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34화.
서양 검술의 일인자.
The Paramount Blade(최고의 검). 살아 있는 검의 화신.
여러 이명이 따르지만, 그를 가장 잘 표현하는 이명은 역시 이것이었다.
-유령검 시르간.
그의 검술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적합한 이명은 없었으니까.
마치 살아 있는 자가 아닌, 망령의 검술을 보는 듯한 예술적이면서도 소름 끼치는 검술.
변칙적이다 못해 귀신 들린 듯한 검.
환검의 극한에 달한 인물이라 할 수 있었는데, 사실 그가 처음부터 이러한 검술을 구사한 건 아니었다.
시르간, 그는 본디 전통적인 검술로 유명한 명문가의 자제.
저런 귀신 들린 듯한 환검이 아닌, 전통 서양 검술의 끝을 보았다 알려졌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현실에서 변화무쌍하다 해봐야 검로가 다채로운 정도일 뿐.
환검이라 부를 정도의 검술을 구사하기란 불가능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족쇄였지. 나의 재능은 환검에 있었으니.’
하지만 가상현실게임은 달랐다.
직접 몸을 통제하여 현대에서 배운 검술을 구사할 수 있는 현실성.
거기에 더불어 ‘게임’이란 요소가 있기에 가능한 판타지적인 스킬과 능력, 그리고 육체의 한계를 뛰어넘은 움직임까지.
이것들을 이용한 검술은 현대의 검술의 틀을 벗어나 있었고, 수많은 검사들이 이곳에서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곤 했다.
그리고 그중 하나가 시르간이었고, 그게 유령검 시르간의 시작이었다.
“상상이나 했겠나?”
전통 서양 검술의 끝에 도달했다고 불리던 자신이, 실은 다른 곳에 더욱 큰 재능이 있을 거라고.
콰득- 휙
현실에선 할 수 없는 움직임.
꺾일 수 없는 궤도로 꺾이는 팔과 다리.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면서도 원하는 때에 활어처럼 탄력이 깃드는 관절.
그를 바탕으로 휘두르는 검은 가히 사신의 사형 선고와 같았다.
검격이 시작되었을 때, 어떠한 예고도 없었으니.
아무런 사전 자세 없이 무언가 번뜩이는 순간, 마치 허공이 찢기는 것처럼 무형(無形)의 칼날이 공간을 가르고 지나갈 뿐이었다.
쉭–!
소리조차 움직임을 쫓지 못해 한 박자 늦게 뒤따른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끝난 후다.
상대는 공격이 들어왔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무릎을 꿇는 것이다.
그것엔 어떠한 예외도 없었다.
[시그니처 특성 ‘망령의 검’이 발동 중입니다.]
[칼날의 형태가 보이지 않으며 1M에서 최대 3M까지 검신의 길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 무엇으로도 검의 형체를 간파당하지 않습니다.]
[고유 능력 ‘전광석화’가 발동됩니다.]
[상대가 자신의 공격을 파악하지 못했을 시 한 줄기 섬광처럼 빠른 속도로 공격할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무형의 칼날.
오직 시르간만이 100%의 성능을 뽑아낼 수 있는 전광석화의 조합.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그의 뛰어난 검술은 인간이 눈으로 보고 반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카앙!
“호오…… 이걸 막다니. 이것이 그 유명한 제공권인가?”
“…….”
하나 이번 상대는 달랐다.
검성. 뎀로크에서 조선제일검이라 불리던 여인.
서양 제일의 검이라 불리던 자신과 정확히 상반되는 이명을 가진 자답게, 손쉽게 검격을 막아 낸 것이다.
카앙! 캉!
하물며 한 번이 아니었다.
두 번, 세 번…….
깡! 캉! 카-앙!
다섯 번을 넘어 어느덧 두 자릿수에 접어들 만큼의 공방이 오갔다.
그렇다. 공방이었다.
눈으로 쫓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며 다급히 막아 내거나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게 아닌, 온전한 검과 검의 대화.
휘릭- 캉!
유능제강(柔能制剛).
그것의 끝에 다다른 그녀의 제공권은 자신의 보이지 않는 검격을 막아 내는 걸 넘어 허점을 찔러 매섭게 공격해오고 있었다.
‘아아, 이 얼마만의 검의 대화인가!’
그에 시르간의 냉철했던 얼굴이 점점 흥분으로 차올랐다.
유령검이라는 이명을 얻은 뒤로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기분.
그래, 자신은 늘 이걸 원했다.
서로의 검술을 주고받으며 누가 더 우위인지 겨루는, 오직 검사만이 할 수 있는 깊은 대화!
‘그래, 검성. 너는 이런 검을 다루는군.’
그저 고유 능력과 특성, 스킬로만 밀어붙이는 유저들은 모른다.
검과 검이 부딪히며 불똥이 튈 때마다 그녀가 걸어온 발자취가 엿보인다.
그녀가 겪어온 고뇌와 노력. 그리고 신념.
그 모든 것이 그녀의 검에 담겨 있었다.
솩- 촤악!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검격에는 활검의 묘리가.
휘릭, 캉!
시르간의 검격에 실린 힘을 이용하여 부드럽게 휘감아오는 반격에는 유검의 묘리가 담겨 있었다.
또한 그저 부드럽게 감싸오던 검은 어느 순간 묵직하게 짓눌렀고.
그에 대응하여 검에 힘을 주면 검로가 불규칙적으로 활보하며 사방에서 시르간을 교란했다.
“놀랍다. 또한, 대단하다.”
그야말로 모든 동양 검술의 묘리가 담긴 집합체.
마치 탐스러운 과실을 음미하듯.
그것을 하나하나 뜯어보던 시르간이 이내 감격한 듯 외쳤다.
“그야말로 단 한 걸음도 정체된 적 없는 노력의 산물…… 세상 사람들은 너를 그저 천재라고 부르겠지만, 나는 안다. 아니, 알게 되었다.”
“그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는지. 그러한 경지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걸 버려왔는지. 나만큼은 알아주마.”
그 안에는 조금의 게으름도 담겨 있지 않았다.
검성, 그녀는 노력하는 천재였다.
그렇기에 너무도 애석했다.
“이 대화도 오래 이어질 수 없겠구나. 그것이 너무도 애석하고, 또한 안타깝다.”
서양 검술의 핵심은 상대와 검을 맞댄 채 모든 기술이 행해진다는 것.
검성이 아무리 여러 검술의 묘리를 담아 괴롭혀도, 일단 검을 맞댄 순간 대처하기가 쉬웠다.
즉, 그녀의 검술은 자신에게 통하지 않는 것이다.
끼기기긱-
“동양의 검술은 이게 문제다. 이렇게 검을 맞대고 있으면 어떻게 할 거지?”
서로 거리가 벌어졌을 땐 그녀의 검술이 유리하겠지만, 시르간의 검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칼날로 이루어져 있다.
하물며 검신의 길이 또한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상태.
“가상현실에서의 검술과 현대의 검술은 엄연히 다른 법. 그대는 그것을 망각하고 있구나.”
검술을 겨룰 때 가장 중요한 건 상대를 계속하여 자신의 영역으로 유인하는 것.
그런 면에서 시르간은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현재 두 사람이 전투를 이어가는 시간의 7할은 검을 맞대고 있는 채였으니까.
그리고 검을 맞대고 있는 한, 그를 이길 수 있는 검사는 없었다.
휘릭- 서걱!
촥!
그저 손목을 살짝 비트는 것만으로 시르간의 검 끝이 목을 물어뜯고, 검을 맞댄 채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 힘의 균형이 무너진다.
초 단위를 넘어선 0.01초 단위의 공격들.
손가락과 손목, 발목과 스텝. 하다못해 팔꿈치의 궤도 변화와 같은 아주 미세한 움직임에도 시르간의 검은 뱀처럼 급소를 노려왔다.
[전설 스킬 ‘치명적인 일격’을 시전합니다.]
[60초간 급소를 타격할 시 기존의 크리티컬 데미지보다 170% 증폭된 데미지를 입힙니다.]
[전설 스킬 ‘광난섬월(狂亂閃月)’을 시전합니다.]
[마치 달을 찢는 듯한 미쳐 날뛰는 난격을 쏟아냅니다.]
[전설(유물)(레이드) 무기 ‘어둠을 유영하는 망월검’의 특수 효과 ‘유영하는 검’이 발동됩니다.]
[검이 보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움직여 난격의 횟수를 3회 늘리고, 궤도를 보다 자유롭게 수정합니다.]
거기에 더불어 각종 전설급 스킬과 무기의 능력까지.
여기에 고유 능력 ‘전광석화’와 시그니처 특성 ‘망령의 검’의 시너지까지 더해진 시르간은 그 어떤 쾌속의 검사보다도 빨랐다.
이 사기적인 조합이 있는 한, 검성의 검 끝은 결코 제 목에 닿을 수 없으리라.
그의 눈동자가 한층 깊어지며 우수에 젖어 들었다.
“조선제일검. 동양의 뛰어난 검사여. 기회가 되면 현대에서 그대와 검을 겨뤄보고 싶구나.”
마치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 듯한 어투.
승패보다는 이곳에서 만난 라이벌의 자격을 지닌 검사와의 만남에 감격하면서도 아쉬워하는 듯 보이는 말투였다.
하나 저 말을 듣는 순간, 누구나 느낄 것이다.
그가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는 것을 넘어 일종의 자연현상처럼 당연시하고 있음을.
끼기긱-
그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검성이, 검을 맞댄 채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차분하게 내려온 머리카락과 같은, 밤하늘에 수놓아진 달을 담은 듯한 보라색 눈동자가 그의 눈을 담았다.
“……시르간이라 했나.”
“그렇다. 조선제일검,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지? 이 내가 그대의 이름을 기억하도록 하겠다.”
“조선제일검이라…….”
말끝을 흐리던 그녀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 옅은 미소조차 순간 넋이 나갈 만큼 아름다웠으나, 시르간은 흔들림 없이 눈을 마주했다.
그녀를 여인이 아닌 한 사람의 검사로 대하고 있음을 보여 주기 위함이었다.
그 기다림의 끝에 그녀가 붉은 입술을 열었다.
“오만하구나.”
“……?”
“우선 나는 조선제일검이 아니라 검성이다. 나의 스승이자 제국의 칠강(七江)이신 검황(劍皇)께서 직접 내려주신 이명이지.”
“허. 그래, 호칭이 거슬렸다면 사과하…….”
“그리고…….”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순순히 사과하는 시르간이었지만, 그녀는 말을 기다려 주지 않고 차분히 제 할 말을 이어갔다.
마치 정해진 답을 내놓듯 정갈하면서도 또렷한 음성이었다.
“왜 네놈만 자신만의 검술이 있다 생각하지?”
“그게 무슨 소리지? 지금 그대의 검술을 직접 겪어보고 있…….”
“정정하지. 내 말의 뜻은…….”
말끝을 흐린 검성의 눈빛이 낮게 가라앉았다.
“무슨 이유로 내가 전력을 다하고 있다 여기냐 이 말이다.”
서릿장처럼 차가운.
더불어 달빛에 반사된 칼날처럼 섬뜩한 기운에 시르간이 저도 모르게 힘겨루기를 하던 검을 떼고 뒷걸음질 쳤다.
“아.”
그러다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뒤늦게 깨달았는지 멈칫하던 것도 잠시.
이내 이상하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내가 왜…….’
분명 자신이 더 우위건만, 무엇이 두려워 물러났단 말인가?
알 수 없었다.
뇌를 거치지 않은 본능적인 무언가가 머리채를 잡듯 뒤로 끄집어냈을 뿐.
그 순간, 차가운 감촉이 목 언저리에서 느껴졌다.
그것은 검이었다.
“한 번. 네놈이 죽은 횟수다.”
뭐뭐 하듯 손쉽게 뭐하듯 무심하게 내민 검.
몇십 수의 공방이 오가도 끝내 자신에게 닿지 못했던 검이 운명의 장난처럼 너무도 손쉽게 닿아있었다.
그것도 가장 치명적인 급소인 경동맥에.
“이 검격에선 무엇이 느껴졌지?”
무심하게 흘러나온 그녀의 목소리는 이리 묻고 있었다.
이 안에 담긴 검술의 묘리를 이해할 수 있겠냐고.
당연하게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검이 어떻게 움직여서 경동맥에 닿게 되었는지조차 보지 못했으니까.
“그렇군. 아직 이 영역에 도달하지 못한 건가. 녀석이 특이한 경우긴 하구나. 검술에 대해 잘 모르면서도 느꼈으니…….”
이해했다는 듯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검성에게, 시르간은 더 이상 중요해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는 눈빛에 깃든 생기가 촛불이 꺼지듯 확 꺼졌다.
그녀의 보랏빛 눈에 더는 어떠한 흥미도, 관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에 이질감이 들면서도 소름이 끼치는 한편, 왠지 모를 굴욕감에 시르간은 이를 악물었다.
‘……우연이다. 내가 너무…….’
“방심했다. 이겼다고 생각하여 너무 안일하게 굴었다. 그리 생각하고 있나?”
자신의 속마음을 읽은 듯한 그녀의 차가운 목소리에 시르간이 입술을 달싹였다.
저 말이 맞았던 것이다.
하나 수치스러움을 느끼면서도 그는 반박하지 않았다. 방심했다는 것을 부정할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스으-
그저 사물을 내려다보듯, 그런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검성이 천천히 검을 거두었다.
“?”
“서양 검술이라.”
“지금 이게 무슨…….”
의아해하는 시르간을 두고, 허공에 검을 몇 차례 휘적거리던 검성이 이내 다시 검을 뻗었다.
그러자 맑고 청량한 쇳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능적으로 자세를 잡은 시르간이 검을 맞댄 것이다.
십수 년이 넘는 세월을 단련한 몸이 저절로 움직인 것.
하나 멈칫한 시르간과 달리 그녀는 이러기를 바랐다는 듯 살포시 웃어 보였다. 어떠한 남자라도 현혹될 만큼 치명적인 미소.
시르간의 눈이 커졌다.
때마침 이곳이 그녀의 분위기가 닮은 밤하늘에 달이 떠올라서도, 그 밑에 있는 그녀가 달빛을 머금은 듯 몽환적이어서도 아니었다.
스륵-
그저 손목을 트는 미세한 움직임으로 검을 휘감으며 내리는 저 동작.
그 직후 발을 내디뎌 균형을 잃게 만드는 검술.
“이건 나의…….”
그녀가 보여 주고 있는 검술은 시르간의 검술이었으니까.
아니, 그의 검술이 아니었다.
휘릭- 촥!
순간적으로 궤도가 비틀리며 이어진 검격.
‘어, 어떻게…….’
검을 맞댄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공간에 제약을 받지 않는 듯 어지럽게 들어오는 공격들을 보며 시르간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자신의 검술을 모방한 그녀의 공격 하나하나에 수십, 수백 가지의 묘리가 깃들어있었으니까.
저것은 더 이상 자신의 검술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욱 진화된 무언가.
쇄애애액-!
평생을 바쳐 연마하여 그 끝에 도달했다고 느꼈던 검술이, 저 너머의 경지로 돌아와 자신의 목을 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