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73화.
님프 여왕, 아리드나.
그녀는 엘라니스에서 가장 유명한 NPC이자, 가장 비밀리에 감춰진 NPC였다.
그리고 게임에서 이러한 조건을 가진 NPC는 대개 유저들의 관심을 사기 마련.
단편적인 예로 르시아가 그러했다.
‘님프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찬란한 영웅. 칠강과 비견되는 전투력.’
왜냐고?
그야 아무 님프나 붙잡고 그녀에 대해 물어보면, 그녀의 위대함을 일장연설해주니까.
그녀가 얼마나 강하고, 위대한 영웅이었는지.
하지만 실제로 목격한 사람은 없으니 정확한 강함을 알 수 없어, 칠강보다 밑으로 치는 사람들도 있었다만…….
‘이번 일로 그런 의견은 싹 사라졌지.’
행방불명이긴 하나 사실상 죽은 거로 알려졌던 그녀의 화려한 복귀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걸까.
어쩌면 칠강보다도 우위인 거 아니냐는 의견도 나돌 정도였다.
‘권왕 그라디트가 그녀의 제자였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지. 제자가 스승보다 꼭 더 약하리란 법은 없지만.’
청출어람이란 말이 괜히 있겠는가.
제자였던 건 꽤나 과거였던 것으로 보이는 것에 반해, 르시아는 오랜 세월 봉인 당한 탓에 제자리였을 테니 어쩌면 권왕이 더 강할 수도 있다.
뭐 이러나저러나 만나보지도 못한 권왕과 르시아의 강함을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이었다.
차라리 검황과 비교하는 게 낫지.
‘그것도 감이 안 오긴 하네. 둘 다 전력을 낸 적은 없으니…….’
뭐, 그런 건 아무렴 상관없었다.
지금 중요한 건 왜 이 얘기를 했는가인데…….
그녀의 경우 후자의 지분이 더 컸다.
‘절세의 미인’
그녀의 앞에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만약 이곳이 무협 세계관이었다면 천하 제일 미녀나 고금 제일 미녀와 같은 칭호가 붙었을 것이다 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던가.
엘프를 실제로 보게 되었을 때만 해도 뉴튜브에 엘프의 미모에 관한 내용과 고백하기 몰카 등.
온갖 콘텐츠들이 일억 조회 수를 달성할 만큼 수많은 관심을 받았다.
조회 수가 잘 나온 건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당연히 엘프의 ‘미모’ 때문이었다.
한데 그런 엘프조차 비교가 안 되는 미녀가 있다?
심지어 그 미녀가 님프들의 여왕이다?
“대체 얼마나 예쁘길래?”
“엘라니스엔 엘프가 있잖아. 그럼 엘프들보다 더 예쁘단 소리야? 그게 가능해?”
“따지고 보면 인간 NPC들 중에서도 엘프만큼 예쁜 여성 NPC들이 있기는 하니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
“그래도 느낌이 다르지. 제국 최고의 미녀랑 엘라니스 최고의 미녀가 전해지는 느낌이 같냐?”
“와, 듣고 보니 그러네. 엘프들 다 발라먹는단 소리 아냐.”
당연히 유저들이 환장하고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특히 남자 유저들이 말이다.
물론 그녀의 대리인인 앨로윈을 비롯한 님프들이 철통방어를 한 탓에 애석하게도 관심에서 그쳐야만 했지만.
하나 사람이 하지 말라 하면 더 하고 싶어지듯.
오히려 이러한 정보의 차단 때문에 유저들은 더욱 궁금해했다.
아직까지도 그녀의 외모에 대한 얘기가 홈페이지에서 하루에 한 번쯤은 볼 수 있을 정도로.
‘추측을 하다못해 아예 상상해서 그림을 그린 사람들도 있었지. 3D로 만든 사람도 있었고.’
특징들은 다 다르지만 하나같이 절세의 미인이라 할 만한 엄청난 미모의 여인들을 그려놨었다.
그저 아름답기만 하면 된다는 듯 제작자의 사심이 듬뿍 담긴 외모들.
공통점이라 하면 엄청 아름답다는 것과 님프라는 점을 감안한 건지, 엘프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외형이었다는 것 정도?
어떤 미친 유저가 갓오세에서 그 그림을 본따 그려 님프들에게 이것보다 예쁘냐고 질문했다는 건 아직도 유명한 일화였다.
한데 또 웃긴 건 그 질문을 들은 나이 지긋한 님프가 한없이 진지한 얼굴로 이리 답했다고 한다.
-물론이다. 그분의 미모는 가히 신의 산물.
사실 잠들어있던 그녀를 실제로 본 도현으로서는 반쯤만 공감하는 말이었다.
‘뭐, 실제로 보니 예쁘긴 한데 그 정도인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도현은 그 생각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띠링-
[님프 여왕, ‘아리드나’와 조우하였습니다.]
섬섬옥수 같은 고운 손을 맞잡고, 코앞에서 바라본 그녀는…….
‘……음. 예쁘네.’
NPC들의 호들갑이 절로 수긍이 될 만큼 아름다우니까.
미의 여신이 있다면 이러할까?
별빛을 담은 듯한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눈동자. 새하얀 피부와 달빛을 머금은 듯 찰랑거리는 머리. 작디작은 얼굴에 늘씬하게 뻗은 팔다리.
오뚝한 코와 선명한 이목구비가 저 작은 얼굴에 다 들어가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신이 작정하고 빚은 듯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
‘허.’
그에 도현은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게 같은 사람…… 아니, 님프가 맞나?’
그녀의 외관이 잠들어있을 때와는 전혀 딴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눈을 뜨니 생기를 되찾아서 생긴 변화 따위가 아니었다.
그냥 아예 다른 얼굴이었다.
심지어 얼굴만 다른 게 아니라, 체형이나 키까지 전부 달랐다.
“왜 그렇게 보시나요?”
“……아닙니다. 그, 지금이 실제 모습이신가요?”
“아! 카이저 님은 제가 잠들어있던 모습을 보셨겠군요. 맞아요.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인식방해 결계를 쳐놓았거든요.”
“인식 방해?”
“그…… 앨로윈이 적극적으로 추진해서요.”
힐끗 앨로윈을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막 구출되자마자 쉬지 않고 일 처리부터 한 후에 님프 여왕을 깨운 그였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와중에도 어찌나 단호한 얼굴로 끄덕이는지, 반박 따위 안 받는다는 기세가 느껴졌다.
“예. 여왕님의 외모는 위험하니까요. 저도 대리인 역할로 바쁠 테니 이는 선택이 아닌 필수였습니다.”
“아.”
그에 도현도 수긍했다.
확실히 아리드나의 본모습은 위험하긴 했다.
저건 이 세상을 벗어난 미(美)였으니까.
괜히 여자 때문에 나라를 팔아먹는다는 말이 나도는 게 아니구나 납득이 될 정도면 말 다 한 셈이었다.
NPC인 걸 알면서도 도현이 다소 어색하게 반응한 이유이기도 했다.
‘주인도 남자야, 남자.’
‘……닥쳐. 생각지도 못해서 당황한 것뿐이니까.’
‘음, 확실히 절세의 미녀입니다. 과거 제국의 날고 기는 미녀들도 저자 앞에 서면 초라하게 느껴질 정도군요.’
어쨌거나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왜 부른 거지? 정말 감사 인사만 하려고 부른 건 아닐 테고.’
가뜩이나 어제 보상도 못 보고 로그아웃 당해버린 도현이다.
더럽게 가지 않은 하루를 버틴 끝에, 오늘 접속하자마자 이번엔 앨로윈에게 끌려온 탓에 아직도 보상을 확인 못 한 상황.
‘한 개가 아니고 여러 개 같던데…….’
이것부터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하도 간절하게 부른 탓에 온 게 지금의 상황이었다.
그래도 이곳까지 오는 과정에서 내심 궁금했던 것들을 들을 수 있긴 했다.
앨로윈의 저택에서 실종되었던 NPC들이 어디로 갔는지.
‘엘라니스를 점령했을 때 이용하기 위해, 심연의 눈에 집어넣었다던가.’
여기서 말하는 심연의 눈은 진짜배기 심연의 눈이 아닌,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모조 심연의 눈을 뜻했다.
베헤모스와 바탄, 그리고 침입자들까지 적대 세력이 모두 죽으며 심연의 눈에 공급되어야 할 마기가 사라져 탈출할 수 있었다던가.
그곳에 갇혀있는 동안 생기를 빼앗기고 있던 앨로윈의 안색은 지금도 창백했다.
여왕을 깨운 것까진 그렇다 쳐도, 당장 휴식이 필요해 보이는데도 곧장 자신을 부른 걸 보면 분명 중요한 일이 있을 터.
“……여왕 폐하. 아직 무리해서 움직이면 안 됩니다. 아무리 보존 마법을 걸어두었다곤 하나, 몸이 많이 약해지셔서 옥체를 보존하셔야 합니다.”
“하지만 꼭 직접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었는걸요.”
그리 답한 아리드나가 도현과 눈을 마주하며 진심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고마워요, 카이저 님. 엘라니스를 구해주셔서. 그리고 저희 백성들을 구해주셔서요.”
그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것보다도, 봉인 당한 순간까지도 구하려 발악했던 백성들을 구해준 것에.
그 거짓 없는 마음에 도현도 마주 웃어 보였다.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르시아 님에게 받은 것도 있었고요.”
그리 말하던 도현이 문득 떠올랐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르시아 님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 저도 이제 깨어나서 자세히는…….”
“그건 제가 답하겠습니다. 여왕 폐하.”
잠자코 듣고 있던 앨로윈이 자연스레 바통을 이어받았다.
“르시아 님께선 워낙 오랜만에 돌아오신 데다 큰 활약을 하게 되셔서…… 은거하셨습니다.”
“……예?”
……그게 뭔 소리지?
뭐가 어떻게 되면 결론이 저렇게 난단 말인가.
웬 뚱딴지같은 소릴 하냐는 듯한 도현의 반응에 앨로윈이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이었다.
“어딜 가도 너무 말들을 많이 건다고 불편하다고 하셔서요. 어느 정도 잠잠해질 때까지 숲에서 나오지 않으실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확실히 지금 돌아다니면 피곤하긴 하겠네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워낙 화려하게 등장하시지 않았습니까.”
공감한다는 듯 주고받는 두 사람의 말에 지하드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흠, 그런가? 난 관심 받으면 좋던데…… 그걸 왜 싫어하지?
-리자리자.
-모두가 자네들 같진 않네. 때론 많은 관심은 독이 되기도 하는 법이니.
-흐음…….
더 많은 관심을 기대했으나, 다른 이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뺏긴 지하드로선 도무지 이해 못 할 사정이었다.
그렇게 여러 근황들에 대한 얘기를 주고받을 때였다.
“크흠. 그…… 카이저 님.”
“예. 말씀하세요.”
답지 않게 줄곧 눈치를 살피던 앨로윈이 조심스레 말문을 뗐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걸 느낀 도현이 곧장 답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사실 감사 인사를 드리려 한 것도 있지만, 카이저 님을 부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그 다름이 아니라, 여왕 폐하께서 깨어나실 때 무언가를 보았다고 합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 무언가를요.”
“……자각몽인가요?”
“……비슷하지만 달라요.”
아리드나가 다소 굳은 얼굴로 끼어들었다.
“모두가 저에게 천리안만 있는 줄 알지만, 사실 저에겐 또 하나의 능력이 있어요. 정확히는 여왕이 된 후 생긴 능력이죠.”
“설마 그게?”
“네. 이번에 꾼 꿈. 그건 꿈이 아니에요. 미래에 일어날 일이죠.”
그리 말한 여왕이 질끈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떴다.
“저는…… 미래를 볼 수 있어요. 단편적인 장면의 형태로요.”
“…….”
띠링- 띵-
알림이 울린 건 그때였다.
알림이 연이어 울려대는 걸 보니, 무수한 메시지들의 향연이 펼쳐짐이 틀림없었다.
하나 도현은 그에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번 미래는…… 너무도 암울했어요. 마치 세계의 멸망을 보는 것만 같았죠. 하늘을 지배한 거대한 존재감들과 지면에 들끓는 심연의 어둠…… 그리고 파괴된 자연들까지. 너무도 끔찍했습니다.”
곧 이어진 그녀의 말이 상당히 충격적이었던 탓이다.
“그리고 그 무대의 중심에서…… 카이저 님을 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