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61화.
용살의 마법검 크산테.
명칭처럼 용을 살해했다고 전해지는 고대의 마법검.
비록 용과 드래곤은 엄연히 격이 다르긴 하나, 신수 중에서도 으뜸으로 칭해지는 용을 살해한 마법검의 위상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도 그럴 것이…….
“뭐임? 저거 설마 크산테임? 그 10대 명검 크산테?”
“멸살이 크산테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처음 듣는 얘긴데. 월영검이 유저가 가진 최초의 10대 명검 마법검 아니었음?”
“그러고 보니 멸살 검이 여섯 자루인데? 이번에 얻은 건가? 미친…… 얼마나 더 세지려고.”
“월영검보다 저게 더 사기 같냐, 왜.”
“멸살이 다뤄서 그런 거 아님? 가뜩이나 사기인 마법검이 날아다니면서 공격하니까 미쳤네.”
“자동 사냥도 되겠는데.”
크산테는 무려 10대 명검 중 하나이자, 가장 유명한 세 개의 마법검 중 하나였으니까.
그런 크산테의 능력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용살의 마법검 크산테의 특수 옵션 ‘파괴’가 시전됩니다.]
파괴.
말 그대로 해당 부위를 파괴하는 능력.
직관적인 능력의 끝을 달리는 이 단순명료한 검은, 닿는 모든 것을 꿰뚫는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였다.
애당초 최강의 방어력을 지닌 신수 중 하나인 용의 비늘조차 뚫은 검인데, 어지간한 피부는 두부 자르듯 베어내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정말 능력치 상관없이 모든 걸 베어내는 건 아니었다.
일반적인 보스 몬스터나 유저들을 상대로는 소위 말하는 ‘양학’에 가까운 성능을 보이지만…….
[크아아아!!! 이 걸리적거리는 것은 또 뭐냐! 이까짓 걸로 나에게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 같으냐.]
놈처럼 대상의 격과 능력치가 일정 수준 이상인 경우에는, 여타 무기처럼 방어력이나 쉴드를 일부 무시하는 정도에 불과했다.
“과연, 쉴드를 겹겹이 쌓아낸 건가.”
분노가 가득한 놈의 포효에 담담하게 답한 멸살이 툭 내뱉었다.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는 거지?”
[……뭐라?]
“바위도 물방울에 깨지기 마련이다. 한데 네놈은 어떻지.”
[…….]
바탄이 입을 다물었다.
심연과도 같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한 것이 꿈에 나올 듯 흉했지만, 차마 그 입은 열리지 않았다.
놈도 느끼고 있는 것이다.
‘베리어가…… 조금씩 깨지고 있다.’
그뿐이랴.
금이 가며 생겨난 틈새로, 크산테의 영향을 받은 피부에 생채기가 늘어나고 있었다.
수십 번을 넘게 맞고도 겨우 생채기?
그리 말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서걱! 푹!
콰직! 푸욱-
“검을 피할 수는 있나?”
공격을 허용하는 횟수가 지나치게 많다.
베리어를 펼치기도 해보고, 주변에 어둠을 뿌려 시야를 가리기도 해보고, 광역 마법을 퍼붓기도 해봤지만 큰 의미가 없었다.
뭘 해도 뚫고 들어오는 공격이 생겼던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빙설의 마법검 ‘서리날 라타샤’의 특수 옵션 ‘글레이셜 팽’이 발동됩니다.]
[업화의 마법검 ‘염화검(火華劍)’의 특수 옵션 ‘염화(火華)’가 발동됩니다.]
[바람의 마법검 풍화검(風華劍)의 특수 옵션 ‘청풍참(靑風斬)’이 발동됩니다.]
[미지의 마법검 ‘환영검(幻影劍)’의 특수 옵션 ‘환영난무(幻影亂舞)’가 발동됩니다.]
—-!!
[크아아아!!!]
크산테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무려 다섯 개에 달하는 마법검이 주변을 아음속의 속도로 날아다니며 공격하고 있었으니.
푸욱!
바람의 검이 왼쪽에서 찌르고,
촤아악-!
서리날의 한기를 담은 검이 오른쪽에서 팔을 베며 얼린다.
몸을 굴려 피하면 귀신같이 대각선으로 날아온 검이 퇴로를 막고, 그 틈에 날아든 환영검무가 쉴 틈 없이 괴롭히니 죽을 맛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데 진짜 문제는 저놈이었다.
파앗!
다섯 자루의 이기어검을 상대하는 와중에 거대한 대검을 쥔 멸살이 도약하며 달려든 것이다.
한데…….
콰아앙!!
‘이게 무슨……!’
다급히 손을 뻗어 펼친 쉴드에서 전해지는 충격이 범상치가 않았다.
한없이 무겁다.
마치 저 검만 중력을 몇 배나 더 크게 받고 있는 것처럼.
[태중의 검, ‘그라비투스’의 특수 옵션 ‘거압(巨壓)’을 시전합니다.]
[거인의 힘을 담은 내려치기를 시전합니다.]
실제로 마법검의 효과이기도 했지만, 단순한 무기의 효과뿐만이 아니었다.
검을 받으며 놈과 마주한 순간 느낀 것이다.
오싹-
‘이놈…… 위험하다.’
도현에게 느꼈던 두려움과는 다른…….
하나 어딘가 비슷한 감정을.
좀 전의 녀석이 권왕이 연상되어 불길했다면, 이놈은 순수한 본능이 위험하다 경고를 보내오고 있었다.
이러한 느낌을 이전에도 받은 적이 있었다.
‘……르시아.’
마치 그녀와 처음 싸웠을 때가 떠오른다.
그리 생각하던 찰나였다.
“실망이군.”
[……!]
콰아아아앙!!!!
멸살이 거칠게 내려찍자, 밀려나다 못해 바닥에 처박힌 바탄이 오뚝이처럼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곧 절망했다.
[아…….]
“미친…… 저게 뭐야.”
“와…….”
일어난 그를 겨눈 다섯 개의 마법검.
아니, 멸살이 쥔 검까지 총 여섯 개의 검이, 검붉은 검기를 품으며 바탄을 겨누고 있던 것이다.
[소드 오러 – 참격을 시전합니다.]
[소드 오러에 기이한 기운이 깃든 상태입니다.]
검붉은 빛이 폭사하며 맹렬한 굉음이 주변을 뒤덮었다.
[커헉!]
마지막 순간.
급히 쉴드를 펼치며 몸을 던진 덕에 간신히 치명상을 면한 바탄이 눈을 연신 굴렸다. 언제 어디서 이기어검이 날아올지 모름을 학습한 것이다.
하지만 이번엔 허공이 아니었다.
“이쪽이다.”
먼지 바람을 뚫고 날아온 멸살이 검을 휘두른 것이다.
한데, 좀 전의 대검이 아니었다.
반 토막 난 듯 얇으나 길이는 더욱 긴 검신에 새겨진 알 수 없는 고대의 문구들.
그 문구들에서 희미한 붉은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이건……!]
용살검 크산테였다.
한데 이전의 그 크산테가 아니었다.
붉은빛이 마치 선혈을 머금은 듯 짙고 선명했으며, 눈앞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흉포했다.
[‘파괴’의 중첩을 최대치까지 쌓아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용살의 마법검 크산테의 특수 옵션 ‘용살(龍殺)’을 발동합니다.]
크산테의 두 번째 효과.
크산테를 용살검이라 불리게 만들어준 능력이자, 10대 명검의 자리에 오르게 해준 능력.
‘위험하다.’
그것이 발동되려 하자 바탄의 뇌리에서 온갖 경보음이 울렸다.
저걸 허용해선 안 된다.
본능이 그리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피하기엔 늦었다.
놈의 속도는 여태 만난 그 어떠한 사도들보다도 빨랐던 탓이다.
그렇다면…….
‘먼저 목을 친다.’
눈을 번뜩 뜬 바탄이, 뒤로 물러나는 대신 오히려 앞으로 파고들었다.
그런 그의 양손에는 어느새 거대한 검은 낫이 들려있었다.
[근원을 베는 낫]
심연화가 되며 내면에 들끓는 흑마력에, 다시 한번 이것을 발동할 기력이 생긴 것이다.
놈이 하려는 게 무엇이든 상관없다.
이 거리에선 결코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을 테니.
히죽-
‘끝이다.’
바탄의 입꼬리가 섬뜩하리만큼 길게 찢어지던 그때였다.
파지직-
어디선가 전류가 튀는 소리가 들려왔고,
까앙-!
[……?]
곧이어 맑고 명쾌한 쇳소리가 울려 퍼지며 무언가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다.
멍한 얼굴이 된 바탄의 귓가로 익숙한 중저음이 들려온다.
“내가 있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그에 고개를 들어 가로막은 자의 정체를 확인한 바탄이 눈을 부라리며 발악하듯 소리쳤다.
[네, 네놈은……!!! 네놈이 또!!]
“……카이저.”
카이저, 놈이 또 한 번 회심의 일격을 막아버린 것이다.
바탄이 와락 인상을 구겼다.
새로 나타난 멸살이라는 사도만으로도 벅차서 잊고 있었다.
저놈 또한 위험한 놈이었다는 것을.
[이런 빌어먹을 놈들이…… 오냐, 이젠 뒤고 뭐고 없다. 다 죽여주마!!]
분노를 터트린 바탄의 주위로 지독한 검은 마나가 휘몰아치며 솟구쳤다.
[2페이즈에 돌입합니다.]
[주의! 바탄의 심연화가 크게 증폭됩니다. 서두르십시오.]
[바탄의 모든 능력치가 크게 상승하며 심연의 권능을 일부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방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
심연의 군단장들을 만났을 때보다도 더한 지독한 살기가 느껴진다.
멸살과 도현이 동시에 눈이 마주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들었지?”
“…….”
“내키진 않지만, 이번에는 힘을 합치자고.”
“……그래. 빨리 끝내는 게 좋겠군.”
생각하는 게 같았으니까.
순순히 자세를 잡는 멸살을 보며 도현이 피식 웃었다.
‘내가 살다 살다 이놈이랑 합을 맞추는 날이 다 오네.’
이 로봇 같은 놈이랑 서로 호승심을 불태운 게 엊그제건만, 나란히 있는 것도 신기한데 함께 싸우게 되다니.
역시 세상 일은 모르는 일이었다.
“와…… 이런 걸 다 보네. 신기하지 않냐, 대검아.”
“저자 또한 위대한 카신의 광명에 이끌린 것이겠지요.”
“잉? 그게 왜 그렇게 되냐?”
뎀로크 시절부터 함께하면서도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에 아스트도 신기한지 감탄을 내뱉었다.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가볍게 무시한 도현 또한 전투태세를 잡았다.
파지직!
도현의 주변으로 강한 스파크가 튀었다.
[추가 부여 능력 ‘뇌룡(雷龍)’을 발동하였습니다.]
[뇌룡(雷龍)의 두 번째 능력 ‘집중’을 시전하여 뇌룡으로 부여한 증폭된 기운을 한 곳에 집중시킵니다.]
[발동 시 증폭된 기운을 모두 소모하기에 추가로 부여된 증폭 효과가 삭제됩니다.]
[뇌룡(雷龍)의 기운을 하체에 집중하였습니다.]
[‘뇌각’을 사용합니다.]
[하체에 뇌룡의 기운을 집중시켜 폭발적인 기동력을 얻습니다.]
[이동한 거리에 따라 기운이 점차 커지며 최대 중첩 상태가 되었을 시 ‘질뢰섬멸각(疾雷殲滅脚)’을 시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합공 상태에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속도.
그리고 속도라면 자신이 있었다.
스윽.
멸살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거대한 대검을 손에서 놓았다.
그러자 스스로 허공에 떠오르며 멀어지고, 대신 바람을 휘감은 듯한 마법검이 날아와 손에 잡혔다.
아마도 저게 풍화검(風華劍)이겠지.
[바탄의 남은 생명력이 30% 이하입니다.]
‘30%라…….’
경험상 심연이란 것들의 30%는 여타 보스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피통 자체가 몇 배는 큰 건 기본이고, 생명력이 줄어들수록 온갖 버프와 카운터를 발동시키며 발악을 해댔으니까.
[적대 세력의 수장, ‘바탄’이 불완전하나 새로운 심연의 권능을 발현합니다.]
[불완전한 만악의 권능 ‘어둠 속의 악’을 발동합니다.]
[어둠 속에서 악을 피워내는 권능으로 어둠이 짙어질수록 그의 권능 또한 강해집니다.]
[경고! 오랜 시간 어둠에 몸을 담그지 마십시오.]
이곳에 있는 모든 것이 어둠 아래인 지금.
이대로 놈의 권능이 완전하게 되면 가히 절대적인 권능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크, 크흐…… 크으으아아!!]
다만, 아직 불완전해서일까.
스스로의 힘을 감당하기 버거운지 폭사하는 어둠 안에서 포효를 내지르는 바탄의 모습이 부쩍 위태로워 보였다.
하나 그렇기에 더욱 섬찟했다.
“미친…….”
“와씨, 아까랑 차원이 다른데.”
“몬가…… 몬가가 일어나고 있음.”
“새로운 심연의 권능이라는데? 이거 못 잡으면 진짜 주옥되는 거 아니냐.”
분명 방금까지 압도하고 있었음에도, 구경하던 유저들조차 불안함을 표할 정도.
하지만 유일하게 두 사람만은 태연했다.
그중 하나.
“내가 먼저…….”
“아니.”
멸살이 이번에도 앞장서려 하자 도현이 앞을 가로막으며 씨익 웃었다.
“이번엔 내가 먼저 간다.”
멸살은 별다른 반박을 하지 않았다.
그저 도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뒤로 한 발짝 물러난 것이다.
도현의 얼굴에서 본 것이다.
피식.
‘무언가 숨겨둔 수가 있나 보군.’
짙은 확신에서 오는 자신감 안에 담긴 희미한 기대감을.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적중했다.
띠링-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특성 ‘극복’을 발현합니다.]
…….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들과 함께, 몸을 감싸는 희미한 기운을 느끼며 도현이 씨익 웃어 보였다.
‘어디 효과 좀 제대로 봐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