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33화.
비요른은 아주 높은 스펙을 자랑하는 무투가다.
파괴왕이란 이명답게 파괴력이 가장 큰 무기이지만, 기본적으로 체력과 방어력 속도 등 모든 면에서 우월했다.
물론 수치상으로 그렇다는 것뿐.
정작 비요른은 자신의 다른 능력치들이 제대로 체감된 적이 없었다.
늘 체력이 부족해지기 전 상대의 머리통이 먼저 터졌으니까.
콰앙! 쾅! 쾅!
“죽어라! 죽어! 어서 머리통이 부서지란 말이다!”
그런 비요른에게 지금 겪는 전투 양상은 사실상 첫 경험에 가까웠다.
주먹을 뻗는다.
그럼 여제는 별다른 움직임도 없이 안으로 파고들며 툭 쳐낸다.
쇄애액!
훅을 휘두른다.
여제는 슬쩍 자세를 낮추며 마치 레슬러가 태클을 걸듯 파고들며 피한다.
꿀밤 펀치를 가하듯 위에서 내려찍으면, 그녀가 기괴한 각도로 몸을 회전시켜 간발의 차로 피하며 주먹을 꽂아 넣는다.
후웅! 훙! 후웅-!
주먹을 뻗고, 뻗고, 또 뻗는다.
콰아앙! 쾅!!
그럴 때마다 뒤에 있는 장애물이 펑펑 터져나가며 전쟁터에 폭탄이 투하되듯 한 광경을 연출했지만, 정작 여제의 머리통은 흠집 하나 없었다.
아니, 그 이전에 초근접 거리에서부터 조금도 멀어지지 않는다.
‘벌써 몇 번이나 주먹을 휘두른 거지?’
100번? 120번?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일지도…….
확실한 건 어느 순간부터 세는 걸 포기했다는 것이다.
[가파른 호흡으로 인해 체력이 보다 빨리 소모됩니다.]
[체력이 30% 이하입니다. 주의하십시오.]
‘……뭐? 벌써 30%라고?’
아니, 뭘 했다고?
체감상 5분 정도 지난 것 같은데 벌써 체력이 바닥을 향하고 있다.
비요른으로선 황당한 일이었지만,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갓오세는 어느 정도 현실성이 기반된 게임.
실제 마라톤 선수들이 호흡에 신경 써 체력이 늘리듯, 갓오세의 체력 또한 호흡의 정도에 따라 줄어드는 속도가 다르다.
체력이 짱짱한 복싱 선수들조차 한 라운드 내내 주먹을 휘두르지 않는 데도 그리 지치지 않던가.
벌써 10분 동안 쉬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는데 이 정도 체력을 유지하는 것만 해도 엄청난 체력량이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휘두를 수 있는 거지? 50번? 100번?’
이미 100번 넘게 주먹을 뻗어도 맞추지 못했는데, 이제 와서 100번을 휘두른다고 맞출 수 있을까?
하나 이제 와서 멈추기는 싫었다.
지금 이 흐름을 놓치는 순간, 결코 그녀를 맞출 수 없다고 그의 본능이 외치고 있던 것이다.
‘……저년은 왜 저리 여유로운 거냐.’
……체력이 무한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다.’
저년은 지금 여유로운 척하는 거다.
아무리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하고 흘리고 있다곤 해도, 간간이 카운터까지 날리고 있으니 체력이 멀쩡할 리가 없었다.
이대로 몰아붙이면 언젠가 동이 날 터.
하나 그는 모르고 있었다.
콰앙! 쾅! 쾅!!
“죽어라! 죽으라고!”
승기를 잡은 사람이 이런 생각을 품을 리가 없다는 것을.
곧 주먹을 타고 느껴질 희열을 기대하듯 흥분하던 그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잔뜩 핏발 선 눈. 수축된 콧구멍.
핏줄이 우락부락 올라온 주먹과 팔뚝은 흥분한 사람이라기보다는…… 겁에 질린 맹수에 가까웠다.
상대를 휘몰아치는 듯한 당당한 모습은 사라졌고, 전투 양상도 기묘하게 달라졌다.
후웅- 훙!
상대를 죽일 기세로 휘두르던 주먹은, 공격보단 언뜻 방어에 가까워져 있었다.
마치 다가오지 말라고 팔을 휘적거리는 듯한 모습.
그걸 본인도 정확히는 아니어도, 어느 정도 느끼고 있었다.
‘뭐지? 저년…… 마치 점점 더 쌩쌩해지는 것 같은…….’
벌써 100번도 넘게 주먹을 휘두른 것 같은데 이상하게 그녀의 얼굴에 닿은 게 없다.
스친 것도 손에 꼽을 정도이며 그마저도 치명적이지 않은 부위들이다.
이를테면 팔꿈치나 무릎 같은?
아니, 스친 건 맞나?
공격의 궤도를 틀기 위해 고의로 스친 거라면?
하물며 그것도 초반에나 그랬지, 지금에 와선 스치기도 힘들었다.
문득 비요른이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언가를 확인하려는 듯한 시선. 이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본능이 이내 경고음을 울렸다.
‘……저년. 땀 한 방울 안 나고 있어.’
저 여자. 조금도 지쳐 보이지 않는다.
아니, 점점 더 얼굴에 생기가 돋고 있는 게 며칠 푹 쉰 사람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비요른이 애써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되는 가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한 번 생겨난 찝찝함은 스멀스멀 피어나는 연기처럼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올랐고, 이내 그의 전신을 잠식했다.
스으-
무언가 기묘한 감각에 휩싸인 것도 그때였다.
몸이 제 몸이 아닌 것 같은.
무언가 자신의 의지대로 흘러가는 게 아닌 느낌.
마치 저항할 수 없는 무언가에 휩쓸리고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자신의 의지대로 거세게 흐르던 강물이 절벽을 타고 떨어져 바닷속에 합류하게 된 듯한…… 기묘한 감각.
‘대체 뭐냐. 이 알 수 없는 기분은……!’
상대가 거대하게 느껴진다.
아니, 거대함을 넘어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자연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듯이, 점점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
“아…….”
비요른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이 느끼는 이 감정이 겨우 찝찝함과 기묘함 따위로 표현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이 흔히들 말하는 ‘무력감’.
상식을 뛰어넘는 벽을 마주했을 때의 느끼는 감각이라는 것을.
피지컬적이든 실력이든 위치든.
그로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던 종류의 감각이었던 것이다.
“으, 으…… 으아!”
하나 그 감정이 수 초를 넘어 분 단위로 전신을 뒤덮다 보면, 제아무리 무지한 사람도 알 수 없는 불길함을 느끼기 망정이었고.
결국, 참다못한 비요른이 이상한 괴성을 내지르며 크게 스트레이트를 뻗은 순간.
콰아아아앙!
“……아?”
비요른은 보았다.
꽈악-
제 주먹을 손아귀로 잡은 그녀가 씨익 웃고 있는 것을.
동시에 시야가 뒤집혔고, 처음 느꼈던 어지러움과 울렁거림이 눈에서부터 가슴팍을 훑고 지나가고 난 후엔.
“아……?”
그는 또다시 대(大)자로 누워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멍하니 벙쪄있던 그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
“어떻게…….”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의문이 채 질문으로 이어지기 전에, 여제가 쯧 혀를 차며 주먹을 잡았던 손을 휘휘 털었다.
“쯧, 하여튼 요즘 만나는 하이 랭커라는 새끼들은 왜 다 지들만 시그니처 특성이 있는 줄 알지? 내가 지들보다 얻었어도 더 빨리 얻었을 텐데 말야.”
“……!”
가만히 듣던 비요른이 눈을 부릅떴다.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친 여제가 사납게 웃었다. 하나 길게 찢어진 입꼬리와 달리 그녀의 눈은 장난꾸러기처럼 웃고 있었다.
그녀는 알까, 그 간극 때문에 오히려 더욱 섬뜩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어진 목소리는…….
“일어나.”
“…….”
“나도 몇 번 안 써봐서 간만에 기분 좀 내고 싶으니까.”
사형 선고를 내리는 저승사자처럼 섬찟했다.
* * *
대규모 신대륙 업데이트가 진행되고 난 후.
정확히는 재앙의 탑이 유명해지고 난 후 랭커들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탑에서 얻는 이명.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얻게 되는 시그니처 특성.
그것이 해당 랭커를 상징하는 것을 완전히 바꾸어버린 것이다.
물론 시그니처 특성을 얻은 랭커의 수가 그리 많지 않기도 하고, 대부분은 그 밖의 다양한 콘텐츠들로 인해 새 시대를 열게 된 것이지만……
‘그건 새 시대에 탑승한 랭커들의 경우일 뿐.’
기존의 랭커들에게 가장 확실한 변화는 시그니처 특성이었다.
오직 자신만을 위한 능력.
최첨단 인공지능이 관리하는 시스템이 직접 판단하여 내려준 능력인 만큼, 그 어떤 능력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당장 라온부터가 그 수혜를 크게 누리지 않았던가.
굳이 정보가 새어나가는 걸 철저하게 막은 적 없던 랭커들이 이 악물고 통제하는 이유였다.
시그니처 특성의 유무는 그만큼 컸으니까.
“내가 마지막 층 비석에 이름 올린 건 너도 알 거 아냐. 니가 더 늦게 깼을 텐데.”
“……아.”
“다른 놈들도 그래. 나랑 쟤가 시그니처 특성을 사용할 거란 생각 자체를 못 하더라고? 굳이 숨긴 적도 없는데.”
한데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여제, 그녀 또한 시그니처 특성을 보유하고 있을 거라는 것을.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금방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런가.”
일인군단. 쌈닭.
모두가 인정하는 갓오세 최강의 여성 플레이어.
수많은 수식어를 지닌 그녀임에도 그녀를 상징하는 가장 큰 단어는 오직 ‘피지컬’ 하나였으니까.
여제, 그녀는 시그니처 특성 같은 거 없이도 강했던 것이다.
‘태생이 강하기에 모두가 간과했다라…… 허.’
비요른이 허탈한 웃음을 머금었다.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마저 그녀의 시그니처 특성을 생각지도 못했다는 것부터가, 이미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자신보다 강자로 여겼다는 뜻이었다.
‘내 능력이 상성이 아니었던 거군.’
아마도 자신을 날려 보냈던 그 능력이겠지.
‘시그니처 특성을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리 허무하게 패배하진 않았을까.’
그게 못내 아쉬웠지만, 미련은 없었다.
주먹을 10분 내내 휘둘러도 정타 한 번 맞추지 못했던 여인이다.
유일하게 극상성이었던 자신의 능력마저 통하지 않던 그녀인데, 시그니처 특성이 뭔지 알았다 해서 달라질 리가 없던 것이다.
그저 궁금할 따름이었다.
“내가 졌다.”
“뒤질래? 내 말 못 들었냐? 일어나라니까.”
“……더 일어나봐야 내가 이길 순 없을 것 같군. 의미 없는 싸움을 할 정도로 무대포는 아니다.”
“와, 순 이기적인 새끼네 이거? 지가 머리통 터트리고 다닐 땐 좋다고 날뛰면서, 지가 당할 차례면 사린다고?”
여제의 신랄한 디스에 입술을 몇 차례 달싹이던 비요른이 이내 입을 다물었다.
차마 반박할 말이 없었다.
그 모습에 의욕이 팍 식은 것일까.
좀 전까지 사납게 웃던 여제가 맥이 빠졌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혀를 찼다.
“쯧.”
모처럼 화끈한 놈인 것 같아 기대했건만.
기대 이하의 상대였다.
시그니처 특성을 제대로 써먹질 못해서 오히려 감질나는 느낌.
입맛을 다신 그녀가 스윽, 눈앞에 떠 있는 시스템창을 보았다.
[시그니처 특성 ‘여제의 심장’이 발동 중입니다.]
[극한의 경지에 도달한 여제의 심장이 일시적으로 잠재된 기운을 해방시킵니다.]
[체력이 떨어질수록 강해지며 공격력과 방어력, 속도가 상승합니다.]
[체력이 최소치에 도달할 시 체력 소모가 삭제되며, 이 상태에서 일정 시간 이상 전투를 지속할 시 다음 해방이 진행됩니다.]
[최대 네 번까지 해방할 수 있으며 해방을 종료할 시 단계별에 따른 부작용이 찾아옵니다.]
[현재 해방 단계 : 2회]
[두 번의 해방으로 인해 ‘격쇄’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정확한 타이밍에 상대와 같은 움직임으로 동일한 부위를 맞닿을 시 ‘카운터’가 적용됩니다.]
‘이 다음을 통 못 가보네.’
놀랍게도 그녀는 지금껏 이 다음 단계 이상으로 심장을 해방한 적이 없었다.
보통 격쇄 단계에서 싸움이 끝나기 때문이었다.
검성 녀석이랑 언제 한 번 진득하게 대련해서 최대치까지 가보려 했건만.
하필 저놈도 시그니처 특성을 얻고 나서 수련에 매진하느라 그럴 시간이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다음 단계를 가보나 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같은 결말이었다.
‘이번 일 끝나면 한 판 뜨자 해야지, 안 되겠어.’
애매하게 달아오른 몸에 쯧 혀를 차던 그녀가 홱 고개를 돌렸다.
자신은 이쯤에서 끝났고…….
“어디, 다른 녀석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볼까.”
한창 전투에 집중하고 있는 동료들을 구경하며 달궈진 몸을 달랠 심산이었다.
그런 그녀가 가장 먼저 확인한 곳은…….
채앵! 챙!
시원시원한 칼 소리가 들리는 곳.
씨익.
‘또 새로운 검술이네. 어디 뭘 수련하고 왔는지 봐보자고.’
검성과 시르간의 전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