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20화.
초월 특성.
유저가 만렙을 달성한 후, 인간의 한계를 한 꺼풀 벗고 승격하며 얻는 능력.
기존 특성과 비교하면 아득한 성능을 자랑한다.
하나 같은 초월 특성이라 할지라도, 기존의 특성의 급과 초월 퀘스트의 성과에 따라 그 성능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어떤 특성에도 통용되는 불변의 법칙이 있었으니.
-초월 특성은 제약이 클수록 위력이 강하다.
그렇다 해서 더 좋은 특성이란 소리는 아니다.
상시적용이 가능한 초월 특성들은 그만큼 뛰어난 활용력을 보여주었으니까.
제약에 흔히 들어가는 ‘조건부 발동’이 무척 까다롭기도 하고, 어지간한 조건이 아니고서야 위력 차이가 엄청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그건 ‘어지간한 조건’이 아닐 때의 얘기.
‘사실상 생명력을 1% 빼고 모조리 제물로 바치는 자폭기라면?’
유틸성도, 방어도, 뭣도 없는.
그저 단 한 번의 공격에 모든 걸 걸어버리는 특성.
그야말로 뒤 없는 노빠꾸 메타의 결정체라 할 수 있는 이 특성이야말로, 가히 절명기라 할 수 있었고.
콰아아아아아앙-!!!!
그 위력은 가히 아재의 한 방이 연상될 수준이니…….
“커헉! 컥, 쿨럭!”
온전히 마창의 위력을 받아낸 멸살이 미친 듯이 피를 토해냈다.
전신이 검은 재로 뒤덮인 채로.
주변에 생성된 거대한 크레이터가 얼마나 강력한 충격이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전설(유일) 무기 ‘열계(裂界) – 도’의 특수 옵션 ‘멸법참(滅法斬)’을 시전합니다.]
[단 한 차례 시전 범위의 모든 마법을 멸합니다.]
[범위에 노출된 ‘파괴하는 내면의 마창’의 피해를 멸하였습니다.]
[경고! 남은 생명력이 20% 이하입니다.]
그 와중에 열계 – 도를 휘둘러 최대한 피해를 줄였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직격당했다면 허망하게 가버릴 뻔했다.
하나 이제 시작이었다.
탓-!
지면에 박혀있던 마법검이 다시금 날아오기까지의 그 짧은 시간.
냅다 달려든 도현이 그 시간에 모든 걸 쏟아붓듯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 것이다.
빠바바박-! 빠박!
“크윽!”
어떻게든 받아치려 해봐도, 무기가 제 말을 듣질 않는다.
결국, 멸살은 아예 검을 손에서 놓고, 다급히 급소를 가렸다.
급소에 적중되면 크리티컬 판정이 되기에 최대한 치명상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수 초가 지나고, 마법검들이 돌아왔지만 한 번 밀린 기세는 제대로 회복하기 힘들었다.
[질풍의 기운이 한계치에 도달하였습니다.]
[‘뇌각’이 최대 중첩입니다.]
[질뢰섬멸각(疾雷殲滅脚)’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카야나의 단검의 옵션인 헤이스트와 재빠른 몸놀림.
두 능력을 비롯하여 온갖 버프를 휘감은 도현의 속도는, 눈으로 좇을 수 있는 수준을 초월해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거리가 초근접이다 보니 마법검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멸살의 몸을 방패 삼아 검을 휘두르고 있으니, 도통 조준할 수가 없었다.
[경감(輕減)의 효과로 받는 피해량이 30% 감소됩니다.]
[쇄영검(碎影劍)의 특수 옵션 ‘파쇄흡수(破碎吸收)’가 발동됩니다.]
[받는 공격의 일부를 흡수하여 완화시킵니다. 강한 공격일수록 흡수량이 늘어나며 한계를 초과할 시 능력이 취소됩니다.]
그나마 방어 계열 마법검으로 어떻게든 상쇄하고 있는 상황.
더 악질인 건, 도현이 결코 스킬 위주의 공격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열계(裂界) – 도.
모든 마법을 멸해버리는 사기적인 마법검.
하나 달리 말하면, 마법이라 칭할만한 공격만 하지 않으면 그저 공격력 좀 높고 멋들어지게 생긴 검에 불과하다.
-카, 카이저 선수! 몰아치고 있습니다! 휘몰아치고 있어요.
-멸살 선수 위기인가요!
-약점 따위 없는 난공불락의 성처럼 보이던 멸살 선수의 이기어검에 저런 약점이 있었군요. 이건 정말 카이저 선수이기에 가능한 공략법으로 보입니다.
-예, 사실 거리를 좁히는 게 말이 쉽지. 멸살 선수를 상대로 아직까지 누구도 성공하지 못했거든요. 정확히는 좁힌 거리를 유지하는 걸 성공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와아아아아-!!
순식간에 역전된 상황에 쏟아지는 환호성.
그에 차분했던 모습은 어디 가고, 멸살의 표정이 실시간으로 썩어들어다.
더는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
실제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도 했다.
촤르륵-
지금도 도현이 쉴 시간을 주지 않고, 철쇄천겁을 던지고 있었으니까.
사슬이 뱀처럼 의지를 가지고 쇄도해온다.
[제6계 사슬 ‘사연멸심쇄(蛇淵滅心鎖)’를 시전합니다.]
사연멸심쇄.
시기 질투로 인해 큰 죄를 지은 자를 벌하는 여섯 번째 지옥의 사슬.
수많은 뱀들이 모여들어 평생 심장을 물어뜯는 형벌을 표현한 사슬이, 멸살의 심장을 노리고 쇄도했다.
[심장을 3회 꿰뚫을 때마다 ‘삼아침식(三牙侵蝕)’이 발동됩니다.]
[크리티컬 데미지로 적용되며 일시적으로 상대의 움직임을 멈추고, 일정 시간 체력 재생을 막습니다.]
두 개의 사슬이 마치 스스로 분열하듯 늘어난다.
네 개, 더 나아가 여섯 개로 늘어난 사슬이 순식간에 멸살의 팔다리를 옭아매고, 두 사슬이 심장을 꿰뚫기 직전.
스으-
멸살의 형체가 흐려지더니, 이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니, 정확히는 애초부터 그곳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봐야 하리라.
[혼란의 마법검, ‘글라디우스 리투스 빈쿨리’의 특수 옵션 ‘오버레이 리투스(Overlay Ritus)’가 발동됩니다.]
[지정한 일정 공간에 원하는 현상을 덧씌워 혼란을 줍니다.]
멸살이 새로 꺼낸 일곱 개의 마법검 중 하나.
다른 마법검들에 비하면 다소 약해 보이는 검이라 볼 수 있으나, 이 검의 사기성은 ‘절대 판정’에 있었다.
‘대상이 아닌, 공간을 대상으로 하는 능력.’
그런 만큼 영웅 특성과 같은 능력으로 카운터를 칠 수가 없었다.
본인을 대상으로 현혹을 건 것이 아니니까.
하지만,
휙, 쇄애액!
‘보여.’
씨익 웃은 도현이 즉시 사슬의 궤도를 틀었다.
그의 눈엔 보였다.
[진리의 눈이 발동 중입니다.]
“……뭐?”
새로 뒤덮인 현상에 숨겨진 진실된 모습이.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듯, 두 손으로 대검을 쥔 채 집중하는 멸살의 모습이 보인다.
그곳을 향해 온 힘을 다해 천변을 내려치자,
쩌저적-!
거울이 깨지듯 갈라지며 공간이 깨져나갔다.
마법검 하나가 무용지물이 된 셈. 결국, 멸살은 준비하던 공격을 멈추고 검을 들어 올렸다.
콰앙!
묵직한 충격이 검면을 타고 머리 위로 전해진다.
멸살의 표정에 일순 다급함이 깃들었다.
[생명력이 20% 이하입니다.]
유물 전설 액세서리의 도움으로 최상위권의 강력한 뎀감 버프를 불러냈음에도, 생명력이 바닥을 보이고 있는 탓이었다.
공격을 너무 많이 허용한 탓도 있지만, 처음의 그 마창이 너무 컸다.
더는 방어계열의 장비 효과도 남지 않은 상황.
‘위험하다.’
이대로 가다간 순식간에 바닥에 드러누울지도 모를 일.
순간 태초의 마법검으로 봉인해두었던 패링을 지우고, 방어를 택해야 하나란 생각이 스쳐 간 멸살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한순간을 모면하고자 기세를 탄 놈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천검진명(天劍震鳴)’의 기운을 발현합니다.]
“크아!”
결국, 가슴을 때리는 묵직한 충격을 발돋움 삼아 뒤로 물러난 멸살이, 급한 대로 기세를 폭발시켰다.
드래곤 피어와 같은 효과를 지닌 기술.
—!
금방 천왕진기(天王震氣)로 맞받아치는 도현이었으나, 덕분에 잠깐의 틈을 번 멸살이 무너진 자세를 잡았다.
도현을 향해 검을 겨눈 그의 표정은 이전과 많이 달랐다.
예상을 벗어난 무언가를 본 자의 경계 어린 얼굴.
‘……달라졌다.’
저건 지금까지 보아온 카이저가 아니었다.
갓오세에서만의 얘기가 아니다.
뎀로크 시절부터 어깨너머로 보아온 그의 모든 전투 스타일과 현저히 달랐다.
그렇다는 건…….
‘즉흥적으로 바꾸었다는 건가?’
잠시 생각하던 멸살이 고개를 저었다.
바꾼 건 맞지만, 새로운 스타일을 창조한 느낌은 아니다. 갓 태어난 날 것의 느낌이 전혀 없었으니까.
저건…… 마치 오래된 옷을 입은 듯한.
“……그렇군.”
그 순간 번뜩 뇌리를 스쳐 간 생각에, 멸살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본래의 네 모습인가, 카이저.”
“…….
“솔직히 놀랐다. 이 정도로 몰아 붙여질 줄은 몰랐는데…….
눈에 띄게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은 멸살이 진지한 얼굴로 자세를 잡았다.
“인정하지. 넌 나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남자다.”
“지금부턴, 호적수를 상대한다는 생각으로 임하도록 하겠다.”
도현은 대답 대신, 공격으로 화답했다.
대화 따위 하기 싫다는 무언의 표시 같은 게 아니었다.
무시하고 있다기보단, 답하지 못한다고 보는 게 더 타당했으니까.
무언가에 빠진 듯 넋이 반쯤 나가 있는 그는 초집중 상태였다.
그저 본능에 맡겨 몸을 움직였다.
‘아…….
마치 데미서스와의 싸움 때 느꼈던 그때처럼.
집중이 이어질수록 세상이 느려진다.
세포 하나하나가 뚜렷하게 느껴지는 기이한 감각. 그 감각 속에서 과거의 움직임이 더욱 생생하게 떠오른다.
마치 세포 내에 잠들어있던 기억이 깨어나는 느낌.
챙! 챙! 카앙!
그러자 습관처럼 패링하던 것도, 실패해서 불편했던 것도 점점 옅어진다.
-보, 보이지가 않습니다! 두 선수 다 너무 빨라요!
-이게 플레이어가 가능한 속도였나요? 위력마저 엄청납니다.
-맙소사 멸살 선수, 그간 전력을 발휘한 게 아니었군요!? 더 놀라운 건 카이저 선수의 저력입니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밀리고 있었지 않습니까?
-예, 분명 그랬습니다만…… 기분 탓일까요? 지금은 오히려 밀어붙이고 있는 것 같이 보이는 건…… 싸우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허, 대체 얼마나 천재인 건가요!
-어어, 말씀드리기 무섭게 멸살 선수도 점점 더 템포를 올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자강두천! 두 천재의 싸움…… 아니, 두 정점의 싸움입니다!
와아아아아-!!! 와아아아!!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멸살! 멸살! 멸살! 멸살!”
“카메에에엔!!!”
“멸살 오빠아악!”
관중들의 환호 속에서, 두 사람이 더욱 격렬하게 맞부딪혔다.
찰나의 틈이, 한 번의 실수가 패배로 이어질 수 있는 숨 막히는 싸움.
이 순간.
도현이 느끼는 감정은 아이러니하게도 즐거움이었다.
‘즐겁다.’
고양감이라고 해야 할까.
점차 가슴이 벅차오른다.
뎀로크를 즐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시절.
모든 게 부족했던 그 당시. 새로운 강자들을 만났을 때 느꼈던 감정이 이러했던가.
-넌 뭔데? 눈 똑바로 안 뜨냐? 꼬우면 한 판 뜨던가.
히든 필드에서 꾸꾸를 처음 만났을 때.
가면 때문에 눈도 마주치지 않았는데, 뭘 꼬나보냐며 화를 내서 시작되었던 싸움.
-이 새끼 봐라? 나랑 맞치기를 하려 드네? 그래, 한 번 죽어보자.
살면서 처음으로 만난 강적이었다.
이렇게나 괴물 같은 놈이 존재하는구나, 큰 충격을 받은 싸움이었다.
쉴 새 없이 두근거리는 가슴이 긴장감 때문인지 흥분한 건지 알 수 없었다.
-허, 이놈 물건이네? 이걸 받아쳐? 내가 바른 돈이 얼만데…… 그래, 이것도 받아치나 보자.
상상을 초월하는 맷집과 한 방 딜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보라색 괴물.
당시의 보라아재는 철로 된 벽이었다.
-검을 맞대면 안다. 너는 검을 배우지 않았군. 네가 검사인 이상, 그런 엉성한 검술로는 날 이길 수 없다.
검성…… 아니, 검제의 검은 도저히 닿지 못할 것 같은 드높은 격이었다.
분명 둘 다 검을 다루고 있는데, 도저히 같은 검을 다룬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검을 맞댈 때마다 등골이 서늘하고, 심장이 떨리는 전투.
쿵, 쿵, 쿵.
잠들어있던 세포가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듯, 선명하게 몸에 각인된다.
당시에 그들이 무슨 표정을 지었었는지는 기억이 희미하다.
하나 굳이 떠올릴 필요는 없었다.
-아, 아니! 멸살 선수…… 웃고 있습니다! 멸살 선수가 웃는 모습을 보는 게 대체 언제인가요.
-기분 탓일까요? 가면 때문에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카이저 선수도 분명 웃고 있는 거 같습니다.
-대화 한마디 없이 쉴 새 없이 검을 주고받는 와중에 서로를 보며 웃고 있어요!
-이 무슨 영화 같은 그림입니까!
분명,
저 얼굴과 비슷했을 테니까.
캉! 카앙!
두 사람 사이에 대화는 필요 없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것.
그것만이 유의미한 대화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