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98화.
천천히. 그러나 더없이 선명하게.
세상과 단절된 어둠 속에서 덧없는 죽음을 담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을 그때.
아직 그들의 영향이 닿지 않은 곳에선 또 다른 바람이 불고 있었다.
[역대급 길드전 D-7. 최강의 전투 길드는 어디인가!]
[일주일 후. 갓 오브 세이비어의 정점이 결정된다!]
[모두가 기대하는 길드전. 역대 최고 시청자 수 예감…… 방송사들 불붙었다! 독점은 불가?]
[과연 방송권을 차지할 세 곳은 어디인가.]
그 첫 번째 바람은 의외로 갓오세 안이 아닌, 바깥.
온라인이었다.
한 달 전부터 관련 기사만 올려도 조회 수 대박이 터지던 길드전은,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지금.
그저 언급만 하면 지난 역대 조회 수를 갈아치울 대박 기사 제조기가 되어버렸고,
[길드전을 앞두고 미카즈키 길드, 파격적인 행보! 레이드 연속 격파. “일본은 세계 최강. 힘의 차이를 느끼게 해주겠다.”]
[그에 반격하듯 미카즈키의 격파 기록을 맹렬하게 따라잡고 있는 바벨론 길드의…… (중략) 아재의 숨은 저력?]
[혈살 길드. “암살만 잘하는 게 아니다, 암살도 잘하는 것이다” 발언!]
[길드전을 앞두고 초토화된 수많은 콘텐츠들…… 유저들 항의 빗발쳐. 우리도 게임은 해야 할 것 아니냐!]
[길드전 논란. 유저들의 잘못은 없나?]
거기서 멈출 리 없던 기자들은, 온갖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에 이젠 게임을 즐기지 않는 이들은 물론, 노년층까지도 길드전에 대해 알게 되었을 정도.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 그 자체가 된 만큼 길드전에 참여하는 유저들의 압박감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으으, 긴장돼.”
“이번 길드전에서 못난 모습 보이면 평생 박제다…….”
“두고두고 평가 자료로 쓰일 텐데 절대 안 돼. 무조건 활약해야 돼.”
“활약은 지X. 라인업 안 보이냐? 그냥 흑역사만 안 만들어도 A급 취급일 건데.”
“솔직히 우리까지 보려나? 쩌리 취급만 받을 거 같은데. 어디에서 방송할지는 몰라도 분량도 안 나올 듯?”
“빌런 짓이라도 해야 하나?”
“평생 찍힐 일 있음? 평생 숙청당하면서 일억 넘게 투자한 장비 다 날아가고 게임 강제로 접고 싶으면 뭐 그래도 되긴 해. ”
“그건 좀…….”
그렇기에 길드전에 참가하는 유저들의 목표는 하나였다.
최대한 무난하게.
그저 이 관심에 묻어가며 평가 절하될 일 없이 유지하자.
하나 그건 일반 유저들에게 해당되는 얘기일 뿐.
이번 길드전의 주역들이라고 할 수 있을 대형 길드 마스터의 경우는 얘기가 달랐다.
“……이번 길드전에서 우리 배크턴 길드의 저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피닉스 놈들, 만발의 준비를 하고 있던데 우리 백두산도 질 수 없지. 한국의 저력을 보여주자고.”
“한국의 저력은 저희보단 바벨론이나 집행 길드가…….”
“가알!!! 그만큼 각오가 중요하다 이 말이야. 새꺄. 각오가. 러시아 새끼들한테 질 거야?”
“피닉스는 러시아가 아니라 영국입니다, 형님.”
“……그냐?”
100대 길드들과 그중에서도 준 10대 길드라 불리는 피닉스 길드와 백두산 길드.
“사람들 반응은 보았겠지. NPC 소속이라고 여간 무시하는 게 아니더군.”
“허, 우리가 공식 활동이 적으니 사람들이야 모를 수 있다고 쳐도 길드 놈들까지 덩달아 우쭐하는 건 영 보기 역겹더라.”
“코를 아주 납작하게 만들어주자고.”
“우리에겐 시아나 님과 라이하스 님이 있다고!”
“그뿐이야? 우리에겐 그분들 이상의 최종병기가 있잖아? 무려 ‘그분’의 수제자라고.”
“크큭, 처음으로 이런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는 건데 얼마나 놀랄지 상상만 해도 흥분되는데.”
그리고 NPC 소속 유저들.
이제는 길드에 들었지만, 여전히 기존 길드들과의 대립 구도가 형성되어있기 때문에, 이를 바득바득 갈고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는 길드전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심해졌고.
사흘이 남았을 땐, NPC 소속과 기존 길드 간의 대립 구도 얘기가 올라오는 기사의 반을 차지할 지경이었다.
한쪽을 툭 건드리기만 해도 워낙 반응들이 좋으니 기자들이 제대로 먹잇감을 잡은 것이다.
“아오, 이 X같은 기레기 새끼들. 인터뷰를 이따위로 해놔?”
“내가 언제 이렇게 말했어! 다음에 만나면 아주 반 죽여버릴…….”
“이렇게 된 이상 뒤는 없다. 100대 길드? 다 밀려날 준비 하라 그래. 10대 길드도 우리가 차지해버릴 거니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길드전까지 한없이 가까워질수록, 10대 길드에 관한 기사는 적어졌다.
섣불리 건드리기 힘든 위치인 탓도 있지만, 그걸 떠나서 그들의 움직임 자체가 뜸해졌기 때문이었다.
애당초 큰 소식이 없던 집행 길드와 천마신교는 물론.
고삐 풀린 듯 온갖 콘텐츠들을 씹어먹던 미카즈키와 바벨론, 그리고 빌런들을 청소하며 저력을 드러냈던 아크 길드와 혈살…….
일주일이 남았을 때만 해도 맹렬히 활동하던 그들마저도 지금은 어떠한 활동도 하지 않았다.
전력을 감추기 위해서? 의도적인 언플?
그따위 이유가 아니었다.
그런 이유도 어느 정도 있을 순 있겠지만, 적어도 마스터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였다.
‘내가 이긴다.’
‘1등. 그게 아니면 의미가 없지.’
‘다들 하나같이 더 강해졌겠지. 상관없다. 나는 아직 더 강해질 수 있으니.’
‘후후, 재미있겠구나.’
폐관 수련.
길드전을 앞두고 스스로를 갈고닦기 위해 세간의 모든 것에서 신경을 끈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더욱 흘러 또다시 이틀이란 시간이 지났을 때.
휘이이이-!
드높은 바위산.
산소가 부족해 숨쉬기 벅차며 드센 바람과 전신을 짓누르는 기세가 가히 천지의 기운을 담고 있는 곳.
스으.
이곳의 봉우리에서 가부좌를 틀고 있던 여인, 천마 천지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녀는 이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허리까지 오는 검은 생머리, 전신을 가리는 검은 도복, 그에 상반되는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와 꼿꼿하게 핀 허리.
학처럼 고고한 자태는 여전했지만, 직접 눈앞에서 마주한 이가 있다면 모두가 동의할 것이다.
“아아…… 결국 성공하셨군요.”
당장 그녀의 곁을 줄곧 지켜오던 검은 도복을 입은 남자.
사실상 부교주 역할을 맡고 있는 관우혁, 그도 느끼고 있었으니까.
그녀가 달라졌음을.
외관이 달라졌다는 게 아니다.
새어 나오는 기운, 압도하는 기세와 분위기 그 모든 게 달라져 있었다.
마치 천지의 기운을 가득 담은 이 바위산과 하나가 된 것 같은…… 아니, 그 위에 군림하고 있는 듯한 느낌.
과장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게…….
“극성의 경지를……!”
천마, 천지아.
그녀가 기어코 9성의 벽을 넘어, 천마신공의 극성이라 여겨지는 10성에 도달했으니까.
과거 불허의 미궁에서 7성의 경제만으로도 군단장에게 유의미한 피해를 입혔던 그녀다.
9성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누구와 싸워도 진 적이 없었을 정도.
그건 원래도 대다수의 사람을 내려다보던 그녀의 오만함에 날개를 달아주었으나, 이제 와선 알 수 있었다.
“심히 부끄럽구나. 한 줌의 힘을 가지고 그리 만용을 부려왔다니.”
지금과 비교하면 얼마나 나약했었는지.
“여태 내가 사용하던 건 천마신공이 아니었다.”
진정한 천마신공이 무엇인지.
뇌룡강림?
겨우 그런 것에 아쉬워할 필요가 없는 사기적인 힘이었다는 것을.
콰드드- 쿠구구-
고양감에 무의식적으로 기세를 발현하자, 바위산의 공기가 짙게 떨렸다.
하늘이 진동하는 것만 같은 감각에 관우혁이 감격에 젖은 눈으로 입을 벌리다 고개를 조아렸다.
“천마천세 만마앙복!”
그게 시작이었다.
그녀의 기세를 느낀 바위산 밑에 있던 단원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다 못해 고개를 조아리며 외친 것이다.
천마(天魔), 천지아.
[천마신공(天魔神功)이 극성의 경지에 도달하였습니다.]
[천마(天魔)가 유일한 제 심복의 성과에 심히 기뻐하며 무구, ‘패천군림검(覇天君臨劍)’을 사사합니다.]
[유일급 무구를 획득하였습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신화신의 진(眞) 무구를 획득하였습니다.]
[모험의 서에 기록됩니다.]
…….
진정한 의미의 천마(天魔)가 된 그녀가 역대급 길드전에 뛰어들 채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건 다른 마스터들도 비슷했다.
파앗-!
찬란한 황금빛이 번쩍이며 신전을 물들이고 있는 곳.
그곳의 중앙에 선 번쩍이는 흰색과 황금색이 적절히 섞인 갑옷을 입은 금발의 성기사.
[성검 아스바온이 공명합니다.]
[정체되어있던 한계를 벗어나 영혼에 드높은 격이 깃듭니다.]
[진정한 성검의 주인이자 위대한 성기사가 되었습니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달했군.”
더 킹의 아더.
그가 그간 애먹던 성검과 완벽히 공명하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사아아-
“이것이 혈살의 주인…… 가히 암살의 한계를 뛰어넘었군요. 이제는 당신의 암살에서 벗어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시나.”
“……그에게도 닿을까요?”
“시나. 당신은 제가 본 최고의 암살자입니다. 과거에 보았던 당신과 지금의 당신은 다른 사람이라 해도 믿을 정도이지요. 줄곧 당신을 보았던 저이기에 장담할 수 있습니다.”
“…….”
“닿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최강의 암살 길드 혈살(血殺)의 수장, 시나.
“빌런 학살자……!”
“젠장, 최근 며칠은 잠잠하더니 왜 또 이러는 거야! 대체 왜 이리 우리를 못 잡아서 안달인 건데!”
“당연할 걸 묻는군요. 그야 쓰레기는 치우는 게 정답이니까.”
“이런 미친놈…….”
“뭐, 지금은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궁금했거든요. 제 수련의 결과가. 지금이라면 그자와 좋은 승부가 될 수 있을지.”
“……미친. 그래서 이 난리를 피웠다고? 눈이 있으면 주위를 봐! 아지트로 삼은 기지만 다섯 개가 박살 났다고! 네 그 말도 안 되는 해일에!”
“그래서 만족스럽습니다.”
“……뭐?”
“지금이라면…… 라온 정도는 손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지금이라면, 그 남자에게 닿을 만할 거 같거든요.”
푸욱!
아크의 마스터이자 최강의 마창사, 라이하스.
“달빛이 푸르르구나. 좋은 밤이야. 그렇지 아니한가?”
“예, 문주님.”
“검이 울리는군. 참 우스운 일이야. 이제야 월영검의 진면목을 알게 되다니. 완벽하게 다루고 있다 생각했던 힘이, 사실 반도 채 이끌어내지 못한 힘이었다니 말이야.”
“문주님이기에 닿은 영역이옵니다. 다른 자들은 그런 영역이 있는 줄도 모르겠지요.”
“……그러하겠지. 나 또한 우연히 도달하였으니.”
“우연이라뇨. 운명인 것입니다.”
“……그래. 네 말대로 운명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마침 길드전을 앞두고 도달한 걸 보면 말이야.”
전(前) 슬레이어이자 일본의 10대 길드, 미카즈키 길드.
“내일. 세상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본의 미카즈키야말로 최강에 걸맞다는 것을.”
그곳의 문주이자 월영검(月影劍)의 유일한 주인인 야마모토가 달빛이 깃든 저택의 마당을 보며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으며,
띠링-
[천지아 : 준비는 되었느냐.]
[나 : 무슨 준비?]
[천지아 : 허, 여전히 밥 말아 먹은 눈치로고. 샌드백에게 물어볼 준비가 무엇이겠느냐. 처맞을 준비가 되었냐는 것이지.]
[나 : ? 미친 거냐 진짜?]
[천지아 : 무리하지 말거라, 아재. 나이를 먹어가는데 몸 관리 잘해야 더 많은 기술을 맞아줄 수 있지 않겠느냐. 시험해볼 게 많으니 부디 건강한 몸으로 왔으면 하는구나.]
미카즈키의 길드 건물과 정반대의 곳에서, 한 남자는 의문의 메시지 폭격을 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