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39화.
흑룡(黑龍).
도현이 뇌룡강림에 어둠 두르기를 사용하는 편법으로 그 존재가 발견된 이스터 에그.
뇌룡이 실존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지금이야 신대륙이 업데이트되며 이종족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다섯 왕좌의 주인에 용족이 있다는 것을 펙트로써 받아들였지.
예전에는 그저 뇌룡강림의 스킬 설명에 적혀있는,
‘무를 다루는 무도가들이 숭배하는 뇌룡.’
무의 끝의 편린을 본 자는 하늘을 지배하는 뇌룡의 선택을 받아 뇌룡의 힘을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라는 문구를 보고 추측할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흑룡의 존재를 알게 된 순간부터, 도현은 줄곧 생각했었다.
‘발각된다는 건, 흑룡과 만날 수 있다는 거 아닌가?’
지금까지 풀린 이종족은 거인이 마지막.
심지어 그마저도 멸살 외에는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영역이었다.
그 너머에 최초로 닿을지도 모른다는 합리적인 추론이 든 것이다.
이는 신빙성 있는 수준을 넘어 거의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으나, 그럼에도 도현이 섣불리 사용하지 못하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용족이 어떠한 성향을 지닌 존재들인지 모르니까.’
만약 잘못 불러냈다가 어떤 꼴을 당할지 알 방도가 없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몰래 쓰고 있던 흑룡강림을 회수당할지도 모를 일.
그것을 필살기처럼 쓰고 있는 도현으로선 결코 안 될 일이었다.
그렇기에 가능하다면 최대한 강해질 때까지 미루고 미룰 생각이었으나…….
‘이제 더는 못 미뤄.’
당장 2주 후면 역대 최대 규모의 대전쟁이 열릴 판인데, 뭐가 어찌 되든 급한 불을 꺼야지 않겠는가.
그리고 신에게 대적했던 역사나 루미사르의 설명을 생각하면 아군인 거 같은데.
설마 곧 전쟁 열릴 판에 힘을 빼앗진 않으리라는 나름의 판단도 있었다.
……그래, 분명 그렇게 판단했는데.
[압도적인 존재에 의해 공간 전이되었습니다.]
[태초(太初)의 둥지에 들어오셨습니다.]
[태초(太初)의 용이자 가장 위대한 첫 번째 왕좌 ‘바하르곤’의 주인.]
[용왕(龍王), ‘드라카르 바하르곤’과 조우하였습니다.]
[모험의 서에 기록됩니다.]
[플레이어 최초로 마법의 종주, 바하르곤의 용족과 조우하였습니다.]
[타이틀 ‘태초(太初)의 용과 조우한 자’를 획득합니다.]
[태초(太初)의 용과 조우한 자]
-등급 : 전설
-설명 : 다섯 왕좌의 주인들 중에서도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자.
아브타르텔이 탄생한 때부터 존재해온 태초(太初)의 용이자, 바하르곤의 주인과 조우한 최초의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칭호입니다.
-효과 : 어떠한 존재를 만나더라도, 그 기세에 버티어 디버프에 걸리지 않습니다.
타이틀을 보유한 채 태초(太初)의 용의 인정을 받을 시, 모든 용들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능력치 + 10
‘이런 미친……! 흑룡이 용왕(龍王)이었어?’
……예상외의 잭팟이 터져버렸다.
어쩐지 존재감이나 크기에서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압도감이 느껴진다 싶더니만…… 용왕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가장 강력한 두 종족 중 하나를 지배하는 왕이니.
저런 존재의 힘이라면, 흑룡강림이 뇌룡강림과 차원이 다른 위력을 보인 게 이해가 된다.
‘힘…… 안 뺏겠지?’
애초에 도현의 힘도 아니고, 회수해간다고 하면 물리적으로도 어찌할 방도가 없다.
상상을 뛰어넘은 정체라서일까.
본론을 꺼낼 타이밍을 놓치고, 자기도 모르게 허튼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성공이라…… 고의적으로 발각되었다는 것으로 들리는구나.]
“…….”
다시금 뇌에 박히는 듯한 그 이질적인 목소리가 골을 흔들었다.
내용만 보면 떠보는 물음이지만, 그 담담한 목소리가 도현에게는 다르게 들렸다.
감히 자신을 이용하다니 건방지기 짝이 없다, 라고.
저 가늠이 안 되는 거대한 체구와 도현보다도 큰 눈동자로 쳐다보며 물으니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다.
하나,
후우-
짧게 심호흡을 한 도현의 얼굴은 이전과 전혀 달라졌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얼굴.
확고한 목표와 그것을 이루리라는 확신이 느껴지는 단단한 눈빛.
[호오. 좋은 눈이로군.]
그것이 마음에 들었는지, 담담하던 목소리에 처음으로 호기심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곧이어 놀라움으로 바뀌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니구나. 반쪽짜리가 된 지금의 인간들과 달라. 이건 본래의 인류……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했던 자의 기운?]
[그런가. 그렇게 된 것인가! 흐흐…… 흐하하하!]
혼잣말로 중얼거리던 드라카르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그저 웃는 것만으로 공간 전체가 지진이라도 난 듯 뒤흔들리고, 전신의 피부가 거칠게 떨려온다.
감도 안 잡히는 거대한 덩치에 걸맞은…….
아니, 그 이상의 마력이 숨결을 타고 나오기 때문이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몸에 긴장을 유지하며 보고 있자, 곧 입을 여는 드라카르.
[투신(鬪神) 카시야르. 최강의 남자의 계승자가 내 힘을 빌려 쓰고 있었다니.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아무래도 자신을 적대하는 것 같진 않다.
얘기하는 걸 보니 카시야르와도 잘 아는 것 같고, 생각보다 힘을 빌려 쓴 것에 큰 초점을 맞지 않는 모습.
‘어쩌면 얘기가 잘 될지도.’
이때다 싶었던 도현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상황이 안 좋습니다. 카디움이 기사단과 심연의 마수들을 이끌고 아브타르텔을 지배하려 하고 있어요. 힘을 보태주십시오.”
[카디움이라……. 카시야르에게 패배하여 추락한 자가 다시금 날개를 펴려 하는가. 이곳에 있는 사이 많은 일이 있던 모양이군.]
“요정왕과 해왕 또한 도움을 주기로 했습니다. 수인족들과 수많은 이종족들이 함께하기로 했으니 당신도 함께 하시죠.”
[……요툰하임은 잠에 들어있을 터인데. 그의 힘이야말로 가장 중요하다.]
“믿을 만한 녀석을 보냈습니다. 시험을 통과하여 거왕을 깨울 겁니다.”
[호오, 꽤나 신뢰하는군. 마치 카시야르가 루슬레인을 대하는 태도야. 한때 라이벌이기라도 했나 보군.]
‘……루슬레인이면 기사왕? 그 양반, 그 정도의 강자였어?’
고대 오왕들이 전부 엄청난 수준이긴 하나, 언급들로 보았을 때 카시야르의 강함에 비하면 밀리는 게 사실이었다.
한데 카시야르의 라이벌이었다니?
기사왕의 의지를 만났을 때, 유독 강하게 느껴진다 싶더니 그 이유가 있었다.
‘카시야르가 가장 신뢰하는 강자라…….’
그들과는 다소 다른 관계이지만, ‘강함’을 신뢰한다는 점에선 일맥상통했다.
도현이 만나본 유저 중 멸살만큼 위협적이고, 믿음직한 놈은 없었으니까.
라이벌이 누구냐 할 때 떠오르는 이는 그놈밖에 없기도 하고.
‘시험에 통과하고 오면…… 더욱 강해져서 오겠지.’
어쩌면 이제 막 넘기 시작했던 그 경지를 완전히 터득해서 돌아올지도 모를 일.
자신 또한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남은 시간은 고작 2주.
어서 눈앞의 바하르곤을 설득하고 수련에 매진해야 했다.
[재밌군. 그래, 그쪽은 믿어보도록 하마. 네놈에게 있어 루슬레인과 같은 존재라면, 현재 그보다 적합한 자는 없을 터이니.]
“그렇다면……!”
[허나.]
반색하며 입을 연 도현의 말을 끊어낸 드라카르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그게 내가 도울 이유가 되진 않지.]
“……이번 전쟁에서 패배하면 카디움은 조각을 빼앗아 힘을 되찾을 것이고, 결국 신들이 강림할 겁니다.”
[나를 협박하는 건가?]
“사실을 말한 것뿐입니다. 가장 강대한 바하르곤의 주인이 돕지 않는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지겠죠.”
[흐흐……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그걸 아느냐?]
드라카르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오자, 거대한 눈동자가 도현을 집어삼킬 듯 확장되었다.
덕분에 도현은 확실하게 볼 수 있었다.
그 안에 담긴 슬픔과 분노, 그리고 미련이 섞여 만들어진 부정적인 감정들이.
[라그나로크가 일어나며 신계가 멸망하고, 놈들이 아브타르텔에 눈을 돌리며 시작된 전쟁.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우리는 그들에게 맞서 싸웠다.]
[바하르곤의 주인으로서. 하늘의 지배자이자 영토의 주인으로서 수많은 종족들을 지켰지. 그 결과가 종의 멸망이었다.]
“……!”
숭고한 희생? 왕좌의 무게?
모두 허울 좋은 말들일 뿐이다.
[이제 남은 겨우 수십 정도뿐. 그마저도 상처 입은 과거의 망령들이다. 전쟁으로 헤츨링들을 모두 잃은 우리 용족에겐 미래가 없으니.]
용족에게 있어 생명의 탄생은 특별하여, 태어난 순간 고결한 책임을 이어받는다.
천 년의 시간을 수양하여 비로소 하늘의 지배자가 되어, 수많은 종족들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브타르텔의 선택을 받아야만 탄생할 수 있는데…….
[얼마 전…… 비로소 헤츨링이 태어났다.]
천 년만의 결실.
이는 용족에게 있어 유일한 희망이자 마지막 희망이었고.
허름하게나마 남아있는 최후의 울타리가 사라질 시, 가장 쉬운 표적이 될 존재이기도 했다.
[그런 우리에게 전쟁을 참여하라는 게냐. 이번에도 패배할 시,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인가? 그게 아니면…….]
우리의 존속 따위, 하등 중요하지 않단 소리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것을 내뱉진 않았지만, 그 뜻은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드라카르의 눈에 담긴 분노 사이에 퍼져있는 불안함이 그리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렇군요.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래. 그러니 이만 물러…….]
“희망이 없어질 게 걱정이라면.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요?”
[……무어라?]
하나 도현으로서도 물러설 수 없다.
두 번은 없다. 모든 걸 걸어야만 하는 싸움이니.
“우려하는 것들은 모두 패배할 때 겪게 될 일. 승리하게 되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란 뜻이죠.”
[……약속의 날이 오면 움직일 자들이 카디움뿐인 줄 아는가.]
“압니다.”
[아니, 네 놈은 모르고 있다.]
심연의 강자들과 사도.
그리고 신에게 속은 반쪽짜리가 된 인간들?
그게 전부가 아니다.
[카디움을 추종하는 숨은 세력들.]
그가 천 년이란 시간 동안 차곡차곡 모아온 어둠의 세력들이 힘을 보탤 테니까.
그뿐이랴?
카디움을 수호하는 월령단의 단원들은 하나하나가 한 종족의 최강자로 군림하였던 강자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따르는 세력 하나 없을까. 네 놈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군단이 몰려올 것이다.]
[그들을 상대로 승리하겠다고? 만반의 준비가 된 놈들과 달리, 이제야 겨우 움직일 수 있게 된 왕들이 이끄는 세력으로?]
객관적으로 왕좌의 주인들의 현 세력은 전성기의 반의반도 안 되는 세력이다.
특히 가장 강대했던 용족의 경우에는, 용왕인 드라카르 본인을 제외하고는 상처조차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수십 개체의 드래곤들 뿐.
“충분합니다. 그놈도 완전하지 못하니까.”
……그러니,
“제가 막겠습니다. 그 자식한텐 갚아줘야 할 게 있어서요. 당신은 그 지X맞은 세력을 막아주면 됩니다.”
[…….]
도현의 호기로운 말에 드라카르가 입을 다물었다.
물끄러미 도현을 눈에 담던 그가, 나지막하게 되물었다.
[카디움은 과거 카시야르가 전력을 다하고도 죽이지 못한 신이다. 그런 놈을 카시야르의 힘을 잇기는커녕, 전대 신살의 검조차 완성하지 못한 네놈이 잡겠다고?]
“예.”
[크흐……흐……. 흐하하하!!]
실로 황당하기 그지없는 발언.
주제 파악을 못 해도 이 정도로 못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왜일까.
저 단단한 눈빛에 담긴 짙은 확신이.
끝까지 가면 전부 이긴다는 듯 흔들리지 않는 눈빛을 보니, 어쩐지 저 허황된 말을 믿고 싶어졌다.
[닮았구나. 그 남자와.]
웃음을 거둔 드라카르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지만, 분명 전과 달리 유해졌다.
그저 불신이 거둬진 것뿐이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여 다른 긍정적인 감정이 피어나있었다.
[마침 이곳에 투신(鬪神)의 2대 계승자가 찾아왔다라…… 이 또한 운명이겠지…… 그래, 네 말대로 운명을 거부하지 않고, 순응해보마.]
‘2대 계승자?’
도현의 눈이 순간 번뜩였으나, 물어볼 시간은 없었다.
[2주라…… 기대되는구나. 그 짧은 시간에 네가 전대 계승자를 뛰어넘을 수 있을지. 신조차 두려워하던 그 남자를 말이다.]
“……예?”
[어디 한 번 보여보아라. 너의 포부가 허세가 아니었음을!]
고오오오-!
이곳에 이동되었던 때처럼.
반응할 새도 없이 펼쳐진 공간 전이가 도현을 집어삼키고 있었으니까.
이윽고 드라카르의 검은 비늘에서 은은하게 새어 나오던 빛이 사라지고, 완전한 어둠에 찾아온 순간.
[아브타르텔의 숨겨진 장소에 도달하였습니다.]
[이곳은 첫 번째 왕좌, ‘바하르곤’이 관리하는 영역.]
[카시야르의 계승자임이 확인됩니다.]
[태초(太初)의 용, 드라카르 바하르곤의 기운이 확인됩니다.]
[투신(鬪神)을 개화한 것이 확인됩니다.]
[시그니처 검술, ‘역천기(逆天期)’가 확인됩니다.]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뭐?”
정신없이 울려 퍼지는 메시지의 향연과 함께, 검보랏빛 동굴 내부로 보이는 풍경이 펼쳐졌다.
판타지에서 보던 드래곤 레어와 흡사한 생김새.
하나 중심부에 놓여있는 검은 용이 그려진 ‘왕좌’가, 이곳이 바하르곤의 영역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범상치 않은 기운이 동굴 전체를 감싸며 범상치 않은 기류를 풍겼으나,
저벅.
도현은 집중할 수 없었다.
그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저벅- 저벅.
나지막하게 울려 퍼지는 발소리.
이윽고 그것이 멈췄을 때, 유일한 통로를 벗어나 모습을 드러낸 건 도복을 입은 해골 검사였다.
한데…… 도복과 검이 상당히 낯익다.
‘미친.’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건…… 역천의랑 천변이잖아!?’
도현의 것과 똑같았으니까.
아니, 자세히 보면 조금씩 디테일이 다르게 생겼지만, 그 재질과 특유의 느낌은 완벽하게 일치했다.
그야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투신(鬪神) 카시야르의 초대 그릇이자 전(前) 계승자를 조우하였습니다.]
[그를 상대로 승리하여 진정한 역천기(逆天期)를 완성하십시오.]
[돌발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직업 퀘스트가 발생합니다.]
“……미친.”
그는 역천기(逆天期)의 창시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