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248화.
그저 마주하는 것만으로, 온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려온다.
종말은 모든 것의 마지막.
그 근원을 이리 자세히 본 것은 처음이었던 탓이다.
얼마나 안일한 생각이었던가.
저런 무지막지한 근원을 지닌 자가 이리 허망하게 죽을 리가 없는 것을.
[수왕지각(獸王知覺) – 야수현신(野獸現身)]
[시전자의 몸에 깃든 야성의 근간을 파악하여, 근원을 일깨웁니다.]
[순간적으로 야성이 대폭 상승하며, 몸에 흐르는 야수의 힘이 극대화되어 폭발적인 힘을 얻습니다.]
[고대 신수 ‘펜니르’의 힘이 깨어납니다.]
[펜니르의 야성이 옅어 신체 능력만을 일부 깨워냅니다.]
콰아아앙-!
수왕이 애써 두려움을 뿌리치며, 움직이지 않는 다리를 강제로 박차고 튀어나갔다.
그에게서 더 평범한 촌장 같은 이미지는 없었다.
새하얀 라이칸스로프처럼 변한 외형과 주위로 일렁이는 거대한 늑대의 형상이 신비롭기까지 했으니까.
“지금일세. 원래대로 돌아오기 전에 어서……!”
“아.”
“젠장, 알겠네!”
하나 소리치는 모습이 너무나 처절하고, 다급했기에, 다들 금방 정신을 차리고 공격을 준비했다.
최대한 빠르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공격을.
하지만…….
[……놀랍구나.]
“아…….”
그보다 카디움의 형체가 완성되는 것이 더욱 빨랐다.
아직은 완전하지 못한지 반쯤 무너져내린 모습이었으나.
이내 손을 뻗어 수왕의 안면을 잡았을 땐 일전의 그 모습으로 돌아온 상태였고,
[종말(終末)의 권능 – 멸형악수(滅形握手)]
[피해를 입힌 상대의 육신과 영격을 안쪽부터 붕괴시킵니다.]
콰아아앙-!!
“커헉……!”
빠져나가려는 수왕(獸王)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공간 분리로 인해 생긴, 반투명한 벽에 처박힌 수왕이 축 늘어진 채 손을 꿈틀거린다.
“이런……!”
경악한 영왕이 허겁지겁 다음 술식을 준비해보지만, 이미 카디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그녀의 등 뒤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퍼엉-!
두 눈을 부릅 뜬 영왕의 뒤통수를 잡은 채, 힘을 주자 너무도 쉽게 머리통이 터져나갔다.
칠강의 죽음이라기엔 너무도 허망한 최후였다.
[후우…….]
상쾌한 듯 헝클어진 머리를 올백으로 쓸어넘긴 카디움이, 고개를 비스듬히 치켜든 채 아스트와 눈을 마주쳤다.
발이 굳어버리는 압도적인 공포.
그 순간 아스트가 아닌, 다른 이가 끼어들었다.
타앗-!
허리춤까지 내려오는 흑발의 생머리와 백옥처럼 새하얀 피부.
고고하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올곧은 자세.
천마, 천지아였다.
하나 평소와 같은 오만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떨고 있구나, 가엾은 아이야.]
애써 두려움을 이겨내려 떨리는 주먹을 휘두르고 여인이 있을 뿐.
[그럼에도 나서는 건 저자를 지키기 위함인가…… 아니면, 알량한 자존심인가.]
“……본좌가 떨고 있다고? 흥분과 두려움도 구분하지 못하는 사팔뜨기 옹이눈인가 보구나.”
[후흐, 전자인가. 뭐, 아무렴 상관없겠지. 천마신권이라면…… 그래, 그때 그 반푼이로구나.]
콰드득!
주먹을 잡은 손에 힘을 주자, 들려선 안 될 소리가 들려온다.
뼈가 으스러지는 불쾌한 감각 속에서도, 천지아는 멈추지 않고 보법을 사용해 안으로 파고들었다.
의미 없는 발악이 아니었다.
“……옹이눈이 맞구나. 진즉 천마신공의 틀을 벗어난 것을!”
[……호오?]
천마신공.
극성에 이르며 얻은 능력을, 그녀는 더욱 갈고닦는 대신 손에서 놓았다.
저번 길드전 때 깨달은 것이다.
천마신공을 아무리 갈고닦아도, 원본이 아닌 이상 결국 저들에게 닿을 수 없다는 것을.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이냐. 그렇다면 원본을 만들면 되는 것을……!”
그 결과 비록 완전하진 못하지만, 그녀는 성공했다.
[천마신공의 극성에 이르렀으나,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는 무도의 길을 택했습니다.]
[새로운 형태를 발현합니다.]
……
[새로운 극의, ‘패뢰신행(覇雷神行)’이 주어집니다.]
그녀는 본래 뇌제라 불리었던 무도가.
속도야말로 그녀의 아이덴티티였으며 전부였다.
천마신공을 얻은 이후 육각형의 길을 택해야 했고, 덕분에 약점이 없어졌으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장점이 사라졌다는 뜻.
[‘패뢰신행(覇雷神行)’을 시전합니다.]
[천마의 길을 걸으며 얻은 모든 것을 속도로 치환합니다. 속도에 비례하여 초식이 발현됩니다.]
[제1초식 패천뇌보(覇天雷步)를 시전합니다.]
[하늘을 제압하는 번개의 보법을 시전하여, 번개 같은 속도를 구현합니다.]
[제 2초식 패천뇌보권(覇天雷步拳)을 시전합니다.]
[속도에 비례하여 한 호흡 동안 이루어진 공격이 폭발적인 위력을 가합니다.]
그렇기에 모든 장점을 버리고, 속도에 올인했다.
방어도, 파괴력도, 변화도 필요 없었다.
순간적인 폭발력 하나만큼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것이 본좌의 길이니라!”
카디움이 손을 뻗었다.
검은 궤적이 잔상을 남기며 천지아의 목을 꿰뚫으려 드는 순간.
콰앙!
그녀의 신형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한 박자 늦게 터진 충격파가 대기를 짓뭉갰고, 천지아는 그 찰나에 카디움의 사각으로 미끄러지듯 파고들었다.
발끝이 허공을 짓밟을 때마다 뇌광 같은 잔영이 수십 갈래로 갈라졌다.
그러다 이내 잔상들이 하나의 궤적으로 겹쳐지며 카디움의 품 안까지 단숨에 좁혀졌다.
“후읍.”
쾅! 쾅쾅쾅쾅쾅-!!
눈으로 좇는 것조차 불가능한 연격.
한 방 한 방이 앞선 잔상을 덮어쓰며 폭우처럼 쏟아졌고, 주먹을 뻗을 때마다 전류가 튀며 귀를 괴롭게 하는 소리가 거칠게 울려댔다.
한 번의 호흡이 버틸 수 있는 한, 최대한을 끌어낸 것이다.
[잘 보았다.]
그럼에도 카디움의 몸은 단 한 치도 무너지지 않았다.
닿지 못한 건 아니다.
다만…….
[종말(終末)의 권능 – 종언의 갑각이 충격을 집어삼킵니다.]
[압도적인 격의 차이가 느껴집니다.]
[종언의 갑각이 모든 충격을 흡수합니다.]
[의미는 없지만.]
카디움의 몸을 보호하고 있는, 종말의 권능이 모든 충격을 집어삼켰을 뿐.
‘내 모든 걸 쏟아도, 피 한 방울 내지 못하는구나.’
푸욱!
카디움의 손에 깃든 불길한 검은 기운이, 그녀의 복부를 헤집었다.
가뜩이나 하얗던 피부가 창백하게 질리더니 이내 핏기가 사라지며 쓰러진다.
품으로 고꾸라지는 그녀를 툭, 밀치자 바닥에 엎어지며 가루가 되어 사라진다.
[플레이어 ‘천마’님이 사망하였습니다.]
영왕과 천마는 죽고, 수왕은 전투 불능 상태.
이제 남은 건 아스트 혼자였다.
그걸 자각한 아스트가 본능적으로 무기를 휘두르려다 멈칫했다.
손에 아무것도 없었다.
한 방을 날린 탓에 무기가 파괴된 것이다.
“커헉…… 끄으.”
결국, 불폼없이 목이 잡힌 채 들어 올려진 아스트를 올려다보며, 카디움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살아난 건가, 그게 궁금한가?]
“……끄흐.”
[당연한 것이지…… 애초에 죽질 않았으니까. 그대가 죽인 것은 내가 아닌, 나의 권능 ‘종언의 허수(虛殼)이니까.]
“끄…… 뭐……?”
[참으로 오랜만에 발동되는 권능이건만…… 설마 이리 이별을 맞이하게 될 줄이야.]
아스트의 얼굴에 순간 절망이 깃들었다.
하나 카디움은 그게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기뻐하라. 자랑스러워하라. 그대는 최강의 신의 권능을 죽인 것이니. 그것도 무려 나의 가장 뛰어난 세 개의 권능 중 하나를 말이다.]
“…….”
[실로 대단한 공격이었다.]
세라피엘라에게 거대한 철퇴를 든 인간을 조심하란 얘기를 들었을 때는, 노망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직접 당해보니 알겠군.]
이 자는 조심할 수준이 아니라, 경계해야 마땅했다.
경계를 넘어서 가장 먼저 죽였어야 했다.
[나는 신이면서 신이 아닌 자, 카디움.]
“……으윽.”
[역설적이게도 이런 나를 죽일 수 있는 건 신살자뿐이다. 약조에 의해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 그런 나에게 이만큼의 피해를 준 것이다. 이해했나?]
비록 단 한 번의 공격에 한해서지만, 신마저 위협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그렇기에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자신이 아닌 다른 신이었다면…….
꽈드득-
“끄, 크아아!”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를 텐데.]
콰드드득.
괴로워하는 아스트를 보는 카디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생명력이 바닥일 때 발동되는 보호 장비들이, 연이어 발동되며 시야와 귓가를 자극한다.
도합 네 개의 장비 효과를 모두 발동시키고, 생명력이 5% 이하로 내려갈 때였다.
쩌저적- 쩌적-
[시전자가 사망하여 공간 분리가 해제됩니다.]
[분리 공간의 베이스가 된 기존의 공간과 합쳐집니다.]
허공에 균열에 인다 싶더니, 거울처럼 깨지며 본래의 공간으로 돌아왔다.
“아, 아스트!?”
“뭐야. 저기 쓰러져있는 건 수왕이랑…… 헐, 저거 죽은 사람 영왕 아니야?”
“영왕? 칠강의 그 영왕?”
“헐. 가온 어떡하냐. 이거 알면…….”
“어 저기……!”
갑작스레 허공에서 나타난 두 사람을 본 몇몇 유저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아스트의 눈에 그런 건 들어오지 않았다.
“스승님! 네가, 네가 감히……!!”
이곳을 향해 분노하여 달려드는 스포츠머리의 남자, 가온의 모습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생명력이 2% 이하입니다.]
[경고! 위험합니다.]
시야를 방해하는 시스템 창 또한 아니었다.
그 너머로 보이는 장면.
“마, 맙소사…….”
“말도 안 돼. 저 정도나 격차가 있었다고?”
“단원인데도 이러면 대체 어떻게 이겨야 하는 거야?””
“검황이…….”
그것은 피 튀는 혈투를 이어가던 대항자 편의 유저들이, 뒤에서 일어난 상황을 보고 당황하는 모습과.
“쿨럭…….”
“검황이 지다니……!”
검에 복부가 찔린 채, 피투성이가 된 모습으로 주저앉아있는 검황의 모습이었다.
반송장이나 다름없는 모습이, 언제나 당당하고 강인하던 그 호랑이 같던 노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반면 그런 검황의 앞에 서 있는 키센 우라쿠는…….
-까다로운 녀석. 필연적으로 적중하는 검이라니…… 이런 건 오랜 삶에서도 처음이었어.
-……지금보다, 조금만 더 지고의 영역에 깊게 들어갔다면 위험했을 거다.
-이곳에서 처리해서 다행이라 봐야겠는데.
-그렇긴 한데…… 쯧, 이 모습은 추해서 잘 안 보여주던 건데 괜히 힘만 빼게…….
곳곳에 베이고 찔린 흔적과 피가 난무할지언정 꼿꼿하게 선 채로 패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만, 이전과는 모습이 전혀 달랐다.
이마에 솟은 뿔과 검게 물든 눈 흰자위 등.
인외의 존재이긴 했으나, 신체는 사람의 틀을 유지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인간의 모습을 찾아볼 수조차 없었다.
스으으-
검고 흰빛이 뒤섞인 피부는 갑각처럼 뒤틀려 있었고.
입가엔 짐승 같은 송곳니가 드러났으며, 검을 쥔 손은 사람의 머리통쯤은 우습게 터트릴 듯 거대했다.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흉성과 압도감은 보는 것만으로 숨을 막히게 만들었다.
검은색과 하얀색이 뒤섞인 괴물의 형상…….
그 모습은 영락없는 ‘오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