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35화.
사람이란 자기객관화가 힘든 동물이다.
남들의 고민과 비전에 대해선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으면서, 본인의 일에는 눈과 귀가 닫히지 않던가.
자존감, 자기애, 감정적이거나 환경적인 요소 등.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공통적으로 그 모든 것에 들어가는 근본적인 이유를 꼽자면…… 본디 자신은 제3자의 눈으로 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비슷한 취향과 성향을 가진 사람일지언정 남일 뿐.
‘나와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지.’
도플갱어를 만나지 않는 한 말이다.
그렇기에 인생이란 무수한 경험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인물인지 알아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탐구하고 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검사의 숙명이기도 했다.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는 그들에게 있어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아는지는, 단순한 객관화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그런 면에서 시르간은 자신이 자신을 잘 아는 검사라 생각했다.
세간에서 자신이 평가하는 것부터가 제3자들이 떠드는 말들. 그 말들과 크게 다를 거 없다 생각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그의 경험이 이를 증명했다.
‘이것이 경지에 이른 자의 시선인가…….’
자신이 연마해온 전통 서양 검술의 틀에서 벗어나 갓오세에서의 능력과 함께 새로운 재능을 발견한 지 수 개월.
어느 순간 무언가 벽을 넘어섰다는 감각을 얻었다.
그리고 그 뒤로 모든 것이 시시했다.
이름 꽤나 날리던 검사들은 더 이상 자신의 상대는커녕, 검조차 제대로 받아내지 못했으며, 검을 몇 차례 주고받고 있자면 상대가 걸어온 길이 들여다보였다.
마치 무협지에 나오는 절정고수들이 이러할까?
새로운 감각이 무척 재미있고 설레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웠다.
‘나와 같은 수준의 검사를 만나면 좋으련만.’
현대에서도 가상현실게임에서도 도통 라이벌이라 부를 만한 적수를 찾을 수가 없던 것이다.
그렇게 강자를 찾아 나서며 전투를 벌이고 또 벌이기를 수차례.
무수한 경험을 통해 시르간은 깨달았다.
‘그래. 이젠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벽을 넘어섰다.’
자신의 검은 일반적인 궤도를 벗어났다고.
새로운 영역에 접어들었다고.
아니, 자신의 검술에 한에서는 그 끝에 도달하였다고!
그렇기에 동양의 조선제일검이자, 검황의 유일한 제자라는 검성이 무척 궁금하였다.
-과연 그녀는 자신의 검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호기심을 풀 기회를 얻은 지금…….
쇄애액! 쇅!
“크, 크아악!! 말도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란 말이다!!”
검을 맞댄 채 사각을 노리고 연이어 쏟아지는 검격을 받아내며 시르간은 이를 악물 듯 소리를 내질렀다.
한 차례 손목을 틀어 막아내면, 바로 다음 사각에서 공격이 들어온다.
무형의 칼날? 섬광과도 같은 일섬?
그게 다 무슨 소용인가!
보이지 않는 검은 검을 맞대고 있어 의미가 없었으며, 검신의 길이를 조절하는 것 또한 상대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하여 주도적으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촤악- 쇅!
‘저 여자…… 자신의 입맛대로 검신의 길이가 정해지도록 유도하고 있어……!’
오히려 상대의 뜻대로 끌려다니는 듯한 느낌.
전광석화도 이미 봉인 당한 지 오래다. 검을 떼어놓아야 일섬을 날리든 할 것 아닌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검술로서 우위를 점하는 것. 너무도 쉬운 방법이었다.
상대는 동양의 검사.
반면 자신은 서양 검술의 일인자라 불리던 자다.
이렇게 검을 맞대고 있는 한 자신이 우위를 점하는 건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워야 했으니까.
……그래, 분명 그래야 했다.
‘어째서냐. 어째서 저 여자의 검을 따라잡을 수가 없는 거냐!’
닿지 않는다.
분명 같은 검술이건만, 자신의 검만 물속에서 휘적거리듯 반 박자씩 느릿했다.
거울을 보며 춤을 추는데, 거울 속 자신이 더 빠르고 효율적인 움직임을 구사하고 있는 걸 보는 듯한 기괴함.
이는 기괴함을 넘어 공포심까지 들 정도였다.
하나 그것도 잠시.
그도 어쩔 수 없는 검사인 것일까.
스륵- 석!
“……!”
검을 맞받아치고 있자니, 어느 순간부터 그녀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움직임은 자신의 검술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닌, 더 효과적인 움직임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아, 여기서 이렇게…… 맙소사, 저 부분에서는 저런 방식으로 검을 튼다고?’
문제조차 자각하지 못했던 부분들.
아주 약간의 발상의 전환만으로, 혹은 미세한 각도 조절만으로도 자신의 검술은 보다 한 단계 위의 무언가로 진화되어 있었다.
번뜩-
시르간의 눈빛이 변했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도 까맣게 잊은 듯 탐구욕으로 번들거리는 눈동자.
조금이라도 그녀가 보여주는 움직임을 흡수하려 눈을 번뜩이던 시르간이 문득 탄식을 흘렸다.
‘내 검은…… 겨우 이 정도에 불과했던 건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제 검술이 이리도 초라할 수가 없었다.
벽을 넘은 줄 알았더니 더 큰 벽이 있더라.
한 NPC가 바람 따라 스쳐 가듯 무심하게 했던 말이 불헌 듯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아, 그런 거였나.’
벽을 넘었다. 그건 사실이다.
하나 끝에 도달했다 여겼던 그것은 실은 길의 끝이 아니었다.
그저 범인의 눈으로는 그것이 벽이라 자각할 수조차 없을 만큼 거대한 벽 앞에 도달했던 것일 뿐.
그곳에 발을 들인 자만이 진정으로 경지에 접어든 것이었다.
화아-!
그것을 깨닫자, 정신이 맑아졌다.
세상이 보다 넓게 보이는 감각과 전신을 휘감은 고양감. 도파민이 터져 나오는 듯한 기이한 쾌감.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의 부족함을 자각하는 것으로, 벽을 깨고 그 너머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지금껏 얼마나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왔는지를.
자신이 십수 년을 바쳐 이루었던 경지는 그저 기본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것을 자각한 그의 눈동자에 비친 여인은…….
꿀꺽.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있었다.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될 만큼 극한의 극한으로 정제된 호흡, 미세한 떨림조차 없는 완벽한 검의 궤도.
마치 검과 하나가 되어있는 듯한 섬찟한 기세까지.
그 순간.
스윽-
줄곧 맞닿아있던 검이 한순간에 뒤집히더니, 어느새 그녀의 검 끝이 심장 부근에 툭 닿았다.
“깨달음을 얻었나 보군. 경지에 접어들었어.”
“…….”
“지금의 검격에는 무엇이 느껴졌지?”
다시금 튀어나온 질문에 시르간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처음 자신의 경동맥을 노린 것과 같은 검격.
분명 같은 움직임이나, 아무것도 보지 못했던 전과 달리 이번엔 어렴풋이나마 느껴졌던 것이다.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만큼 작았지만, 그가 받은 충격은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나, 나는 무엇을 상대하고 있었단 말인가!’
뭐? 라이벌?
누가 최강인지를 겨뤄?
이 무슨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소리란 말인가.
확실하게 느껴진다.
자신이 겨우 문턱에 발을 들인 경지. 그곳에 진작 들어선 채 한참 위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가.
‘격이 다르다.’
놀라운 건 그런 그녀마저도 아직, 그 경지의 끝에 닿지 못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그 끝에서 하고 있었다.
무언가 자신은 모를 새로운 경지를 향해 나아가기 위한 담금질을.
-무슨 이유로 내가 전력을 다하고 있다 여기냐 이 말이다.
이젠 알겠다.
그녀가 어째서 그런 말을 했는지.
검을 부딪치며 그녀의 검에서 느꼈던 수많은 검술의 묘리들. 그것은 그녀에게 있어 특별한 기술들이 아니었다.
‘숨 쉬듯 자연스레 배어 나오는 기본기였을 뿐.’
전력으로 스킬을 난무하면서, 상대의 평타에서 느껴지는 패시브 효과를 보고 코웃음을 친 격이었다.
주춤,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던 시르간이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검을 겨눴다.
머릿속 생존 본능이 피하라며 요란하게 경고를 울리지만, 검사로서의 본능은 한 합이라도 더 검을 맞대라고 외치고 있던 탓이었다.
“그런가.”
그 모습에 그녀가 피식 웃었다.
입가에 피어난 옅은 미소에는 비웃음이나 가소로움이 담겨있지 않았다. 도리어 기분이 좋아 보이기까지 했다.
동시에 그녀의 자세가 바뀌었다.
양손으로 검을 쥐고 대상의 목을 겨누고 있는 자세.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정석 자세였으나…… 왜일까?
사아아-
분위기가 바뀌었다.
무겁게 내려앉은 장내의 기류가 마치 공기의 밀도가 달라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겨우 검도 자세 하나를 취한 것만으로 생긴 변화라곤 믿기지 않는 현상.
‘아니, 저건 검도 자세가 아니다.’
정확히는 평범한 검도 자세가 아니었다.
튜닝의 끝은 순정이라는 말이 있듯.
아득히 먼 경지까지 탐닉하고 돌아온 검사가 행하는 기본 자세는, 일반적인 검사의 그것과 같을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
벽을 허문 시르간의 감각이 외치고 있었다.
저건 여태 보아온 어떠한 검술보다도 위험하고, 더없이 완벽하다고.
어째서 이러한 느낌이 드는지, 그 근간을 시르간은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다.
‘이질감이…… 없다.’
제아무리 뛰어난 검사라도 검을 쥐고 있을 때 평소와는 다른 약간의 이질감이 들 수밖에 없다.
내쉬는 호흡이나 무게 중심.
검을 겨누고 있는 마음가짐이나 긴장감, 혹은 호승심.
인간의 심기체는 그러한 사소한 것 하나에도 영향을 받을 만큼 민감한 것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 이질감을 최소한으로 줄이는 게 검사들이 평생에 걸쳐 해결해야 할 숙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숙원을 일정 경지 이상으로 이룬 검객들을 보며 사람들은 말한다.
검아일체(劍我一體)의 경지라고.
‘아니, 저건…… 검아일체의 정도가 아니다.’
이곳에 더 이상 검성은 없었다.
그저 지독하리만큼 잘 버려진 예리한 검 한 자루만이 그를 마주하고 있을 뿐.
분명 그녀가 검을 쥐고 있으나,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가볍게 허공을 젓는 손은 공기가 떠돌 듯 자유로웠으며, 달빛에 몸을 맡기며 추는 아름다운 춤사위와 같은 발놀림은 소름 끼치도록 고요하다.
저 모든 과정이 조금이라도 눈을 떼면 사라진다.
더없이 아름다워 눈으로 쫓으면 끝내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것이 마치 귀신에 홀린 것만 같다.
“아아…….”
이 순간 우습게도 시르간은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유령의 검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가상현실이기에 가능한 진정한 검술의 끝이자 올바른 방향성이 아닐까?
그리고 그 순간.
사아-
좀 전에 우연히 떠올랐던 달빛이 잔잔하게 내려앉았고.
[시그니처 특성을 시전하였습니다.]
서걱-
무언가 날카로운 절삭음이 귓가를 속삭이듯 자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