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03화.
[경기가 ‘대항전’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첫 경기에 참가할 길드는 ‘피닉스’, ‘카신교’, ‘아크’, ‘어니스트’, ‘크레센도’ 입니다.]
[호명된 길드는 대항전에 참가할 인원을 정해주십시오.]
[15분 후 경기가 시작되오니 제한 시간 내에 대기실에서 나와 무대에 오르십시오.]
‘이게 처음부터 내가 걸리네.’
수많은 길드들을 뚫고, 첫 타자부터 마주한 거물들의 대결에 울부짖는 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아아!!!!!!!
-와씨, 이거 실화냐!!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라이하스! 라이하스! 라이하스!
-이런 미친, 첫 경기부터 10대 길드끼리 붙는다고?
-소리 벗고 팬티 질러어억!!!
북소리 또한 이전보다 배는 더 커져 있었는데, 워프를 타고 무대로 향하는 복도에 들어선 도현은 그것이 착각임을 알 수 있었다.
두 배?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쿠웅- 쿵-!!
쿵!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펀치! 카이저 펀치! 카이저 펀치! 카이저 펀치!”
“카이저 오빠!! 팬이에요!!”
“이겨요 형!!”
“가아아알!! 무엄하도다!! 형이 아니라 카신이라 불러야 마땅하거느으으을!!!”
“킹 갓 제너럴 카이저 펀치!!!! 카이저, 그는 신이야아아아!!!”
무대를 둘러싼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있었다.
이전에 비해 몇 배는 더 요란하게 울리는 북소리가, 조금도 소음으로 느껴지지 않을 만큼 큰 소리로.
-케륵! 키륵!
-리자리자! 리자!
-음! 모두가 기대하고 있군요. 주군께서 보여주실 위대한 활약을.
기뻐 날뛰는 둘을 내버려 두고 자랑스레 건네는 찰리의 말에, 도현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자신을 부르짖는 저들의 목소리에 담긴 기대, 희열, 동경, 흥분, 그 모든 짙은 진심이.
‘뎀로크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그때도 신으로 추앙받긴 했으나, 전성기 시절조차 유저 수가 천만 명에 불과했던 게 뎀로크다.
아마도 방송을 통해 보고 있을 수천만…….
아니, 어쩌면 억을 넘는 유저들이 자신을 보고 있을 지금과 비할 바가 안 되리라.
그에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우와아아아아!!”
“믿나이다.”
“카이저 펀치! 카이저 펀치! 카이저 펀치!”
새삼 체감이 된 것이다.
‘언제 따라잡나 했는데.’
드디어 이곳의 정점이라 불리는 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의 영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
아니, 그 이상을 이루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것이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하나였다.
씨익.
‘화끈하게 뒤집어줘야지.’
저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날뛰는 것.
그게 저들의 진심에 할 수 있는 유일한 보답일 테니까.
-가보자고, 주인!
-리자리자!!
-이 미천한 검은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주군.
가디언들도 같은 마음인지 당장이라도 뛰어들 듯 의욕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진짜로 곧장 뛰어들 수는 없었다.
[경기가 시작되기 10분 전입니다.]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벌써 5분이 지난 건가?’
잠깐 여운을 즐긴 거 같은데 벌써 제한 시간의 3분의 1이 삭제되었다.
보통 참가할 인원들을 미리 정해놓으니, 대부분의 길드에게는 그저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에 불과하겠지만…….
도현에겐 아니었다.
‘여섯 명씩이라…… 누구누굴 참가 시켜야 하지?’
당장 자신부터가 길드원들을 만날 새도 없이 급하게 온 상황이라 의견을 주고받은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었다.
‘아니, 그것보다 다들 어디 있는 거야?’
아직 안 나오고 있는 건가?
일단 길드 채팅으로 불러내야겠……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였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아아, 카신이시여.”
“광명을 밝히는 위대한 카신을 뵙습니다.”
“카멘.”
“카멘…….”
빛이 몇 차례 번쩍인다 싶더니, 복도에 신도들이 줄줄이 나타나 무릎을 꿇었다.
인원은 대략 스무 명쯤 될까.
그리 많은 수는 아니지만, 복장은 물론 오와 열까지 맞춘 절도 있는 자세라 확실히 풍기는 임펙트가 강했다.
“신이시여…….”
“대검…… 아니, 아나.”
순간 눈의 빛이 빠르게 사라진다 싶더니, 다시 원래의 맑은 광기를 담은 눈으로 돌아온 광신도.
도현이 한숨 돌리자 그녀가 너무도 죄스럽다는 듯 붉은 입술을 물었다.
“송구스럽나이다. 미리 와있지 않고, 신을 기다리게 하다니…….”
“……내가 말을 안 하고 온 건데 당연한 거지.”
하지만 아나는 고개를 열렬히 저으며 온몸으로 자책했다.
그리고 그 교주에 그 신도라고.
“아아, 저희는 신도의 자격이 없습니다.”
라는 아나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기도를 올리더니 할복부터 하려 드는 신도들.
‘저 미친놈들이.’
대항전을 앞두고 할복은 무슨 퍼포먼스란 말인가.
기겁한 도현이 곧장 그들을 만류하며 진정시키고 있을 때.
“……?”
도현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할복하려는 신도들 사이에서 부쩍 낯익은 실루엣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분명 가면과 로브로 몸을 가리고 있지만, 가면에 새겨진 파수견좌 문양과 로브 사이로 슬쩍 보이는 화살통.
스윽.
그리고 눈이 마주칠 때마다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눈치를 살피는 모습까지.
‘……해링턴?’
저건 무조건 해링턴이었다. 저 남다른 보법이 생체 인증이다.
그에 도현은 황당한 심정이 되었다.
해링턴이 누구인가?
10대 길드 중 하나이자 이번 경기 참가 길드인 어니스트의 마스터다.
‘아니, 상대 팀으로 참가해야 할 길드 마스터가 이쪽으로 오면 어떡해?’
도의적으로도, 상식적으로도 안 되는 일 아닌가.
아무리 신앙심이 높아도 이건 아니었다.
“심혈을 기울여 데리고 온 간부들이옵나이다. 이들 중 마음에 드는 신도들에게 함께 전장에 나설 은혜를 내려주소서.”
“…….”
평소라면 오글거림에 손발이 오그라드느라 잠깐 움찔했을 터.
하나 선택이란 말에 도현은 곧장 답했다.
“그럼 일단 저 파수견좌 문양 그려진 가면 쓴…….”
“아아, 역시…… 뛰어난 안목이옵니다. 처음부터 최고전력을 정확히 집어 호명하시다니…….”
“……어?”
“별자리를 지닌 신도들은 위대한 카신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능력과 의지를 지닌 자들. 주제넘지만, 되도록 함께하기를 권유드리겠나이다.”
“아.”
“무엇보다…… 사실 파수견좌는 사정상 출전 등록을 하지 못하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나이다. 아무래도 둘 중 하나를 골……. 흠흠. 신앙을 증명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오니 부디 용서해주시길 바라겠나이다.”
“……그렇구나.”
저 사정이라는 게 뭘지 너무도 잘 알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허탈한 웃음을 흘린 도현은 이내 순응하기로 했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면 거부하지 말고 탑승하라지 않던가.
‘난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
반쯤 해탈한 마음으로 나머지 멤버들을 뽑자, 지명 당한 이들이 하나같이 감격 어린 반응을 보이며 충성을 맹세했다.
그런 반응과 달리 도현은 기준은 별다른 게 없었다.
우선 아나와 해링턴은 확정이고.
나머지 다섯은 별자리를 새긴 이들 중 가장 아나랑 멀리 떨어져 있는 이들을 고른 것뿐이니까.
‘아나랑 멀리 있을수록 그나마 정상적이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대항전에 참가할 길드원을 모두 정하였습니다.]
[전투 길드 ‘카신교’에서 참여할 길드원은 , , , …… (후략).]
그렇게 참가할 신도들을 정하고 대략 5분하고도 조금 더 지났을까.
스륵-
[대항전이 시작됩니다.]
[참가하게 된 길드 분들은 모두 입장해주십시오.]
무대로 향하는 출구를 가로막던 반투명한 결계가 사라지며, 메시지가 떠올랐다.
‘드디어 시작된 건가.’
그에 망설임 없이 발을 내딛자, 도현과 신도들을 비롯하여 모든 길드 참가 인원들이 거대한 전광판에 비추었고.
——!!!!
떠나갈 듯한 함성이 터져 나오며 공기가 진동했다.
그래도 좀 들었다고, 이젠 나름 익숙해진 환호를 받으며 걷자니 곧이어 시야에 타 길드의 유저들이 들어왔다.
저벅, 저벅.
왼쪽에서 걸어오는 금발의 백인.
전형적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쪽 계열의 미를 담은 여인과, 같은 국가로 보이는 건장한 남자 넷과 여자 하나.
[피닉스]
준 10대 길드로 불리는 100대 길드 피닉스였다.
그 맞은편이라 할 수 있는 오른쪽에서 오는 이들은…….
[크레센도]
아예 처음 보는 자들이었다.
아무도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없는 걸 보면, 대진운이 더럽게 없는 평범한 중소 길드 아닐까 싶다.
그리고 도현의 맞은 편에는 복도가 두 개라 두 길드가 모두 보였다.
“에휴. 망했네 그냥.”
“길마 없이 참여하는 게 말이냐.”
“에라이, 뭔 이상한 종교에 빠져서는…….”
“길드 탈퇴라도 하고 싶은데……. 그랬다간 뼈도 못 추리게 생겨서 탈퇴할 수도 없고.”
“그래도 10대 길드라고 쳐주긴 하잖아……. 여기 나가면 탐험가 유저가 절반인 우리가 뭘 하겠냐.”
……일단 하나는 도현으로선 유념을 표할 수밖에 없는 어니스트 길드.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카이저 님.”
“예. 오랜만이네요.”
어느새 지척 거리에서 마주하며, 보는 사람이 다 시원해지게 웃는 푸른색이 가득한 미남과 창을 든 남녀.
[아크]
라이하스와 아크의 길드원들이었다.
도현과는 구면이기도 했다.
뒤에 선 길드원들은 모르는 얼굴이지만, 라이하스는 꽤 친밀하게 느끼고 있기도 하고.
하지만 이곳에서 마주한 이상 적일 뿐이다.
“소식은 많이 들었습니다.”
“음?”
“라온, 그자와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대륙 퀘스트를 끝낸 것 말입니다. 이거 참…… 듣고 얼마나 상심이 컸는지 카이저 님은 모를 겁니다. 제가 실패한 모든 걸 당신이 해냈으니까요. 제가 멍청하게 육체를 빼앗길 동안.”
“태어나서 그런 종류의 감정은 처음 느껴봤어요. 아 이런 걸 무력감이라고 하는 거구나…… 그걸 알게 된 건 조금 후였죠.”
그건 그도 마찬가지인지, 호승심을 감추지 않고 온몸으로 표출해온다.
“참 많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귀를 타고 들어오는 담담한 척하나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먹잇감을 보는 건지, 라이벌을 보는 건지.
그도 아니면 밟고 올라서야 할 대상을 보는지 도통 알 수 없는 눈빛.
“그리고 그 생각이 저를 성장시키더라고요. 불과 며칠 새,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공기를 타고 전해오는 기세 하나하나에서 당장이라도 싸우고 싶다는 마음이 짙게 전해진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평소라면 말이다.
피식.
모든 신경을 도현에게 쏟고 있는 탓일까.
“……웃으신 겁니까?”
미세하게 비틀어진 입가를 귀신같이 눈치챈 라이하스가 눈매를 좁히며 물었다,
그에 도현은 감출 생각이 없는지 도리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거 참……. 저랑 비슷한 구석이 있다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아닌가 봅니다.”
“그게 무슨……?”
“전 싸우기 전에 혀가 긴 걸 선호하지 않아서.”
“우리가 싸우러 왔지, 뭐 근황 토크하려 온 건 아니잖아요?”
라이하스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었다.
어딘가 들떠 보이기까지 하던 기색이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지자, 도현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작합시다. 다들 기다리니까.”
“휘유, 벌써 끝난 거야? 우리만 두고 또 한참 대화하겠네 싶었는데 다행인걸? 하마터면 먼저 공격할 뻔했…….”
“……!?”
피닉스의 마스터, 제니퍼.
그녀가 손을 권총 모양으로 만들며 검지에 대고 장난스레 바람을 불며 끼어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니, 정확히는 반강제로 다물렸다 봐야 했다.
“……왓?”
시작과 동시에 눈앞이 번쩍거린다 싶더니, 도현의 신형이 사라진 것이다.
동시에 주변에 몇 차례 스파크와 푸른 물결이 솟구치자, 다급히 눈으로 쫓았으나 실루엣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콰아아아아앙-!!
“흐아악!?”
“이, 이게 대체 무슨…… 커헉!”
“으아악!”
도무지 사람이 내었다곤 생각되지 않는 폭음과 함께 충격파가 등 뒤에 터져 나왔다.
무대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충격파에 종잇장처럼 떠밀려진 제니퍼를 비롯한 길드원들과 타 길드의 유저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나 나름 100대 길드의 마스터라는 것일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런 와중에도 제니퍼는 어떻게든 몸을 틀어가며 눈에 힘을 주었다.
지금 일어난 일을 파악하겠다는 굳센 의지였다.
하지만 워낙 먼지 바람이 짙어서인지 흐릿하게만 형체가 드러날 뿐이었다.
하나 충격파가 거센 탓에 먼지 바람은 예상보다 빨리 걷어졌고.
‘……맙소사.’
곧이어 형체를 온전히 눈에 담은 순간, 제니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건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충격파에 휩쓸려 반강제로 밀려나 있던 무대 위 길드원들부터, 위에서 무대를 내려다보고 있는 수많은 관중들까지.
“……뭐?”
“아니, 이게 뭔…….”
“왓 더…….”
“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거야?”
“이게 말이 돼?”
이 순간만큼은 모두가 한마음이었다.
환호를 지르는 것조차 잊고, 웅성거리는 소리만이 들리는 기이한 풍경.
흥을 돋우던 북소리마저 멎어있는 것이 그들의 감정을 대변했다.
그런 그들의 눈동자에 비친 건…….
“왜 라이하스가 쓰러져 있는 거야!?”
넝마처럼 볼품없이 변한 복장으로 바닥에 쓰러져있는 라이하스와,
“다음.”
그 앞에서 붉은 사슬을 손에 감은 채 만족스런 미소를 짓고 있는 카이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