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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적 복수(2)>회귀 때 받지 못한 장삼봉 조사의 비기 하나를 얻기 위한 작전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사실 장삼봉 조사의 비기 때문이 아니라도 작전은 신속해야 했다.
전쟁이 터진 후에 담악을 빼돌리면 내게 남은 선택지라곤 태을문과 함께 사흑련에 투신하는 방법밖에 없으니까.
아마 나를 낳고 길러주신 아버지도 이건 용서하지 못하겠지.
내 귀엽고 이쁜 사제들이 칼날에 혀를 대며 남을 협박이나 하는 흑도인이 된다니.
음, 절대 안 될 일이다.
정도회가 이미 내가 담악을 만난 사실을 알고 있다곤 하나 기밀은 계속 유지하는 편이 좋았다.
애당초 이 미묘한 상황에서 담악이 빠져나가는 것에 대해 불편함을 느낄 전문 불편꾼들은 무림맹에 차고 넘친다.
심지어 개중엔 ‘담악이 총군사를 습격한 후에 자신의 처소에 몰래 숨은 거 아니냐’ 의심하는 과대망상 환자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주화입마에 빠져 정신이 헤까닥한 거 아닌가 확인해 보고 싶었지만, 바빠서 참았다. 진짜로 바빠서.
이동에 관한 준비는 왕가장에게 다 맡겼다손 치더라도 무림맹에서 빼내는 일은 내가 직접 해야 했으니까.
평생 저 무림맹에 들어가기 위해 통밥만 굴려왔던 내가 새삼 저곳에서 탈출하려고 하니 고려해야 할 게 한둘이 아니다.
일단은 이미 공범이 되어버린 당서희와 제갈천기를 숙소로 불렀다.
담악이 펼친 흑무고혼진의 구조에 대해선 대충 파악이 끝났지만, 만약의 경우 무림맹에 설치된 기문진식을 뚫고 가야 할지도 모르니까.
솔직히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정의를 위한 일이라도 선이란 게 있지 않은가.
무림맹 내부에서 노골적으로 담악이 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건.‘그야말로 정신 나간 새끼들이나 할 짓이니까.’이미 정도회는 담악의 처소를 기습함으로써 자신들의 정신이 나가 있다는 걸 증명한 상태다.
그런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라도 이쪽도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고.
그다음에 포섭한 건 전 사활단의 칠(七)
대주이자 이제는 백랑각의 부대주가 될 예정인 당기한.
“뭔데?”
직접 찾아간 그는 꼬름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우리만 여기에 처박아 놓고 좋냐?”
내가 백랑각에 가지 못한 건 내 의도가 아니란 걸 해명하고 싶었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려면 내가 또 맹주님의 애착 인재라는 걸 밝혀야 하게 되니 겸양스런 나로서는 당혹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일 때.
당서희가 나섰다.
“지금은 사적인 감정을 앞세울 때가 아닌 것이야.”
역시, 당과 먹인 지푸라기는 쓸모 있다니까?
“……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당서희의 말에 당기한이 표정을 다잡았다.
당서희는 박가 설병과 홍가 당과 중에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고민하는 표정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진정한 협객이 될 수 있는 기회인 것이야.”
“…….”
당기한이 사이비 교주를 보는 듯한 극혐의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대충 풀어보자면 ‘너 대체 뭔 짓거리를 한 거냐?’라는 뜻이었던 거 같다.
하, 이럴 줄 알았으면 데려오지 말걸.
그래도 당서희가 당가 내에서 힘이 좀 있어서 데려온 건데.
생각해 보면 당서희의 명성은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것 아니던가.
그녀를 조금이라도 잘 아는 사람이라면 그녀의 엉뚱함을 항시 고려하게 되니까.
협박을 할까 뇌물을 먹일까 고민하던 찰나, 당기한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았다.”
“응?”
“알았다고, 뭘 하면 되는데?”
“진짜 도와준다고?”
아니 왜? 수상하잖아. 이상하잖아.
딱 봐도 뭔가 집안 가산 팔아 투자하라는 사기꾼 같은 느낌 들지 않나?
당기한이 머쓱한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럼 대주가 단주 말 들어야지. 한번 사활단은 영원한 사활단인데.”
나는 조금 복받치는 감동에 눈물에 습기가 차오르려 했…….
“시발, 근데 너 백랑각 안 오면 나한테 독살당할 각오해라! 진짜야. 나 백랑각 지원하고 나서 부모님한테 호적 파였다는 전서도 받았다고! 진짜 안 오면 내가 평생 금옥에 처박히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너 독살한다!”
역시 사활단은 급조해서 만든 개판 부대가 맞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옛 상사한테 독살 예고라니. 무슨 군기가 이따위냐고.#짧은 시간 동안 준비를 마치기 위해 잠시도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맹의 경계를 확인하는 한편, 교대 시간을 재차 확인하고 무한에서 나갈 탈출 경로까지.
며칠이 후다닥 지나가 버렸고 그사이 사흑련발 전쟁의 긴장은 더더욱 고조되고 있었다.
나는 흑도 새끼들이 가장 가지고 있지 않은 기질 중 하나인 인내심이 발현되길 바라며 팔선(八仙)
들께 빌고 또 빌었다.
여덟 명이나 되는데 한 사람쯤은 심심함을 못 참고 내 소원을 이뤄주지 않을까?
“제발! 제발! 떡상해라!”
한편 청수진인 그 말코 도사 새끼 때문에 최대한 조용하고 은밀하게 움직였는데.
어쨌든 내가 뭔가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결국 그 말코 새끼의 귀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나를 감시하는 이들이 있거나 그래서는 아니다.
그런 놈들이 있었다면 내 기감에 잡히는 즉시 죽빵을 한 대씩 돌려줬을 거다.
나는 지금 정도회, 그 주화입마 걸린 놈들이 한 병신짓에 꽤나 열이 받아 있으니까.
하지만 제 놈들도 눈치는 있는지 따로 티 나는 감시역을 가져다 붙이진 않았다.
그럼 놈들이 알고 있는 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고?
“사형, 또 뭐 하려고 하죠?”
“요즘 분위기 살벌한 거 몰라요? 집행각 가고 싶어요?”
“대사형, 솔직히 부십쇼. 뭔 짓거릴 저지르려는 겁니까?”
“대사형, 왜 저는 당과 안 사주세요?”
뭔가 이상한 불만이 섞여 있었지만 태을문의 제자들이 하늘 같은 대사형에게 온갖 불만을 토해 내고 있었거든.
대체 어떻게 알아차린 거지?
매우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는데.
사실 이 일에 태을문과 왕가장을 동원하긴 했지만, 이제는 맹의 소속인 사제들까지 동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발을 헛디뎌 떨어지면 녹슨 칼이 잔뜩 박혀 있는 함정에 빠지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외줄타기를 하는 중이니까.
나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아닌데? 아무 일 안 하는데? 근데 니들 대사형에 대한 믿음이 나날이 땅에 처박히는 언변을 서슴지 않는 것 같구나?”
하지만 우리 사제들은 날이 갈수록 성격이 거칠어져만 가는 것 같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지금 아버지도 그렇고 외당 당주님도 그렇고, 다들 수상하기 짝이 없더만!”
사련이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씩씩거렸다.
사련이의 분노는 항시 손의 위치에 따라 그 정도가 드러난다는 걸 생각해 보면, 아직은 분노 시작 단계라는 걸 텐데.
이 정도면 조금 더 개겨볼 수 있겠지?
“아닌데. 이제 슬슬 돌아가시려나 보지. 오신 지 너무 오래되기도 했…….”
“대.
사.
형?”
허리춤에 얹혀져 있던 손이 이젠 팔짱을 낀 형태가 되어 가슴께까지 올라갔다.
“그럼 말해봐요. 금·은·동 부모님들은 왜 다른 표국을 이용해서 먼저 돌아가셨는지?”
꿀꺽.
“거봐! 수상하잖아!”
아씨, 갑자기 왜 침은 삼켜가지고.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놈들보다 일갑자 이상 살아온 나인데 쉽게 당할쏘냐.
나는 근엄함을 가득 담아 일갈했다.
“너희들! 묵림에서의 일을 벌써 잊었더냐! 그날의 절박함을 생각하면 촌음의 시간을 아껴 수련을 하기도 부족하건만!”
일순 싸한 기운이 퍼지며 분위기가 착 가라앉는다.
다들 그날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그 와중에 만통부에 추가 합격되며 환희의 눈물을 흘렸던 은호가 턱을 매만지며 얘기했다.
“흠, 살기를 내뻗으며 되레 화를 내는 모습을 보니…… 확실한 것 같네요.”
저, 저, 반골놈!
“더구나 이번 일에서 저희를 배제하려 하는 모습을 보면 극히 위험한 일이란 생각이 들고, 지금 상황에서 극히 위험한 일이라면…… 하나밖에 없군요.”
추리를 끝낸 반골놈이 손가락으로 나를 착 가리켰다.
“담악 총군사와 관련된 일!”
하여간 머리가 왜 저렇게 좋은 거야?
극단적으로 감정을 갈무리하며 표정 관리를 했지만, 이십 년 가까이 동고동락(同苦同樂)
을 한 사형제들이 아닌가.
서로에 한해선 관아의 포괘 뺨 칠 만큼 속내를 잘 읽을 수밖에.
“세상에!”
“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예요!”
벌떼처럼 달려드는 사형제들을 물리치듯 손을 훠이훠이 내저으며.
“그래서 얘기 안 한다 했잖아!”
버럭 화까지 내보았지만.
“좋게 말할 때 실토하세요!!!”
이 자식들 물러설 기미가 안 보인다.
한계의 한계를 넘는 수련을 통해서 배짱이 커졌다고 좋아했건만 그 배짱을 나한테 쓸 줄이야.
“담 군사를 탈출시킬 생각이십니까?”
은호의 집요한 물음에 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얘들도 언젠가 알 일이니까.
“그래.”
“담군사가 아직 살아 있었습니까?!”
허, 이것도 함정 질문이었나?
당했다는 생각에 붕어처럼 입을 뻥긋거리고 있는 사이.
잠시 생각하던 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도 함께해야겠군요.”
“너희도 들었다시피 위험하기 짝이 없는 작전이다. 안 된다.”
내 단호한 대답에 은호가 오히려 한 걸음 내게로 다가온다.
“거꾸로 생각해 보시죠.”
“뭘?”
“만약 대사형이 담악을 탈출시키고 결국 전쟁이 터지면, 태을문과 우리 모두 역적이 되는 거 아닙니까?”
은호는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인사가 다 있냐는 듯 말을 잇는다.
캬, 저 새끼 벌써 새카맣게 물들었네. 만통부 합격하고 이 정도인데 만통부에서 일하기 시작하면 어찌 되려는지 쯔쯧.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은호가 모든 걸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저희도 줄줄이 집행각으로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럴 바엔 애당초 함께하면서 일이 잘 안 됐을 경우 같이 사흑련으로 가면 되는 거 아닙니까.”
시벌, 재수 없게 왜 실패한 경우를 입에 올려.
하지만 은호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다.
나는 책임을 회피할 겸 다시금 물었다.
“니들도 그걸 원하냐? 함께하길?”
그리고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대답하는 녀석들.
“당연한 거 아닙니까?”
“당연하죠.”
“아버지가 동의하신 거 확실하죠?”
“전 상관없어요.”
나는 몇 번이나 말렸지만 결국 녀석들은 스스로의 선택으로 함께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럼 이제 다시 준비를 시작해…….
“근데 만약 사흑련으로 가면 최소 당주 자리 정도는 준답니까?”
은호가 재수 없는 소릴 내뱉었지만 가뿐하게 무시했다.#결전 당일.
나는 똑같이 당서희와 제갈천기를 대동한 채 봉안전으로 향했다.
봉안전에는 이전보다 더 많은 이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솔직히 이 정도면 노골적으로 담악을 막으려는 게 너무 티가 난다 싶었다.
“어찌해야 하는 것이야?”
그러게, 이거 어찌해야 하나.
이 정도의 숫자를 상대로 은밀한이란 단어를 써도 될까 싶은 심정.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돌아갈 길 따윈 없었다.
나는 상큼하게 미소 지었다.
“그냥 오래 재워버리죠.”
은밀할 수 없다면 차라리 숙면을 취하게 만들어 버리는 게 낫지 않겠나.
그럼 도중에 깨도 대응하기 어려울 테니까.
나는 당서희의 슥슥 쓰다듬었다.
“그 마비산, 죽지 않을 정도로 사용 가능합니까?”
당서희가 그르릉거리며 콧김을 내뿜는다.
“날 뭘로 보는 것이야.”
당서희는 곧장 네 개의 자개병을 꺼내어 봉안전 일대에 하독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툭
– 툭
-사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번을 서던 이들은 갑자기 다른 동료들이 쓰러지는 걸 보며 비상종을 치려 했지만.
“어! 비, 비사…….”
“헤으응.”
강력한 수면독은 그들의 얄팍한 이성을 단숨에 제압해 쓰러트려 버렸다.
나는 당서희와 제갈천기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흑무고혼진을 뚫고 들어가자.
“왔습니까?”
이전보다 더 야윈 담악이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그 검은 의복은 어디서 난 겁니까?”
사방이 막힌 이곳에서 대체 의복은 어떻게 구한 걸까.
“잠행복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마침 먹은 많으니 직접 염색을 했지요.”
담악은 입가에 작게 미소를 띠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 그를 바라보니, 그가 태연하게 말을 덧붙인다.
“강호에 몸 담았다곤 하나 실제 이런 작전에 참여하는 건 처음이거든요. 매우 설레는군요.”
이 양반아, 이 작전의 성패에 그쪽 목숨이 달려 있어요.
셀레고 즐겁고 할 때가 아니란 말입니다.
하지만 괜히 긴장하는 것보단 낫겠다는 생각에 말하는 걸 관두었다.
대신 다른 중요한 말을 꺼냈다.
“시작하기에 앞서 약속해 주셔야 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뭔가요?”
“지금 이 시간부로 모든 결정은 제가 합니다. 담 군사님을 비롯한 사절단 여러분 모두는 제가 결정하는 대로 따라 주셔야 합니다.”
역시나 담악의 수하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원성.
“그건 안 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줄 알고!”
아니, 아무리 그렇다 해도 위험을 이만치 감수하는 사람이 하는 말인데 고민을 좀 해볼 순 있는 거 아냐?
흑도인들 전부가 이렇게 인내심이 없으면 이 작전도 말짱 도루묵인데.
그래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방금 내 이야기는 생사여탈권을 달라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니까.
사절단과 호위들이 반발하는 사이, 담악이 손을 들어 그들을 잠재웠다.
그러곤 내게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진 공자에게 부탁할 때부터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습니다.”
“담 군사님!”
“말도 안 됩니다!”
담악이 주위를 돌아보며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그 묵림에서 적들의 포위망을 뚫고 만독문까지 다다랐던 사람입니다. 이번 일에 이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다른 이들의 삿된 의견 때문에 작전이 망가지면 나는 물론이고 우리 모두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진 공자에게 모두 맡기겠습니다.”
더 이상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반발할 수 있었을 법한데도 쉽게 담악의 말에 수긍하는 걸 보면, 그에 대한 신뢰가 흑도 무림 내에서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었다.
내가 작게 감탄하는 사이, 담악이 슬쩍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뗐다.
“헌데 하나 우려되는 것이 있습니다.”
결정권까지 넘긴 마당에 궁금한것이라니?
더구나 담악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대체 무슨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고…….
“어쨌든 계속 함께하게 될 텐데. 그러면…….”
“그러면?”
“진 공자와 내가 겸상을 해야 하는 겁니까?”
“농담입니다.”
뭐지 너무 긴장해서 정신을 놔버린 건가?
누가 보면 동네 마실 가는 줄 알겠네.