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65화.
시야를 뒤덮은 찬란한 빛이 서서히 그쳐간다.
더불어 멎었던 소리도 조금씩 돌아왔고, 그 자리를 끔찍한 괴성이 가득 채웠다,
키에에에에에!!!!!!
누가 낸 소리인지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쿠우우웅!!!
“베, 베헤모스가 쓰러졌다!”
“세상에.”
“맙소사, 하늘을 집어삼킨 눈이 저렇게 쉽게……?”
“아아.”
하늘을 가득 메우던 베헤모스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지상으로 추락하듯 떨어진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라그 베헤모스가 누구인가.
과거 엘라니스를 종말 직전까지 몰고 간 대재앙.
비록 권좌를 잃으며 지성을 잃고 본능만이 남게 된 존재였지만, 그 육신의 단단함과 강함은 여전한 괴물이었다.
쓰러지는 모습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괴물 중의 괴물.
-ㅁㅊㄷㅁㅊㄷㅁㅊㄷㅁㅊㄷ
-와씨, 그냥 압도해버리는데?
-카이저, 그는 신인가. 카이저, 그는 신인가. 카이저, 그는 신인가. 카이저, 그는 신인가.
-멸살, 그는 신인가, 멸살 그는 신인가. 멸살 그는 신인가.
-멸살이 왜 나오냐 Xㅅ아 이건 카이저랑 아스트가 딜 다 넣은 건데.
-ㄹㅇ 무기고의 아재가 이걸?
-사스가 폭딜 한정 갓오세 최강.
-아재 한 건 했누 ㅅㅅㅅ
-여제가 첫 빠따 끊었다 이것들아. 여제가 갓임.
-ㄴㄴ 멸살이 이기어검으로 피부 안 갈랐으면 피해 안 입었음. 애초에 어그로 끈 것도 멸살임.
-광신도 카신 휘두르기는 ㄹㅇㅋㅋㅋㅋㅋ 볼 때마다 웃기네.
-아오, 멸퀴벌레들.
-? 멸살이 갓오세 정점인데 뭔 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이 그야말로 난리가 나는 것도 당연지사.
그리고 그건 현장도 매한가지였다.
아니, 오히려 그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이던 괴물이 쓰러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된 유저들의 반응이 더욱 격렬했다.
와아아아아아아!!!
귀가 아득해질 만큼 커다란 함성.
유저들만으로 이루어진 함성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수많은 이종족들이 함께하고 있었으니까.
“믿을 수가 없군…….”
“저 괴물이 이렇게 쓰러지다니.”
아스트로와 알테리온 또한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가장 경악한 건 다름 아닌 바탄이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이……!’
아무리 단시간에 폭딜을 쏟아부었다곤 해도, 겨우 사도들 따위에게 베헤모스가 쓰러졌다고?
상식 밖의 일이었다.
9서클에 이른 대마법사 여럿이 광역 마법을 퍼부어도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역시 멸살 덕이 컸다.
[용살(龍殺)]
용의 비늘마저 갈라낸 검이 낸 긴 상처가 아니었다면, 이 정도의 치명상을 입히진 못했을 테니까.
물론 여제와 광신도가 먼저 피부를 약화시킨 것도 한몫했다.
애당초 아스트 정도 되는 한 방이 아니었으면 상처를 내건 나발이건 놈을 격추시키는 건 불가능했겠지.
한 사람만 빠졌어도 그림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카이저!”
“멸살! 멸살! 멸살! 멸살!”
“와아아아아!!!”
“무기고의 주인 미쳤다!!”
하지만 결국 해냈고,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가던 전장의 사기가 확 치솟았다.
자신의 이름을 외치는 유저들의 함성을 들으며 도현은 앞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머리 위에 떠 있는 메시지를.
[특성 ‘투신(鬪神)’이 개화한 상태입니다.]
[역천기(逆天期) 2초식, 파(破)가 투신(鬪神)의 영향을 받아 한계를 뛰어넘는 힘을 발현합니다.]
‘역시…… 위력이 말도 안 되게 상승했어.’
예상대로 역천기에도 극복의 힘이 적용되었는데 그 상승 폭이 상상 이상이었다.
참격을 사용할 때부터 예상했지만…….
이건 뭐 이전보다 2배는 더 강력해지는 느낌.
아니, 솔직히 체감으로는 그 이상이었다.
‘기분 탓인가? 1초식도 강화된 거 같은데…… 설마 이게 초식마다 적용되는 건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내부에 느껴지는 기운이 범상치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는 상상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냈다.
1초식 시(始).
발을 내디디며 태산의 기운을 축적하는 보법.
역천기의 시작이자 끝이라 할 수 있는 초식이었고, 1초식이 강화되면 결국 이후 초식들도 모두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역천기의 모든 초식은 1초식을 통하기 때문이었다.
그뿐이랴.
[전(前) 심연의 강자, ‘라그 베헤모스’가 피부 위로 짙은 심연의 기운을 두릅니다.]
[역천기(逆天期) 2초식, 파(破)가 심연의 기운을 깨트렸습니다.]
용살에 의해 벌어진 놈의 상처와 별개로, 주변을 감싸는 결계와도 같은 기운들을 깨트렸다.
와아아아아!!!
그 결과가 지금의 모습.
물론 가장 큰 역할을 해준 건 다름 아닌 아스트였다.
사실상 모든 데미지를 아스트 혼자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자신을 비롯한 멤버들이 한 역할은 그저 온전히 공격을 받을 수 있게끔 서포트를 해준 것뿐.
“크으, 이거지. 속이 다 뻥 뚫리네.”
“진짜 딜이 말이 안 되긴 해.”
“과연…… 여전하시군요.”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 상쾌한 얼굴인 아스트를 보며 여제와 광전사가 혀를 내둘렀다.
“……확실히 대단한 한 방이군.”
심지어는 그 멸살마저 인정하는 모습.
도현이 봐도 아재의 한 방은 말이 안 되긴 했다.
항상 봐도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 정신 나간 위력.
솔직히 말하면 저런 한 방을 가지고 있는데 10대 길드 통합을 못 한 게 더 대단한 거 아닐까 싶을 정도다.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쿠구구구구-
급격하게 뒤흔들리는 지면.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한 진동에 모두가 함성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고, 이내 당혹으로 물들었다.
——!!!!
볼품없이 격추되어 쓰러졌던 베헤모스.
놈이 그 압도적인 크기의 몸을 일으키며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를 내지른 것이다.
상처 입은 맹수가 으르렁거리는 모습이나 다름없었지만, 그 맹수의 크기가 측정할 엄두도 안 나게 거대하면 전해지는 느낌이 달랐다.
심지어 놈은 상처 입은 맹수 따위가 아니었다.
[2페이즈에 돌입합니다.]
[전(前) 심연의 강자, ‘라그 베헤모스’의 권능과 특성이 해금됩니다.]
[특성 ‘자가복구’가 발동됩니다.]
[피부의 상처나 신체의 손상이 복구됩니다.]
[권능 ‘종말의 괴수’를 발현합니다.]
특성의 효과로 찢겨있던 신체들이 온전히 복구되었으며.
봉인되어있던 권능이 해금된 놈은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흉포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그 사이로 이제는 익숙해진 바탄의 웃음소리가 함께 새어 나왔다.
[크흐흐……, 인정하마. 설마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네놈들은 이길 수 없다. 베헤모스는 결코 죽일 수 없는 생물.]
라그 베헤모스.
그가 심연의 강자였던 시절, 심연의 존재들은 그를 이렇게 칭하곤 했었다.
-종말의 괴수.
쓰러트릴 순 있을지언정, 결코 그 숨을 끊을 수는 없는 존재.
말도 안 되는 경도의 피부와 거대한 신체까지 겸비한 그는 가히 재앙과도 같았고, 대륙과 심연을 가리지 않고 종말의 선사했다.
권좌를 박탈당한 지금은 대부분의 힘을 잃고, 이성이 사라지며 본능만 남게 되었지만, 그 특성까지 어디 가지는 건 아니었다.
[종말의 괴수로서 쌓아온 업적이 권능으로서 베헤모스에게 아득한 힘을 선사합니다.]
[종말의 괴수의 권능 ‘종말의 날’을 발동합니다.]
[경고! 한 대륙을 종말시켰던 종말의 권능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냅니다.]
[감당할 수 없는 위력입니다. 피하십시오.]
그리고 지금.
심연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그 권능이 발현되었고,
—-!
놈의 거대한 몸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문어발과 같은 수많은 다리를 사방으로 피는 놈의 주위로 이전과 다른 이질적인 무언가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건…….
마치 세상의 모든 불길한 기운들이 모여 결정이 맺힌 듯한 끔찍한 무언가.
그 크기 자체는 작아 보였지만, 베헤모스의 다리들이 워낙 크다 보니 비교되어 그럴 뿐.
결정의 크기는 5M가 넘었다.
결정 하나가 심연의 마수에 달하는 크기인 셈.
그런 게 수백, 수천 개가 넘게 퍼져있었다.
“씨X 뭐?”
“미친, 이게 말이 돼?”
“저, 저걸 다 피하라고? 어떻게 피해!”
유저들이 기함을 토했다.
이건 사실상 다 죽으라는 것 아닌가.
“이건…….”
“……이런, 결국 시작된 건가.”
“아아…….”
아스트로와 알테리온을 비롯한 엘프들.
아니, 일만에 달하는 이종족들의 안색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그건 미지의 공포를 바라보는 얼굴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학습된 공포.
그들은 이미 한 번 저것을 경험한 적이 있던 것이다.
“그날의 악몽이 다시 찾아왔는가.”
백 년 전 엘라니스를 종말 직전까지 몰아세웠던 대재앙.
그 재해와도 같던 악몽이 바로 저것이었으니까.
[크하하하하! 분발한 건 인정하나, 권능이 발현된 이상 네놈들이 이길 방법은 없다. 종말의 순간을 맞이해라!]
이건 막을 수 없다. 피할 수도 없다.
수천 개의 5M가 넘는 결정은 이곳을 모두 덮고도 남을 테니까.
그야말로 이곳 모두를 죽음으로 이끌 가장 확실한 권능.
그 앞에 모두가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허.”
좀 전까지 활약하던 일행들마저 안색이 굳은 모습.
하지만 유일하게 한 사람.
[……웃어?]
그 압도적인 마력을 앞에 두고도 도현은 여전히 웃었다.
[마지막 순간마저 거슬리게 하는구나. 그래, 많이 웃어두어라. 곧 펼쳐질 종말 앞에선 네놈도 더는 웃지 못할 테니.]
“글쎄.”
그리 말하는 바탄의 말을 끝으로, 압도적인 마력이 뿜어졌다.
권능이 발동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쿠구구구구구-!!
수천 개의 결정이 서서히 떨어진다.
아주 천천히.
아직 속도조차 붙지 않아 서서히 내려앉는 결정들은 한없이 느렸지만, 그것만으로도 전신이 울리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그야말로 지구 종말의 순간을 보는 듯한 광경.
[끝이다!]
의기양양한 놈의 말은 허세가 아니었다.
눈앞에서 떨어지는 수천 개가 넘는 거대한 결정들은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는 재앙과도 같아 보였으니까.
이대로면 일만 대군이고 뭐고 할 것 없이, 거인에게 짓밟힌 개미 떼처럼 밟혀 죽을 것만 같았다.
그 순간이었다.
퍼엉-
[……무슨?]
“?”
“엥?”
점점 가속도를 붙이며 지상으로 떨어지려던 순간.
반투명한 막 같은 것에 닿는 듯 이질적인 이펙트가 생겨나더니, 이내 결정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치 불에 닿은 얼음처럼 순식간에 기체가 되어 사라진 것이다.
그 마술 같은 광경에 모두가 벙쪄있을 때.
띠링-
도현은 위가 아닌, 눈앞의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이 상황을 알려줄 메시지를.
베헤모스와의 전투에서 가장 위협적이고, 가장 확실하게 죽게 될 권능.
일만에 달하는 이곳의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그야말로 자연재해와도 같은 재앙.
이건 달리 말하면…….
[악연을 맺은 대상의 존재를 인식합니다.]
[전(前) 심연의 강자였던 ‘라그 베헤모스’와 카이저 님은 대를 뛰어넘은 아득한 악연 관계입니다.]
[조건을 충족하여 ‘악연의 장’이 펼쳐집니다.]
[거역의 서(書)가 적합한 힘을 탐색하기 위해 시전자와 대상에 얽힌 서사를 읽고 있습니다.]
[반항의 연(緣)이 발동됩니다.]
[운명에 강하게 저항하여 상대에게 죽을 확률이 가능 높은 운명을 거스를 힘이 주어집니다.]
“이야, 이게 되네.”
확실하게 거역의 서로 카운터를 칠 수 있다는 뜻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