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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적 복수(4)
호북성 무한양자강 상류와 한수의 합류 지점에 있는 무한은 예전부터 상업 도시의 요충지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무한 동쪽에 위치한 호수인 동호는 항주의 서호와 쌍벽을 이루는 명승지로, 수많은 시인과 묵객이 평생에 한 번은 방문을 해야 하는 곳으로 손꼽는 장소다.
한마디로 물자나 사람이나 드글거리는 곳이라 이 말씀.
여기에 강호의 무림맹이 자리를 잡으면서 무인 또한 폭발적으로 늘었다.
지난 오백 년간 무림맹을 위시한 각종 기관들이 무한 곳곳에 생겨나고 종국에 강호 최대 교육기관인 무림학관까지 자리하면서.
무한은 말 그대로 강호의 심장이자 백도인의 상징성 있는 성지가 되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걸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맹을 나온 뒤에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미로같이 복잡한 골목과 골목을 지나왔다.
건물과 건물을 넘기도 하고 때론 하오문이 이용하는 불법적인 지하실도 이용했다.
덕분에 초장에 붙었던 정도회의 미행은 떨쳐 냈지만 다른 문제가 생겼다.‘쥐새끼들도 아니고 왜 이리 바글거리냐.’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무인들이 우리 머리채를 잡으려고 눈에 불을 켜고 다니는 것.
기감에 잡히는 것만 서른 명 이상.
사술을 익혀 햇빛을 못 보는 몸이 된 게 아닌 이상, 이 새끼들이 이 새벽에 돌아다니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을 것이다.
최소한 무한을 나갈 때까진 안 건드리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나의 작은 바람을 산산이 조각내 버리는 놈들.
새삼 상대해야 하는 적이 ‘정도회’라는 사실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무한 곳곳에 위치한 무림맹 건물들을 제집 안방처럼 돌아다니는 놈들이니 얼마나 편하겠어.
쉬다가 검 들고 처나오기만 하면 되니까.
지체할 시간 따윈 없다.
못 먹어도 돈을 걸어야 하고, 검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할 판이다.
나는 일행을 돌아보며 손짓했다.
“가시죠.”
“……
괜찮은 겁니까?”
사절단의 호위 무사 하나가 불신에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아니, 지금 믿을 건 나밖에 없는 거 아냐? 자꾸 그런 눈빛 쏘면 나 진짜 진서운 된다.
“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호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도 무한 내에선 노골적으로 나오진 않겠죠.”
어…… 왜 재수 없는 말을 하는 거지?
아니면 흑도인에게도 그 정도는 상식이라고 알려주…….
착
– 착
-불길한 예감에 화답하듯,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검은 무복에 복면을 둘러싼 다섯의 인형.
스릉.
그들은 곧장 검을 꺼내어 우리 앞을 막아섰다.
거봐, 재수 없는 말 하지 말라니까.
내가 뭐라 명령하기도 전에 사절단 호위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채채챙.
어두운 골목 안에서 서로를 향해 검을 겨누고 있는 위급한 상황.
어느새 긴장감으로 팽팽해진 공기를 뚫고 태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저들은 흑도인보다 더 비상식적인 생각을 가진 이들인가 보군요.”
이 상황에 굳이 사족을 덧붙이는 담악.
제발 긴장 좀 하고 있으면 안 되나? 당신 목숨이 달려 있는 일이라고.
나는 검을 내리라는 뜻에서 사절단을 향해 손을 내뻗었다.
사절단은 의아해하면서도 살짝 검을 내렸다.
그래도 명령권자인 내 말에 따르는 모습.
나는 그들을 향해 한 차례 고개를 끄덕여 준 후, 검은 그림자들을 향해 외쳤다.
“여긴 사흑련의 총군사인 담악님이다. 사절단이 돌아가는 길을 어찌하여 막는 것인가!”
“…….”
내 말에 답을 하는 이는 없었다.
되려 의아한 눈빛을 내게 쏘아보낸다.
사절단의 인원들도 대체 뭐 하냐는 듯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내게로 쏠린 수십 개의 눈을 향해 씨익 웃어 주었다.
“그래도 싸울 땐 명분이 필요해서 말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검마의 무공을 펼쳤다.
백월제천삼식제 一식.
극쾌.
다급하게 암살자들이 무공을 시전한다.
근데 이 씹새끼들이 정체를 숨기는 성의를 보이기는커녕, 대놓고 제 놈들 사문의 무공을 펼치네.
쾌애애애액
-하지만 이미 극쾌보다 늦게 펼쳐진 무공이 감히 극쾌를 따라잡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스걱
-푸쉬이이잇!
어느새 가슴에 길게 상처가 나버린 자도 있고, 검을 든 손이 잘려 피분수가 터져 나온 자도 있었다.
“으어어어-!!”
녀석들의 비명 소리가 이른 새벽의 정적을 깨운다.
그런데 소란을 피우면 좀 곤란하거든, 내가,퍽!
곧장 안면을 향해 발차기를 뻗어내었다.
그러자 허공을 날아 담벼락에 부딪힌 뒤, 바닥에 널브러지는 인형들.
“이익!”
뭔가 말을 하고 싶어 하는데 말을 하면 안 되는 상황인지, 분한 듯 이를 악무는 암살자.
이윽고 눈에 불길이 일렁이고.
쐐애애액
-허수가 잔뜩 낀 사일검법이 펼쳐진다.
흐음, 정체를 숨기고 싶어서 변초를 펼치는 건 알겠는데.
애당초 쾌검을 그딴 식으로 운용하고도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건가.
그 멍청한 자신감에 혀가 내둘러진다.
“어이, 내가 만만하냐?”
챙강!
내 몸놀림 한 번에 검이 날아갔고, 나는 틈을 주지 않고 곧장 환영각을 펼쳐 연속으로 세 방의 발차기를 꽂아 넣었다.
우드득
-퍽!
발끝에서 갈비뼈 날아가는 감촉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벽에 부딪혀 바닥에 널브러진 자의 복면 위로 검붉은 핏물이 배어 나온다.
쇳소리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는 놈.
나는 그를 향해 친절히 말해 주었다.
“억지로 움직이면 허파에 바람 든다. 뒈지고 싶지 않으면 가만 있어.”
암살자는 뭐가 그리 억울한지 나와 담악을 번갈아 노려보았다.
거참, 사는 법 알려줘도 지랄이네.
나는 놈의 옆에 쪼그려 앉아 피에 절은 얼굴을 툭툭 쳤다.
“네놈들 대가리한테 똑똑히 전달해. 어지간한 각오를 한 게 아니면 섣불리 움직이지 말라고.”
그러곤 몸을 일으켜 돌아서는데…….
하, 이거 더럽게 열 뻗치네?
“야 이 개새끼들아, 최소한 정체는 완벽하게 숨기고 오든가 해야 할 거 아냐!”
“시발, 아주 추적과 암살의 기본이 안 되어 있어, 기본이. 하여간 백도 새끼들 돌아가면서 대가리 한 번씩 깨줘야 한다니까!”
그제야 고개를 푹 숙이는 암살자 놈들.
나는 후련해진 가슴을 쓸어내리며 담악과 일행을 향해 손짓했다.
“가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이상하긴 했지만, 뭐 어쩌겠어. 하루 이틀 받아본 눈빛도 아니고.
나는 다시금 인원을 통솔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차피 여기서 한시도 지체할 수 없으니까.
골목골목을 돌고 주택가를 빙 돌아 닿은 곳은, 무한의 상업 지구가 밀접해 있는 곳이었다.
성도의 동문과 거리가 가까워서 유흥가의 객잔 대신 이곳에서 사람들과 만나기로 했거든.
내가 걸음을 멈추자 의문 어린 목소리가 날아든다.
“진 대협…… 계속 안 움직입니까?”
방금 전 내가 암살자 놈들을 처리한 모습을 코앞에서 봤던 탓인지, 호위들의 태도가 공손하게 변했다.
역시 이런 면에선 흑도 놈들이 백도 놈들보다 낫다니까.
최소한 이 새끼들은 눈앞에 놓인 진실을 외면하려 고개를 돌리진 않으니까.
나는 주위를 살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부턴 도움을 받을 겁니다.”
“도움이요?”
이 백도 무리의 한가운데서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이라니.
그 정체를 궁금해하던 사절단 인원들은, 모퉁이를 향해 한 발자국 내디딘 순간 입을 헤
– 벌렸다.
“이게 무슨…….”
골목을 돌아서자.
“오셨습니까.”
커다란 대로를 끝도 없이 늘어선 마차 행렬이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전히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리고 있는 사절단을 바라보며 씨익 웃어 주었다.
“야바위 좋아합니까?”
“야바……
위?”
맞다.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그거.
코 묻은 애들 돈으로도 하고, 어른들 담뱃값으로도 할 수 있는 그거.
“네, 그 야바위요.”
난 내가 주최자로서 야바위 판을 벌리는 걸 매우 좋아한다.
돈을 걸어 간식값도 따가고 술값도 따가라고 호객 행위를 하지만, 실상 야바위에서 항시 이기는 건 주최자니까.
어디 정도회 놈들이 얼마나 돈을 거나 한번 볼까?#드르르륵.
무한의 금산상단에서 출발한 갑작스러운 마차 행렬에, 밤이슬을 맞으며 담악 일행을 쫓고 있던 이들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상단이나 표국이 새벽녘에 길을 나서는 건 일반적인 일이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밀표가 아닌 이상, 여명이 돋지도 않았는데 출발하는 건…… 너무나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이는 무한에 와 있는 왕금산의 수작이 분명했다.
무엇보다 진소운의 부탁을 사(四)
대 거상 중 한 명인 왕금산이 흔쾌히 들어주었다는 게 그들로서는 생각지 못한 충격이었다.
왕가장의 금력이 무시무시했기 때문.
정도회에 소속된 인원들 중 태반이 왕가장과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고, 자신들의 정체를 잘못해서 들켰다간 사문과 가문에까지 영향을 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들로서도 멍하니 있을 수는 없는 상황.
“뭘 멍청히들 있는 거냐! 당장 움직여!”
“하지만…….”
“강호의 미래가 이번 작전에 달려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냐!”
“거기다 이 밤중에 우리를 알아볼 수 있는 놈이 얼마나 있다고 생각하느냐!”
강호의 미래란 대의보단 자신들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확언에 인원들이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판단을 내리고 행동을 개시하려는 찰나.
“대, 대주님……! 마차들이 흩어집니다!”
당연하게 동문으로 나설 줄 알았던 마차들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인원을 이끌던 대주는 노기 어린 얼굴로 표적을 부르짖었다.
“담악! 담악은 어디 타 있나!”
“봉황 무늬가 새겨진 승객용 마차였습니다!”
“쫓아라!”
각기 세 대씩 나뉘어 다른 방향으로 달려가기 시작하는 마차들.
그 사이에서 정도회의 인원들이 선택한 것은 봉황 무늬 마차였다.
“세울까요?”
“이 멍청한…….”
평소라면 얼마든지 마음대로 수색할 수 있기에, 이번에도 버릇처럼 안일하게 판단하는 수하들.
그들을 바라보던 대주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정체가 밝혀져선 안 되는 임무를 수행 중이 아니었던가.
수하들의 대가리를 부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명령을 내린다.
“마차를 통째로 부숴라!”
“넷!”
마차와 일류 신법의 속도를 비교하면 당연하게도 일류 신법의 속도가 월등하다.
그리고 이곳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일류 신법을 익힌 상태.
반응이 늦었어도 마차를 쫓는 건 금방이었다.
타탁!
건물 위를 날 듯이 달리던 이들이 동시에 지붕 위로 뛰어올라 바닥으로 내려앉으며 일장을 날렸다.
퍼퍼퍼퍼퍼펑!
세 개의 마차가 동시에 박살이 나며 마부가 급하게 마차를 세웠고, 마차를 호위하던 표사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 들었다.
채채채채챙!
“누구냐! 감히 무한에서 금산상단의 마차를 습격한 것이!”
“정체를 밝혀라!”
표사들의 엄포에도 정도회 인원들의 시선은 텅 비어 있는 마차의 잔재에만 쏠려 있었다.
빌어먹을.”
그리고 깨달았다.
자신들이 야바위의 호구들이었다는 사실을.
“마차, 다른 마차들을 추적해!!”
급박하게 자리를 벗어나는 인원들.
그러나 그 뒤를 쫓는 표사는 없었다.#아쉽다.
야바위의 가장 꿀잼은 당했을 때 호구의 얼굴을 보는 건데, 이걸 못보네 젠장.
하긴 어차피 복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을 테니 표정은 보지도 못하겠지만.
어쨌든 어리숙한 놈들을 속이는 작전은 성공적이다.
수십 대의 마차를 이용해 야바위하리라곤 생각도 하지 못한 놈들의 잘못이지.
나는 잘못이 없다.
암, 진소운은 협의와 정의를 실현하는 협객이니까요.
“아주 일상이 속임수와 사기의 연속이군요.”
굳이 마차의 작은 창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한마디 하는 담악.
저 양반 진짜…… 당최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네.
나를 귀를 후벼파며 답했다.
“흑도인에게 들을 이야기는 아닙니다.”
“진 공자, 그거 아십니까? 흑도 무림 내에도 ‘흑염룡을 만나면 전낭을 확인하라.’라는 소문이 널리 퍼져 있다는 걸?”
그건 또 무슨 개소리래.
내가 언제 흑도인들 주머니 턴 적이 있다고.
음…… 설마 턴 적이 있었…….
에라이, 그런 적 없지. 하여간에 선동과 날조를 밥 먹듯이 하는 놈들이라니까.
“어쨌든 이제 안전한 겁니까?”
동문을 넘어가는 주위 풍경을 보며 담악이 내게 물었다.
계속해서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어이가 없어 그에게 반문했다.
“이제 시작인 걸 알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그럼 전 한숨 자고 있겠습니다.”
말을 마치곤 작은 창문을 닫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담악.
하아, 뭐지.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네.
바들바들 떨면서 불안해하느라, 내 심력을 쏟아 그 불안을 잠재워 줘야 하는 손님보다야 낫지만.
어쩐지 약이 오르는 손님이다.
하지만 신경을 오래 쓸 여유는 없었다.
부스럭 부스럭.‘이제 시작인가.’성도를 나와 관도를 조금 지나간 뒤부터 숲이 흔들리기 시작했으니까.
“어디 한번 해보자.”
나는 보이지 않는 정도회 놈들에게 선전포고하듯 이를 악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