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42화.
[천변(天變) – 투(鬪)를 획득하였습니다.]
[전용 무기 퀘스트 ‘천변(千變)을 완전하게’를 클리어하였습니다.]
[돌발 퀘스트 ‘바하르곤의 시험’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직업 퀘스트, ‘신살자(神殺者)’를 클리어하였습니다.]
[성적에 비례하여 보상이 주어집니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여 아르케온에게 더없이 완벽한 인정을 받았습니다. 보상이 최대치로 강화됩니다.]
[압도적인 격의 상승으로 초월(超越)에 변화가 생깁니다.]
[타이틀, ‘카시야르의 계승자’의 모든 효과가 개방되며 잠겨 있던 옵션들이 적용됩니다.]
……
[길드전 보상 유일 장신구 ‘패도지인(覇道之印)’이 진화한 옵션에 각인됩니다.]
‘……뭐?’
상당히 경악스러운 보상들에 순간 얼이 나가 있던 도현의 뒤로,
쩌적-
균열이 벌어지며 새로운 공간이 생겨났다.
그 너머에는 용왕(龍王), 드라카르 바하르곤이 있었다.
-……정말로 해냈군. 허어, 믿을 수가 없다, 이 정도의 성장이라니…….
“아.”
특히 마지막 그 검, 그것이라면 그자에게 닿을지도…….
작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도현이, 균열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그러자 순식간에 동굴이 사라지고, 처음 드라카르를 만났을 때의 풍경으로 바뀌었다.
“…….”
신기한 일이었다.
모든 게 그대로지만, 이젠 더 이상 전과 같은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격’이라는 게 오르면 이렇게 작용하는 건지.
아니면 그만큼 순수하게 강해졌기 때문인 건지.
‘얼만큼 강해졌는지 정확히는 감이 안 오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지금 상태로 월령단과 조우했더라면, 다른 결과가 나왔으리라고.
입꼬리를 올린 도현이, 여전히 자신을 삼킬 듯 거대한 드라카르의 눈동자를 보며 입을 열려다 다물었다.
굳이 말로 내뱉을 필요가 없다는 걸 자각한 것이다.
[바하르곤의 시험을 완수하여 용왕(龍王)의 마음을 돌렸습니다.]
[용족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눈앞에 떠 있는 문구와, 달라진 바하르곤의 시선에서 모든 게 느껴졌으니까.
그렇기에 도현은 확답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 전쟁이 시작된 건 아니겠죠?”
-……오늘로써 정확히 2주가 지났군.
“딱 좋군요.”
-좋다라…… 계승자여. 그대가 카디움을 상대해야만 한다. 그를 이길 자신이 있는 것이냐.
“자신 없습니다.”
-……뭐라?
당혹스러워하는 드라카르의 모습에 도현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질 자신이 말입니다.”
종막(終幕), 약속의 날
갓오세의 운명을 좌우할 대전쟁의 서막을 앞두고, 도현이 참전 준비를 마쳤다.
* * *
그리고…….
신수의 섬, 라크시아.
끝없이 펼쳐진 대지를 메운 것은 셀 수조차 없는 이종족의 군세였다.
척, 척, 척, 척.
평화의 상징인 세계수의 나뭇잎이 그려진 깃발.
그 옆에 서 있는 엘프 장로 알테리온 엘란드리엘과, 최정예인 빌란드 기사단을 필두로 한 엘프 군단들.
그리고 알테리온의 옆에 나란히 선 다크 엘프, ‘아스트라 라벤시아’와 그의 군단들.
이제는 하나가 된 그들은 본디 세계수의 곁에서 엘라니스를 수호하고 있어야 하나, 오늘만큼은 예외였다.
“……긴장되는가, 알테리온.”
“그렇지 않다면 거짓이겠지. 세계수께서 그리 초조해하시는 모습은 처음 보았으니 말일세.”
“……그래.”
딱딱하게 굳은 알테리온을 본 아스트라가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함께라면 무서울 게 없다던 말 기억하나.”
“……기억하네.”
“좋은 기회이지 않나. 늘 믿지 않던 날 오늘만큼 설득하기 좋은 날이 어디 있을까.”
담담하게 내뱉은 그 말에 알테리온의 굳어 있던 얼굴이 풀어지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자넨 오늘 우리 엘프야말로 왕좌의 주인에 가장 가까운 종족임을 알게 될 걸세.”
“기대하지.”
그 모습에 그제야 아스트라 또한, 옅은 미소를 머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시야에 닿는 모든 곳이 군세로 가득 차 있었다.
그 대부분은 그들의 소속이 아니었다.
그들이 자랑하는 엘프 군단 또한 결코 적은 수는 아니었으나, 저 끝을 알 수 없는 군세 앞에서는 모래사장 위에 떨어진 한 줌의 모래에 불과했다.
“님프들이여, 저희에겐 위대한 대전사 르시아 님이 있습니다. 저 또한, 여왕으로서 최선을 다해 맞서 싸울 것을 약속합니다.”
“우오오오! 르시아 님이 함께하신다! 모두 겁먹지 마라!”
“저희가 지키겠습니다! 여왕이시여.”
여왕 아리드나와 앨로윈 라세드를 보며 함성을 내지르는 님프 군단.
“긴장이라도 됩니까?”
“……드란.”
“오랜만이요. 50년 만인가?”
“……그쯤 되었지. 많이도 늙었구나. 인간이란 왜 이토록 수명이 짧은지.”
“꼴 보기 싫다고 꺼지라더니, 죽을까 봐 걱정되기라도 하나 봅니다.”
그리고 병사들을 내려다보며 얘기를 주고받는 르시아 그란델과 권왕(拳王) 드란 그란디트까지.
“내 걱정은 말고, 당신이나 잘 살아남으소. 그래도 내 스승인데 그리 허망하게 죽는 꼴은 아직 보기 싫으니.”
“주둥이는 그대로인 걸 보니, 아직 생이 많이 남은 것 같군.”
질린다는 듯 혀를 찬 르시아가 드란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오랜만의 재회였으나, 두 사제 간의 대화는 이게 끝이었다.
이제 와서 감정의 골이 남아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을 뿐. 그러니 더욱 후일로 미루는 게 맞을 것이다.
마음을 다잡는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수인들이여! 야성의 주인이 누구인지를 보여 주자!”
와아아아아-!
송곳니와 발톱 자국이 새겨진 깃발의 주인, 수인족의 야수 군단.
그들과 꽤나 가까워 보이는 레타족들의 군단.
그 밖에 오우거를 연상케 하는 종족과 작은 정령같이 생긴 요정들, 그 밖에도 여러 형태를 한 수많은 이종족들까지.
평소 여러 사정으로 한 자리에 설 수 없던 자들이.
지금 이 순간, 한데 모여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
그렇게 모인 수만 무려 수백 만에 달할 정도.
그 장엄한 광경에 반해 하늘은 이상할 정도로 고요했다.
구름은 흐르지 않았고, 바람은 단 한 점도 불지 않았다.
세계가 곧 열릴 전쟁의 전조를 느끼기라도 한 것인지, 싸늘한 기운만이 라크시아 전역을 짓누르고 있었다.
“……와.”
그에 누군가의 입에서, 무심코 감탄이 흘러나왔다.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와 함께였다.
“이거 괜찮은 거 맞냐.”
“가슴이 웅장하다 못해 터질 거 같다. 심장 떨려 죽겠네.”
“이종족들이 이렇게 많았었어? 처음 보는 종족들 엄청 많네.”
“엘라니스랑 라크시아에 있는 대부분의 이종족들이 모인 셈이니까.”
“아스트도 왔군. 무기가…… 생긴 게 원래 저랬나? 무슨 오우거들이 들고 다닐 만하게 생겼는데.”
“오우거가 저렇게 삐까번쩍한 걸 들고 다니겠냐? 뭔진 몰라도 또 무기고 털어 왔나 봄.”
“저기 시나랑 광신도, 해링읍읍도 있다. 혈살이랑 카신교가 같이 있네.”
“다른 마스터들은? 천마라든가 여제, 검성은 아직인가?”
“10대 길드의 반은 집행자의 편에 섰다더니…… 쯧.”
소리의 정체는 대항자로서 전쟁에 참여한 유저들이었다.
전쟁에 참여하는 병사의 입장에 서서, 시야 끝까지 이어진 수백 만의 군세를 보고 있자니 긴장으로 몸이 떨리는 것이다.
[유예 기간이 끝나 약속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아브타르텔급 메인 퀘스트 ‘종막(終幕) – 약속의 날’이 시작됩니다.]
[당신은 대항자의 진영에 서서 월령단(月令團)과 신에 맞서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고대에 맺어진 약조에 따라 전쟁은 신수의 섬, ‘라크시아’에서 일어납니다.]
[승리하여 잊힌 역사의 진실을 알게 되기를 바라겠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특히 모든 플레이어의 시야 위로 떠오른 문구가 그 긴장감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었다.
이번 전쟁에 모든 게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방송을 통해 화면 너머로 보고 있는 시청자들에게도 생생하게 전해졌다.
-와, 장관이네.
-보는 내가 다 살 떨리냐.
-스케일 미쳤네 ㄷㄷ
-아스트 무기 ㅋㅋㅋㅋㅋ 뭔 전봇대만 하네. 저걸로 스매시 터트리면 어떻게 되는 거냐.
-무기고 싹싹 긁어 왔다더라.
-얘들 표정 봐라…… 긴장감 미쳤네.
-뭐임? 카메라 시점 왜케 다양함?
-여기 말고 다른 방송도 다 그럼. 무조건 담아야 한다고, 방송사마다 카메라맨 수백 명씩 투자했다더라.
-미친;;
-하긴 그게 맞긴 하다 ㄹㅇ 시청률 역대급일 텐데.
-대부분 다 접속했을 텐데 시청률이 나오나?
-일이라든가 개인 사정상 접속 못 하는 사람들도 있고, 게임 안 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아직 라크시아에 못 온 사람들도 많을 거고.
-집행자 편에 선 애들은 눈치 보여서 들어올까 말까 하는 애들도 많더라.
그들은 마치 현장에 선 것 같은 생동감 속에서 떠들었다.
도합 수백만 군단에 달하는 이종족과 유저들이 한데 모여 긴장하고 있는 모습은, 그만큼 장엄하고 진귀한 볼거리였던 것이다.
수백 명의 카메라맨이 가까운 거리와 먼 거리, 다양한 시점에서 찍어 주고 있는 덕이기도 했다.
어쩔 때는 코앞에서, 때로는 군단 속에서.
또 때로는 저 멀리서 보고 있는 기분을 들게 해 주었으니까.
웅성웅성-
그렇게 각자의 시점에서 긴장을 풀기 위해 떠들고 있을 때였다.
사아아-
마음도 모르고 화창하게 푸르르던 하늘이, 돌연 흐릿해졌다.
소리가 멎은 것 또한 그때였다.
마치 세계가 멈춘 듯이 적막이 흐른다.
무슨 일인가, 하는 의문이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곳에 모인 수백만이 넘는 병사 모두가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온다.”
무언가 엄청난 존재감이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드러나는 실루엣.
흐릿해진 하늘에서 검은 형체들이 내려오는 게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수인족이나 엘프같이 눈이 좋은 이들이 아니면 간파하지 못할 만큼 희미한 크기.
하나 그들은 마치 낙하하듯 빠른 속도로 내려왔고.
이윽고 다섯 개의 실루엣이 일반적인 유저들의 눈에도 보일 만큼 가까워졌을 때.
스윽.
가운데에 있던 올백 머리를 한 남자가,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곤 천천히 내리자, 무언가 엄청난 기운이 공간 전체에 내려앉았다.
대지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듯한 느낌.
그건 전조 증상에 불과했다.
[월령단(月令團)의 단장, ‘카디움’이 종말(終末)의 권능을 발현합니다.]
[고유 광역기 ‘멸계칙언(滅界勅言)’을 시전합니다.]
[경고! 압도적인 격이 느껴집니다.]
[피하십시오.]
——!
“……뭐?”
“씨X, 이건 아니지!”
“막을 수 있냐? 막을 수 있겠지? 아닌가?”
“왜 아무도 안 나서는 거야? 친다는 이종족 영웅들이 다 모여 있는데!”
어째서 하늘이 흐릿해졌는가, 그 이유를 대번에 알 수 있었으니까.
가공할 만한 크기의 검은 운석이 내리꽂히고 있었다.
길드전에서 드러낸 힘이 전부가 아니었음을 일깨우듯 압도적인 위용이었다.
이곳에 모인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고, 가만히 올려다볼 수밖에 없을 만큼.
그에 유저들이 혼란을 넘어선 백지상태가 되어 갈 때.
콰아아아앙-!!!
순식간에 이곳 전체를 부숴 버릴 것만 같던 운석이, 더 이상 내려오지 못하고 허공에 머물렀다.
정확히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듯, 갈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허공에 펼쳐진 무언가 반투명한 막이 가로막고 있던 것이다.
[대결계술 ‘단죄(斷罪)의 결계’가 발동하였습니다.]
[대결계술 ‘불가침역(不可侵域)’이 발동하였습니다.]
-……루미사르인가.
그에 올백 머리의 남자, 카디움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고.
파앗-!
부름에 답하듯 결계 앞에 초록빛이 번쩍이더니, 인형 같은 외모의 요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은 크기였으나 그 안에 담긴 기운은, 거대하게 보이게 할 만큼 강대했다.
[네 번째 왕좌 엘드라실의 주인]
[요정왕(妖精王) ‘루미사르 엘드라실’이 전쟁에 참여합니다.]
-오랜만이로군, 카디움.
-그렇군. 천 년 만인가. 한데…….
결계를 펼치는 것에 집중한 채, 올려다보는 루미사르를 보던 카디움이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네가 언제부터 나와 동등한 척을 하였지?
-……!
루미사르는 답할 수 없었다.
[고유 단일 권능 ‘극멸죄참단(極滅罪斬斷)’을 시전합니다.]
[대륙의 모든 것을 절단하는 종말의 권능이 발현됩니다.]
—째앵!!
애써 힘겨루기를 하던 결계가, 뒤이어진 고유기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깨졌으니까.
깨진 거울처럼 조각난 결계에 눈을 부릅뜬 루미사르를 내려다보며 카디움이 오만하게, 그러나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곧 종말(終末)이거늘.
역사에 기록될 대전쟁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