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4화 제6사도 (3)
전부 오라.
* * *
동대륙 제2사문이 지닌 영향력은 순수한 언데드의 강화였다. 개체는 동일할지언정 그것이 가진 위험성이 한 단계, 최악으로는 몇 단계 상승했다.
세계 연합의 진군이 난항을 겪기에는 충분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문을 에워싸고 있던 언데드 군단은 이미 전멸한 상태였다.
본래의 자연 지형이 더는 남아 있지 않은 전장…… 그 중심에 자리한 죽음의 균열 안에서는 또 다른 전쟁터가 펼쳐져 있었다.
휘오오오오─────!!!
반젤리스가 스태프를 아주 높이 들어 거대한 원을 그릴 때마다 붉은 폭풍이 거세졌다.
원천의 마도로 마력을 부여하여 증폭을 거듭하니, 소도시를 덮고도 남을 여덟 개의 화염 폭풍이 언데드를 보는 그대로 잿더미로 만들었다.
사문 내부의 우중충한 하늘은 치솟는 빛을 어찌할 수 없었다.
온 세상이 노을처럼 붉어졌다.
타다타닥 소리를 내는 불씨가 소나기처럼 그리고 눈송이처럼 떨어졌다.
유니아는 여기저기 검댕과 상처로 얼룩진 모습으로 덜덜 떨었다.
‘저, 저게 7대 마도왕.’
마도의 소용돌이는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차분하게 사문 자체를 불태웠다.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이었다.
만약 죽어서 영원토록 불타는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런 풍경일 것이다.
무력이라는 틀 안에서 마법계 초월자는 전투보다는 전쟁에 어울리는 존재.
모든 대륙을 아우르는 공간의 불안정성을 단신으로 해결하고 약 수천, 수만에 이르는 언데드의 아우성을 벌레 밟듯이 짓누른다.
마법계에서 반젤리스의 경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웬만한 사람은 그가 이미 8위계 초월자라는 걸 알고 있다.
선배와 비슷했다.
순수한 경지만이 아닌 개인적이고도 고유한 마법적 능력 면에서도…….
유니아는 자신이 타고난 한계 위계가 8위계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과연 자신이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언젠가는 저 높이에 도달할 수 있다?
수십, 수백 년 뒤에? 아니, 수천 년이 지나도 저런 괴물의 발끝에나 닿을 수 있을까? 그게 정말 가당키나 하는 걸까? 나 따위가?
“상상이 안 가지?”
“……!”
“아하핫, 애써 이성적으로 굴지 마렴. 제정신으로 종의 한계를 넘으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야. 내가 늘 말하잖니?”
이그나시아(본체)가 손끝을 튕겼다.
“초월자는 정신병자라고.”
환상이 물리적으로 실체화되어 망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짓이겨졌다. 망자가 아니라 인간이어도 그렇게 압살당했을 것이다.
‘계외.’
유니아가 눈을 감았다 뜨니까 이그나시아는 어느새 저 멀리 있었다.
그녀는 모두가 듣든 말든 깔깔깔 웃으며 마치 살아 움직이는 악몽과 같이 자신의 적에게 끔찍한 절규를 강요했다.
한편에서 날카로운 예기가 공간을 전율시켰다.
‘마스터…….’
벤디에가 대검, 창, 도끼, 글레이브 등을 휘두르며 종횡무진했다.
초월자들의 마법이 닿는 영역을 정확히 감지하면서 틈새를 파고들었다. 유니아의 인지 능력으로 움직임을 포착할 수 없었다.
유니아가 수십 명이 있었어도 거리를 허용한 순간 모두 한꺼번에 절명했으리라.
또 한편에서는 묵직한 굉음이 전장을 격동시켰다.
‘……마울러…….’
가레스가 팔이나 등허리에 창칼이 꽂힌 채 적들을 쳐부쉈다.
사문의 영향으로 몇몇 상위급 변종 언데드 이상은 초월자의 저항력을 훼손할 수 있었지만, 결코 그들을 물리칠 수 없었다.
그의 함성이 괴성을 압도했다. 울부짖는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경추가 뽑혀 으깨지고, 박치기에 상체가 뭉개진 시체들…….
파아아아아아아앗!
전장의 우측 최전선에서 피어난 성스러운 광채가 모든 군세를 비추었다.
‘……교황.’
성서로 불러낸 천사가 강림하여 사기를 정화하고, 교국의 군세가 쿵쿵쿵 발을 굴리며 움직이는 벽처럼 언데드를 몰아냈다.
로마누스의 지휘 아래 인류의 빛이 사자(死者)의 어둠을 몰아냈다.
크세리온 제국이 내보낸 군단들은 국가를 멸하고도 남았으나, 한 번도 앞으로 나아가는 일 없이 무참하게 토벌되었다.
점차 좁혀지는 두 개의 벽 사이에서 몸부림치다가 압사당하는 듯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받는 고통은 연합의 기쁨이 되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아아아아아악───
전쟁 한복판에서 터져 나온 폭음과 비명에 유니아가 저도 모르게 움츠렸다.
“하아, 하아…….”
무수한 감정이 얽히고설켰다.
수인 대부족의 영왕과 비왕 등은 야성이 아주 극에 달했는지 사냥감을 유린하고 능멸하겠다는 폭력성을 대놓고 드러냈고.
하스토우 요새에서 합류한 조제프 대주교는 한쪽 팔을 잃고도 석장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무구한 광명으로!
물러서지 마라! 맞서라!
실리스 여왕은 마녀의 마법을 구사하며 쇄도하는 공격을 방어했다. 막지 못한 건 고스란히 에스티리아 왕국군의 목숨을 앗아 갔다.
화산섬의 마탑주가 장로들과 함께 편대를 이루다가 특수 개체에게 요격당해 곤두박질쳤다. 벨트로아 님! 어서 강하하게! 부상은?! 모르겠네! 일단 대주교, 아니 추기경을 데려와!!
할디른은 스승인 다크워튼 마탑주가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층 더 무표정해진 얼굴로 살의가 깃든 흑마법을 흩뿌렸다.
언령의 기사단과 하이랜디아 정예는 사문이 폐쇄돼 실종돼 버린, 다른 사람이 보기에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유리온의 이름을 구호로 삼고 복수심을 검에 실었다.
오스가르는 카인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크세리온 제국에 청구했다. 반쯤 망가진 골렘 의수를 내뻗으며 처절하게 전진했다.
에스퍼렌사 공작은 폐쇄된 사문 안에 유리온, 블루, 드레드미어와 함께 갇힌 칼리아를 떠올리며 노기를 띤 채 전장을 누볐다.
복수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감정이 연쇄하면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영겁을 만들어 낸다.
‘카인…… 이제 어떻게 하지?’
유니아는 날아드는 창날을 중력 마법으로 쳐내며 눈앞의 적들을 분쇄한다. 그리고 흑마법으로 형성된 수십 개의 사슬 그물을 회피하다가 부지불식간에 쇄도한 직검에 허벅지를 관통당했다.
쿠당탕!
넘어지는 와중에도 폭풍을 일으켜 문제의 언데드를 떨어뜨렸다.
확인해 보니까 알고 있는 외형이었다.
상위 언데드인 죽음의 기사보다 날렵하지만, 키는 그보다 좀 더 큰 개체.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에 동대륙 남부에서 군림자 라테온의 목에 직접 칼을 박아 넣은 특수 개체였다.
‘어떤 다음을 바라야 해?’
유니아는 마도의 위성체를 띄움과 동시에 대마력을 일으켰다. 쏟아지는 마력의 별빛 사이로 그림자가 양팔을 교차하며 달려왔다.
‘카인, 이후의 세상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을 것 같아?’
유니아가 마도의 위계까지 돌파한 채 특수 개체와 격돌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카인은 죽었다.
물론 선배라면 어떻게든 살려 줄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만 유니아는 전쟁이 종결된 그 너머를 생각하니 절로 무릎이 꺾일 것만 같았다. 이보다 더한 위험이 찾아오면 카인이 살아 돌아온다고 해도 지킬 수 없을 테니까.
만인이 상실감에 허우적거리거나 복수심에 질식해 생명을 태울 것이다.
그럼 그 끝에 뭐가 남는 걸까.
빼앗고 빼앗다가 모두가 전부를 잃어버리면 세상에 무엇이 남는 걸까. 감정의 찌꺼기도 남지 않는 공허한 세계에 존재 가치가 있는 걸까.
차라리 일찍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허무와 실의에 중독되어 연명할 바에야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게 좋다. 어쩌면 내세에 천국이 있을지도 모른다. 카인이 부활할 필요도 없이, 그곳에서 카인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쩌어엉!
이에 유니아는 격렬하게 저항했다.
‘안 죽어.’
그런 얄팍한 마음가짐은 배운 적이 없다. 세 명의 현자님도, 베르덴 선배도 그녀를 그리 하찮게 가르친 적이 없다.
‘하고 싶은 게 얼마나 많은데 내가 왜 죽어. 우리가 왜 죽어.’
죽는다고 해도 끝에서 죽겠다.
끝에 가서 죽어도, 죽기 전에 팔이라도 더 뻗겠다.
누가 막으면 누구든 죽이겠다.
콰과과과과과과광!
너나 죽어라.
다 죽어.
카인이 구해 준 목숨을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결코 발걸음을 멈춰서는 아니 된다. 그렇다. 그것은 하나의 광기였다. 삶에 대한 집착. 이제 그녀에게 부족한 것은 집착이 의존할 고유한 뼈대.
“큽…….”
날카로운 뒤꿈치에 정통으로 맞은 유니아가 뒤로 쭉 밀려났다. 울퉁불퉁한 금속제 신발에 로브 안쪽의 살점이 터져 피가 콸콸 새어 나왔다.
특수 개체는 얼굴 한쪽이 날아간 채로 검을 곧게 잡았고, 유니아는 상처 부위를 세게 움켜쥐고 마법을 연산했다.
그리고.
───────────────!
소름 끼치는 파동이 광범위하게 밀려왔다.
세계 연합만이 아니라 언데드까지도 균형이 무너질 정도의 죽음의 기운. 특수 개체가 고개를 돌리자 유니아도 시선을 옮겼다.
“……저건 또 뭔.”
근원체에 새겨진 여러 균열에서 빛이 새어 나오더니 이내 알처럼 부화했다.
파앗!
사문 내의 세계가 변하기 시작했다.
사문의 근원체가 있던 장소를 중심으로 다른 땅과 하늘이 땅거미 지듯이 드리웠다. 마치 공간이 합쳐지는 듯한 광경이었다.
설마 세계 연합이 파악하지 못한 새로운 사문인가 싶었지만, 그곳에서는 이미 처절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계 연합과 크세리온 제국의 전장.
아주 거대하고도 어두운 하늘섬이 상공에 고정된 전쟁터.
유니아가 흠칫했다.
‘시타델? 게다가 주인 없는 땅……?’
눈동자를 굴려 봐도 절대로 착각할 수 없는 낯익은 배경이었다.
유니아가 있는 초월자 군단과 중앙 대륙의 초월자 군단이 서로를 인식했다. 아무래도 당혹감이 컸는지 그들 사이에서 잠시 정적이 일었다.
그 침묵을 깬 건 저편에서 쏟어지는 검붉은 빛살과 전율적인 폭음이었다.
“선배?”
* * *
눈은 전혀 내리지 않으나 냉혹한 바람이 끊임없이 몰아치며 생기와 온기를 앗아 가는 프로하스 사문 내 세계에 한 사람의 발자국이 잇따랐다.
주변에는 거인 언데드의 시체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
사문의 근원체를 파괴하기 직전에 변화했다.
부화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근원체 주변 공간이 다른 공간으로 물들자 차디찬 사문과 여름의 대륙이 경계선을 두고 공존하는 기묘한 세계가 이루어졌다.
주인 없는 땅.
‘근원체는 이것으로 파괴된 것 같군.’
루가르트는 한눈에 어느 지역인지 간파하고는 한 걸음 내딛다가 멈칫했다.
근원체의 부화로 연결된 사문과 대륙. 초대장처럼 느껴지는 것은 착각일까. 아마도 기우는 아닐 것이다.
사박, 사박.
루가르트는 간단히 생각을 정리하고 곧장 대륙으로 넘어갔다.
초대장이든 뭐든 머문다는 선택지는 없었기에.
이제 방주의 함대가 도착할 것이다.
* * *
왜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했을까. 아니, 사실 추측은 진즉에 하고 있었다. 마음 한편에 여지를 두고 싶었기 때문에 외면하고 있었을 뿐.
‘사도의 대적자.’
초대 마도왕은 제법 오래전부터 ‘당신’의 사도들을 처리하기 위한 수단을 준비해 왔다.
당시에는 그런 명칭에 대해 몰랐지만…… 처음으로 마주친 대적자는 최초의 마탑주, 네 명의 키론다르 중 하나였던 텔로르 크렌드로스.
───그렇게나 우월하면서…… 왜 우리를 계몽해 주지 않은 건가?
키론다르들은 초대 마도왕의 영향을 받아 인류에게 마력 회로 기관을 형성시키는 마력 연공법을 완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에 대한 실험 대상이자 최초의 위계 마법사가 된 장본인이 바로 데우스 위덴.’
하지만 그들은 위업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대규모 인체 실험을 통해 자신만의 마력 연공법을 구축했고, 멋대로 변형시킨 타인의 마법적 신체에 정신을 옮겨 영원히 생을 이어 나가는 꿈을 꾸었다.
그러다가 도중에 초대 마도왕에게 발각돼 처참한 형벌을 받았다.
침묵의 사막의 까마득한 지하에 거꾸로 <전이>돼 처박힌 최초의 마탑.
흘러간 천 년이 넘는 긴 세월.
텔로르는 생존의 대가로 정신이 완전히 미쳐 버리고 말았고, 침묵의 사막 지하에 있던 고대 신들의 잔해를 흡수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 초대 마도왕의 구속에서 벗어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그는 정신 오염을 통해서 투하르 시민들의 믿음의 근간을 장악했다. 마음. 이슈르를 신앙한 자들로부터 신심(信心)을 강탈한 것이다.
‘내가 아니었더라도 이슈르는 텔로르와 충돌하고 공멸했겠지. 이겼다고 해도 신도의 대부분을 잃었을 테니.’
베르덴이 눈을 감았다.
‘그게 초대 마도왕의 안배…….’
제7사도로 완성되어 대륙으로 진출했어야 했던 사막의 신, 이슈르.
텔로르 크렌드로스는 제7사도의 대적자.
‘저번 아르카디옴에선 테아렐이 제3사도 호스트의 대적자라는 게 밝혀졌다. 데우스 위덴 본인 또한 어느 사도의 대적자라는 사실도.’
이렇듯이 제1사도부터 제7사도까지 각각 대응하는 존재, 혹은 존재들이 있다.
그리고.
초대 네크로맨서와 세 명의 죄인은 제6사도에 맞서 제2차 초월자 전쟁을 대비한 등장인물들이며 그중에서 카스티안은 제6사도의 대적자.
이상하지 않다.
합리적일 정도로 일관됐다.
초대 마도왕은 암암리에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었다. 지난 운명전에서 패배하면서 그는 많은 것을 배웠을 터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당연히 있어야 할 대화나 설득은 없었다.
넘지 말아야 할 선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데우스는 자처했을지도 몰라도 테아렐, 텔로르, 카스티안 등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알지 못한 채 철저하게 삶을 송두리째 이용당했다.
“저항자…….”
“…….”
“너희에게 지성체의 존엄이란 뭐지?”
베르덴이 단호히 묻자 데우스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치.”
분수에 맞지 않는 허영.
과분한 욕심.
제 처지를 모르는 욕망.
콱.
베르덴이 거칠게 멱살을 잡아챘다.
“그럼 너희가 ‘당신’과 뭐가 다르지? 그런 식으로 얻은 승리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승리는 승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거기서 다른 숭고한 의미를 찾으려 하는 것이 네 미숙함이지. 사형(師兄)으로서 가르쳐 주마.”
데우스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아인베르]의 앞깃을 쥐었다.
“다음은 없다.”
“…….”
“그때처럼 ‘당신’을 다시 봉인하는 것은 불가하다. 사도의 출현을 더는 막을 수도 없다. 패배하면 끝이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다. 알아들었나? 간신히 동아줄을 붙잡은 이상 놓치거나 바꿔 잡는 선택지는 없다.”
그가 단호하게 강조했다.
“다음은 없단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