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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보이지 않는 격류(7)>전생에서의 금태종과의 인연을 말해보라면 으레 그렇듯 일방적인 기억밖에 없다.
그마저도 인연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그저 사천혈사 전사자 명단에서 그 이름을 한 번 봤던 것뿐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바뀐 현재에서 그와의 인연이 생겼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그와 나는 먼 관계에 불과했으니까.
그렇기에, 그와의 인연을 되짚어 보자면 기억의 편린을 뒤져야 한다.
첫 번째 기억은 내가 학관 정문에서 입관패를 바닥에 내던졌을 때.
그 광경을 바라보다 투덜거렸던 금태종의 모습이었다.[뭐야, 왜 이렇게 나대.]
두 번째는 입학 연회에서 ‘수석’이라 글자가 수놓인 예복을 입고 나타났을 때.[꼴사납기 그지없군.]
세 번째는 사천에서 돌아왔을 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날 노려보는 표정이었고.[잘난 척하긴.]
네 번째는 제갈세가의 기문진에서 학관생들을 꺼내었을 때였다.
이때는 이전과 달리 처음으로 내 가까이 다가와 툭, 읊조렸다.[……
그러다 금방 죽을 거다]
다섯 번째는.[지휘관은 앞에 나서는 거 아니라니까…….]
그 어느 때보다도, 가까웠다.
늘상 딱딱한 얼굴로 날 노려보던 그 녀석은 처음으로 웃으며 내게 말했다.[……
난 잠깐 쉬다 가지. 술 마시려면 너무 지쳐선 안 되니까.]
처음 웃는 얼굴을 보았는데. 그것이 죽어가는 모습이었다는 건 참으로 웃기는 일이었다.
“…….”
그래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애당초 금태종과 난 그렇게 교류가 깊은 관계도 아니었는데.
아니, 애당초 그는 나를 싫어하지 않았던가?
그런데.[거, 앞으론…… 나서지 말라고. 단주는 중요한 사람이니……
까…….]
그런 그가 나를 대신해 검을 맞았다.
죽어가며 만족스런 미소를 흘렸다는 건 도저히 해소되지 않는 의문이었다.
“……
해서 저희 일학문에선 이번 일을 계기로…….”
주저리주저리 뭔가 늘어놓는 일학문주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다.
그저 여전히 뾰로통한 얼굴로 입술을 삐쭉 내밀고 있는 금태선의 얼굴이 시선에서 떨어지지 않을 뿐.
“진 소협? 진 소협?”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알았는지 송주생이 미간을 찌푸렸다.
“내 말을 듣고 있는 것이오?”
비스듬하니 눈이 위로 치켜떠진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와중에 나를 보려 하니 묘한 형태가 된 것이다.
지금 이 사람이 취하는 겸손한 태도가 진심이 아니라는 이야기.
전생에서 일학문은 이즈음, 인근에 떠오르던 신성무가 천목장을 토벌하고 세력을 크게 넓혀 백팔봉의 한 자리를 차지했었다.
천목장이 몰래 사술을 익혀 왔던 것이 원인이었다.
훗날 일학문은, 무림맹 근방에서 어떤 미친 영감이 일학문을 욕하다 왈패들에게 맞아 죽은 사건이 생겼을 정도로 명성도 세력도 대단한 문파가 되었다.
나는 여전히 고개를 가벼이 숙이고 있는 송주생을 바라보았다.
문도의 가족을 직접 데려와 문도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소명을 은근히 압박할 정도로 똑똑한 이였기에, 일학문을 그 정도로 크게 번성시킬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억의 편린을 뒤져 그가 했던 말을 다시 살펴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일학문의 활약은 확실하게 보고서에 올렸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제야 인상이 펴지는 송주생.
“다행이오. 이런 상황에서 전공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 할 수 있겠습니다만 그래도 죽음에 의미가 있으려면…….”
나는 그의 말을 막았다.
그의 마음은 잘 알았지만, 그렇다고 타인의 죽음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니까.
“문주님. 그 이야긴 나중에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내가 금태종의 가족들을 바라보며 말하자 그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되려 잘 되었다는 듯 말을 잇는다.
“태종이의 가족들이 그것 때문에 몇 주째 집에도 가지 못하고 이곳에 있소. 전공을 인정받지 못하면…….”
금태선이 신경 쓰였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세상의 일을 모를까.
그 당시엔 모른다 할지라도 어렴풋이 남은 기억은 훗날에 상처를 만든다.
나는 그의 입을 닥치게 만들 해답을 제시했다.
“알겠습니다. 추가 보고서를 올리겠으니 걱정하지 마시지요.”
“오! 고맙소. 이제야 가족들의 한을 풀 수 있겠소.”
송주생은 사문의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조용히 귀엣말을 나누던 그들은 어쩐지 웃음을 참기 힘든 듯 어깨를 들썩였다.
아이는 여전히 제 오라비를 만나지 못해 뾰로퉁한 얼굴이었고, 아이 뒤에 선 중년 부부는 두려움 때문인지 원한 때문인지 고개를 들지 않아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일학문주가 원했던 것이 저 가족들도 원하는 바였는지는 결국 확인하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두 주먹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약속은 못 지킬 것 같다.”
금태선에게 다가가 이야기했지만, 아이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미안.”
나는 작게 그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 버렸다.#묵림으로 떠났던 첫 번재 조사단이 돌아왔다.
그들의 손에는 적들의 무기로 보이는 것들 몇 가지와 일부 학관생들의 유해가 쥐어져 있었다.
몇 주간 무림맹에 기거하다 유해를 마주한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마지막 희망을 쥐고 있던 이들은 유해를 확인한 순간, 그들의 죽음을 확실하게 선고받았다.
그나마 유해를 마주한 유가족들은 사정이 좋은 편이었다.
“우리 아들은……! 우리 아들은 없었습니까?”
“범권이는 어디 있습니까!! 분명 분명 범권이도 함께 갔었는데 말입니다!”
대부분의 유가족들이 유해를 되돌려 받지 못했다.
“화골산의 흔적이 많았습니다.”
유해를 찾지 못한 유가족들에게 화골산에 대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았고, 유가족들은 그들이 어딘가 살아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작은 희망을 다시금 부여잡았다.
유해를 마주한 쪽과 마주하지 못한 쪽. 그 어느 쪽이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장례식이 치러졌다.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었지만, 언제까지고 끝없이 장례식을 미뤄둘 수 없었기에 장례식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학관생들은 몇 달 빠르게 간부복을 입었다.
그렇게나 바라던 무림맹 간부 예복을 입었지만 들뜬 기색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일부 시신이 들어있는 관과, 내부가 비어 있는 빈 관이 무림맹 대연무장에 놓여 있는 채로 장례식이 진행되었다.
학관생들 대부분이 부상을 회복했음에도 고통스런 흐느낌을 흘렸고.
그 흐느낌은 이내 장례식을 바라보는 유가족들과 소속 문파의 사형제들의 슬픔으로 번져나갔다.
그 어느 때보다 거창한 장례식이 치러졌고,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애도의 인파가 무림맹에 방문하였다.
“오늘 우리는 강호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다 바친 이들을 기억할 것입니다. 이들의 죽음은 역사의 자양분이 되어 길이길이 영향을 미칠 것이며, 다음 세대와 그다음 세대를 위한 단단한 주춧돌로 사용될 것…….”
모두가 하나같이 죽은 학관생들을 ‘영웅’으로 칭송하였지만, 유가족들 중에 감격해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이제 앞으로는 영영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받은 것에 슬픔을 숨기지 못할 뿐.
그렇게 장례식이 종료되었다.
묵림에서 죽은 학관생들은, 무림맹원으로 등록된 후 그 먹물이 마르기도 전에 무림맹 유공자로 등록되었다.#나는 하오문을 통해 무한 삼(三)
대 주루 중 하나인 송화각을 예약했다.
작전을 마치면 술을 사기로 했던 약속을 몇 달이 지난 후에나 이행한 것이다.
“대사형, 왜 송화각을 잡으셨습니까? 지금이라도 조용한 곳을 대관할까요?”
“너무 조용할 것 같아서.”
“아…….”
송화각에 먼저 도착해 술을 기울이고 있자니 하나둘 사활단원들이 도착했다.
“단주가 마음을 단단히 먹었나 본데?”
“이거 감당되는 거 맞아? 나중에 우리만 두고 도망치는 거 아냐? 크흐흐.”
“에이, 설마…… 묵림에서도 안 도망친 인간이 여기서 도망치겠어?”
“원래 사람보다 돈이 더 무서운거 모르냐?”
시덥지 않은 농담들이 나오는 걸 보니 썩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인원이 모여들면 모여들수록, 가만히 술잔을 매만지는 이들이 늘어갔다.
삼 층부터 오 층 사이를 사활단원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지만, 여전히 조용했다.
그나마 일 층과 이 층, 육 층에서 들려오는 소음들이 우리의 정적을 메워주고 있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그런 소음에 한마디씩 얹게 되면서 정적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자넨 어디에 지원할 생각인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사람.
“자네도 기억하지? 양가 주조의 둘째딸.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데…… 어찌해야 할까?”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는 사람.
“언니, 이거 분 뭐 바른 거예요?”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도 있었다.
모처럼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야기가, 몹시도 평범하게 오갔다.
“그러고 보니 왕주발 그 친구가 여기에 오겠다며 돈을 꼼꼼이 모았는데. 쓸데없는 짓을 했군.”
그러다, 아무렇지 않게 죽은 사람의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말을 내뱉은 사람도,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사람도 그제야 자신들이 망각하고 있던 것을 깨달으며 어깨를 추욱 늘어뜨렸다.
아니, 망각한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겨우 외면해 왔을 뿐.
무거운 침묵이 주루의 공기를 짓누르려 할 때.
맞은편에 있던 이가 피식 웃으며 말을 받았다.
“그러게 말이야. 이렇게 공짜로 술을 먹을 수 있었는데.”
이어 옆에 있는 인원도 말을 잇기 시작했고.
“멍청한 놈. 단주를 그렇게 싫어하더니 단주 주머니 털 기회를 놓쳐 버렸네!”
“멍청한 놈이 그렇지 뭐. 클클.”
괜히 욕지거리를 하며 술을 빠르게 넘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죽은 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양진극 그놈이 자신은 청룡각에 지원할 거라 얘기했지만 천부당만부당한 소리 아닌가?”
“허어, 그 성적으로? 백랑각에나 붙을 수 있었으면 다행이겠군. 아니면 지부로 떨어지거나. 크하하!”
“그러는 너도 간당간당하지 않냐? 정 안 되면 병기창에 지원하지그래?”
“오! 아주 좋은 생각인데? 근데 말아야, 거기 기술 없어도 받아주냐 이 시벌로마??”
그간 어디에서도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봇물 터진 듯 흘러나왔다.
떠나간 이들과 더 이상 앞날을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모두의 무의식에 슬픔을 도포하고, 당연하다 생각했던 일상에 깊게 파인 친구의 빈자리는 커다란 상실감을 가져왔다.
아무렇지 않은 척 버텨오던 이들은, 술잔을 핑계로 이제야 허물어져 내렸다.
“하여간 그 녀석 자존심이 무척 셌…… 끅…….”
탁자 곳곳에서 물기가 섞인 울음이 터져 나온다.
좋은 날에 왜 우냐며 타박하던 이의 눈에서도 물기가 어렸다.
이제껏 감정을 솔직하게 풀어낼 시간을 허락받지 못한 이들은, 달콤한지 쓴지 모를 술을 연거푸 계속 넘겼다.
이제야, 마음껏 넘겼다.
그렇게 시끌벅적하던 술자리는 다시금 애도의 자리로 바뀌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흐르던 눈물마저 조금 멎은 그 시간에 누군가 나에게 외쳤다.
“단주, 한마디 하자!”
“내가?”
“그럼 주최자인 사람이 말하지 엄한 놈이 할까?”
네놈이 하고 싶어 하는 거 같은데?”
“쳇, 들켰군.”
뜬금없는 상황에 주위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고, 말을 내뱉었던 놈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자연스레 넘기려 했는데…… 학관생들의 시선이 내게 쏠리기 시작한다.
울음소리도 소란도 잦아들고 위층에서 놀던 학관생들도 고개를 빼꼼 내밀어 이편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이거.
“후우.”
나는 별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충 말을 내뱉으려는 순간.
내 앞을 막아서던 금태종이 떠올랐다.
예상치 못하게 동료들이 죽어 버렸다.”
금태종뿐만이 아니다. 다른 학관생들의 죽음도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이없이 죽었지…….”
학관생들이 수군거렸다.
이 말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학관생들에 이어 전생의 소정대원들의 죽음 또한 떠오른다.
“무림맹에서 죽음에 어떤 의미를 부여한다 해도 살아있음보다 나은 죽음은 없다.”
태을문도들의 죽음도, 맹원들의 죽음도 떠오른다.
빗장이 풀린 듯, 전생에서의 끔찍한 기억들이 솟구치고 또 솟구친다.
“아마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죽음이 우리에게 닥칠지 모른다.”
전생에 오늘과 같은 날 했던 말들. 대원들과 나눴던 말들을 떠올린다.
“분명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싸움이 일어나고, 우린 매번 목숨의 위협을 받을 것이다.”
단순 무식한 놈들답게 미사여구를 하나도 붙일 수 없었던 그 말들.
“예상치 못한 죽음을 많이 목격할 것이다. 슬픔의 나날들이 계속될 거다.”
그럼에도 그렇게나 위안이 되고 안도가 되었던 그 말.
“그러니까…… 그러니까…….”
그 말들을 이번 생에서 내뱉어 본다.
“살아남자. 필사적으로.”
내가 그랬듯 이들에게도 위안이 되길 바라며.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나를 아끼는 이들을 위해.”
앞으로 닥칠 절망적 미래에 이들이 쉬이 꺾이지 않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살아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