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40화.
‘이런 미친…….’
처음 기이한 돌에게 인정받아 역천의(逆天衣)를 만들었을 때.
역천기와 흡사한 이름이라든가, 순간적으로 펼쳐졌던 남자의 모습을 보고 분명 무언가 관계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하늘을 거스르기 위해 신살(神殺)의 길을 나아갔다는 점.
심연의 강자들과, 사신 데미서스, 전 종말의 신 카디움까지 모두가 안다는 점에서, 무언가 신들과 깊은 관련이 있으리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케온]
-타이틀 : 카시야르의 초대 계승자, 신살자(神殺者), 역천기(逆天期)의 창시자.
-타입 : 인간
-특성 : 신살(神殺)의 검, 하늘을 거스르는 자, 투신(鬪神).
-설명 : 투신(鬪神), 카시야르의 의지를 이어 신에게 도전한 초대 계승자.
절망을 방관하는 신에게 환멸을 느껴 하늘의 뜻을 거스르던 아르케온은, 카시야르의 그릇이 된 후 모든 진실을 알게 되어 신을 죽이기 위한 검을 완성하였다.
비록 원대한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였으나……
언젠가 모든 것을 바로잡아 줄 진정한 운명의 계승자가 찾아올 순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기술와 경험이 각인된 육신을 남겨 두었다.
‘전대 카시야르의 계승자였다니.’
그렇다 해도 그렇지, 설마하니 자신의 선배였을 줄이야!
‘내가 두 번째란 소리인데…… 그럼 이미 한 번 실패했던 건가?’
하지만 예언이나, 약속의 날을 생각하면 좀 이상한데?
하물며 도현조차 3년 후에 일어날 메인 퀘스트를 앞당긴 걸 생각하면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역사에 기록되지 않는 걸 보면 꽤나 옛날 사람인 거 같은데…….’
그렇다고 고대 시절이냐 물으면 그건 또 아닌 거 같다.
역천기(逆天期)의 초식을 깨우칠 때마다 펼쳐졌던 남자의 과거를 보면, 신을 떠받드는 게 보편적인 시대로 보였으니까.
고대와 현 인류 역사 사이 어딘가쯤에 있다 보는 게 적합한데…….
‘파천귀도 그렇고, 어쩌면 우리가 모르는 전쟁이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뭐, 지금은 알 방도가 없었다.
저벅.
그런 걸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해골 기사…… 아니, 전대 계승자이자 직속 선배라 볼 수 있는 자가, 어느덧 지척까지 다가와 마주 섰으니까.
천변을 바라보는 것이, 어서 무기를 뽑으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에 도현이 어깨를 으쓱이며 천변을 들었다.
-…….
부러져 힘을 잃어버린 설화(雪華)검을 보던 아르케온이, 마찬가지로 천변(千變)을 들어 올리더니…….
휙,
“?”
대뜸 도현을 향해 던졌다.
직선이 아닌 포물선을 그리며 부유한 천변은 정확히 도현의 앞에 떨어졌다.
그에 반사적으로 낚아채자, 떠오르는 문구.
[천변(千變) – 기(氣)를 획득하였습니다.]
[천변(千變)의 첫 번째 분신을 확보하였습니다.]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전용 무기 퀘스트 ‘천변(千變)을 완전하게’가 발생합니다.]
[천변(千變)을 완전하게]
-등급 : 전용 무기 퀘스트
-제한 : 카시야르의 계승자
-설명 : 지금의 천변(千變)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기본이 되는 뼈대만 존재하는 형태. 근육과 살이 되어 줄 투(鬪)와 기(氣)를 모두 확보하여 진정한 형태를 되찾으십시오.
-천변(千變) – 투(鬪) (0 / 1)
-천변(千變) – 기(氣) (1 / 1)
[천변(千變)의 모든 분신을 확보할 시, 천변(千變)이 진정한 힘을 되찾고, 본래의 형태로 각성합니다.]
‘허? 이것 봐라.’
퀘스트를 확인한 도현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투신의 권능을 담은 무기라는 이명이 조금도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던 무기가 사실 완전체가 아니었다고?
그야말로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동시에 그만큼 기대되었다.
‘그럼 본래는 얼마나 개사기란 거야?’
마른침을 삼킨 도현이 시선을 들었다.
[천변(千變) – 기(氣)]
-등급 : ??
-설명 : : 천변의 첫 번째 분신.
천변의 또 다른 권능이 깃들어 있는 분신으로, 본체가 되는 천변(千變)과 합칠 시 추가 능력이 부여됩니다.
[천변(千變) – 기(氣)를 흡수하시겠습니까?]
‘그래.’
이건 못 먹어도 고다.
[+15 천변(千變)]
[등급 : 신화 ]
[설명 :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설산에 사는 하얀 사자와 한 송이의 꽃을 표현한 검.
과거 위대했던 왕의 상징적인 검이었으나 지금은 잊힌 유물이다. 잊힌 왕의 찬란했던 검술의 일부가 담겨 있다.]
[레벨 제한 : 100 (100)]
[착용 제한 : 잊힌 왕의 검을 받아 낸 자]
[물리 공격력 : 6,141 ~ 6,707 + (4,865 ~ 5,183)]
[내구도 : 100 / 100]
[무기 포식 : 무기를 포식할 수 있다. 포식한 무기로 변할 수 있으며 특수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 같은 종류의 무기를 저장할 시 이전에 저장한 무기를 뱉어 낸다.] (옵션 포식 사용 가능)
…….
[천변(千變)의 첫 번째 분신을 흡수하여 새로운 옵션이 부여되었습니다.]
[천변(千變) – 기(氣) : 상상한 형태의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능력치와 등급은 본체가 되는 천변(千變)의 등급을 따라갑니다.]
-천변(千變)이 완전하지 못하여 일부 능력만 적용된 상태입니다.
‘오? 등급이 올랐잖아?’
전설에서 전설+로 오른 등급에 맞게 공격력도 눈에 띄게 상승했다.
더불어 새로 생긴 추가 옵션을 확인한 도현이 곧장 구현할 무기를 떠올렸다.
스으-
그러자 천변에 희미한 빛이 깃들더니, 빠른 속도로 형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검이었다.
가장 익숙하고 정이 들었으나, 이제는 다룰 수 없게 되었던 설화(雪花)검.
‘능력까지 그대로 사용할 수 있진 않나 보네. 하긴 그랬으면 너무 사기지.’
편리하긴 하지만, 권능이라기엔 어딘가 애매한 성능.
그래도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천변(千變)이 완전하지 못하여 일부 능력만 적용된 상태라…….’
이 권능의 진정한 힘을 발휘하려면 천변을 완전체로 만들어야 하는 듯하니까.
그러려면 마지막 분신이 필요한데…….
[천변(千變) – 투(鬪)를 발견하였습니다.]
[아르케온에게서 쟁취하여 천변(千變)의 마지막 분신을 흡수하십시오.]
휙, 휙-
‘빙고.’
아니나 다를까.
아르케온이 보란 듯이 허공에 휘두르고 있는 저 검이, 마지막 분신이었다.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기운을 여실히 풍기는 걸 보니, 자신을 이기고 가져가라고 말하는 듯했다.
도현도 바라던 바였다.
[신살자(神殺者)]
-등급 : 직업 퀘스트
-설명 : 투신, 카시야르의 초대 계승자와 조우하였다.
고대 이후 잊힌 최강의 인류이자, 신에게 대적하던 유일무이한 남자.
아르케온, 그에게서 승리를 쟁취하여, 계승자로서의 힘을 온전하게 이어받으십시오.
완전한 계승을 마쳐, 예언의 날에 펼쳐질 종말에 맞서 싸우십시오.
-클리어 조건 : 아르케온의 인정 (0 / 1)
-퀘스트 성공 시 : 초월(超越), 타이틀 ‘카시야르의 계승자’의 모든 효과 개방.
-퀘스트 실패 시 : 연계 직업 퀘스트 삭제.
‘초월에 타이틀의 남은 효과까지?’
어차피 무조건 해야 했던 일이니까.
‘가 보자.’
마음을 다잡은 도현이 돌진하자, 아르케온 또한 마주 달려온다.
가뜩이나 가까웠던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고, 눈 깜짝할 사이 두 사람의 검이 맞닿았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격의 차이가 압도적입니다.]
[상대의 검격을 패링할 수 없습니다.]
저 멀리 날아가 동굴 벽에 처박힌 도현이 침음을 흘렸다.
흔들리는 시야 너머로 시스템 창들이 어지럽힌다.
하나 도현은 그것에 한눈을 팔지 않고,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아르케온에게만 집중했다.
‘……말 안 되네.’
분명 둘 다 같은 역천기의 초식을 썼다.
1초식 시의 태산과 같은 기운을 담아, 묵직하게 부딪치자 곧장 기운을 순환시켜 3초식 천을 펼친 것이다.
복사한 듯 똑같이 이루어진 판단. 하나 그 결과는 극명하게 갈렸다.
단순히 저 남자가 더 강해서?
‘아니.’
도현이 입가에 피를 훔치며 중얼거렸다.
“……나와 검술이 달라.”
자신의 역천기(逆天期)와 그 기반은 같지만, 분명 다른 검술이었다.
아니, 다르다기보단…… 완성되었다고 보는 게 더 옳으리라.
[완성된 역천기(逆天期), 신살(神殺)의 검을 목격하였습니다.]
[‘역천기(逆天期)’는 아르케온이 신살(神殺)의 검을 완성하기 전 걸었던 길을 담은 검술.]
[플레이어 ‘카이저’ 님 검은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당신만의 길을 걸어 4초식의 경지를 이루어 내십시오. 그리하여 당신만의 역천기(逆天期)를 완성하십시오.]
‘……나만의 역천기를 완성하라고?’
까다롭기 그지없는 바람이 아닐 수 없다.
이건 저자가 사용하는 검술을 그대로 베껴서는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문파에서 전수 받은 비기가 사실 반쪽짜리였고, 이걸 자신에게 맞는 검술로 완성하라는 소리인데…….
‘내가 검성도 아니고, 무슨.’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파앗!
심지어 아르케온은 쉴 시간을 주지 않겠다는 듯 정신없이 달려들어 휘몰아쳐 왔다.
카앙! 캉!
모든 것이 자신의 검보다 우위다.
역천기의 어떤 초식을 사용해도 그 이상의 무언가로 돌려주며, 다른 검술은 힘겨루기조차 되지 못했다.
[신살(神殺)의 검이 3초식 천(天) 기운을 집어삼킵니다.]
[천왕진기(天王震氣)가 저항을 시도합니다.]
[상대와의 격의 차이로 인해 천왕진기(天王震氣)의 효과가 감소합니다.]
검에 깃든 압도적인 격에 집어삼켜졌으니까.
‘저게 신살자…….’
머리카락을 스치고, 검을 부딪칠 때마다 살이 떨리고 오소소 닭살이 돋는다.
그가 어떤 신념을 가지고 검을 휘둘렀는지.
어떤 마음으로 앞을 나아가는지가 선명하게 느껴진다.
사아아아-!
하늘이 정해 준 운명에 맞서, 목숨을 걸고 검을 휘두르는 자의 의지가 검에 깃들어 흉흉한 기세를 뿜어냈다.
그 드높은 의지 앞에, 어쭙잖은 기세가 담긴 검술은 닿기도 전에 흐트러진다.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검.
그게 아르케온이 걷는 길이었다.
그 길의 끝에서 결국 신마저 살해한 검이기도 했다.
[다음 경지가 검에 깃듭니다.]
반면 자신은?
처음 발현했을 때보다는 확실히 선명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저 자의 빛 앞에서는 등불 앞 꺼져가는 촛불이나 다름없었다.
이건 바보라도 알 수 있다.
캉! 카앙! 깡!
콰아앙-!
검을 받아 낼 때마다 꿇리려는 무릎에 힘을 줘 간신히 버티고, 일말의 차이로 스쳐 가는 검격들을 피하는 게.
모두 저자가 봐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마음만 먹으면…… 아니, 조금만 힘 조절에 실패해도 자신은 죽는다.
‘괴물이 따로 없네. 저런 양반을 2주 안에 이기라고?’
이기기 위한 최소 조건이 역천기의 완성인 상황이니, 미친 난이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용왕이 이곳에 그냥 보낸 게 아닐 터.
원하는 성과를 이루어 내야만, 그는 마음을 움직일 것이다.
‘어째 매번 쉽게 가는 법이 없냐.’
하나 앓는 소리를 하는 것과 달리, 도현의 눈빛은 더없이 선명했다.
무력한 절망감도, 두려움도 보이지 않는다.
선명한 눈동자에 담긴 건 그와 상반되는 것…… 그건 기대감이었다.
‘…….’
하나 그 기대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쾅! 콰아앙! 휙-
전투가 이어질수록 점점 초점이 멀어지더니,
어느 순간 그의 눈은 무엇도 담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거대한 역경을 헤쳐 나가고 있습니다.]
[역천의(逆天衣)의 모든 옵션이 증폭됩니다.]
[아비손의 액세서리 세트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거대한 역경 앞에서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를 보입니다.]
[역천기(逆天期)의 위력이 상승합니다.]
세상이 느리게 흐른다.
평소보다 더 많은 게 세밀하게 느껴진다.
시간을 쪼개는 프레임이 버그라도 걸린 듯 광활하게 나눠서 들어와 머리가 뜨거워졌으나, 그마저도 체감되지 않았다.
“…….”
사신 데미서스와의 전투 때 느꼈던 그 기이한 감각.
그 느려진 세상 속에서, 오직 검에만 집중하고 있었으니까.
어느 순간부터였을까.
사아아-!
도현은 자각하지 못했으나, 그의 검에 깃든 하얀 빛이 거칠게 요동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