니.”
허 이 녀석, 영악한 거 봐라.
그래도 왠지 밉지가 않다.
나는 피식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툭툭 두들겼다.
“알았다. 찾아주마.”
“진짜?”
“그래.”
왔던 길을 돌아가야 하긴 하지만 무림맹 내에 면회 가능한 장소는 몇 군데로 정해져 있으니까.
그쪽을 좀 돌다 보면 금방 오라버니란 놈이 나오겠지.
“너희 오라버니 이름이 뭐냐?”
“응! 우리 오라버니 이름은 금…….”
아이가 신이 난 표정으로 대답하려는 찰나.
“태선아! 금태선!”
뒤쪽에서 사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헐레벌떡 아이에게 달려왔다.
“엄마!”
“너 어디 갔었어!”
아이의 이름이 태선이었나 보다.
그런데 중년 여인의 옷차림도 참으로 기묘하다.
태선이처럼 옷 자체는 꽤나 새것 같은데…… 제대로 빨거나 손보진 못한 느낌이랄까?
태선이처럼 대놓고 꾀죄죄한 건 아니지만, 목덜미나 손목 부분이 시꺼멓다.
중년 여인은 태선이의 엉덩이를 몇 대 때리더니 나에게 연신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혹시 아이가 무사님께 실례를 저지르진 않았나요?”
“혼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렇게 예의범절이 뛰어난 아이는 처음 봅니다.”
“네?”
중년 여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이를 바라봤고, 아이는 거 보라는 듯 당당하게 제 엄마를 노려봤다.
“부인! 태선이를 찾았소?”
이어 일행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하나둘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참…… 조합이 묘하다라는 것이었다.
일가친척이라고 하기엔 생김새가 각기 달랐고, 한 가족이라기엔 나이대의 구성이 너무 다양했다.
더구나 나이 든 이들이 내 또래 즈음으로 보이는 젊은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는 모습은 이질감을 더욱 짙게 만들었고.
“대체 뭐 하는 겁니까.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했잖아요.”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어서…….”
종국엔 그런 대우가 당연하다는 듯 하대하는 내 또래 놈들의 태도가 영 아니꼬웠다.
아까 감정을 너무 숨겨서였을까?
나도 모르게 나온 한숨에 젊은 놈들 중 하나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꼬나보았다.
“뭐냐 넌?”
“좆도 아닙…… 아, 실례.”
감정 제어가 안 되니까 이상한 말이 막 나가네.
그러니까, 이럴 땐 집에 있어야 하는데. 거 천목각에선 괜히 불러내서는…….
“하……! 다시 말해봐. 뭐라고 했냐?”
“허어, 아직 젊어 보이는데 벌써 귓구멍이 막혔나. 좆도 아니라고.”
“이 새끼가…….”
앞뒤 없이 내게 달려들려던 젊은 놈은 옆에서 급하게 제지하는 다른 놈의 손에 가로막혔다.
그러곤 저들끼리 귀엣말을 하더니, 내게 달려들려던 살쾡이 녀석이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혹, 흑염룡 소협 되시오?”
“아니라잖……. 그럼 진소운 소협 되십니까?”
저렇게까지 물어보면 나를 알고 있다 봐야겠지.
뭐 더 이상 숨길 수도 없겠군.
“후…… 맞습니다. 진소운입니다.”
그때, 젊은 사람들 사이에 홀로 섞여 있던 중년 남자가 앞으로 나오더니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이런!! 영웅을 몰라뵙고 실례를 범할 뻔했군.”……
이건 또 뭐지?
이 사람의 옷차림은 여태껏 봐왔던 그 누구의 차림보다 특이하다.
분명 해진 무복을 입었는데, 그 무복이 엄청 깔끔하다.
대체 이 사람들 정체가 뭐…….
“나는 일학문의 문주 송주생이라 하네.”
“아…….”
송주생이 자신의 소개를 했지만 내 시선은 절로 다른 곳을 향했다.
엄마의 호통에 아직 뾰로통한 표정이 가시지 않은 태선이에게로.
“묵림에서 흑염룡 소협의 활약상에 대해선 익히 들었스…….”
오라버니를 만나러 왔다는 아이는 결국 오라버니를 만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저희 일학문의 아이들이 그곳에서 많은…….”
그의 오라비인 금태종은……
나를 대신해 묵림에 남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