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50화.
최강.
무려 10억 명이 넘는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갓오세에서도 이 수식어의 의미는 특별했다.
아니, 오히려 10억 명이 즐기는 게임이기에 더 특별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무려 10억 명 중 최강이라는 뜻이니까.
하지만 의외로 최강이라는 타이틀을 가진 유저는 한 명이 아닌, 두 자릿수에 달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기준을 순수한 강함에 두지 않고, 하나의 분야나 직업에 두어 수식어를 붙이는 경우가 더욱 많았으니.
“전사 중 최강. 마법사 중 최강. 궁수 중 최강 등등…….”
각 분야에서 일인자를 뽑는 것이다.
라이하스, 그도 그러했다.
12억 분의 1은 아니지만, 마창사란 직업을 지닌 플레이어 중에서 정점에 오른 남자.
그렇기에 최강의 마창사라 불리는 남자.
그게 바로 그였던 것이다.
아무리 10대 길드 마스터 중 하위권의 전투력이니, 아직 증명한 게 별로 없니 조롱하는 글이 많아도.
그가 한 직업의 정점이라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전설 스킬, ‘해일의 창’을 시전합니다.]
[창을 휘두를 시 바다의 해일을 일으킵니다.]
[‘수신(水神)의 창’의 특수 옵션 ‘해류’가 발동됩니다.]
[물살을 일으킬 시 그 위력과 크기를 극대화하거나 극소화 시킬 수 있습니다.]
[위력과 범위를 극대화합니다.]
“미친……!”
“씨X, 튀어!”
“끄아아악!!”
그리고 그런 남자가 적으로 돌아서자, 재앙이 벌어졌다.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며 달려드는 마창사는, 이런 대규모 전투에서 가히 자연재해나 다름없던 것이다.
푹! 푸푹!
그어어어! 콰앙!
“크억!”
“끄악!”
“사, 살려줘!”
학살이 벌어졌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해일에 휩쓸려 전투 불능이 된 사이 침입자들과 마수들에게 죽음을 맞이했고.
촤악- 푹!
서걱-!
“제, 젠장! 이렇게 죽을 수는 없…… 끄어억!”
“으, 으아악!”
“씨X 이게 창술사라고? 무슨 창술사가 일대 다수인데도 빈틈 하나 없어!”
범위에서 벗어나 살아남은 유저들은, 곧장 달려드는 라이하스의 창끝에 숨통이 끊어졌다.
압도적인 격차였다.
창신을 잡는 손 위치를 바꿔가며 자유자재로 사거리를 조절하고, 휘두른 궤도에 따라 일어난 물살의 폭발은 완벽한 공방을 이룬다.
그것만으로도 혼자서 열 명의 유저를 능히 감당해내는 것이다.
아니, 감당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도리어 밀리는 건 유저들 쪽이었으니까.
‘이게 10대 길드의 마스터…….’
‘이 정도로 차이가 난다고?’
‘같은 인간이 맞아?’
‘이런 놈을 이긴 라온을, 카이저는 대체 어떻게 이긴 거지? 후발주자잖아.’
평균적으로 한 명의 랭커는 같은 구간의 동일 콘텐츠 유저 열 명도 거뜬히 상대해 낸다고 한다.
반대로 하이 랭커는 그런 랭커 열도 능히 상대할 만큼 강하다. 그리고 그런 하이 랭커들조차 벽을 느끼는 존재가 바로 10대 길드 마스터 급. 플레이어.
그렇다면…….
‘우리 같은 쩌리들은 대체 몇 명이 달려들어야 하는 거야?’
솔직히 과장된 얘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눈앞에 벌어지는 일방적인 학살극이 사실임을 말해주고 있었으니까.
아니, 오히려 축소된 얘기였다.
라이하스가 저 정도면 멸살과 같은 이들은 대체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그어어어-!!
-죽여라, 뚫어라.
-그리고 바쳐라.
심지어 라이하스의 뒤에는 침입자들과 심연의 마수들이 굳건하게 버티며 저돌적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뚫을 수도, 그렇다고 막을 수도 없는 상황.
마치 거대한 철옹성이 벽째로 날아들고 있는 기분이었다.
[후후…… 이제야 벌레다운 얼굴들이 되었구나. 절망하여 쓰러져라, 역겨운 인간들아.]
비로소 만족한 얼굴이 된 흑장미를 연상시키는 여인, ‘???’.
그녀의 말마따나 님프들과 유저진들의 분위기는 초상집과 다를 것이 없었다.
아, 이대로 끝나는구나.
그런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은 얼굴들.
“아…….”
“……처음으로 안 되는 싸움이었어.”
“이걸 어떻게 이기라고. 가뜩이나 기습당해서 전력도 없는데 라이하스마저 적이 되는 게 어디 있어?”
의지가 꺾인 유저들이 하나둘 무기를 떨어트리며 포기할 때였다.
희망은 절망 속에서 떠오른다고 하던가.
탓-
무언가 발돋움하는 소리 뒤로, 어둠으로 가득한 하늘에 한 거구의 실루엣이 점처럼 자리 잡은 순간.
후우웅-
무언가 묵직한 걸 휘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 순간.
[플레이어 ‘아스트’님이 전설 스킬, ‘파괴신의 가호’를 발동합니다.]
[90초 동안 5번째 타격마다 강력한 ‘파괴의 일격’을 날리며 데미지는 무기 공격력에 비례합니다.]
[스킬 발동 후 첫 공격은 ‘파괴의 일격’이 적용됩니다.]
[초월 고유 능력 ‘리미트 해제’를 발동합니다.]
[리미트 제한을 해제하여 일시적으로 무기 업그레이드의 효과를 극한으로 사용합니다.]
[+20 ‘찬란한 거인의 철퇴’가 완성됩니다.]
[사용 시 무기가 파괴되며 50분간 특성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점이었던 실루엣의 앞에 우주를 담은 듯한 기묘한 색감이 번뜩인다 싶더니, 이내 무언가 터지며 소리가 멎었다.
소리 없는 세상 속.
—-!!!
수소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 지면을 휩쓸어버린 충격파가 끝도 없이 퍼지며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대체 무슨 일이…….”
“맙소사.”
“크윽……!?”
“아, 앞이 안 보여!”
충격파의 여파로 눈부신 빛이 터져 나오자, 눈을 질끈 감았던 유저들이 멎은 소리가 돌아오며 들려오는 백색소음에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보았다.
“미친…….”
“와?”
“홀리 쉿!?”
쑥대밭이 된 지면 위 자리 잡은 거대한 크레이터.
그 위로 거인에게 짓밟힌 듯 떡이 되어있는 심연의 마수들과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이 터져버린 침입자들.
[플레이어 ‘라이하스’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사망하여 ‘???’의 디버프가 해제됩니다.]
[플레이어 ‘라이하스’ 님은 대륙 퀘스트가 끝나기 전까지 엘라니스의 입장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있는 라이하스를 말이다.
사람이 너무 놀라면 사고가 정지된다고 하던가.
“…….”
유저들은 물론, 님프들마저 넋을 놓고 멍하니 흔들리는 동공에 쑥대밭이 된 광경을 담을 따름이었다.
하나 그것도 잠시.
핵폭탄을 떨어트린 자의 정체를 깨달은 유저들이 떠나가라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갓오세에서 이런 걸 할 수 있는 유저는 오직 한 명뿐이었기 때문이었다.
“무, 무기고의 주인이다!”
“아스트다! 아스트가 왔어!”
“아스트만 온 게 아니야! 바벨론이다!!”
“와아아아!!”
10대 길드 바벨론의 마스터.
무기고의 주인, 아스트.
“크으~ 이거 제대로 들어갔구만.”
“늦지 않게 와서 다행입니다, 마스터.”
“전화위복이라 해야 하나. 라온이랑 전쟁하느라 이미 모여있어서 다행이라니까. 안 그러냐?”
“예.”
그가 바벨론을 이끌고 나타난 것이다.
하물며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똥폼 잡기는. 한 방 날리고 나면 숨만 쉬어야 하면서.”
“뭐, 인마?”
“아재 역할은 끝났으니까 이제 우리한테 맡겨.”
불쑥 끼어든 허리춤까지 오는 은백발을 휘날리는 여인.
아스트의 앞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온 그녀를 발견한 유저가 소리쳤다.
“여, 여제!”
“여제다!!”
일인군단(一人軍團), 여제.
그녀가 사납게 미소 지으며 몸을 풀고 있었다.
척, 척, 척, 척.
“어어?”
“미친…… 이게 끝이 아니잖아?”
“와 씨, 미쳤다!”
“뭐야, 다 엘프 마을로 향하던 거 아니었어?”
“습격 소식 듣고 노선 틀었나 본데?”
“판단 지렸다!”
마지막으로 그녀의 뒤로 정렬하게 서며 모습을 드러낸 수많은 인영들을 보며 유저들은 흥분을 금치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상상도 못한 지원군이었으니까.
“이야, 연락도 안 했는데 어떻게 딱 오는 길에 마주치냐.”
“타이밍이 기가 막히긴 해.”
“아아, 신께서 남긴 빛을 쫓았을 뿐이옵니다. 모든 것은 신의 뜻인 것이지요.”
“탐지 스킬로 흔적 쫓았다는 말을 뭐 그리 거창하게 해?”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리는 금발의 여인.
육감적인 몸매와 귀족 같은 얼굴, 그와 별개로 신의 얘기만 나왔다 하면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이 인상적인 여인.
“아아, 교주님의 말씀을 들었는가. 신께서 우리를 인도하셨다. 저들에게 죽음을 선사하라는 깊은 뜻인 것이다!”
“우오오! 죽음을!”
“받들겠나이다, 신이시여. 카멘-”
“카메에엔!”
광신도, 그녀가 수천 명에 달하는 카신교를 이끌고 합류한 것이다.
그리고 카신교가 왔다는 건…….
푸슉- 파바밧!
퍼퍼펑-!
“폭발 화살! 해링턴이다!”
“와아아!!”
신궁이라 불리는 남자.
해링턴, 그 또한 왔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10대 길드 마스터 두 명과 그와 동급이라 평가받는 두 여인.
그리고 카신교와 바벨론의 세력까지!
“할 수 있다!”
“이러면 얘기가 다르지!”
“심지어 라이하스도 죽었잖아? 라이하스 한 명만 나서도 그 정도였는데, 이러면 다 죽일 수 있지!”
언제 포기했었냐는 듯, 무기를 집어 든 사기가 잔뜩 오른 유저들이 함성을 내지르며 전장에 뛰어들었다.
하나 모두가 그런 건 아니었다.
“이봐, 거긴 반대 방향이야. 합류해야지 왜 뒤로 가?”
“뭐라는 거야. 당신이야말로 잊었어? 강한 아군은 더 강한 적을 만들 뿐이라고!”
“그러고 보니……?”
침입자들의 이인자.
갑작스레 등장한 반쯤 헐거벗은 여인.
이름조차 공개되지 않는 저 여인이 있는 한, 그들이 등장에도 안심할 수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불안에 떠는 것이 타당하리라.
“저 세력이 모두 적이 된다면…….”
꿀꺽.
누군가 중얼거린 말에 근처에 있던 유저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마른침을 삼켰다.
상상도 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래, 네놈들이 심연의 눈에 있던 자들이로구나. 건방진 벌레 놈들. 차라리 잘 되었다. 이 자리에서 직접 밟아 죽여주마.]
“할 수 있으면 해보던가.”
하나 이제 막 나타난 저들이 이 소식을 알 리 만무.
저들 중에서도 특히나 호전적인 성격을 가진 여제가 곧장 그녀의 앞으로 뛰어내렸다.
방벽의 높이는 수십 미터.
이는 마수들을 뛰어넘고, 단숨에 그녀의 앞에 착지하기 충분한 높이였다.
그렇게 순조롭게 그녀의 앞에 착지하기 직전.
[멍청한 것…… 그리 조심성이 없어서야 한심하기 짝이 없구나.]
그녀에게서 비릿한 웃음기가 담긴 스산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고, 뒤이어 일전의 그 기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저것의 범위는 그녀를 중심으로 수십 미터에 해당하는 디버프.
코앞의 공중에 떠 있는 여제가 피할 방법은 없었다.
“아, 안 돼. 이미 늦었어.”
“도, 도망가자고.”
“새꺄, 넌 안 도망치고 이 와중에 뭐해!?”
“이게 다 소식이 안 퍼져서 그런가? 아닌가. 또 이런 일 터지기 전에 방송을 켜두려…….”
“아오! 이래도 방송인 새끼들은…… 맘대로 해라, 난 튈 거니까.”
주옥 되었음을 직감한 유저들이 등을 돌리고 도주했다.
함성을 지르며 전장으로 뛰어들던 유저들 또한, 다급하게 멈추며 소리쳤다.
“저, 저거!”
“좀 전에 사용했는데 또 쓴다고? 이건 사기지!”
“밸런스 패치 안 하냐! 이게 무슨 인공지능이야 시X.”
“튀, 튀어!”
그녀와의 거리는 최소 20M 이상.
지금 도망가면 범위에 닿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상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경고! ‘???’가 치명적인 디버프를 가하려 합니다.]
[범위에 노출될 시 그녀의 종이 됩니다.]
[드높은 격의 기세가 디버프의 치명적 효과를 저지합니다.]
“어? 안 통하는데?”
“나, 나도.”
“뭐야, 우리는 왜 멀쩡하지? 분명 휩쓸렸는데.”
“저기 봐! 카신교도 멀쩡해.”
여제가 무시한 건 물론, 이곳의 누구도 디버프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여제가 자켓의 안 주머니에 넣어둔 반짝이는 무언가를 꺼내 쥐며 씨익 웃었다.
[루팔로의 보옥의 ‘혼화(魂和)’ 효과로 인해 격의 차이를 일부 상쇄합니다.]
[소유자와 시전자의 격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루팔로의 가호가 디버프의 치명적 효과를 온전히 방어하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루팔로의 기운이 일정 이상으로 중첩되어있습니다.]
[주변의 아군들에게도 효과가 적용됩니다.]
격이라면 필멸자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은 영물, 루팔로.
그의 보옥과 가호가, 저런 광범위 디버프에 당하는 걸 허락지 않고 있었다.
[이게 무슨…….]
“기습하고 흐름 좀 타니까 다 네 뜻대로 되는 거 같고 좋았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그녀를 향해 여제가 사나운 미소와 함께 붉게 변한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이제 우리가 반격할 차례다. 이 새끼야.”
역전의 서막이었다.
* * *
한편 동료들과 카신교가 총집합하기 조금 전.
도현은…….
[특성 ‘극복’을 개화하려 합니다.]
[정해진 한계를 극복하려는 자만이 극복을 개화할 자격을 얻을 수 있습니다.]
[개화를 위해 내면의 심상 공간으로 이동되었습니다.]
[스스로가 정한 한계를 뛰어넘으십시오.]
[도전자 ‘카이저’님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자신의 한계점이자 가장 빛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심상 공간이라는 말처럼 아무것도 없는 무의 가상 공간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를 반기는 무수한 메시지의 향연과 그 뒤로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한 남자.
그 남자는 도현도 익히 아는 얼굴이었다.
“……극복이라길래 뭔가 했더니.”
그 낯익다 못해 너무도 익숙한 얼굴을 보며 도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압도적이고 찬란했던 시절의 도전자를 재현했습니다.]
[그를 상대로 승리하십시오.]
“설마 뎀로크 때의 내가 상대일 줄은 몰랐는데.”
갓오세의 카이저.
그가 뎀로크 시절의 카이저와 조우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