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Martial Artist Who Remembers Everything Raws Chapter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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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동치는 물살(3)>무림학관의 새로운 역사를 쓴 사람을 꼽자면 아마 용소아가 있을 것이다.

무림학관의 역사 속에서 그만큼 찬란히 빛나는 별은 없었다.

가장 높은 곳에서 태어나 줄곧 가장 높은 곳에 위치했던 존재.

그렇다면 그 반대엔 누가 있을까 꼽아보면, 무림학관 역사상 최초의 낭인 출신 학관생을 꼽을 수 있겠다.

사문은커녕 부모도 없는 고아 출신의 ‘개천용’.

열 살부터 낭인의 조수 생활을 시작해 열넷에 첫 낭인 일을 성공시키고, 스물둘에 홀로 시험을 쳐 학관에 입관한 사람이 있었다.

현(現) 백랑각주 등천비.

내가 소정대에서 활동을 시작했을 땐 이미 전(前) 백랑각주로서 은퇴했던 사람.

가장 낮은 신분으로 입맹하여 칠성 중 한 자리를 차지하고 최연소 각주에 오른 사람이 바로 눈앞의 격성(擊星) 등천비였다.

한때는 무림맹 성공신화의 상징이기도 했던 인물.

하지만 반대로 백랑각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한 비운의 존재였다.

어쩌면 출신이나 배경 따위가 무의미해질 정마대전이 그의 진가를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는 결국 전쟁이 터지기 전 각주의 자리에서 물러난 뒤 강호에서 종적을 감췄다.

소문만 무성했던 그를 드디어 만났다.

그런데.‘이런(?) 사람일 줄이야.’커다란 풍채에 거칠거칠한 수염.

게슴츠레하게 떠진 눈꺼풀과 충혈된 눈동자는 전형적인 무림맹원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다.

아니, 고유 무기인 태도와 앞섬이 반쯤 풀어진 장포를 생각하면…… 무림맹원보다는 녹림도에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 해야겠지.

말이…… 통하긴 하겠지?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말문을 열었다.

“전 학관 수석입니다.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는…….”

“나도 알아. 그래서 지원서 돌려보낸 거잖아. 네가 철회한 걸로 하자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왜 못 받아주겠다는 겁니까?”

눈두덩이를 씰룩이더니 불만 가득한 눈빛으로 내뱉는 등천비.

“역시 안 받길 잘한 거 같군,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걸 보니. 방금 말했잖아.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고.”

“……

하아.”

어지간한 불합리엔 이골이 난 나지만, 이런 어처구니없는 태도는 절로 분노를 일으킨다.

“크으……. 술맛 떨어진다. 얼른 돌아가라. 훠이훠이.”

“…….”

분노가 치솟는다.

더욱 화가 나는 건, 이 인간이 어찌 됐든 최종결정자이기에 쉽게 들이박을 수가 없다는 점.

“전, 백랑각에 꼭 들어야 합니다.”

“말했지. 못 받아준다고.”

대화를 하면서 이상함을 느꼈다.

안 받는다에서 어느새 못 받는다로 바뀌었다.

“무슨 말입니까? 자의가 아닌 듯한 그 말은?”

거구의 산적이 어울리지 않게 흠칫거리다가 이내 멋쩍게 말한다.

이래서 눈치 빠른 놈들은 귀찮다니까.”

“무슨 의미인지 자세히 듣고 싶습니…….”

“이미 술을 얻어먹었기 때문에 받아줄 수가 없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사를 다 봤나.

아직 부하도 아닌 사람을 먼저 팔아먹어?

“시발, 그게 무슨 개소리입니까?”

“시발? 시발? 너 지금 시발이라 했냐? 상관한테?”

“직속 상관도 아니지 않습니까? 더구나 저 안 받아주신다면서요?

“아…… 그렇군.”

뭘 또 납득하는 건데?

미래에 관해 수많은 경우의 수를 검토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갖가지 변수를 최대한 예측해 봤지만, 백랑각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전생에 하급무사로 입맹한 내가 끝내 소정대 대주까지 해먹었는데.

학관까지 졸업한 내가 백랑각에 가지 못한다니.‘이게 무슨 개 같은 일이야.’더구나 내가 준비한 계획은 모두 백랑각을 기반으로 실행해야 할 것들.

사문이나 기존 세력의 입김이 큰 다른 무각에선 실행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준비한 모든 미래가 이 눈앞의 술주정뱅이 때문에 산산이 부서지게 생겼다.

백랑각주가 바뀐 후에 들어올까 생각해 봤지만 그럼 너무 늦다.

물러설 수 없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해야 할 일을 떠올렸다.

전생과 달라진 건 무공 수준만이 아니니까.

“얼마입니까?”

“뭐가?”

“술값이요. 얼마냐고요.”

“왜? 네놈이 내주게?”

등천비가 비웃음을 흘렸다.

“네.”

“응?”

그러나 이내 토끼보다 눈이 더욱 동그래진다.

나는 그의 술병을 내려다보며 제안했다.

“양가루와 청빈루에 진 술값도 모두 갚아드리지요.”

“다른 곳에도 술값이 걸려 있습니까? 다 처리해 드리죠. 아니, 앞으로는 술값 걱정 같은 건 하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어이, 애송이.”

순간, 지독한 주향과 함께 거칠거칠한 투기가 발산되어 숨통을 조여왔다.

“흡!”

순간 몸이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근래에 들어 이런 적이 없었던 나로선 꽤나 당황스런 상황이었다.‘격성(擊星)……

이 이 정도라고?’정제되지 않은 거친 투기는 밑바닥부터 시작한 그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오랜 세월 주독에 빠져 망가진 상태라도 그는 아직 야생성을 잊지 않고 있었다.

흡사 혈투의 그것처럼, 혹은 방두칠의 그것처럼.

자신만의 길을 직접 개척하여 걸은 자 특유의 과감함이 느껴졌다.

“주제넘는 언행은 그 정도로 해라. 네놈을 팔아먹은 만큼, 충분히 봐줬으니.”

회귀한 이후 처음 느끼는 묘한 기분이었다.

한 번의 생을 살고 두 번째 맞이한 삶.

그러다 보니 아무리 나이 먹은 상대라도 어린애처럼 느껴지기 마련이었건만, 지금 그가 보인 모습은 순간 내가 살아온 긴 시간을 잊어버리게 할 정도로 과격하면서도 여유로웠다.

물론, 그렇다고 물러날 생각이 드는 건 절대 아니고.

계산은 제대로 해야 하지 않겠어?

“전 충분치 않다 생각하는데요.”

그럼 어쩌겠다는 거냐?”

마치 호랑이가 적의를 드러내듯 으르렁거렸다.

자꾸 까불면 앞뒤 없이 달려들겠다는 의도가 명확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술자리 왈패들에게나 통하는 조악한 협박이 소정대 출신인 나에게 통할 리가 있겠는가.

나는 산뜻하게 미소 지으며 집무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흐음, 일단 만통부에 이 일을 알려야겠군요. 백랑각주가 일을 방만하게 처리하고 외부에 막대한 빚을 지는 등 백랑각을 운용하는 데 있어 배임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고 보고해야겠지요.”

“이어 감찰각에도 고발장을 낼 생각입니다. 뇌물을 받고 상대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으니 충분히 문제 삼을 수 있을 겁니다.”

적의로 가득했던 얼굴에 조금씩 당황이 어린다.

아무리 철벽같은 인물도 자신의 약점을 하나하나 캐내기 시작하면 흔들리기 마련이다.

“아! 집행각에도 이야기를 해봐야겠군요. 백랑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인물을 일부러 받지 않는 건 의도적으로 백랑각의 힘을 약화시키려는 계획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는 곧 무림맹 전력의 약화로 이어지니…… 흐음, 흑도의 간자 혐의도 피할 수 없겠군요.”

“그게 무슨 개소리야!!”

범 같던 얼굴이 조금씩 개같이 변해간다.

상대가 적인지 주인인지 모르겠다는 듯, 똥 마려운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한다.

“어차피 백랑각주 자리 따위엔 아무 관심 없는 거 아니셨습니까? 설마, 인제 와서 백랑각주 자리를 보전할 욕심이라도 드십니까?”

방만하게 행동하며 다 포기한 듯 살고 있다 하더라도, 모든 걸 손아귀에서 놓아버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제 손에 쥐어진 것을 포기하기는 두려워하는 법.

뒤따르는 상실감을 감당하기 힘드니까.

“백랑각주님이 저를 백랑각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면, 백랑각주를 바꿔버리면 그만입니다.”

그게 가능할 것 같나?”

빠드득 이 갈리는 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지지 않고 맞받아친다.

단지 상대의 기분을 생각해서 물러나기엔 내가 짊어진 짐들이 너무 많으니까.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는 해보면 알겠죠. 전 그렇게 해서라도 꼭 백랑각에 들어갈 생각이니까요.”

미친놈이란 소릴 듣긴 했지만, 이렇게 밑도 끝도 없이 들이받는 놈이라니. 하! 안 받길 잘했군.”

“진짜 해보자는 거군요.”

“해보긴 뭘 해봐! 이 미친놈아!”

등천비가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어깨가 추욱 처진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술도 다 떨어진 모양인지, 그가 술병을 뒤집어 탈탈 털어보지만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길 몇 차례.

포기한 것인지 등천비가 술병을 내려놓으며 내게 묻는다.

네놈은 왜 백랑각에 들어오고 싶은 거냐?”

왜, 왜라…….

답은 명료하다.

“저한테 제일 잘 어울리는 곳이니까요.”

내 동료도 내 계획도, 모두 이곳에 있다.

회귀한 날부터 시작해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이 이곳에서 발아할 것이다.

그리고 커다란 나무로 성장하겠지.

이제 와서 다른 계획?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그간 어떤 불가능을 뚫고 여기까지 왔는데, 겨우 백랑각주 술값에 막힐 수는 없다.

시벌, 꼭 내 젊은 날을 보는 것 같군.”

“저주하시는 겁니까?”

“네놈이 백랑각주를 교체할 수 있다고 한들 결국 백랑각에는 들어오지 못할 것이다.”

“그거야 해보면 알겠지요.”

등천비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해보지 않아도 알아. 왜냐면 애당초 네놈을 막은 건 내가 아니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술값에 날 팔아넘긴 게 아니었어?

“그럼 누굽니까?”

“왜? 그자도 갈아 치우게?”

“못 할 건 없죠.”

“못 할걸.”

등천비는 모른다. 그가 걸어온 길이 쉽지 않았던 것 이상으로 내가 걸어온 길 또한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름이나 대시죠. 누굽니까? 어떤 새끼가 제 앞길을 막은 겁니까?”

시무룩해하던 등천비가 어쩐지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러곤 툭, 한 이름을 내뱉는다.

“혁무강.”

혁무강, 혁무강,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무림맹 인명록을 뒤지며 그가 지금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샅샅이 훑었다.

그놈만 제치면 된다 이 말…….

“……?!”

흐음, 설마 그럴 리가 없지.

나는 다시금 인명록을 훑다가 우뚝 멈춰 서서 등천비를 바라보았다.

“이름이 잘못된 듯하군요.”

“맞는데?”

이 사람…… 장난의 도가 지나친 것 같다.

“아닙니다. 분명 잘못되었습니…….”

“맞아.”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맞아, 맞다고, 맞다니까, 이 새끼야!? 그 혁무강!”

현 무림맹의 인명록에서, 혁무강이란 이름을 지닌 자는 단 한 사람밖에 없으니까.

“백수신검 혁무강?”

설마설마했던 그 이름이, 별호와 함께 내 입에서 튀어나오자.

등천비는 이겼다는 듯 이죽거렸다.

“네가 아는 그 무림맹 맹주 맞다, 이 어린놈의 새끼야!”

변수를 제거하기 위해 팽팽 돌아가던 머리가 우뚝 멈춰버렸다.#“…….”

“맹주전이 어딘지 몰라서 아직 여기 있는 거냐? 왜, 내가 알려주랴?”

시벌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거 반동 행위입니다. 말조심하시지요.”

“네놈이 그랬잖아. 맹주를 갈아 치워서라도 백랑각에 들어오겠다고.”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미친놈이 누굴 간자로 만들려고.

그나저나 머리가 어지럽다.

무림맹 맹주가 왜 내 백랑각행을 막은 거지?

지난번에 만났을 땐 나에게 분명 호의를 보였던 거 같은데.

이 인간이 거짓말하는 게 아닐까.

“사실입니까?”

“내가 거짓말을 하겠냐?”

“충분히 하고도 남을 사람처럼 보입니다.”

“칭찬 고맙다 새끼야. 근데 거짓말 아니야. 의심되면 가서 물어보든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허풍을 떠는 걸까.

아니면 실제 있었던 일이기에 당당히 말할 수 있는 걸까.

내가 고뇌에 빠진 사이, 등천비의 혼잣말이 귓가로 날아든다.

“내 평생에 처음 보는 무림맹주를 학관생 때문에 만나게 되다니.”

그의 목소리엔 어쩐지 허탈감이 가득 깃들어 있었다.

“대체 네놈이 뭐라고 이리들 난리인 건지.”

그건 도리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대체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왠지 차분해진 그가 의자 뒤로 몸을 기대며 나를 바라본다.

“네놈은 왜 그렇게 백랑각에 집착하는 것이냐?”

순수한 의문이 깃든 얼굴.

누구보다 백랑각의 실상과 처우를 잘 아는 사람이기에, 이 상황이 가장 이해가 가지 않겠지.

“백랑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라……. 네놈에게 어울리는 곳이 이곳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고?”

어떻게 해야 백랑각에 들어갈 수 있을까 생각하던 와중에 날아든 질문.

그 말이 어쩐지 머릿속에 걸려 그를 바라봤다.

“무슨 소리십니까?”

“네놈에게 어울리는 곳이 이곳이라 생각하는 거 아니냐, 말이다.”

“네놈도 학관 생활을 해봤으니 알겠지. 학관이건 무림맹이건 네놈 같은 놈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처음부터 한계가 지어져 있으니 말이다.”

분명 그는 내게 욕을 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짠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겉으론 공평해 보이는 기회와 실제 주어지는 것들의 간극 속에서, 기대와 실망을 반복하며 마모되고 지쳐가는 날들의 연속이었겠지.”

그는 나와 처음 대면했음에도 어쩐지 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듯 보였고.

“그러다 이내 네놈이 가질 수 있는 것을 구분하고,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애초에 원한 적도 없었다는 듯 행동을 취하겠지. 네놈이 백랑각에 오려는 것도 그것 때문이겠고. 겁먹은 꼴을 보여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내 얘기를 하고 있음에도 어쩐지 그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들렸다.

“본인 얘기를 왜 남 얘기처럼 하십니까?”

뭐라는 거야! 하여간에 요즘 애새끼들은 싸가지가 없다니까.”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인간에게 그런 소리를 듣고 있자니 심히 기분이 나빠졌다.

“요즘 애들인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자, 주저하던 등천비가 머뭇거리며 입술을 떼었다.

벽이 느껴진다 해서 먼저 포기하지 마라. 고꾸라지더라도 일단 부딪쳐 보는 게 더 나아. 그래야 지나간 나날에 후회가 남지 않는다.”

그는 과거의 어떤 이에게 전하듯 무심하게 툭

– 말을 던졌다.

“무림맹주까지 나서서 네놈의 앞날을 밝혀주려 하는 중 아니더냐……. 나와는 다르게. 그럼, 거기에 몸을 한번 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가 하는 말 자체는 나쁘게 들리지 않았지만.

“좋은 말이군요.”

등천비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게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애당초 무림맹주님도 눈여겨보는 인재가 접니다. 각주님이랑 같은 수준으로 매도하지 마시죠.”

개새끼.”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무림맹주가 백랑각주에게 지시했다는 시점에서 내가 백랑각에 배정될 확률은 없다고 봐야겠지.‘근데, 굳이 왜 맹법을 거슬러 가면서까지 나선 거지?’여전히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은 맹주가 직접 나섰다는 것.

불법은 아니지만, 적들에게 충분히 트집 잡힐 수 있는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어쩌면 내가 백랑각에 가는 게 내 앞길에 안 좋은 일이라 판단한 건지도 모른다.‘후…….’어디서부터 어떻게 오해를 풀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아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렇게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려 애쓰던 중.

등천비가 헛기침을 해댔다.

“큼, 큼, 그나저나 아까 이야기한 술값…… 그거 진짜로 해주려고 했던 거냐?”

내 평생에 이렇게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힌 건 처음이다.

“지금 저랑 장난하십니까?”

“아니, 어쨌든 그 뭐시냐, 나는 받아주려 했었는데 맹주 때문에 못 받는 거니까…….”

되도 않는 헛소리에 각주의 집무실을 나가려는 찰나.

뭔가 이상해서 뒤돌아 그를 쳐다봤다.

“맹주님의 명령으로 이미 저를 받지 않겠다 하셨다면서요. 그런데, 술은 누구한테 왜 얻어먹은 겁니까?”

내 질문에 등천비가 처음으로 환하게 웃었다.

“아, 그거? 꼴 같지도 않은 다른 무각 각주 놈들이 하도 친한 척을 해대며 부탁을 하길래 못 이기는 척하고 받아줬지. 크크, 나중에 사실을 알고 나면 표정이 볼만 할걸. 크 술 땡기네, 벌써.”

각주들이 어떤 사람들인데 그들에게 사기를 친단 말인가.

처음 봤을 땐 그냥 미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사람.‘완전 미친 사람이다.’#머리가 지끈거렸던 백랑각주의 집무실에서 빠져나와 백랑각을 돌아다녔다.

백랑각 배정이 힘들어지리라 생각하니, 곧장 학관으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던 탓이다.

다른 무각들에 비해 층고가 낮은 건물과 형편없는 시설들.

그래도 내 기억 속의 백랑각보다는 관리가 잘되어 있었다.

오랜만에 보는 곳임에도 과거보다 시설이 깨끗한 걸 보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멍하니 주변 시설들을 하나하나 보다 보니 어느새 백랑각의 대대 연무장이었다.‘언제 여기까지 와버렸지?’대연무장 주위로 각 대대의 숙소들이 보인다.

무림맹의 다른 각들은 차치하고, 학관과 비교해 봐도 작고 썰렁하다 느껴지는 전경.

그 쓸쓸한 풍경을 구경하던 중 한 무리의 모습에 우뚝 걸음이 멈췄다.

지겹고 그리웠던 그 얼굴들.

생생한 기억 속 모습보다 더 젊은 그 얼굴들을 보는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울컥 치솟아 올랐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 소정대 맞습니까?”

내가 알던 소정대원들만 있는 건 아니었지만 분명 소정대였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얼굴들이 사방에 널브러진 채 띠꺼운 눈빛으로 나를 꼬라보고 있었다.

“넌 뭐야 씹쌔끼야.”

거친 욕지거리.

“이야…… 웬 놈이 여기가 어딘 줄 알고 눈깔을 똑바로 쳐뜨고 있네? 야 이 새끼야, 눈 안 깔아? 양쪽 눈깔 먹물을 쪽 뽑아줄까? 먹물 쓰는 천목각 놈들 갖다주면 아주 좋아 죽을 텐데, 크하하!!”

천박하기 그지없는 말투.

“야, 돈 좀 가진 거 있냐? 없다고 하지 마라. 없으면 동전 하나에 아구창 한 대니까.”

숨길 수 없는 왈패 같은 행실과.

“씹다 버린 무말랭이 같은 놈이 꼴에 검을 차고 있네? 그거 어디서 샀냐? 은전 한 열 냥은 줬겠는데?”

상식은 저 멀리 내다버린 지성과 안목까지.

“씨바, 꿀 처먹었냐? 대답 안 해?”

그놈들이 맞다.

분명, 그놈들이 확실했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열어 대답했다.

“저, 저는…… 무림학관의 학관생 진소운이라 합니다.”

전생에서의 첫 만남과는 확연히 다른 인삿말.

내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푸하하하하하! 학관에서 왔단다.”

“무림학관? 야, 요즘은 학관이 똥통이 됐나 봐? 개나 소나 다 받아주냐? 우리도 거기나 지원해 볼까?”

“학관생은 개뿔…… 시벌 학사 새끼들 뭐 하는 거야, 최소한 정신 나간 놈들은 걸러야 할 거 아냐. 아무리 우리가 막장이라도 그렇지.”

인원 구성은 좀 다르지만 여전한 분위기.

그곳이다. 그곳이 맞았다.

“사실…… 이곳에 오고 싶었습니다만……. 결국 그렇게 되지 못했습니다.”

참담한 심정이 절로 흘러 나온다.

얼마나 고대해 왔던 일인가.

얼마나 그리워했던 순간인가.

그렇게 울컥 치솟아 오르는 감정에 눈물이 쏟아지려 할 때.

“이 새끼야! 소정대가 어디라고…… 너 같은 놈이 쉽게 들어올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거냐?!”

거친 말들이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하여간에 요즘 애송이들은 눈이 너무 높다니까. 그냥 개나 소나 다 무림맹 무사가 꿈이지.”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도광수 개새끼야! 네가 물 다 흐려놔서 그래!”

“왜 나한테 지랄이야. 저 반푼이 같은 새끼가 잘못을 했는데.”

나에 대한 끊임없는 비난과 욕설이 쏟아져 나왔다.

왠지…… 귀에서 피가 나올 것 같았다.

“애송아, 소정대에 들어오려면 엄마 젖 십 년은 더 빨고 와라.”

“에이, 그거 가지고 되겠냐? 그 검 들고 심산 유곡에 들어가서 한 삼십 년 정도 휘두르다 나와. 그럼 받아줄 테니까. 킬킬.”

“니네 집에 돈 좀 있냐? 내가 아는 학사가 있는데. 어떻게 뒷구멍으로 좀 넣어줄까?”

참 익숙하고 예상하던 그대로의 모습들.

소정대 놈들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나는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소정대는 본래 이런 곳이었지요.”

“뭐래, 이 미친놈이. 뭐 옛날에 와본 적 있는 것처럼 얘기하…….”

“결심했습니다.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어도 꼭, 이곳에 다시 들어오겠다고.”

내 결연한 의지가 보였던 걸까? 잠시간 욕지거리가 멈췄다.

그러나 이내.

“““푸하하하하!”””

“이거이거 완전 웃기는 새끼네.”

“야, 차라리 광대를 해라 광대, 큭큭.”

배까지 잡고 바닥을 뒹구는 소정대원들.

나는 그들의 면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대원들과 함께하고 싶다고.

반드시, 이곳에 돌아오겠다고.

“네놈이 소정대에 들어오면 내가 장을 지진다 새끼야.”

그리고 저 새끼 손에 장을 지지게 만들고, 나머지 놈들은 애정을 듬뿍 담아 끔찍하게 굴리겠다고.

낄낄거리는 소정대 놈들을 바라보며, 맹세를 몇 번이나 되뇌고 또 되뇌었다.‘니들 다 뒈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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